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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천마신공이 좋아서 배우고 싶다. 이는 꽤나 신선한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신공은 마공이니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지도 모르는 녀석을 단순히 좋다는 이유로 배우는 놈이 어디 흔하겠느냐?

       

       대개는 강해지기 위해서, 신교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가족들을 위해서, 돈과 명예를 위해서 같은 수식어를 붙이기 마련이었지.

       

       다들 그 위에 여러 미사여구를 덧붙이기는 한다만 결국 그 수면 아래에는 이 정도면 자신의 목숨과 무공을 교환할 만 하겠다는 계산이 붙어있는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바라는 소망이라는 것은 훗날에 굳건한 심지가 되어 천마신공에 잡아먹히려는 자신을 구원할지도 모르니.

       

       오히려 천마신공이 좋다는 놈들이 문제였지. 그런 녀석들은 두 가지 분류로 나뉘었거든.

       

       자신의 마음속에 담은 욕망이 추잡하다 생각하여 무를 향한 동경으로 감추려는 놈들과 정말로 무에 미쳐서 잡아먹혀도 좋다 생각하는 놈들.

       

       전자건 후자건 그 끝이 좋다 말하기는 어려웠다.

       

       자신의 심지 될 것을 부정하는 놈들이 신공의 포악함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고, 심지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놈들이 신공에 언제까지 견딜 수 있겠는가.

       

       그러니 만큼 본래라면 설아의 대답은 본인이 혐오하는 대답이여야 했으나 그녀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저 녀석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으니까.

       

       현대인이기에, VR의 세상에서 무공을 배우는 존재이기에, 천마신공을 몸에 익히더라도 죽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녀는 그 어떤 비장함도 없이 해맑게 자신의 소망을 소리칠 수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무림에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것이었으니 본인의 입에서 어찌 신선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마음에 드는 대답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아직 안심해서는 안 됐다. 여전히 내 눈에는 그녀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광신의 씨앗이 보였으니까.

       

       지금은 발화하지 않고서 그 자리에 가만 머무르고 있다지만 저것이 언제 피어날지 모르는 일이고, 그것이 피어나는 순간 현실의 그대가 위험해 질 터이니.

       

       설아 그대는 그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본인에게 한 가지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대의 좋다라는 감정이 순수하다는 것을. 질척한 욕망이 아닌 해맑은 웃음이라는 것을.

       

       굳건히 심지로써 자리 잡아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질문하겠다.

       

       “설아야.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듯 하니 어디 한 번 길게 늘어놓아 보거라.”

       

       *

       

       화령의 물음에 설아의 눈동자가 허공을 가리켰다.

       

       “길…길게요?”

       

       천마신공을 어째서 좋아하느냐. 그에 대해 꺼낼 말들은 차고도 넘쳤다.

       

       그 어떤 억압이 닥쳐오더라도 그를 부수고 위에 서겠다는 오만함이 좋다.

       

       어떤 풍파 앞에서도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는 것이 좋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길을 가로막더라도 그를 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좋다.

       

       허나 그는 돌이켜보면 그녀가 천마신공을 좋아하는 이유보다는 화령을 좋아하는 이유에 가까웠다.

       

       그래서 설아는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앞에 내놓는다는 것은 너무도 껄끄러운 일이었으니까.

       

       “흐음. 대답하기가 어려운가 보구나. 그래. 그럼 질문을 조금 바꾸도록 하지.”

       

       필사적으로 할 말을 고르고 있으려니 화령이 웃음과 함께 목소리를 냈다.

       

       아니에요. 저 대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대답을 찾고 있는 거에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분명 제대로 된 대답을.

       

       “그대는 여전히 나를 신이라 생각하는가?”

       “…네?”

       

       방금 전 것과는 다른 다소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신이요?”

       “예전에 하린이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거든.”

       

       하린. 냥냥권법.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설아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화령의 방송을 처음 접하고 무공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깨우쳤던 그 때.

       

       자신이 여태까지 노력했던 것들이 무의미했다는 허탈함과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기인이 나타나 배움을 얻을 수 있음에 기뻐하던 시절에.

       

       자신이 꿈꿔왔던 천마라는 존재가 현실에 튀어나온 것만 같던 화령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을 품고서 그녀를 찬양하던 그 날에.

       

       설아는 반쯤 미쳐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랬냐 싶긴 했으나 그 때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모든 열정을 담았던 영상편집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리고 무공을 다루는 데에만 열성을 쏟았으니까.

       

       그 때 설아는 하린에게 여러 중2병 섞인 대사를 내뱉었다. 화령이라는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달라진 자신에 신이 나 훗날 흑역사가 될 말을 수도 없이 입 밖에 냈다.

       

       설아로써는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서 하린과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났더니 하린이 그걸 가지고서 놀리기 시작한 것이다.

       

       설아 씨. 그거 해봐요. 그거. 라면서 하린이 톡을 보낼 때면 설아는 다음 번엔 더 살의를 담아 피드백을 하겠다는 의지를 되새기곤 했다.

       

       여태까지는 그게 하린과 자신 사이의 장난이라 생각했던 설아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린은 그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하린 씨! 그걸 화령님한테 이야기한 거에요?! 말을 할 사람이 있고 안 할 사람이 따로 있지 그걸 화령님한테 다 불어버리면 저는 뭐가 되냐고요!

       

       “답하거라.”

       

       속으로 비명을 지르던 설아는 화령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그녀는 화령을 동경했다. 자신이 바라는 이상이 현실 속에 튀어 나와 있었으니 동경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허나 그녀를 신처럼 숭배하냐고 묻는다면 당당히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화령을 좋아하는 만큼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에 담으려 노력하는 그녀다. 당연히 화령의 방송이라면 어지간해선 빼먹지 않고 챙겨 보고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령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화령은 방송에서 내숭을 떠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을 재밌게 만들기 위해 캐릭터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는 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자신을 내비치는 인간이었다.

       

       진지할 때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만큼이나 평소에는 허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방송에 익숙하지 않을 적에 포인트 배분을 하다가 시청자를 강퇴한다거나,

       

       정석적인 루트가 있는데 귀찮다면서 무력으로 해결을 보려 하거나,

       

       귀여운 것이 있으면 무거운 입꼬리가 살짝 풀린다거나,

       

       맛있는 게 있으면 진심으로 기뻐한다거나,

       

       시청자들이 말리는 데도 꾸역꾸역 무언가를 저질러서 폭발엔딩을 만든다거나,

       

       이외에도 그녀는 수도 없이 인간적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 얼마 전에 고양이귀 메이드가 된 것만 해도 그랬다. 화령이 완전무결한 신이었다면 그런 일을 저지를 리가 없지 않은가.

       

       “아뇨.”

       

       화령의 편집자이기에, 화령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설아는 화령을 결코 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에 한해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이는 인간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설아의 대답을 들은 화령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마지막 물음이다. 그대는 얼마 전에 신교에 찾아가 고독의 생존자를 만나고 오지 않았느냐.”

       “네. 맞아요.”

       “거기서 무엇을 배웠느냐.”

       

       설아는 이틀 전 고독에서 생존했던 남자를 만나고 왔다. 의식에서 살아남은 이로써 모든 절차를 끝마친 그는 설아가 보기에도 눈에 띌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앞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를 품고 있는 남자에게 설아가 던진 물음은 이러했다.

       

       ‘당신은 여러 사람들의 꿈을 알고 있었잖아요. 그들을 모두 죽이고서 살아남은 지금 그들의 꿈을 품 안에 지니고 있나요?’

       

       설아는 그것이 궁금했다.

       

       해맑았던 여자아이가, 귀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내던 남자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내뱉었던 꿈들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간 것인지. 아니면 이 남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떠나가 버린 것인지가.

       

       그 물음을 들은 남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약자였고, 살아남은 저는 강자이지요. 그러니 제 뜻이 더 옳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아래에 두고 이 자리에 선만큼 의무감을 지니기는 하겠지만 그들의 뜻을 이을 생각은 없다고 남자는 이야기한 것이다.

       

       그를 듣고서 설아는 깨달았다.

       

       “죽는 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요.”

       

       고독에 참가했으나 죽어버린 이들은 그 무엇도 남기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고독을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던 꿈과 여태까지 해왔던 노력은 죽음으로써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걸 배웠어요. 그러니 전 그렇게 되지 않을 거에요.”

       

       그녀는 분명 천마신공을 배우기를 소망한다. 허나 그 끝이 해맑았던 여자아이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라면 그녀는 신공을 배우지 않으리라.

       

       설아는 그런 결말을 원치 않았으니까. 애초에 그런 결말을 걱정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설아는 어디까지나 VR게임 속에서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화령은 이번에도 설아의 대답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설아는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달았다. 그녀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곰방대를 한 손에 들고 있던 화령의 손이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 목소리를 내지 않는 화령의 모습에 설아가 긴장을 하고 있을 무렵 화령이 가벼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설아야. 혹여 아피스를 지워버렸느냐?”

       “네? 아뇨. 그대로 있어요.”

       

       지난번에 화령에게 천마 캐릭터를 금지당한 이후로 접속을 한 적은 없지만 아피스라는 게임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근데 이걸 왜 물어 보시는 거지?

       

       “그렇다면 화룡무인에서 나와 그 곳에 접속하거라. 그 쪽에서 처음부터 알려주는 것이 편하니까.”

       “…어. 그러니까.”

       

       설아는 화령의 말을 듣고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으니까.

       

       여태까지 화령은 몇 번이고 설아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녀에게 천마신공을 가르칠 수 없다 이야기했다.

       

       그 때문에 설아는 오늘도 똑같은 대답을 들으리라 여겼다.

       

       천마신공을 좋아한다는 대답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허무맹랑했으니까.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방금 전에 화령님이 나한테 천마신공을 알려주겠다고 하신 거 맞지? 그치? 내가 잘못들은 거 아니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이루어져서 너무 기뻤던 설아는 자신이 동경하는 사람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한 번 더 듣기를 바랐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설아의 눈빛을 바라보던 화령은 피식 웃고는 심술궂은 말을 내뱉었다.

       

       “배우기 싫으냐? 그렇다면.”

       “아뇨!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지금 바로 나가서 아피스에 바로 접속할게요! 그거면 되는 거죠?! 그쵸?!”

       “그래. 너무 급할 필요는 없다. 시간은 많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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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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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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