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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세계수에 붙은 불을 진화하는 작업은 시큐엘이 맡았다.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나무 자체가 방사능에 절여지는 사태는 불가피했다.

       

       나는 프레이와 아카샤에게 각각 방사선 차폐 스크롤과 반감기 조작 스크롤을 제작 및 배포하는 일을 할당했다.

       

       프레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완수하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에 아카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알겠다고 답했다.

       

       “참 손이 많이 가네.”

       “뭐?”

       “아무것도 아니야.”

       

       아카샤는 입매를 샐긋 비틀었다.

       

       공식적인 항복 및 귀순 절차 또한 이 녀석에게 맡겼기 때문에 이런 밋밋한 감정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뭐 어떡하란 말인가. 나는 나대로 할 일이 많은데.

       

       당연히 이다음에 할 업무도 정해져 있었다.

       

       나는 한참이고 대치 중인 북쪽 해안가로 달려갔다.

       

       어둑한 안개 사이로 거대한 용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 앞으로는 격전을 벌이고 있는 마도사 무리가 보였다.

       

       “리바이어던.”

       

       내가 놈의 이름을 부르자 격하게 벌어지던 싸움이 멈추었다.

       

       전투에 몰입하던 마도사들이 하나둘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중에는 세실 르네이 총장과 버멜도 있었다.

       

       특히 버멜은 나를 보자마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반응한 건 마도사들뿐만이 아니었다.

       

       [너는.]

       

       길을 틀어주는 것처럼 안개가 걷히고, 그 사이로 철갑을 두른 거대한 해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 비늘에는 여러 마수가 짜깁기되어 있었으며, 등줄기에는 함포와도 같은 날카로운 포신이 여럿 달린 대형 마수였다.

       

       해룡 리바이어던.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웃어?”

       

       마왕군과는 연을 끊기로 한 나였으나, 한때 부하였던 녀석에게 다짜고짜 무시당하다니.

       

       [웃길 수밖에 없지. 마왕군 최고참이면서, 머리에 정령 하나 둥둥 띄우고 돌아다니는 꼴이.]

       

       해룡의 지적에 세실의 동공이 위아래로 진동했다. 명백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세실은 내가 마수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으니 황당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곧 평정을 되찾은 그녀였다. 내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앨리스를 보았기 때문이겠지.

       

       나는 둘러대지 않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런 미친 짓거리, 그만두기로 했다.”

       [마왕군을 탈퇴했다는 말이로군.]

       

       해룡은 알고 있다는 양 빈정거리기 시작했다.

       

       [창천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상천이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면, 우리를 배신할 것이라고.]

       “뭐?”

       [우리와 다른 종족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것도 모자라 이젠 정령까지 데리고 다녀? 상관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지향등을 보내면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군을 물리던 리바이어던이었다.

       

       그런데 마왕군을 때려치우겠다고 선언하자마자 이런 취급이라니.

       

       오히려 속이 후련했다.

       

       “용족답네. 동료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곧바로 쳐내는 걸 보니.”

       

       해룡 리바이어던은 요르문간드와 먼 친척 관계이다.

       

       수인족으로 분류되는 용족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경계가 뚜렷하다. 아군으로 인식한 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한 번 돌아서고 나면 밑도 끝도 없이 공격하고 만다.

       

       리바이어던이 하는 짓을 보니 이제 요르문간드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도 눈에 훤했다.

       

       “지금 당장 공격을 멈추고 이쪽에 귀순하라. 일이 다 끝나면 내가 직접 변호해 줄 테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서 투항을 권유했다.

       

       [한낱 계집애가 뭐라는 거냐.]

       

       반응은 예상대로 좋지 못했다.

       

       [내가 널 따랐던 이유는 네가 상천이었기 때문이다. 마왕님께서 점지해 주신 자리이니 서열이 있었지.]

       “…….”

       [그런데 지금은 꼴이 그게 뭐냐? 인간과 엘프에게 투항하고, 주군이 아닌 정령 따위에게 마도를 의탁했다. 배신자가 따로 없구나.]

       

       리바이어던은 몸을 좌우로 비틀었다. 철커덕, 하고 놈이 포탄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왜 네년이 다른 사천과 동급인지. 골방에 틀어박혀 깃펜만 놀리던 계집이, 왜 나머지 세 명과 어깨를 나란히 했는지 말이다!]

       

       촤아아악!

       

       물결처럼 몸을 굽이치며 모든 포신을 이쪽으로 향하는 리바이어던.

       

       연장포를 덕지덕지 탑재한 전함이 전탄사격을 하는 것처럼 등줄기에서 모든 포탄을 토해낸다.

       

       동시에 그가 몸을 뒤척이면서 생겨난 해일이 해안가로 촤르르 덮쳐 들어왔다.

       

       “제가 막을게요!”

       

       세실 총창이 스태프를 휘둘렀다.

       

       물에는 불, 불에는 물을 사용하여 포탄과 해일을 한 번에 막아낸다.

       

       세실의 눈동자는 붉은빛과 푸른 빛이 뒤섞여 태극무늬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총장님.”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그보다는 저 녀석부터 어떻게 하자고요.”

       “알겠습니다.”

       

       나는 스태프를 쥐고 앞으로 나섰다. 세실 총장과 버멜에게 한 번씩 눈길을 주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는 걸 안 리바이어던이 이번에는 브레스를 준비했다.

       

       온갖 화염과 함께 타르 같은 기름을 내뿜는 괴상한 브레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렴 좋았다.

       

       회 떠 버리면 그만이니까.

       

       

       **

       

       

       ‘성공했구나.’

       

       에테르를 보자마자 버멜이 품은 감상이었다.

       

       솔직히 말해, 에테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자신의 공은 얼마 없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그녀 스스로 내린 결과였다.

       

       마왕군도, 엘프도, 인간도.

       

       믿을 수 있는 자가 있고, 믿을 수 없는 자가 있다. 종족은 선량함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에테르는 이걸 깨닫는 데 둔감하였으나, 최근에야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 과정에는 지구에서 온 ‘가짜 에테르’와의 도움이 컸다.

       

       두 사람은 조금씩 달랐으나, 결국 같아지고 말았다. 버멜은 이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씁쓸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돌아왔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6번 패턴.”

       

       상념에서 빠져나온 버멜은 세실과 호흡을 맞추면서 리바이어던의 신경을 살살 긁는 데 주력했다.

       

       수련을 통해 충분히 강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재앙급을 쓰러뜨리는 정도가 한계.

       

       정령을 지닌 것도 아니니 절멸급 마수와 대치라도 하려면 세실 같은 정령마도사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11번 패턴. 토벽을 쌓아서 방어하셔야 돼요.”

       

       실제로 세실은 버멜이 말하는 대로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쓰러뜨릴 수 있다는 기미가 안 보였다. 조금만 체력을 빼놓으면 리바이어던이 해수면 아래로 잠수하며 체력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딜이다.’

       

       압도적인 딜량, 즉 공격력.

       

       세실처럼 여러 방면에서 지원할 수 있는 서포터가 아닌, 한 방 크게 먹일 수 있는 메인 딜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딜러가 온 시점에서 전세는 교착 상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 대.”

       

       뻐억!

       

       주걱으로 뺨을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브륄리움 앞바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에테르의 스태프질 한 번에 해룡은 급히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대, 대체 무슨…!]

       “내가 약한 줄 알았나 봐?”

       

       사실 에테르는 개인적인 전투력만 보더라도 아렌스 대륙에서 상위 1% 내에 꼽히는 강자였다.

       

       사천(四天)중 전투력이 최약체라고 했지, 그렇다고 전투에 미숙하다는 건 아니었다.

       

       3석 이하의 떨거지들은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당초 마왕이 직접 키운 존재다.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할 리가 없었다.

       

       “시건방진 놈.”

       

       무시당한 것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지, 에테르는 쉴 틈을 주지 않고 투로를 연결했다.

       

       빡, 빡, 빠악!

       

       한 대씩 맞을 때마다 머리 위로 현묘한 빛이 일렁였다.

       

       마법은 쓰지 않고 순수 체술만으로 공격하는데도 이 모양 이 꼴이었다. 그만큼 기량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젠장, 이 내가….’

       

       리바이어던은 이를 갈면서도 일단은 뒤로 물러났다.

       

       그와는 반대로 몸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부글거렸다.

       

       용족이자 구천지대계의 일축을 담당하는 자신이, 한낱 마왕군을 탈퇴하고 정령 편에 붙어버린 배신자보다 뒤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까놓고 말해서, 위엄이 안 선다.

       

       [얕보지 말란 말이다!]

       

       그리 말하면서도 자신은 잠수를 반복했다.

       

       – 이제 후퇴해도 좋다.

       

       창천의 그런 명령이 내려왔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쳤다간 용족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마왕군에서 자신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고, 같은 용족인 민천 요르문간드의 얼굴에도 먹칠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런 민폐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사항전해야만 했다.

       

       특히 상대가 군을 배반한 배신자라면 더더욱.

       

       – 맞다. 저년이 배신자이기는 하지. 처치하여 사체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야 마왕님께 큰 도움이 되리라.

       

       때마침 무전을 보내온 파스모가 불에 장작을 넣어주며 리바이어던을 자극했다.

       

       리바이어던은 성대하게 울부짖으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해수면 아래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타이밍이 좋게도 후열의 마도사 한 명이 급히 다가와 소식을 전했다.

       

       “급보입니다! 바람의 로드스톤이 도둑맞았습니다!”

       “뭐라…?”

       

       버멜과는 달리 세실과 에테르는 크게 당황했다.

       

       “한 치의 거짓이 없던가요?”

       “에어리얼 님께서 로드스톤을 싣고 도망치는 마수들을 발견하여 쫓으셨습니다. 하지만 도주 속도가 상상을 초월해서…!”

       

       에어리얼.

       

       빛을 제외하면 그 어떤 존재보다도 빠르다는 바람의 정령왕.

       

       그런 에어리얼조차도 로드스톤을 되찾지 못했다. 마수들이 그만큼 도망을 철저히 계획했다는 뜻이었다.

       

       버멜은 침음을 삼켰다.

       

       ‘마왕 부활은 기정사실이다. 일종의 인과율이라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어.’

       

       만약 이번에 막는다고 해도 세계수는 완전히 불탔을 테고 훨씬 많은 사상자가 나왔으리라.

       

       ‘차분해지자.’

       

       버멜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눈앞의 목표물에 집중했다.

       

       바다 아래에 잠적하던 리바이어던이 튀어나온 것도 그 순간이었다.

       

       “……!”

       

       에테르와 세실은 로드스톤 정보에 정신을 빼앗기느라 집중하지 못했고, 이 틈을 탄 해룡이 에테르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이 새끼가….”

       

       에테르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몸을 뒤틀었다. 다행히 입 속으로 들어가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페인트였다.

       

       “…윽!”

       

       리바이어던은 사각에서 꼬리를 휘둘렀다. 그것까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에테르는 그대로 꼬리를 맞고 튕겨 날아갔다.

       

       “아스테야 선생!”

       

       세실이 소리치기 무섭게, 버멜은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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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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