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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7

       집요하게 나를 쳐다보는 엔리에게서는 혼자서 죽을 수 없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호오. 지옥으로 향할 거라면 나를 데리고서 떠나가겠다? 훌륭한 판단이라 생각을 한다만 엔리 그대가 두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구나.

       

       본인이 지금 가면을 쓰고 있다. 얼굴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연기를 하는 것은 실로 간단한 일이지.

       

       그리고 하나 더. 자신의 바로 앞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멋진 연기를 펼치는 자가 있다면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도 잘 모르는 듯 해.

       

       “괜찮겠어요?”

       

       엔리. 본인의 뻔뻔함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나의 안위를 위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대를 위해 물어보는 것이니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물론이다냐! 겁먹은거냥? 주인님?”

       

       허어. 통제라. 자신의 앞에 재앙이 닥쳤음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구나. 불쌍한 아해로다.

       

       허나 이 재앙은 엔리 그대가 자신의 손으로 이끌고 온 것이니 본인의 입장에서는 봐줄 수가 없다. 이해하거라.

       

       “해볼까요?”

       

       즉석에서 목소리를 바꾸어 들려주었더니 엔리의 눈꺼풀이 빠르게 움직였다.

       

       무어냐. 본인이 이 상황에서 물러설 것이라 생각을 한 것이냐? 사고가 짧았구나. 이렇게 나올 것이라는 것도 염두를 해두었어야지.

       

       안 좋은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경험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 이 경험을 토대로 그대는 항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리라. 본인에게 감사하도록.

       

       “선창해주시죠.”

       

       *

       

       귓가에 울리는 너무도 귀엽고 달아서 썩어 문드러질 것만 같은 목소리를 들은 엔리는 미소를 굳혔다.

       

       설마 아라 씨가 현실에서도 저런 행동을 하실 줄이야! VR의 세상에서 아바타를 앞세울 때와 현실에서 캠 앞에 설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방송을 오래 해 온 엔리만 하더라도 냥체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캠 앞에 처음 서 본 사람이라면 긴장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터.

       

       그를 알고 있었던 엔리는 아무리 아라가 비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 논개 작전을 펼치면 껄끄러워 하리라고 생각을 했다.

       

       허나 달랐다. 아라는 기왕 떨어질 거면 저 깊은 낭떠러지 끝까지 손을 잡고 죽자 외치고 있었다.

       

       어떻게 저리 당당할 수가 있는 건가요?! 가면 때문인가요?! 여우 가면 때문에 뻔뻔할 수 있는 건가요?!

       

       “메이드 씨. 오므라이스가 식는데요.”

       

       – ㅁㅊㄷㅁㅊㄷ

       – 목소리 녹는다!

       – 화령님 ASMR 기원 1일차.

       

       흐아아. 적응이 안 돼. 아라 씨의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 내가 만약 변태였다면 저 목소리를 녹음해서 매일 아침마다 벨소리로 썼을 거야.

       

       “메이드씨?”

       “알겠다냥! 그러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엔리는 손에서 케첩을 내려놓고 머릿속으로 외워두었던 메이드의 주문을 되새겼다.

       

       “따라해달라냐! 후리후리~”

       “후리후리~☆”

       

       엔리가 앞서 의례적으로 동작을 취하자 아라가 그를 따라했다.

       

       잔뜩 굳어 흉내를 내는 듯한 엔리의 동작과는 달리 아라의 움직임에는 혼이 실려 있었다. 어투. 고갯짓. 팔동작. 몸의 선.

       

       VR세계에서 사람이 만들어낸 환상 속 메이드가 현실에 강림한 듯한 그 모습에 엔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반칙. 반칙이에요. 양심적으로 너무 귀엽잖아요!

       

       목소리는 가면에 가린다고 뭔가 달라지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 쳐요. 근데 어떻게 가면을 썼는데 고갯짓을 하는 게 통통 튈 수가 있죠?

       

       펑퍼짐한 후드티를 입고 있는데 몸 선이 저렇게 잘 드러날 수가 있나고요! 이건 사기에요! 치트에요!

       

       – 왜 메이드보다 주인님이 귀엽냐?

       – 메이드 일 못하네.

       – ‘다시’

       

       – 진상손님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여기 메이드가 실력이 부족하네요. 환불해주세요.]

       

       “죄송합니다냐. 진상 손님분께는 환불을 해드리지 않고 있다냐.”

       

       엔리는 후원음성을 듣고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제가 어떻게 저것보다 귀엽게 해요! 저건 프로의 솜씨잖아요! 너도 방송 프로 아니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기는 한데 그래도 저건 못 따라하죠! 저걸 어떻게 따라해요?!

       

       으으으. 아라 씨. 이래서 괜찮냐고 물어본 거였군요. 난 지옥으로 걸어들어갈 자신이 있는데 넌 자신이 있느냐고 물어본 거였군요!?

       

       그런 거라면 미리 이야기를 해주세요! 무작정 괜찮겠냐고만 물어보면 이걸 어떻게 짐작하냐고요!

       

       “메이드 씨? 계속 해야죠?”

       “…네다냐!”

       

       엔리의 속에서 끓어나오는 말은 차고 넘쳤지만 그렇다 한들 바뀌는 건 없었다.

       

       그녀가 아라에게 따라해달라 이야기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터인데도 굳이 재앙을 끌어들인 건 엔리 본인이었으니까.

       

       “샤카샤캬~”

       “샤카샤카~☆”

       

       *

       

       오늘 설아는 놀랍게도 모니터의 앞도 아니고 VR세상의 안도 아닌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그녀가 오래 전에 읽었던 무협지였다.

       

       그녀를 무협의 세상으로 인도했었던 그 소설 말이다. 쓰레기장이나 다름 없는 집 안에서 느긋하게 그 책을 읽고 있는 설아의 감상은 단순했다.

       

       “재미없네.”

       

       과거의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었다. 그것이 한창 정신적으로 몰려 있던 사춘기 시절의 추억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당시에는 그녀에게 인생을 바꿀 수준의 재미를 지니고 있던 무협지였으나 시간이 지나 다시금 읽어보면 여기저기에 낡은 티가 많이 났다.

       

       스토리라던가 주변 인물들이라던가 설정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십 몇 년 전에 있었던 글이다. 낡지 않을 수가 없지. 만약 지금까지도 신선하단 느낌을 줬다면 이 작품은 세기의 명작이라 불리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아는 계속해서 글을 읽었다.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천마신공을 배우려고 했는지,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어 했는지, 강해지려고 했는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했으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어두운 방에서 책과 씨름하던 그녀는 결국 무협지의 결말을 눈에 새길 수 있었다.

       

       “천마가 우화등선이라니. 이거 맞아?”

       

       설아가 아는 천마는 우화등선이고 나발이고 인간의 몸으로 신선들을 두려움에에 떨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런데 천마가 우화하여 신선이 되다니. 이는 천마라는 이름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책의 마지막페이지까지 확인한 설아는 가만 책의 표지를 들여다 보다 그를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버렸다.

       

       책은 더럽게 재미가 없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설아는 몇 가지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녀가 왜 처음에 강해지려 했는 지에 대한 것에 관해서.

       

       그녀는 결국 복수를 위한 힘을 바랐다. 방구석에 처박힌 내가 힘을 얻어서 환골탈태하는 것을 꿈꿨다. 흔히 이야기하는 중2병적인 감성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긴 시간이 지나 과거의 일조차 흐릿해져 버렸고, 중2병스러운 상상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한숨이 새 나오는 지금의 그녀는 왜 천마신공을 바랄까. 힘 같은 걸 지닐 필요가 없는 지금은 어찌하여 강해지기를 원할까.

       

       그는 별 어려운 고민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걸 배우고 싶은 데에 뭐 이유가 필요해? 좋아하니까 배우고 싶을 뿐이야.

       

       스스로 생각을 하고도 실없는 대답이다 싶어 고민하던 설아였지만 그런다 한들 다른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이 대답을 화령님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을 해봐야지. 화령님께서 정색을 하신다면 그 때가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고. 관대하신 분이니 한 번 더 기회를 주실 거야.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몸을 일으킨 설아가 모니터의 화면을 키기 무섭게 다른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는 하린이었다.

       

       일상 채널 영상의 편집을 주력하고 있는 하린이지만 아직 그녀의 편집 실력은 서툴다. 그래서 언제나 영상을 완성하고 나면 항상 한식이나 설아에게 검수를 맡곤 했다.

       

       “이번엔 얼마나 지적할 거리가 많을까.”

       

       이 시간은 설아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요소에서 설아보다 뛰어난 하린이지만 영상 편집이라는 부분 하나에서만큼은 초짜에 불과한 하린이다.

       

       그래서 설아는 영상을 가지고 하린을 갈굴 때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 대신 다른 부분에서는 하린에게 그만큼 갈굼을 당하지만.

       

       – 쇼츠로 올릴 영상인데 확인해주세요.

       

       하린이 보낸 영상은 방금 전 화령과 엔리가 합방을 하던 때의 영상이었다. 식탁의 한 가운데에는 오므라이스가 놓여져 있고 엔리가 그 앞에 서서 선창을 하고 있었다.

       

       ‘후리후리~’‘후리후리~☆’

       

       …

       

       미친.

       

       미친미친미친.

       

       이거 화령님께서 내신 목소리지? 그치? 지난 번에 메이드 카페 방송을 하실 적에도 귀가 녹아서 사라질 뻔 했는데 이건 더 하네.

       

       VR세상의 목소리는 좀 덜 신경을 쓰신 거였구나. 진심으로 목소리를 내시니까 진짜 성불해버릴 것 같아.

       

       ‘샤카샤카~’

       ‘샤카샤카~☆’

       

       화령의 반대편에 있는 엔리도 무척이나 귀여운 편이었다. 원래부터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메이드복에 고양이귀를 달고서 애교를 피우는 데 어떻게 안 귀엽겠는가.

       

       허나 문제는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너무도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가면을 쓰고 펑퍼짐한 후드티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어투 하나 몸짓 하나에서 귀여움이 묻어나는 화령은 귀여움의 악마였으니. 한낱 인간인 엔리로써는 견딜 도리가 없었다.

       

       ‘러브러브~’

       ‘러브러브~☆’

       

       엔리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듯 대사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더 귀엽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허나 그 노력은 보답받지 못했다. 그녀는 더 귀여워지기보다는 애처로워질 따름이었으니까.

       

       ‘오이시쿠나레. 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뀽☆’

       ‘오이시쿠나레. 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뀽☆’

       

       그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자기 스트리머에게 한없이 엄격한 엔리의 시청자들도 엔리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노력했다고. 고생했다고. 엔리 최고다! 라고. 그런 도네이션들이 엔리의 속을 긁었는지 모든 대사를 끝마친 그녀의 얼굴을 붉어져서 터질 것처럼 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령은 가면을 살짝 들어 올린 후 숟가락을 들어 자신의 앞에 있는 오므라이스를 입에 집어넣었고 이내 밝게 웃음을 지었다.

       

       ‘맛있네요.’

       ‘고맙다냐… 주인님…’

       

       영상이 끝이 난 후 설아의 머릿속에는 이 영상을 더 좋게 만들 방법이 수도 없이 생각났지만 그녀는 하린에게 채팅을 치기보다 먼저 편집 프로그램을 켰다.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화령님 목소리만 영상에서 따자. 밥 먹기 전에 저걸 틀고 나서 숟가락을 들면 맨밥이라도 너무 달고 맛있을 것 같으니까!

       

       *

       

       엔리와 함께 즐거운 방송을 끝마치고 나서 다음 날. 설아가 내게 연락을 했다.

       

       화룡무인의 세상에서 할 말이 있다고. 그녀가 무림의 세상에서 나를 만나 할 이야기라면 하나 뿐이지.

       

       부디 쓸만한 대답을 가져다주면 좋으련만. 그리 생각을 하고서 화룡무인의 세상에 접속하자 창 바깥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발을 가만히 못 두는 것이 잔뜩 긴장을 한 모양이구나. 하기야 여태까지 안 좋은 대답만을 돌려 주었으니 이번에도 불안하겠지.

       

       창문 너머로 발을 내딛어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자 설아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대답은 준비했느냐?”

       “…네!”

       “어디 들어보자꾸나. 답하라. 그대는 어찌하여 천마신공을 배우려 하는가.”

       “좋아하니까요!”

       

       복잡함도 깊이도 뭣도 없는 직설적인 대답을 들은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불안한 듯 날 올려다보는 설아를 보다 웃음을 흘렸다.

       

       그것 참 재미난 대답이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엔리 일러스트를 한 번 뽑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네요.

    고양이귀 메이드 아라와 엔리의 외주를 부탁드렸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ps. 바루의 그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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