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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자. 여기, 우리 지니님꺼. 부족하면 꼭 말해요. 잔뜩 샀어요.”

        

       “……이렇게까진- 아니, 고마워. 잘 먹을게.”

        

       편의점 앞.

        

       진희에게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파인트를 하나 건네주고, 남은 짐을 어깨에 얹었다.

        

       생각해보면, 섬세함이 부족했다.

        

       길거리에 나서면 알아보는 사람이 수두룩한 인기 스트리머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연애상담을 밖에서 하는 건 부담스러웠겠지. 룸이라고는 해도 방음이 철저한 곳은 아니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평소에 비해 조금 과민하게 반응하던 것도 다 이해된다. 주제가 주제니까. 가뜩이나 눈치없는 나무꾼 때문에 심란한 상황일 텐데.

        

       복합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은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조금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던 중.

        

       “예나 집 오랜만이다. 전에 시훈 오빠랑 마주쳤던- 그때 가고 처음이네?”

        

       “……네.”

        

       “시훈 오빠는 잘 지내려나? 요즘 연락한지 좀 됐는데.”

        

       ……이따가 레반한테 전화라도 할까.

        

       왜, 조금은 따져물을 법도 하잖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하고.

        

       그 착한 진희가 이렇게 불퉁거릴 정도면……뭔가, 사고를 좀 친 것 같은데.

        

       일단은- 일단은, 상담부터 해주고.

        

       * * * *

        

       작은 자취방 안.  

        

       서로 몸만 기울여도 닿을 거리에서 각자의 잔을 채우고, 또 비우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을까.

        

       “그래서, 나, 나 진짜 궁금해. 나 저격은 왜 그렇게 했던 거야?”

        

       “……시청자 참여예요.”

        

       “……그래. 강제 시참은 왜 그렇게 했던 거야?”

        

       만취한 진희는, 끝끝내 참지 못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빈 술병이 하나 둘 늘어날 때까지도 하염없이 변죽만 울리던 대화였다. 어째서인지, 레반에 관한 이야기도 제법 나왔고. 물론……예나가 자꾸만 말을 흐리며 눈치를 살펴대는 탓에 제대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진희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팬이어서, 요.”

        

       “거짓말이잖아.”

        

       “……억울하네요.”

        

       그리 말하며, 살며시 내리깔리는 시선. 그조차도 아름답게 보이는 건, 비단 이미 반해버린 탓만은 아니리라.

        

       길게 뻗은 속눈썹과 작게 앙다문 입술. 그리고 두 뺨이 옅게 물들어가는 와중에도 정말로 억울하다는 양 갸웃거리는 고개까지. 처음 보는 이도 홀린 듯이 ‘그래, 많이 억울했구나-’ 하고 납득했을 법한 분위기다.

        

       다만, 지금 정말로 더없이 억울한 건 그녀 자신이었던 고로.

        

       “아니잖아! 너, 팬은- 그때. 그때, 사인, 내 사인받아간 날. 그날 팬부터 시작하겠다고……와, 그렇네. 그 날도, 응? 와. 와- 와아. 너, 너, 생각해보니 이거, 이거 진짜 상습, 악질, 습관성 여우- 너, 너 진짜아-”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진희는 허우적거리며 손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잠시 후 느껴지는 따스한 감촉.

        

       새하얗고, 말캉거리는 뺨이다. 붙잡고 주욱 잡아당기며 분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단 붙잡은.

        

       그러나……취할 대로 취한 탓일까.

        

       진희의 손은, 섬세한 백자(白磁)라도 쓰다듬는 양 조심스럽게 예나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었다가는 깨질까 두렵다는 듯이- 갓난아기를 다루는 듯한 깃털 같은 손길로.

        

       어째서인지, 진희는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 탓이었을까. 아니면, 언제라도 공기 중으로 흩어질 것만 같이 비현실적인 분위기 탓이었을까.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거라곤, 그녀에게 그런 생각을 이어나갈 여력은 없다는 점 뿐이었으니.

         

       “……지니님?”

        

       ‘대답, 대답을 해야 하는데.’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물들어버렸던 고로. 

       

       멍하니 굳어버린 혀는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코올 탓일까. 아니, 아니다. 눈앞의 저 여우 탓이다.

        

       침묵이 이어지는 방 안. 머리가 울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는 걱정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 진희는 그저 얼굴을 붉힌 채 얼어붙어 있었다. 상대의 뺨에 달라붙은 손을 떼어낼 생각도 없이.

        

       영원히 이어져도 좋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으나-

        

       너무 길어지면,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그럼, 나 그거 알려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요.”

        

       딴청을 피우려 드는 예나의 뺨을 꼬옥,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붙잡은 채- 진희는 가슴 깊이 응어리지려 드는 질문을 가까스로 토해냈다.

        

       “정말로 여자 좋아해?”

        

       말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표정으로라도 확인하려 했더랬다. 당황한 기색이나, 흔들리는 눈빛. 혹은, 가슴이 찢어지겠지만, 비웃거나……역겹다는 표정이라도 본다면, 최소한의 답변은 얻어낸 셈 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세상 만사,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는 고로.

        

       말이 혀를 채 떠나기도 전에, 진희는 이미 겁먹은 강아지마냥 시선을 모로 돌리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너를 좋아하노라고 당당히 고백하기는커녕, 혹 나를 좋아하느냐고 묻지도 못하면서.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주제에, 혹시 기회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억누르지 못한……겁쟁이의 질문이다.

        

       그 사실이 새삼, 사무치게 수치스러워서.

        

       그리고-

        

       머릿속에서 잠시 상상해본, 역겹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예나의 표정을, 혹시라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면……심장이 물리적으로 찢어질 것만 같아서.

        

       “아, 아니- 미안해. 그……민감한 질문인데, 그치? 미안해. 나 술 너무 많이 마셨나봐. 대답 안 해도 괜찮아! 아니, 대답하지 마.”

        

       대답을 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진희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좁은 방에는 후퇴할 공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음에도.

        

       “……지니님.”

        

       “그, 예나랑 더 친해지고 싶어서 그랬어. 왜, 비밀……연애 얘기하면서. 근데 너무 훅 들어갔다, 그치? 천천히, 응. 천천히 하면 되는데. 고등학교때 짝사랑이라거나, 그런 이야기라도 하면서. 내가 그 얘기 했었나? 나 고등학생 때 진짜 인기 엄청 많았는데……축제 때 남장한 적도 있다? 아, 우리 여고여서 축제 때마다 남장 대회를 했거든……예나는 모르려나. 아무튼, 다른 애들은 다 개그로 갔는데, 나는 빌린 양복 한 벌 입고 우승했잖아. 사진들은 물리적으로 다 부수고 다녔는데- 뭐야, 안 믿는 표정인데?”

        

       횡설수설.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끝없이 주워섬기다가-

        

       “아니에요. 인기 많았을 것 같아요.”

        

       “엎드려 절 받기네. 아- 근데 왜 요즘은 여자 팬이 없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예나 생각은 어때? 우리 방송이 좀 남초 느낌이긴 한데, 보통은 남초 방송이어도 여자 팬 있지 않나? 왜 난 없지?”

        

       “여기 있잖아요. 팬.”

        

       뻔뻔한 무표정으로 손을 들어올리는 예나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혀서, 뻐끔거리던 입을 천천히 닫았더랬다.

        

       “……진짜예요. 팬카페에 글도 썼는데. 나 여잔데 요즘 우리 아크 폼 미쳤다……내 주변에도 다 아크 팬이다…….”

        

       “아니, 제발 하지 말……뭐? 이미 썼다고?”

        

       “네. 보여드릴까요.”

        

       진담일까. 저 미소로 미루어 보건대, 진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뻐꾸기가 안 날아온 걸로 봐선, 부계정으로 썼겠지.

        

       대체 왜 남의 팬카페에 부계정으로 가입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땐, 이제 팬보다 진전했다며.”

        

       “……엄청 많이 진전하니까 다시 팬이 됐어요. 왜, RPG 게임에서도 전설의 대군주 잡고 나면 다시 색깔 바뀐 슬라임 나오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어.”

        

       샐쭉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다가도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이런 모습에 조금씩 스며들어 반해버렸지.

        

       얼굴은 부차적이었다. 단언컨대, 그저 예뻐서 좋아하게 된 건 결코 아니었으니.

       

       설득력 없는 이야기겠지만, 한 점 부끄럼 없는 진심이었다. 돌이켜보면, 성별조차 그러했으니.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여자를 좋아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해본 적도 없지 않았나.

        

       그러니까-

        

       진희는, 그저 이예나라는 사람이 좋았다.

        

       외모나 성별 같은 걸 떠나서.

        

       한없이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단단하고, 뻔뻔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현실에서 반 발자국 벗어난 채 살아가는 듯한, 어떻게든 품에 꼬옥 안아주지 않으면 사라질 것만 같은.

        

       취하면 소주잔으로 묘기를 부려대고, 묘한 지점에서 집착을 부리는.

        

       그리고- 언제나 그녀를 조마조마하게 만들면서도, 결국은 웃게 해주는.

        

       예나가 좋았다.

        

       -흐으.

        

       깊은 한숨을 힘없이 흘려내듯 내쉬며, 진희는 한 켠에 놓인 가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나, 슬슬 가볼게. 술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자고 가도 돼요. 제가 부엌에서 잘게요.”

        

       “그게 무슨……아니, 괜찮아. 택시 타면 금방이니까.”

        

       “저도 괜찮아요. 술 많이 마시면 어디서든 죽은 듯이 자서.”

        

       “……진짜, 걱정되는 말만 골라서……아무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쉬어! 나오지 말구.”

        

       일어나야만 할 때였다. 저 예나를 옆에 두고, 더는 자제할 자신이 없었으니. 

        

       떠나야 했다. 후회할 법한 말을- 아니, 후회할 것이 분명한 행동을 저지르기 전에.

        

       “예나야.”

        

       언젠가- 언젠가는, 용기를 내어 말하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술에 취한 상태로, 술에 젖은 이에게 전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마음이었으니. 

        

       “네.”

       

       그래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이 있었던 고로.

        

       “언제부터, 왜 오해하는 건진 모르겠는데……나, 시훈 오빠랑은 그냥 친구야. 그런 감정 없어.”

        

       “……아.”

        

        얼굴을 붉히는 예나를 뒤로 한 채, 진희는 조금은 후련한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 * * *

       

       비어버린 집.

        

       적막한 공간 속에서, 입에 물린 숟가락의 냉기만 유독 생생하게 느껴졌다.

        

       민트초코가 과하게 맛있으면 취한 건데-

        

       쓰게 느껴지면, 무슨 뜻이지.

        

       멍한 머릿속에서는 정말로 여자를 좋아하냐고 묻던 진희의 얼굴만 계속해서 맴돌았다. 처음 보는 표정이……반쯤 울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이유는 또 뭔지.

        

       알코올에 절여진 뇌는 쉬이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하기야, 삶을 살아가기도 벅찬 시간이었다. 자그마한 흔적을 남기는 것도 두려워 움츠러든 와중이었으니.

       

       타인을 품을 상상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그래도-

       

       계속 이럴 수는 없겠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남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일단은- 일단은, 해야 할 일들부터 해야겠지만.

       

       마무리되면……응. 

       

       그런데……조금, 많이 취한 느낌이긴 한데.

       

       필름 끊기는 건 아니겠지.

       

       미약한 불안감을 품은 채, 침대에 몸을 기울였다.

       

       내일의 나를 믿자.

       

       

       오늘의 나한테 불평 한 마디 안 전하는 착실한 친구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개상 연참입니다.

    외전은 무료회차로 연재하려 했는데, 무료회차는 선호작 목록에서 다음화가 안 눌린다는 사실을 조금 전 발견했습니다. 일단 플러스로 연재하며 고민해볼 예정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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