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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휘이잉-.

     

    이 시기의 옥상은 조금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그야, 가을이니까.

     

    곧 따듯했던 날이 지나고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난로니, 발열장판이니 하는 현대문명의 기술이 있으니 사실 겨울이라고 해 봤자 그다지 혹독한 환경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무성한 식물이 숨을 죽이고, 겨울나기에 들어간 동물들이 자취를 감추면 야생의 포식자나 몬스터들에게는 여전히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환경이다.

     

    때문에, 동물들은 가을부터 살아남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앞으로 다가올 겨울에 대비하면서.

     

     

    그리고, 지금.

     

    여기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자신도, 어떻게 보면 겨울에 살아남기 위해서 대비하는 동물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헬레나는 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원래 아카데미의 쉬는 시간은 조용할 날이 없지만, 오늘은 더 시끄러운 느낌이었다.

    시험이라는 아이들 사이의 커다란 공통주제가, 평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낳는 탓이다.

    분명 귀마개를 챙겨 왔는데도 뚫고 들어올 정도로.

     

    그런 곳에서는 아무리 책을 들여다 보더라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 탓에 헬레나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날에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아카데미의 옥상을 찾은 것이다.

    역시나 조용하고 한적해서 혼자 공부를 하기에는 딱 좋았다.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잠깐 바람을 쐬는 걸로 감기에 걸리지는 않겠지.

     

    “하여튼……. 멍청한 애들 뿐이라니까.”

     

    헬레나는 속에서 우러나온 말을 중얼거렸다.

     

    굳이 이미 지난 시험의 답안을 맞춰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데에 시간을 낭비할 바에는 차라리 다음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

     

    뭐,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시간을 낭비해 줘야 자신이 그 위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딱히 그 아이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원래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이용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헬레나가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쯤.

     

    -또각, 또각.

     

    구두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응? 왜 이런 곳에 사람이?’

     

    헬레나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으나, 시끄럽게 하지만 않으면 아무렴 어찌되든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목소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래, 여긴 아무도 없을 게다. 시험날 굳이 힘들게 옥상을 찾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지.”

     

    중얼거리는 듯 한 루크의 목소리였다.

     

    ‘루크가 왜?’

     

    헬레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루크의 말대로, 이 시간에 굳이 힘들게 옥상을 찾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말이 있지 않던가.

    당신이 떠올린 생각은, 전 세계에서 누군가는 떠올렸던 생각이라고.

    그러니 누군가 똑같은 생각을 품는 것 차체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필이면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 루크라니!

    헬레나는 허겁지겁 주위를 둘러보다가, 후다닥 벽 뒤로 몸을 숨겼다.

    혹시나 머리카락이 밖으로 삐져나가지 않도록 양갈래로 묶인 머리카락을 각 손으로 움켜쥐곤 얼굴 가까이에 붙인다.

      

    그리고, 귀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철컥, 끼이익. 또각, 또각.

     

    옥상의 문이 열리고, 루크가 들어왔다.

     

    “흐음-.”

     

    크게 숨을 들이키는 루크.

     

    “보거라, 리브. 어느 시대이든, 가을의 하늘은 몹시도 청명하구나.”

    “…….”

     

    루크는 ‘리브’라는 이름을 말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분명 들려온 발 소리는 딱 하나였는데.

    대체 리브가 누구지?

     

    헬레나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루크는 계속 중얼거렸다.

     

    “이런 날에는 오거 풍뎅이 애벌레가 참 잘 잡히는데. 이 시기에 갓 잡은 오거 풍뎅이 벌레는 참 맛있지. 힘도 잘 나고 말이야. 시험이 끝나면 잠깐 숲에 들러볼까?”

     

    루크의 말에 헬레나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오거 풍뎅이 애벌레를 떠올렸다.

    자신의 손가락 만한 길이에, 엄청 두툼한 그 애벌레는 보는 것 만으로도 징그러워서, 환상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더 이상 TV를 볼 수 없어서 채널을 돌려버릴 정도로 끔찍한 모습의 생물체였다.

    그런데 그런 걸 먹는다니!

     

    원치않게 헬레나는 그 애벌레가 자신의 입 안에 들어와 씹히는 감촉을 상상하고 말았다.

     

    자신은 엘프여서 고기 같은 걸 씹어본 적은 콩이나 버섯등으로 고기의 식감을 흉내낸 음식 밖에는 먹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에 헛구역질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때에는 자신의 뛰어난 상상력이 독이나 다름없었다.

    ‘우욱…….’

     

    최대한 참아낸 자신의 헛구역질 소리가 루크에게 들리지 않았기를 비는 수 밖에.

     

     

    그나저나, 벌레를 먹다니.

    대체 왜?

     

    먹을 게 없나?

    아니, 세상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벌레를 먹느냔 말이다.

    엘프는 동물성 마나가 포함된 음식은 입에도 대질 않으니 정말이지 공감이 조금도 불가능하다.

    아니면, 수인 아이들은 벌레도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건가?

    혹시 이것도 종족의 차이인가?

     

    도무지 모르겠다.

     

    단지, 자신에게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든 루크를 속으로 원망할 뿐.

    하지만 경악할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하하, 그래? 그대도 먹어보고 싶단 말이지? 하지만 어쩌나. 그대는 입이 없지 않은가.”

     

    루크는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지만, 헬레나에게는 꽤나 끔찍한 소리로 들렸다.

     

    입이 없다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헬레나는 옛날에 아빠 몰래 찾아보았던 공포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렸다.

     

     

    무서운 괴물에게 붙잡혀, 눈과 입이 꼬매져버린 불쌍한 희생자의 모습을.

     

     

    너무나 끔찍한 상상이었기에, 헬레나는 벌벌 떨 수 밖에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서 루크에게 대체 방금 그게 다 무슨 소리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그랬다간……?

     

    ‘어라? 나 대체 왜 숨은 거지?’

     

    일단 당황해서 숨기는 했는데, 생각해보니 대체 왜 숨었는지 모르겠다.

     

    자기가 루크의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아이라는 걸 알게 된 직후 솔직히 만나는 것이 꺼려지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렇게 피해다닐 이유는 없다.

    루크는 자신이 그 얘기를 엿들었는지 모를 테고, 딱히 자신이 그걸 들었다는 티만 내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숨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 이러고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괜히 엿듣고 있는 것 같고…….

     

    ‘좋아, 지금이라도 자연스럽게 나가서…….’

     

    그렇게 움직이려던 순간이었다.

     

    “음? 이건……. 내가 헬레나한테 줬던 공책인데.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헬레나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황급히 자신이 챙긴 것들을 떠올려보는 헬레나.

     

    그러고보니, 공부하던 것들을 챙긴 기억이 없다.

    아마도 그대로 놔두고 숨어버린 것 같다.

    헬레나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크는 자신이 낸 인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헬레나? 게 있느냐?”

     

    “……으, 응?”

     

    ———

     

    루크는 쭈뼛거리면서 걸어나오는 헬레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었다.

     

    “하하하, 대체 왜 거기 숨어있었던 게냐?”

    “그, 그러게. 하하하…….”

     

    차마 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던 헬레나 역시, 루크를 따라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옥상에 사람이 올라오는 것에 그렇게 놀랐느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크라서 놀랐던 것이지만.

    루크의 질문에 헬레나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갑자기 누가 올라올 거라곤 생각하질 못해서…….”

     

    “그런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구나.”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 주었다.

    원래 어린아이들은 뭔가에 놀라면 잘 숨는다.

     

    왜, 야생동물들도 으레 그렇지 않은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라는 표현도 있을 정도고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당황스러우면 몸을 숨기고 싶어지는 것은 본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헬레나는 원래 부끄러움은 많을 지라도 당차고 고집스러운 아이가 아니었던가?

    만약 누가 올라온다면 ‘여긴 내 자리야!’라고 외칠지언정, 숨는 것은 헬레나 답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루크는 조금 의아한 듯이 말했다.

     

    “그런데, 너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너는 언제나 당당한 모습일 줄 알았다.”

    “그, 그런가……?”

     

    헬레나는 루크의 말에 볼을 긁적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사실, 옥상으로 올라온 것이 루크만 아니었으면 아마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헬레나는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루크의 이상형은 레니에 아린세이아처럼 당당한 여자.

    그렇다는 얘기는…….

     

    ‘이거, 내가 반대로 행동해서 루크가 나한테 실망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비록 붉은 빛이 감도는 머리칼과 빼어난 용모 부분은 교칙상 염색을 할 수도 없고 화장을 할 수도 없으니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최소한 당당하고 의지가 강한 성격이라는 부분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느냐?”

    “응?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냥, 시험 생각 중이었어!”

     

    루크의 갑작스런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는 헬레나.

    루크는 그런 헬레나의 모습이 오늘따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어린아이들은 기분에 따라서 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행동이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호호호…….”

     

    헬레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리면서도 평소보다 덜 당당하고 더욱 얌전하게 웃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문득, 루크가 품에 곰인형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거, 이제보니 네가 생일 선물로 받았던 곰인형이잖아?”

    “아, 맞다. 기억하는구나?”

    기억하다마다.

    헬레나는 원체 인형에 관심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헬레나도 인형은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단 사랑하는 편에 차라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곰인형을 학교에 가져온 거야?”

    “그렇지. 후훗, 귀엽지 않느냐?”

    “그…….”

     

    루크는 곰인형의 손을 위로 올리고 인사를 하듯이 좌우로 흔들었다.

    확실히, 귀엽긴 하다.

     

    항상 잠에 들 때마다 인형을 품에 안고 자는 헬레나다.

    헬레나의 방 침대에는 인형이 셋 이상 올려져 있었고, 서랍장의 위를 가득 장식한 것도 인형이었다.

    심지어는 공부를 하는 책상 위에도 작은 인형이 앉아 있었을 정도다.

    “뭐, 귀엽긴 하지만…….”

    헬레나는 리브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만큼 인형에 많은 관심을 가진 헬레나는 순간 인형의 귀여움을 토로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기뻤다가, 그 아이의 이상형이 바로 자신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다시 조금 갑갑해졌다.

    고작 이런 걸로 호감도가 올라가면 대체 어쩌잔 건지.

    “그럼, 그 곰인형 이름이 리브야?”

    “그렇다. 역시 듣고 있었느냐?”

    “그,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괜찮다. 뭐, 탓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단지 물어봤을 뿐이야.”

     

    루크는 ‘들어도 상관 없는 얘기였다.’며 가볍게 웃었다.

    그 말에 헬레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엿듣는 것도, 솔직히 양심에 크게 찔리는 일이었다.

    그것도 한번이면 족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루크를 바라보자, 헬레나는 그제서야 ‘입이 없다’라는 게 곰인형의 얘기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심할 수 있었다.

    곰인형은 당연히 입이 없겠지.

    자신의 단순한 오해였던 것이다.

    리브가 곰인형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야, 루크가 곰인형을 가지고 놀 거라고는 미처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것도, 심지어 학교에 가져올 정도로 좋아할 줄은…….

    어쩌면, 애벌레 얘기도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게 아닐까?

    소꿉놀이 같은 걸 하면서 놀았던 얘기를 하는 거겠지.

     

    ‘나는 대체 무슨 상상을 한 거람.’

     

    헬레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리 수인이래도 그걸 그렇게 먹을리가 없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애벌레 얘기는 그냥 사실인데…

    근데 솔직히 학교 다니면서 옥상 열려있는 거 여러분들은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맨날 잠겨 있던거 같은데 말이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같은 데서는 자주 올라가서 도시락도 먹고 그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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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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