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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타리키의 환영인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녀석은 하늘을 검은 색 폭죽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듯 연속해서 마력을 쏘아냈지.

   

   허나 그 모든 포탄은 신성의 앞에서 무력했다. 내가 지닌 아르마디의 신성과 타리키의 마력은 명확한 상성관계에 놓여 있었으니까.

   

   어둠 속에 숨고자 하는 그림자가 어찌 태양과 같은 마력에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겠는가.

   

   그 사실을 타리키도 느낀 것일까. 녀석은 얼마간 마력을 쏘아내다가 공세를 멈추어버렸다.

   

   통하지도 않는 공격에 힘을 낭비하기 싫다는 건가 싶었던 그 순간.

   

   도시 전체에서 음습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여전히 마법에 관한 지식이 부족한 나다만 그래도 이젠 기본정도는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저 기운이 하나의 마법진이라는 것을.

   

   도시에 준비되어 있던 악신을 위한 마법진이 발동된 것이다.

   

   <마법진의 범위는 이 도시에 한정하는가.>

   ‘즉. 버로우 영지 전체에 퍼져 있던 마법진은 완벽히 미끼였단 거네요.’

   

   알새틴을 통해 파악했던 그 마법진은 어디까지나 협박용. 그리고 이 쪽이 허접 주신의 사도인 나를 잡아 죽이기 위해 준비한 진짜.

   

   ‘예상한 대로네요.’

   <예상한 대로구나.>

   

   아직까지 상정 내야. 계획한 것만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

   

   그러니까 이제 얼빠여우가 이 낙하에 대처해주기만 하면 되는데…

   

   얘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조금 있으면 바닥이야! 이대로 가면 자유 낙하로 처박힌다고!

   

   점차 가까워지는 바닥에 기겁하며 얼빠 여우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녀석이 느긋하게 바닥을 살피는 것이 보였다.

   

   ‘지금 그럴 때에요?!’

   “얼빠여우! 뭐해?!”

   

   “걱정마라. 이제 준비 되었으니.”

   

   얼빠여우가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주변에 안개가 생겨나서는 우리들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에 따라 바닥을 향해 가속하기만 하던 몸이 점차 속도를 늦추었고 바닥 근처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미 낙하의 가속이 사라진 상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가 흩어졌고 우리는 깔끔하게 바닥에 착지할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공간술사는 우리를 위기에 몰아넣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땅에 발이 닿자마자 사죄의 말을 건넸지만 거기에 대답해 줄 여유는 없었다.

   

   저 멀리에서 불길한 마력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허. 힘을 상당히 비축해두었구나.>

   ‘그러게요.’

   

   저택을 기점으로 하여 조금씩 조금씩 검은 색들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게 보인다.

   

   하늘을 가리고 태양을 집어삼킴으로써 달과 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어둠을 만들려 하는 것이다.

   

   지난 번 타리키가 물들인 던전이 별 거 아니었던 이유는 저 녀석이 불완전하기 때문만이 아니었어. 애초에 목적이 정찰이었기에 모든 힘을 사용하지 않았던 거야.

   

   버로우 영지를 뒤덮어가는 어둠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샜다. 그래도 꼴에 악신은 악신이라는 거지?

   

   하.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래야 내가 존엄을 팔아먹은 것에 의미가 생길 거 아냐. 진짜 좆밥이었다면 오히려 억울했을 걸.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페이비와 요한이 의식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교회에서 일을 해 온 이들.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몸놀림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럼 내 할 일만 잘하면 되겠네. 인벤토리를 열어 그 곳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며칠 전 이사벨에게서 받아온 물건.

   

   성지에서 오랜 시간 축성을 받아온 검.

   

   긴 세월을 지나오며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성물.

   

   날이 무딘 이 검은 무기로써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 검은 애초부터 무기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오롯이 기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준비된 성검이니까.

   

   두 손으로 검 손잡이의 끝을 붙잡은 후 그를 위로 치켜든다.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는다.

   

   “준비를 하거라. 어둠에 사로잡힌 녀석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나의 몸 안에 깃든 신성을 움직여 검 끝에서부터 차곡차곡 신성을 채워간다.

   

   “부탁 받은 것이 있으니만큼 대부분의 것은 내가 대응할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이 할 일은 이 근처로 오는 놈들을 요격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검이 탐욕스럽게 내 신성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자신은 더 많은 신성을 필요로 한다고. 검이 그리 외치기에 나 또한 검의 요구에 맞춰주었다.

   

   점차 신성이 검신을 타고서 차오름과 동시에 검이 지닌 온도 또한 높아진다.

   

   차갑던 손잡이가. 서서히 온화함을 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자신이 재련되던 때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거센 열기를 주변으로 뿜어냈다.

   

   그 탓에 손바닥을 타고서 따끔한 통증이 퍼져나가지만 난 검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수많은 시련을 거쳐 온 나에게 이 정도는 고통이라 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의 소리가 점차 작아지다가 사라지고.

   

   넓게 퍼져있던 나의 감각 또한 오롯이 검안에 집약되었을 무렵.

   

   나의 안 깊은 곳에서 단호하고도 믿음직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하자꾸나.>

   

   그 순간 눈꺼풀에 가려 어둠을 맞이했던 나의 눈동자 속에 한 남자의 신형이 비쳤다.

   

   <어둠이 자리할 수 없는 곳을 만드는 것이야.>

   ‘네. 할아버지.’

   

   *

   

   페이비와 함께 밑준비를 끝마친 요한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불완전하더라도 악신은 악신이라는 것인가. 어둠이 태양을 집어삼키고자 움직이는구나.

   

   점차 버로우 영지의 하늘을 메워가는 어둠을 보던 요한은 주변에 자신의 신성을 펼치는 것으로 어둠을 물리쳤다.

   

   악신의 마력이 그 어떤 수작도 부릴 수 없도록.

   

   쯧. 어둠의 악신이 지닌 힘이 거세다.

   

   오래 버티진 못 하겠군.

   

   이 노친네가 한계에 달하기 전에 영애께서 준비를 끝마치셔야 할 터인데.

   

   “아주 쏟아지는 군.”

   

   거대한 숲 전체를 관장하는 성수의 목소리에 하늘에서 시선을 떼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주변에서 미친 듯 달려오는 인간의 형체들이 보였다.

   

   지금의 저들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신의 마력에 홀려버린 이들은 이미 악신이 부리는 인형이나 다름이 없었다.

   

   본래라면 저들은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도시와 함께 재가 되었겠지.

   

   허나 이제는 아니다. 위대하신 주신께서 저들을 위하여 자신의 사도를 보내셨으니. 저들은 다시금 삶을 되찾을 터.

   

   “오라. 짐승들아.”

   

   저들이 몰려오는 것을 지켜보던 숲의 주인이 목소리를 내자 그녀의 주변으로 불투명한 안개가 점차 퍼져 나간다.

   

   저것이 평범한 안개라면 대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을 터이나 저는 일반적인 것들과는 격을 달리했으니.

   

   숲의 주인이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낸 안개는 허공에서 저마다의 형상을 갖추었다.

   

   요한의 눈에 그것들은 거대한 여우무리처럼 보였다.

   

   “쫓아내거라. 아. 죽이지는 말도록. 그랬다간 내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처벌을 받을 것 같으니.”

   

   숲의 주인이 명령하기 무섭게 여우무리가 주위로 퍼지기 시작한다.

   

   여우이면서 안개인 녀석들은 생물이 지닐 수 있는 속도를 아득히 뛰어넘은 채 내달려 인간의 형체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여우로 된 안개가 인형에 닿은 순간 그 인간이 실이 끊기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에 널부러졌다.

   

   “리나님. 저건?”

   

   그걸 본 알른의 기사가 의문을 드러내자 숲의 주인이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꿈을 꾸게 만들었을 뿐이다. 모든 일이 끝나면 깨울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숲의 주인이 목소리를 내는 동안에도 여우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 둘 꿈의 세계로 떠나감에 따라 점차 홀린 자들의 돌진이 기세를 늦추어 간다.

   

   이것의 숲의 주인인가.

   

   영애의 짜증어린 목소리를 들으며 녹아내린 표정을 지을 때에는 그 진가가 의심스러웠다만 본래의 격은 거짓을 고하지 않는군.

   

   저 분께서 계속 주변을 지켜 주신다면 인파에 짓눌려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

   

   옆에서 느껴지는 따스하다 못해 이글거리는 신성에 요한이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허.”

   

   요한은 루시가 들고 있는 검을 알고 있었다.

   

   주신 교회의 성지에서 만들어지는 성검.

   

   오롯이 의식을 위하여 긴 시간 축성을 받아온 검.

   

   주교의 자리까지 오른 요한이다.

   

   그는 저 검에 직접 축성을 한 적도 수도 없이 많았고 심지어 저 검을 사용해서 의식을 펼친 적도 여럿 있었다.

   

   의식이 펼쳐지는 것을 옆에서 본 경험이라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지.

   

   허나 그런 그조차도 지금 루시의 손에 들린 것처럼 뜨겁게 빛나는 성검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저것이야말로 진정 신께서 사랑하시는 분.

   

   자신의 대리인으로 정한 분.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일까. 루시가 길게 숨을 내쉬면서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성을 품어 밝게 빛나는 그녀의 눈이 자신이 만들어낸 태양과 같은 검을 바라본다.

   

   가만 그를 살피던 루시는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검 손잡이를 반대로 붙잡았다.

   

   하늘을 향해 치켜세워져 있던 검 끝이 바닥을 향하고.

   

   루시가 입술에 힘을 더하며 검을 아래로 내린 순간.

   

   사도의 신성이 집약된 검은.

   

   무디고 무뎌 도저히 무기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 그 검은.

   

   마치 호수 가운데를 파고들 듯 너무나도 간단히 도시의 도로를 꿰뚫고 들어가서 바닥에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루시가 입을 열기 무섭게 검에 집약되어있던 신성이 위대하신 주신의 사도가 내는 선명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를 따라 주변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음습하고 기분 나쁜 좆밥 어둠은 수치를 느끼고 도망칠 거야.”

   

   그 옆을 지키던 요한과 페이비를 스치고 지나가.

   

   “허접한 선은 내 고귀한 신성의 보살핌을 받아 조금은 덜 허접해 질 테고.”

   

   안개를 돌파한 이들을 제압하는 알새틴과 칼을 보듬어 주고서.

   

   “허접 주신의 대리인. 이 루시 알른이 선포하겠어.”

   

   숲의 주인을 지나쳐서도 멈추지 않고 뻗어나가서는.

   

   “그 변태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 곳을 수호할 거란 걸.”

   

   이 곳을 침범하려는 어둠을 물리치며 하나의 영역을 만들어 냈다.

   

   신성 영역.

   

   악을 내쫓으며 선을 보듬어 주는 장소.

   

   참으로 기이한 일이구나.

   

   사도께서 내뱉은 말에는 불경이 가득하거늘 어찌하여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신성에는 경건함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자기도 모르게 십자가를 꾹 쥐게 된 요한은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흘리고는 옆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녀님.”

   

   페이비는.

   

   성지가 성지라 불리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던 흙을 바닥에 뿌리고.

   

   천사의 날개로 만든 가루로 그 위에 진을 그린 후.

   

   그 한 가운데에 옛 성인의 지팡이를 쥔 채 서 있다가.

   

   요한과 시선을 마주하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교님.”

   “이제 저희의 차례입니다.”

   

   요한은 그를 보고서 그녀의 위에 성수를 뿌렸다.

   

   지금 이 공간을 가득 채운 주신의 신성과 페이비가 연결될 수 있도록.

   

   “준비 되셨습니까?”

   “언제라도.”

   

   마지막 확인을 끝마친 요한이 품 안에서 주신의 따스함이 남아있는 구슬을 꺼내 들더니.

   

   “그럼 시작합시다.”

   

   이내 그 구슬을 허공으로 던졌다.

   

   본래라면 중력의 영향을 받아 땅에 떨어져야 할 구슬이거늘 그 구슬은 요한과 페이비 사이에 자리를 잡고는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으로 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위대하신 주신을 위하여.”

   “위대하신 주신을 위하여.”

   

   이 어두운 땅 위에 태양을 띄울 시간이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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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너무재밌당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메스가키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재밌게 읽어주신다니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메스가키 타락하는 겁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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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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