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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8

    자유 도시 연합 깊숙한 곳, 인적 드문 허름한 건물.

    낡고 해져서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안, 은발의 소녀가 창문가에 걸터앉아 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증축된 건물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불안해 보였고,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한 좁은 골목은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게다가 그 골목의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낙서들이 무질서하게 그려져 있었다.

    지금이 밤이었다면, 어지럽게 빛나는 네온사인도 이 혼란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정부의 통제가 닿지 않는 ‘자유 도시 연합’의 풍경은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는 자유라고 부르지만, 누군가는 방종이라고 할법한 풍경.

    은발 소녀는 그런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커다란 남자가 다가와서는 말을 걸었다.

    “청, 너도 이것 좀 먹어보는 게 어때?”

    ‘청’이라고 불린 은발 소녀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즉답했다.

    “절대로 싫어.”

    접시를 들고 청에게 다가가던 남자는 그 대답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접시 위의 애벌레를 삼켰다.

    “맛있는데….”

    몸이 전체적으로 검고, 적색과 녹색의 줄무늬를 가진 주먹만 한 애벌레였다.

    마치 금속처럼 번들거리는 벌레는 척 보기에도 독을 가진 것 같은 끔찍한 외양이었다.

    자유 도시 연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익숙할지 몰라도, 극히 최근에 이 도시로 들어온 청에게는 절대로 먹고 싶지 않은 비주얼의 음식이었다.

    사실 음식의 겉모습이 혐오스러운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다시 자리에 앉아 애벌레를 흡입하는 거구의 남자를 향해, 담배를 빼 문 커다란 여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 독 있잖아. 청은 못 먹는 거야.”

    그랬다.

    가장 큰 문제는 독성.

    어찌 된 것인지, 이 도시에서 파는 음식들은 대부분 독이 들어있어서 평범한 사람이 먹으면 위험한 것투성이였다.

    청도 처음 이 도시로 숨어들었을 때, 음식 잘못 먹었다가 죽을 뻔했었다.

    아니, 여기 있는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분명 죽었겠지.

    청은 콩을 갈아서 만든 액체가 담긴 튜브를 천천히 빨아먹으며, 생각했다.

    ‘이 도시는 정말 미쳐버렸어.’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료들만 보더라도 그랬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의 신장은 2미터를 훌쩍 넘어 보였고.

    애벌레를 끊임없이 먹는 육중한 남자는 팔이 2쌍이나 달려있었다.

    필요를 위해 자기 팔다리를 거리낌 없이 잘라내는 미치광이 도시.

    아직 미지투성이인 오브젝트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기 몸에 접합하는 광기의 도시.

    자극적이면서 해로운 물과 음식 그리고 그것을 소화하기 위해 내장을 오브젝트로 갈아치우는 탐욕스러운 도시.

    그리고 폐를 도려내는 것 같은 탁한 공기로 가득한 도시.

    청은 하늘을 노랗게 물들인 오염 물질들을 보며, 다시 마스크를 썼다.

    그래도 청은 이 도시는 어쩔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의 봉쇄로 제대로 된 루트로는 물자가 들어올 수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본토의 지원 없이는 이 ‘자유 도시 연합’은 제대로 자생할 수 없었다.

    땅은 굉장히 좁았고, 사람은 너무 많았다.

    결국 물리 법칙에서 벗어난 것 같은 오브젝트를 활용할 수밖에 없겠지.

    ‘언젠가는 이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기를.’

    은발 소녀는 이루어지기 힘든 소원을 작게 빌며 하염없이 하늘 너머를 바라보았다.

    ***

    미니 사신 정원 마시멜로 평원을 회색 사신이 뚜방뚜방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회색 사신의 품에는 유령 고양이가 안겨 있었다.

    유령 고양이는 회색 사신의 품이 편안한지,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애옹거렸다.

    애옹.

    유령 고양이는 편안한 기분으로 회색 사신에게 몸을 맡겼다.

    스르륵 스르륵.

    회색 사신의 상냥한 손길이 유령 고양이의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애옹.

    회색 사신은 기억력이 안 좋은 건지, 평소에는 잊어버린 것처럼 신경도 안 썼으면서.

    갑자기 친근하게 다가와서 조금 수상했지만, 계속된 스킨쉽과 과자 공세에 유령 고양이의 경계심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던 중, 회색 사신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것처럼 의지를 전해왔다.

    ‘돈가스 먹으러 갈래?’

    ‘?’

    ‘엄청 맛있는 음식이래, 너도 좋아할 거야.’

    그렇게 도착한 곳은 거대한 젤리 돼지 위에 얹어진 건물이었다.

    수많은 미니 사신이 돌아다니는 건물은 아무리 봐도 식당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애옹.

    뭔가 이상하다고 조그맣게 애옹해 보지만, 회색 사신은 상냥한 표정으로 웃으며 의지를 전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리고 회색 사신은 유령 고양이를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방으로 인도했다.

    굉장히 견고해 보이고, 묘한 중압감이 느껴지는 검은색.

    그리고 그 검은색 벽에는 가끔 노란색 눈이 깜빡이기도 했다.

    철컹.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평범했던 방의 분위기가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감옥처럼.

    애옹!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유령화를 써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미 유령 고양이의 손발은 황금 사신에게 붙들린 상태였다.

    ‘!’

    유령 고양이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서 회색 사신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상냥한 미소를 짓던 회색 사신은 없었다.

    히히.

    장난스럽고 사악한 표정을 지은 회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을 뿐이었다.

    애옹!

    ‘속였구나!’

    원통한 마음을 담아 소리치며 버둥거렸지만, 단단히 붙잡은 황금 사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수술대 위의 불쌍한 고양이처럼 팔다리를 붙잡혀 탁자 위에 고정된 고양이.

    양손에 장작을 잔뜩 머금은 채 다가오는, 사악한 표정의 회색 사신.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회색 사신의 장작이 고양이를 태우는 순간.

    애오오오옹!

    젤리 돼지 병원에 원통한 고양이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

    미니 사신 정원에 만들어진 조그마한 무덤 앞.

    나는 그 앞에 서서 무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고양이의 의식은 실패했다.

    죽어버렸어.

    오브젝트로서의 격이 너무 낮아서, 죽어버린 것이다.

    나는 유령 고양이의 무덤 앞에서 묵념했다.

    ‘이렇게 금방 죽을 유령 고양이가 아니었는데….’

    애옹!

    그런 내 머리 위에는 잔뜩 화가 난 고양이가 헛소리하지 말라며 내 머리통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육체는 헤일로로 만들고, 영혼은 푸른 거인으로 불러들인 new 유령 고양이였다.

    하지만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데다, 육체마저 다른 고양이인데.

    과연 저 고양이는 예전 고양이랑 동일한 고양이일까?

    하지만 내 철학적인 물음을 들은 유령 고양이는 헛소리하지 말라며, 내 정수리를 더욱 빠르게 때리기 시작했다.

    ***

    잔뜩 나를 때리던 고양이가 세희 연구소로 돌아가자, 나는 심심함을 풀기 위해서 미니 사신 정원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넓은 설원을 뚜방뚜방 돌아다니다 보니, 바닥에 잔뜩 널브러진 황금 사신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널브러진 황금 사신 하나의 손을 잡고 들어 올리니, 힘 하나도 없이 축 늘어졌다.

    좌우로 흔들면 힘이 하나도 없이, 흐느적흐느적.

    왠지 힘이 빠진 황금 사신은 흐느적거리면서 말랑거리는 감촉이 좋아서 계속 만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황금 사신은 마치 굶어 죽어 가는 사람처럼 눈을 흐릿하게 뜨고 의지를 전해왔다.

    ‘모험….’

    조금 듣기 힘든 의지였지만 유심히 들어보니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즐거운 모험이 끝난 것이 원인이었다.

    주황 사신의 거짓말이 밝혀지면서, ‘전설의 푸딩’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져서 그런 것이었다.

    황금 사신들은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푸딩’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 속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고고학자’처럼, 모험을 즐기는 아이들이었는데.

    그 목적지가 사라져 버린 셈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그런 황금 사신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다른 널브러진 황금 사신들도 끌어모았다.

    그러자, 황금 사신들은 ‘상냥한 엄마!’라고 의지를 뿜어내며 나에게 잔뜩 달라붙었다.

    모험을 즐기던 황금 사신이 상당히 많았는지, 나는 순식간에 황금 사신 고치가 되어버렸다.

    그런 말랑말랑한 고치 속에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황금 사신들이 예전처럼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

    이 정도면 상냥한 엄마 주간을 끝내도 되지 않을까?

    히히.

    황금 사신으로 가득 차버린 내 시야 속, 황금 사신들의 사이로 설원 위에 만들어진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 사신들이 눈을 뭉쳐서 만든 얼음 궁전이었다.

    정말 정교하고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왠지 상냥한 엄마 주간의 끝이 다가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구름 고기 사이에 몸을 숨기고 날아다니던 주황 사신은 굉장히 흥미로운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득한데도 해로운 오브젝트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도시였다.

    그야말로 해로운 도시!

    이 도시의 인간들은 자기 신체를 오브젝트로 갈아 끼우고 살아가고 있었다.

    얼굴에 거미처럼 눈이 잔뜩 달린 사람.

    팔이 3쌍이고 얼굴도 3개나 달린 사람.

    등 뒤에 커다란 칼날이 달린 사람.

    저 인간들은 멍청하게도 자기 신체를 대신한 오브젝트가 ‘인간에 대한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인간에 대한 악의가 넘치고, 해로운 오브젝트의 역겨운 냄새가 가득한 도시.

    제대로 된 인간은 없고, 오브젝트에 가까워져 버린 인간들이 가득한 도시.

    보통의 미니 사신이었다면, 절대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을 도시였다.

    그런 도시에서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소녀가 있었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은 순수한 인간.

    주황 사신은 그 소녀를 보는 순간, 어쩐지 조금 궁금해졌다.

    ‘저 소녀는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작은 궁금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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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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