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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알 수 없는 의식.

       알 수 없는 연주.

         

       토마스는 그 모든 것을 끝마치고 윌리엄의 앞에 다시 섰다.

         

       그는 말했다.

         

       “도련님. 축하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도련님께서 무슨 죄를 지었건, 무슨 금기를 범하였건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도련님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순결합니다. 희고 깨끗한 천보다도 더 맑은 흰색을 뽐낼 것이요, 바닥이 훤히 보이는 호수의 밑바닥보다도 더 투명하겠지요.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지금 너는 ‘순수’와 ‘순결’의 상징을 일시적으로 얻었다고.

         

       “제 예상보다도 훨씬 쉽게 도련님을 순수하게 만들어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것이 너무 기뻐 참을 수가 없다고.

         

       토마스는 윌리엄에게 그렇게 말했다.

         

       오직 선함으로.

       오직 선한 마음으로.

       오직 티 한 점 묻지 않은 깨끗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곤 바람에 흔들거리는 야생화처럼 몸을 조금씩 흔들고 있는 꽃으로 향하더니 그 꽃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꽃은 복종하듯 고개를 숙였고, 꽃잎을 축 늘어뜨렸다.

       토마스는 그것이 귀엽다는 듯 꽃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이윽고 그 꽃의 줄기를 잡고 똑 분질러버렸다.

         

       그렇게 토마스의 손으로 들어간 꽃은 수은이 틀에 흘러갔을 때처럼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꽃은 녹아내리며 막대가 되었고, 막대는 점점 좁게 앞으로 길어졌다. 그리고 그 끝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형태가 되었다.

         

       그렇게 피는 송곳과도 같은 형태가 되었다.

         

       “위대한 조물주의 아들께서는 제 몸을 희생하여 태양과 달이 떠오르고 지게 했습니다.”

         

       토마스는 그렇게 송곳처럼 만들어진 피에 주술을 사용했다.

         

       “따스함과 차가움, 포근함과 안락함. 활동과 휴식. 그 모든 것이 그분의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이니. 이 어찌 그 거룩한 희생에 놀라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그 희생을 기리고 우러러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양기(陽氣)와 음기(陰氣)의 힘을 다루는 주술이었다.

         

       토마스의 손에서 흘러나온 음기는 흐릿하게 일어났다. 흐릿한 안개처럼 피어나 응축되었고, 손에 들린 송곳으로 하강하여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느리지만 천천히 끝에서부터 끝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였으며, 생물을 죽이듯 피를 굳게 만들었다.

       꿈틀거리며 모양을 바꾸고 있던 피를 굳게 만들고 억제하여 날카로운 송곳으로 고정했고, 응축하고 무겁게 되며 피를 얼음덩어리로 만들었다.

         

       그렇게 토마스의 손에 들린 송곳은 얼음을 깎아 만든 흉기가 되었다.

       달의 서늘함을 조각칼로 삼은 듯 안락하되 서늘하였고, 빛의 부재를 집어넣은 듯 음침하면서도 사람을 해할 수 있는 성질이 가득했다.

         

       남을 돕기 위한 피의 따뜻함도, 피에 내재한 성스러운 상징도 온데간데없어진 것이다.

         

       그는 그 흉악한 흉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윌리엄의 손바닥에 내리찍었다.

         

       푸욱!

         

       “으으으읍—–!”

         

       송곳이 손바닥을 꿰뚫는 순간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전신의 신경을 전기로 지지는 것처럼 눈앞이 번쩍이고, 뇌에 번개가 내리친 것 같은 충격이 돌았다.

         

       윌리엄은 눈을 크게 뜬 채 절규했다.

       재갈이 묶였기에 맘껏 소리를 지르지는 못했지만, 그런데도 그의 고통 섞인 외침은 교회 전체에 울렸다.

         

       그리고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윌리엄은 깨달았다.

         

       ‘이건, 이건 꿈이 아니다!’

         

       생생한 고통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했다.

       현실에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며, 그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끔찍했다.

         

       뇌를 지져버리는 듯한 신경의 폭주.

       손바닥의 구멍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

       뚫린 구멍에서 울컥거리며 솟아나는 핏물이 만들어내는 묘한 따뜻함.

       핏물이 흐르면서 만드는 묘한 간지러움.

         

       이 모든 것이, 꿈일 리가 없었다.

         

       “도련님.”

         

       윌리엄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고통 속에서 진실을 깨달았으며, 그 진실에 더더욱 번민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지금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지금 이것이 현실이라면…!

         

       지금 그는 사람 손바닥에 송곳을 꽂아 구멍을 뚫고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미치광이의 손에 붙잡혀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윌리엄은 눈을 부릅뜨고 토마스를 올려다보았다.

         

       다만 그 시선에는 분노뿐이 아닌, 공포와 배신감이 섞여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온갖 감정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 호구 새끼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의문.

       자신과 그나마 잘 지낸 놈이 갑자기 웃는 얼굴로 싸이코같은 짓을 하는 것에서 오는 배신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서 오는 공포.

       왜 내가 예언을 무사히 이뤘는데도 이런 꼴을 당해야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오는 분노.

       …

       …

       …

         

       윌리엄의 눈은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쳤고, 그 감정을 입으로 내지 못하고 오직 눈빛으로 쏘아 토마스에게 보내기만 했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 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조금만 더 힘을 내셔야 합니다.”

         

       그는 말했다.

         

       “아직 세 곳 더 찔려야 하니까요.”

       “—-?!”

         

       덜컹!

       덜컹!

         

       윌리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포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몸을 비틀었고, 손바닥의 상처에서 오는 고통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토마스에게 멀어지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의 발버둥은 그저 발버둥으로만 끝났다.

         

       토마스가 묶은 포박은 고작 그런 정도로는 풀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잠시만 참아주시지요. 잠깐 고통스럽고 무서울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있을 일에는 꼭 필요하니까요.”

       “으으읍–!”

       “하하하. 윌리엄 도련님께서는 어릴 적에도 그랬지요. 어금니가 다 썩어 문드러져서 오른쪽으로는 빵을 씹지도 못하게 되었음에도, 치과가 무섭다는 이유로 참고 또 참곤 했어요. 그때가 그립군요.”

         

       토마스는 추억이라도 떠올리며 그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어린아이에게 훈계하듯 윌리엄에게 말했다.

         

       “그때 제가 그랬었지요. 도련님. 충치 치료는 괴로워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읍-!”

       “하하. 이 역시 마찬가지이니, 잠시만 고통을 견뎌주시지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토마스는 치과를 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에게 타이르듯 그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한 뒤, 다시 송곳을 들어 올려 남은 한 손을 꿰뚫어버렸다.

         

       “끄으윽—-!”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도련님은 옛날부터 엄살이 좀 심했지요. 치과 치료를 받는 중에도 같이 치과로 간 수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게 생각나네요. 하하하.”

         

       토마스는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웃었다.

       그의 말투에는 그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없었다.

       토마스는 마치 ‘윌리엄이 고통스러워하니 되도록 빨리 끝내야겠다.’라는 선의를 품고 움직였으며, 더 빠르게 움직여 그의 두 발등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끄윽–!”

       “하하하. 다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네 개의 구멍이 뚫리고 나자, 토마스는 송곳을 빈 의자에 올려놓고 손을 펼쳤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고, 이상한 짓은 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제스처였다.

         

       그는 고통 때문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저런. 많이 고통스러웠나 보군요. 괜찮습니다. 이제 끝났어요. 구멍은 네 개면 족하거든요.”

       “….”

       “다행히 옆구리에 구멍을 뚫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 과하니까요.”

         

       토마스는 고통을 잘 견뎌주어 대견하다는 듯 윌리엄을 토닥여주었다.

       그리곤 물기가 젖어있는 윌리엄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의 눈이 호선을 그렸고, 그의 미소 역시 곡선을 그렸다.

         

       “윌리엄 도련님. 지금 도련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대충 알겠습니다.”

       “읍—!”

       “네. 갑자기 이런 자리에 나를 끌고 왔고, 왜 이런 짓을 하느냐. 그런 의문이겠지요?”

         

       토마스는 말했다.

         

       “윌리엄 도련님.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조물주께서 나름의 이유와 의도를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듯, 제가 이러는 것도 분명한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그의 눈동자에는 선의가 가득했고, 그 선의 가운데에는 깊은 친분이 묻어 있었다.

       이는 상대방을 해할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으며, 오직 길고 깊은 친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다.

         

       마치 친한 사람의 아들을 오랫동안 보아오면서, 마치 조카처럼 여기게 된-

       더없이 친숙한 이웃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감정이었다.

         

       토마스는 고통에 일그러진 윌리엄을 자기 조카처럼 바라보았고, 친척이 제 핏줄에게 그러하듯 상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윌리엄에게는 충격적일, 아주 경사스러운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하지만 그 순간,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으윽-

       툭.

       투웅.

         

       아주 기묘한 소리.

       무언가를 질질 끄는 듯한 소리와 무언가가 바닥에 튕기는 듯한 소리였다.

         

       스윽-

       퉁.

       투우욱.

         

       공을 밧줄에 묶고 그것을 질질 끌고 다닌다면 이런 소리가 나게 될까?

         

       그 소리는 바닥에 통통 튀면서 둔탁한 소리를 내었고, 무거운 것이 질질 끌리는 것처럼 교회 바닥을 휩쓰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차 신부와 윌리엄에게로 가까이 다가왔으며, 마침내 문 앞까지 도달했다.

         

       끼이이익.

         

       문 앞까지 도달한 소리는 제자리에 멈추는 것처럼 뚝 그쳤다.

       그러더니 아주 약한 힘으로 미는 것처럼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문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 이런.”

         

       토마스는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보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와서 반갑다는 듯 큰 동작을 보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진성 박!”

         

       오직 선의만이 가득한 환영의 표시.

         

       진성은 자신을 바라보며 와줘서 고맙다는 듯 웃는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그렇군요. 저 역시 반갑습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그러했듯, 그 역시 웃었다.

         

       미소를 얼굴에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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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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