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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7

       

       

       ‘수신(修身)’이라는 과목이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 중의 하나인데, 수신(修身)이라는 한자의 뜻 자체는 스스로를 수양한다는 뜻이지만 21세기로 따지면 ‘도덕’이나 ‘윤리의 사상’과 같은 과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대의 어린이들이 ‘수신’ 과목을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은 소학교(또는 보통학교)에서부터다.

       

       21세기의 초등학생들이 ‘바른생활’을 배우듯, 소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간 이 ‘수신’과목을 교육받게 된다.

       

       그리고 소학교를 졸업해 중학교(여학생일 경우 고등보통여학교) 같은 중등교육기관에 진학하게 되면, 그곳에서도 마찬가지로 5년간 일주일에 한 번씩 이 수신 과목을 배워야 한다.

       

       이후 직업대학 개념인 전문학교에서도 수신은 필수과목이며, 심지어 경성제국대학 같은 대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교양과목도 아니고 필수과목 말이다.

       

       물론 그 목적은 뻔하다. ‘황국신민으로서의 바른 생활’을 주입시키기 위한 목적이겠지. 하지만……

       

       ‘점심시간 언제 오나……’

       

       4교시 수신 수업을 들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 뿐이었다. 처음 수신 교과목을 들었던 몇 번은 마음속으로 분개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저 지루하기만 하다. 

       

       『……다이난 공이 태평기(太平記)에서 말하기를, 사자는 새끼를 낳은 지 3일 째가 될 때 절벽에서 떨어트려서……』

       

       가네가와 욘뻬이(金川 四平) 교수. 미래의 학생주임같은 역할인 생도주사를 맡고 있으면서, 또한 수신 교과목의 수업 역시 겸하고 있는 교수다.

       

       그런만큼 다른 교수들보다 특히 자주 보게 되는 교수인데, 학기 초에 나랑 이유하가 조선어를 쓰다 걸려서 불려간 것 이후로는 나하고는 딱히 이렇다 할 트러블은 없었다. 

       

       ‘대동아공영회 소속은 아닌 것 같지만……’

       

       『……역경을 타고 넘는 정신력과 의지야말로……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와 싸울 때, 목숨을 저버리기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을……』

       

       어째서 도덕을 가르치는 수업에서 이런 것을 배우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필기시험 준비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듣는 척을 하며 졸고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 엽사로서의 능력이나 아니면 살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업도 아니다보니, 다들 출석이나 채우려는 느낌으로 졸면서 앉아있을 뿐이었다. 

       

       『제군들! 생도 제군들!』 

       

       가네가와 교수 그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탕 탕, 하고 교탁을 몇 번 두드리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지금 졸고 있는 제군들은 내 수업이, 죽음을 앞둔 사지(死地)에서 어떠한 정신으로 임해야 하는가, 그러한 정신력을 수양하는 귀중한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군.』  

       

       『제군들은 아직도 전쟁이 먼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물론 이해한다. 전쟁이 머나먼 지나(중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만큼 잘 체감되지 않는 생도들도 있을 것이다. 총후(銃後; 후방)인 여기는 평화로우니까…….』 

       

       가네가와 교수는 가르치던 교과서를 탁 닫고, 문득 중일전쟁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제군들, 자네들 중 많은 수는 졸업 이후에, 아니면 그 이전에 전장에 나서게 되겠지.』 

       

       『졸업 후 엽사로서 마수를 사냥하며 총후에서 봉사하는 것도 물론 애국적인 것이지만, 엽사 자격이 있는 각성능력자는 언제나 훌륭한 군사자원이니 말이야.』 

       

       『작년 이래로 획기적으로 개설된 지원병 제도 덕분에, 이제는 조선인 생도들도 이 성전(聖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성전 이 지랄!’

       

       군부가 폭주해서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침략해들어간 것이 성전(聖戰)이라니, 이거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전쟁미화였다. 무슨 ‘신께서 원하신다’며 이슬람 세계로 쳐들어간 중세 십자군 전쟁도 아니고. 

       

       『그러니 제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해 주지. 특히 조선인 생도 제군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아직 신문에 나오지도 않은, 아주 최근의 이야기이지만……』

       

       가네가와 교수는 칠판에 ‘이인석(李仁錫)’이라는 조선식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놓고는 말을 이었다.

       

       『리·닌샤꾸 군은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의 조선인으로, 작년에 조선인 지원병으로 입대해 지나전선에서 내지인 병사 못지않게 용맹하게 싸워 수많은 지나인을 사살했다.』 

       

       『그리고, 조선인 지원병으로서는 최초로 영예롭게 전사했다. 그것이 바로 불과 며칠 전인 6월 22일의 일이다.』

       

       『그의 유언은 다만 성전이 완수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죽어 아쉽다는 것으로, 마지막까지도 동료의 건승을 빌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부모 역시 자식의 죽음 통보를 듣고도 전혀 슬퍼하는 기색 없이 의연했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아무리 골수 친일파 집안이라고 해도,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의 유언이나, 아니면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모한테서 그런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하지만 자기가 꺼낸 말에 스스로 감화된 듯 눈까지 감고 비장한 표정을 짓던 가네가와 교수는, 문득 우리가 앉아있는 쪽으로 시선을 두며 말했다.

       

       『그러고보면 리·닌샤꾸 상등병은 여기 있는 리·류우까 생도와 성이 같은데, 어쩌면 먼 친족일지도 모르겠군. 자랑스러워해도 좋다고 생각하네.』

       『…….』

       

       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유하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살짝 찌푸려진 미간에서 실로 깊은 빡침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리·류우까 같은 조선인 생도들 역시, 조선인이라고 해서 이 성전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아니, 구태의연한 민족정신에 사로잡히지 않고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선다면, 오히려 내지인보다 더욱 훌륭한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야, 야. 참아.’

       

       이유하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가네가와 교수를 공격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공기가 살짝 추워지려는 것 같은 찰나, 다행히 가네가와 교수는 눈치채지 못한 듯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비록 조선인이라고 해도 그 충성심은 내지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제군들도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황군은 용맹하지만, 성전에 저항하는 중국인의 수가 너무 많다. 제군들도 장차 성전에 나가 중국인을 많이 죽여야…… 으읏!』

       

       열변을 토하던 가네가와 교수가 갑자기 얼굴이 누렇게 되어서는 배를 부여잡았다. 뭐지? 설마, 화를 못 참은 이유하가 뭔 짓을 한 건가? 하지만 이유하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수, 수업은 이만 끝이다. 그, 그리고 혹시, 지리가미 가진 생도가 있다면 나에게 조금만……』

       

       앞 줄에 앉은 학생에게 화장지 뭉치를 건네받은 가네가와 교수는 배를 부여잡으며 얼른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학생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왜 저러나 했더니 급똥이었나. 

       

       ‘아. 그러고보니.’

       

       문득 기억났다. 가네가와 교수 이 양반, 엊그제 우리가 구로베 교수를 치려고 모였던 날 밤에 당직이었었지. 그 때 렌까가 나한테 말하기를,

       

       『혹시나 싶어, 아까 오스에를 시켜서 몰래 사하제(瀉下劑)를 먹였습니다. 후훗. 밤이 지나도록 변소에 갔다왔다하느라 순찰은 절대 못 돌걸요.』

       

       하며, 당직교수에게 몰래 설사를 유발시키는 약을 먹였다는 얘기를, 렌까는 생긋 웃으면서 했었던 것이다. 

       

       ‘얼마나 센 설사약을 먹인 거야……’

       

       하필 그날 당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끔찍한 벌을 받는다니 동정심마저도 느껴졌다. 

       

       그래도 뭐, 불쌍하긴 한데 학생들한테 별 거지같은 사상교육을 늘어놓았으니 그 괘씸죄를 생각하면 당해도 싼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는 해도 조금은 불쌍하긴 하네……. 

       

       ‘렌까에게는 인간의 마음이 없는 걸까?’

       

       구역질나는 사악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교수에게 초강력 설사유발제를 먹이다니, 작전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이거야말로 순수 악인가 뭐 그런게 아닐까.’

       

       뭐, 어쨌거나 나로서는 지루한 수업이 빨리 끝나서 좋았다. 다른 학생들도 점심시간을 앞둔 4교시가 일찍 끝나자 좋다고 교실을 뛰쳐나갔다.

       

       “쯧! 하여간 세상이 옛날같지가 않어!” 

       

       순식간에 다른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가 우리 분대원들만 남은 교실에서, 송병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리 지금 전쟁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 전쟁터에 나가 사람을 많이 죽이라는 얘기를, 선생이 학생들한테 할 말인가! 원, 제기랄…… 이런 얘기일랑 그만두고, 우리도 점심이나 먹으러 가세!”

       

       송병오가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고, 양복자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게, 모오 다이헨다나— 큰일은 큰일이지! 우리 아버지랑 어머니도 오빠한테 지원병에 들어가라고 야단이던데…… 우리 오니상도 아까 그 리닌샤꾸처럼 되는건 아닌가 몰라!” 

       

       오빠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양복자는 집안부터가 친일파 집안이어서인지 양복자의 오빠는 지원병에 입대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직 친일파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양복자마저도, 가족이 전쟁터에 나가서 개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체감되자 확실히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나저나 양복자도 이럴진대, 아까 가네가와 교수의 도발(?)을 정통으로 맞은 조선유교걸 이유하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까는 잘 참았어.”  

       “……!”

       

       내가 이유하의 정수리에 손을 올리고 살짝 쓰다듬는 시늉을 하자, 이유하는 잠시 흠칫했지만 눈을 감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금천(金川) 선생의 말이 맞소.”

       “응?”

       

       설마 얘, 가네가와 교수의 가르침에 설득당해버린 걸까? 하지만 이유하는 태평한 얼굴로 은근한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싸움에서는 무엇보다 정신력이 중요하다는 것 말이오. 이런 수업을 들을 때마다 내 인내심을 한없이 시험하고 키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어디에 있겠소.”

       

       아무래도 이유하는 수신 수업시간을, 스스로를 수양한다는 의미의 수신(修身)이라는 한자의 뜻 그대로 마치 인내심 레벨업 장치처럼 이용하고 있는 듯 했다. 

       

       마치 롯○의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 장수의 비결인 99세 ○데 팬 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이유하는 지혜롭구나. 걱정할 것 없겠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의 TMI……! 는 뭘 쓸까요. 수신 교과목에 대해선 본문에서 충분히 설명했으니 구태여 쓸 필요는 없을 것 같구…… 그래도 몇 개 적어봅니당.

    오늘의 TMI, 그1……!

    이인석(李仁錫) 상등병은 충북 옥천 군서면 출신으로, 8남매중 맏아들로 태어나 옥천농업실습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지원병으로 중일전쟁에 참전, 1939년 6월 22일 전사한 실존인물입니다. 조선인 지원병으로서는 최초 전사였죠.

    조선지원병 제1호 전사자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인물…… 딱 프로파간다로 써먹기 좋죠. 실제로 그의 죽음은 프로파간다로 엄청나게 이용되었습니다.

    기록상 찾을 수 있는 최초의 보도는 조선일보 7월 8일자 기사 ‘지원병 이인석군 최초의 영예의 전사’입니다만, 다른 신문은 물론이고 온갖 잡지에서도 그의 죽음이 프로파간다성 목적을 가지고 보도되었습니다.

    다만, 그가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지원병이 되었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시 지원병의 모집 경쟁률이 높았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라기보다는, 실제로는 지역 관할서의 강요에 의해서 입대한 이들도 많고, 금전적인 이유나 사회적인 평판 때문에 입대한 이들도 많았으니까요.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지원병을 심사하던 감독관이 증언하던 내용입니다.

    ‘성전이 완수되는 것을 못 보고 죽어서 애석하다’라는 유언이라든가, ‘그의 부모는 슬퍼하지 않고 의연했다’라든가 하는 보도 역시 아마 주작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게 딱 일제 말기의 군국주의 사회가 바라던 이상적인 군인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었거든요.

    오늘의 TMI, 그2……!

    작중에서도 살짝 지나갔지만, 아직까지도 널리 퍼져있는 미신인 ‘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트린다’라는 말은, 실제로 대남공 구스노키 마사시게가 했던 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남공(大楠公) 구스노키 마사시게((楠木 正成)……

    “그 다이난 공은 수만 명의 적군을 불과 오백의 병력으로 무찌르지 않았던가!”라는 찬사(?)로 유명한,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입니다.

    제국 시절의 일본은 대남공 구노스키 마사시게를 몹시도 숭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자는…’ 어쩌구 하는 그의 말도 당시의 수신 교과서에도 실려, 워낙 임팩트가 센 문장이다보니 식민지 조선과 이후의 한국에도 마치 정설처럼 퍼졌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오늘의 TMI, 그3……!

    이런 자잘한 정보를 매번 풀고 있긴 하지만, 저는 역사 전공자도 역덕도 아니에요. 부끄럽네용……!

    단지, 저 역시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에서 소설에 써먹기 위해 그때그때 배운 것들 중에서 특히 재미있거나 의외이거나 신기하거나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독자 여러분들께 공유하는 것 뿐이랍니다……!

    그런 자잘하고 쓸데없는 정보들을, 재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용……

    >_<;

    다음편 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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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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