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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여러 일들이 있었다.

        

       아니, 진짜로. 말 그대로 여러 일들이 있었다.

        

       심지어 나는 잠들었다 깨어나면 시간이 훅훅 지나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원래의 세상에서도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중요한 순간에만 구체적인 기억과 내 의지를 갖추게 되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연속으로 겪은 일을 나열하면 이렇다.

        

       “네가 찾던 것이 이걸 말하는 것이냐?”

        

       부르지도 않았는데 실로 뜬금없이 제도에 나타난 검성이 다짜고짜 그레이스 영지를 찾아와 나에게 지보를 내밀며 그렇게 말했다.

        

       ……예?

        

       아니, 그래, 분명히 나는 지보를 찾는 데 힘을 보태달라고 하긴 했다. 분명히 제이든이 갔었던 자치국과 제국의 국경지대에도 유적이 있었을 거고, 그곳을 굳이 포격으로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버린 이유도 거기 있었을 테니까.

        

       나는 못 찾을 거라는 각오하고 부탁한 것인데, 검성은 당당하게 그 지보의 조각을 찾아왔다.

        

       아직 제대로 맞춰지지 않은 조각은 딱히 빛이 나지 않았다. 하긴, 이 자리에 앨리스나 클레어가 없었으니 지난 세계에서처럼 빛이 날 만한 이유도 없었지만.

        

       눈앞에 당당하게 앉아있는 검성과 지보를 보면서 나는 머리를 맹렬하게 회전시켰다.

        

       만약 여신이 나를 방해하겠답시고 나를 최대한 배제한 채 세상을 굴리고 있다면, 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제대로 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엄밀히 따지면 검성이 실제로 이런 것을 찾아올만한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버리면 되잖아.

        

       내가 클레어와 함께 지보를 이용해 여신의 힘을 막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여신이 ‘질서’에 목매는 존재라서 그럴지 모른다. 나야 존재 자체가 여신에 의해 이 세상에 떨어진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존재는 원래의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는 존재들.

        

       내가 멈춰있더라도 다른 존재들은 각자 자기만의 일정과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오히려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닐까? 황제라는 존재를 직접 막지 않고 온갖 함정을 파 마지막에 자기 힘을 돌려놓도록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설득력 있는 추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찾으셨다고요?”

        

       “북부는 내 고향이다. 게다가 이렇게 보여도 젊었던 시절에는 전장을 열심히 누비고 다녔으니까. 내가 황제와 일면식이 있다는 이야기는 했더냐?”

        

       “…….”

        

       아, 그래.

        

       생각해보니 황제도 유적 하나를 혼자 털어먹긴 했어. 지보 있는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검성이 황제와 같은 실력을 갖췄다면, 유적의 위치만 특정할 수 있다면 지보를 찾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깨진 석판— 이렇게만 봐서는 어떻게 이게 그런 형태의 ‘황동 톱니바퀴’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물건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유적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지보가 있어야 할 텐데요.”

        

       “그렇더냐?”

        

       검성은 팔짱을 낀 채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다. 유적이 대놓고 ‘유적’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만약 그런 모습을 빤히 드러내고 있었다면 당연히 수많은 사람에게 이미 털렸겠지. 내부가 지보가 아니면 도저히 밝아질 수 없는 마법이 걸려있더라도 앞을 전혀 못 느끼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노스우드에서 그 유적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여신의 힘을 강탈한 클레어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황제는 우리가 자신을 따라 들어온 줄 아는 것 같았지만.

        

       “빨간 머리를 한 녀석이 전장에서 얼쩡거리길래 네가 말했던 그 녀석이라고 생각해 뒤를 쫓아다닌 게 도움이 된 모양이구나.”

        

       “…….”

        

       루카스가 개연성이었나.

        

       확실히, 내가 크로우필드에 가 있을 때 루카스가 감시하러 오지 않은 것을 보면 그사이에 루카스가 뭔가 하고 있었다는 말이겠지.

        

       그게 북부에서 유적 찾기였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조금 소심해진 황제가 제이든으로 북부를 쓸어버리는 것 보다는 몰래 사람을 보내 탐색했다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아니, 잠깐만.

        

       “그렇다는 건 루카스와 맞붙으셨다는 뜻……?”

        

       “허허.”

        

       내 질문에 검성은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안 죽으셨……?”

        

       빡!

        

       내 다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내 이마에 딱밤이 와 닿았다. 딱밤인데 왜 소리가 ‘딱!’이 아니라 ‘빡!’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대단한 녀석이기는 하더구나.”

        

       양손으로 이마를 움켜쥔 내가 겨우 고개를 들어 검성을 보자, 그는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전성기의 나보다도 더 실력이 좋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둘의 ‘목표’가 다르니 할 수 있는 것도 달랐지.”

        

       “목표라뇨?”

        

       “나는 그 지보를 찾아 너를 찾아오는 것이 목표였고, 그 녀석은 나를 베는 것 자체가 목표였으니까. 자기가 받은 임무와 욕망을 분간하지 못하는 녀석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으냐?”

        

       어…… 군인으로 살기 싫다고 산속에 들어간 양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조금 인지부조화가 오는데.

        

       “나의 목표는 네가 말한 그 여신과의 싸움을 직접 보는 것이다. 그런데 고작 나보다 조금 강할지도 모르는 꼬마한테 베이는 것으로 그 재미있는 광경을 놓칠 수는 없지. 그 녀석과 싸우는 건 그때의 마지막 순간으로 미루는 쪽이 훨씬 운치 있지 않으냐?”

        

       “…….”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그런데, 그렇게 루카스와 맞붙어 이걸 얻어낸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이후에 이 영지로 직접 오셨다는 말씀이신지…….”

        

       “그렇다만?”

        

       나는 기껏 내렸던 손을 다시 들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게 일단 내가 일어나서 겪은 첫 번째 사건이었다.

        

       *

        

       제이크와 로티에 관련된 사건은 여기서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다만 배경 자체는 훨씬 급박해서, 오히려 린드버러 공작을 설득하기는 쉬웠다.

        

       “이번 전쟁에서 식민지를 잃을지도 모르지.”

        

       내가 황녀였을 때는 나름대로 예의를 차리던 공작은, 이번에는 내 앞에서 편하게 말을 놓았다.

        

       그렇다고 나를 막 하대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능성 있는 어린 귀족 영애를 만난 듯한 표정이었달까.

        

       “식민지인들을 데려다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말은 듣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보상이 없으면 일하지 않아. 지금이야 죽지 못해 살기 위해서라도 일을 하고 있지만, 조금의 임금을 받으며 현실에 순응하는 것과 손에 무기를 쥐여주고 사람을 죽이는 법을 가르쳐 우리를 지키도록 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전쟁 후 영향력이 비교적 약해질 황제의 노림수이기도 하겠죠.”

        

       나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식민지를 잃는다는 것은 뼈아플지 모르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린드버러 공작가를 수탈에 앞장선 악역으로 두고, 그 악역을 치우고 식민지에 미래를 가져다준 황가를 내세우면 ‘비교적’ 마찰을 줄일 수는 있겠죠.”

        

       “그리고 전장에 나섰던 식민지인들을 영웅 취급해주는 것까지 한다면. 폐하는 이 나라의 혈통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건가?”

        

       거의 반란 모의나 다름없는 대화를 하면서도 폐하라는 높임말을 쓰는 것이 웃기다.

        

       “신경 쓴다고 해서 승리가 굴러들어오는 것은 아니죠.”

        

       내 말에 린드버러 공작은 나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그러니, 공자님과 로티의 관계는 허락해주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최소한의 방파제가 되어줄 겁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다. 그냥 로티 개인이 ‘배신자’ 취급을 받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린드버러 공작은 여전히 시원한 표정은 아니었다. ‘황녀’였던 내가 직접 내 측근이라는 선언을 하고 로티가 기사 작위까지 받게 된 상황에 비해서, 지금 내가 말해주는 것은 그저 조금 똑똑한 남작가의 영애가 자기 추론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뿐이었으니까.

        

       무엇하나 ‘확실하다’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보험 하나 정도는 여기도 들어둬야겠지. ‘확실한’ 걸로.

        

       “공작님, 혹시 드레드노트 함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지 않으십니까?”

        

       나는 조금 목소리를 낮춘 채 린드버러 공작에게 말했다.

        

       그래.

        

       원래 배신이라는 것은 이중, 삼중으로 해야 상대가 못 알아차리는 거니까.

        

       이게 내가 연속적인 사건 안에서 겪은 두 번째 일이었다.

        

       *

        

       그리고—

        

       “전함을 포기하라는 건가.”

        

       나는 그것과 완전히 똑같은 소리를 황제에게도 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 황제 폐하의 계획이 제대로 맞아들어가면.”

        

       나는 황제에게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전함 같은 것이 있으나 없으나 이 세상은 황제 폐하의 뜻대로 흘러갈 테니까요. 황제 폐하를 해하려던 존재들이 제 꾀에 넘어가 넘어진다면 황제 폐하의 최종적인 계획이 더 수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을까요.”

        

       “…….”

        

       내가 황제를 경애하는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하자, 황제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꿇어 엎드린 내 앞에는 고운 천으로 잘 싸인 지보 조각이 있었다.

        

       내 옆에는 앨리스도, 클레어도 없었고.

        

       그래.

        

       원래 배신이라는 건 삼중, 사중으로 저질러야 상대가 못 알아차리는 법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타이밍도 중요하고.

        

       이게 내 바쁜 일상에서의 세 번째 사건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연재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ㅠ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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