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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방심한 사이에 허를 찔렸다.

       

       꼬리에 얻어맞은 내 몸이 부웅, 하고 공중을 날아올랐다. 땅과 하늘이 몇 번이나 뒤바뀌었고, 뒤늦게 옆구리가 욱신거렸다.

       

       갑자기 당한 것이라 낙법 자세를 잡을 틈도 안 보였다.

       

       이거, 땅바닥에 떨어지면 조금 아프겠구나.

       

       그리 생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

       

       거의 수십 미터를 날아올랐던 몸이 예상 외로 멀쩡하게 착지했다.

       

       아니, 착지라기보다는 안착했다는 표현이 알맞으리라.

       

       “크흑.”

       

       나를 야구공 잡듯이 낚아챈 버멜은 그대로 땅을 몇 바퀴 구르며 신음을 토해냈다.

       

       당연히 그 품에 안겨 있던 나도 똑같이 굴렀으나, 버멜이 충격을 대신 흡수해 준 덕분에 상대적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허억, 헉. 괜찮냐?”

       

       버멜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새로 산 아카데미 교복은 흙과 먼지투성이였고, 팔과 무릎 곳곳에는 고양이가 긁은 듯한 상처가 생겨 있었다.

       

       뭔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버멜의 품에서 재빨리 빠져나온 뒤 손을 잡아끌었다.

       

       “괜찮아. 너는?”

       “문제없어.”

       

       버멜은 뺨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피식 웃었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돌아온 거 확실하네.”

       “…그래.”

       

       돌아왔다기보다는 하나로 합쳐졌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지만.

       

       지구에서의 기억은 버멜과 내가 같은 세계선에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엘프와 친분을 가지지 못했겠지.

       

       도움을 받았으니까 나중에 치맥 한잔 쏜다, 그런 소리를 늘어놓고 있자니 세실이 이쪽을 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둘이 노닥거릴 시간 없어요.”

       

       곧 그녀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옵니다!”

       

       세실은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물려 방어선을 새로 구축했다.

       

       아예 끝장을 보기로 한 모양인지, 리바이어던도 방울뱀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뭍으로 올라왔다.

       

       쩌적.

       

       놈이 조금씩 다가올 때마다 섬을 이루는 지반이 갈라졌다. 

       

       “아스테야 선생, 정령왕의 기척이 근처에서 느껴져요. 혹시 이리로 오는 분 없으신가요?”

       “두 분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계십니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와 땅의 정령왕 노움. 그 두 정령은 지금도 멀찍이서 날 지켜보고 있겠지.

       

       직접 오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 아직 이곳에 해룡 말고도 절멸급 마수가 또 있어서.

       

       둘. 내가 해룡을 직접 잡아야 엘프들이 날 믿을 테니까.

       

       기회를 받은 이상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끝나야만 빙의자와 대화도 할 수 있고, 로테도 치료할 수 있다.

       

       타악!

       

       스태프를 꼬나쥔 채로 땅을 박찼다.

       

       [배신자 년!]

       

       리바이어던의 비늘 사이로 마수들이 돋아났다.

       

       출아법으로 번식하는 히드라처럼 모체에서 태어난 새끼 수룡들이 치타처럼 날쌔게 움직이며 좌우 양각을 노려왔다.

       

       “도와드릴게요!”

       

       버멜이 좌, 세실이 우를 맡으며 보조를 자처했다. 덕분에 사각지대는 생겨나지 않았다.

       

       새끼 용들은 타르처럼 찐득거리는 독성 물질을 뱉어냈다. 세실은 그것을 모두 가볍게 쳐냈고, 버멜은 바람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나는.

       

       전부 받아냈다.

       

       [……!]

       

       깜짝 놀란 리바이어던이 곧바로 제압 사격을 실시했다. 머리에 난 포대가 일제히 움직이며 나에게 철의 비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 또한 전부 받아냈다.

       

       탄환의 대부분은 도탄되었지만 일부는 운 나쁘게 생채기를 남겼다. 그런데도 내가 멈추는 일은 없었다.

       

       양쪽 손으로 스태프를 쥐고 해룡의 뒤틀리는 몸 사이를 빠르게 주파했다. 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놈의 뒤통수 사이로 뛰어올랐다.

       

       [어딜!]

       

       화아아악!

       

       리바이어던이 고개를 홱 돌아 브레스를 내뿜었다.

       

       말이 브레스지, 화염을 방사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막아야 했다. 옷을 홀라당 태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팔정도(八正道) 제4식(式) ─ 컨덴세이션(Condensation)]

       

       나는 놈의 아가리를 향해 스태프를 내리꽂았다. 버니어 캘리퍼스의 아래쪽 날이 닫는 불길마다 차갑게 식어갔다.

       

       이대로 있다간 목이 꿰뚫릴 것이라는 걸 안 모양인지, 황급히 브레스를 중단하고 몸을 뒤트는 리바이어던.

       

       여기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잡았다.”

       

       나는 해룡의 콧잔등을 붙잡은 뒤 그대로 머리에 올라탔다.

       

       [더럽다. 떨어져라!]

       

       리바이어던은 머리를 홱홱 돌려댔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감에 따라 내 속도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꽈악.

       

       스태프 날을 세로로 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끄아아아악!]

       

       놈의 눈 하나에 날을 쑤셔 넣었다.

       

       와장창, 하며 렌즈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리바이어던은 더욱 격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수록 내가 이놈을 붙들고 있는 힘만 강해질 뿐이었다.

       

       [이, 이년이 보자보자하니까─!!]

       

       리바이어던은 눈이 수백 개에 이른다. 일일이 깨 버리기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같은 고통을 못 해도 수십 번은 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언제까지? 놈이 뒈질 때까지.

       

       나는 다음 일을 숙고하지도 않은 채로 해룡의 렌즈를 하나씩 박살 냈다. 눈앞에 부수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부순다…. 인간보다는 마수의 본능이었다. 물론 이런 짓을 자주 할수록 인간에게선 멀어지리라.

       

       당장은 상관없었다.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선 자신도 괴물이 될 필요가 있으니까.

       

       이런 폭력에는 정당함이 있고, 권력이 있다. 권력이란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어야만 생겨나는 것이다.

       

       “분수도 모르는 놈.”

       

       나는 리바이어던에게 서열이, 또한 권력이 무엇인지 친히 가르쳐주었다.

       

       “상천(上天)의 명령이다. 본관을 따라서 얌전히 투항하라.”

       

       가장 완벽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라는 것이라 했나.

       

       리바이어던을 굴복시킬 수만 있다면 차후 마왕과의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나는 리바이어던을 가능하면 포섭하려고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은 법.

       

       [배신자에게 투항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리바이어던은 결사 항전을 선택했다.

       

       역시 긍지 높은 용족이다. 꺾일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는 건가.

       

       그리고 그만큼 직선적이기도 하다.

       

       나는 내려찍는 것을 잠깐 멈추고는 물었다.

       

       “민천이 늘 얘기하지 않던? 자신과 상대방의 격차를 잘 파악하라고. 해서 공격할 땐 공격하고, 튈 땐 튀라고.”

       

       요르문간드가 다른 강대한 용족과는 달리 사천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치고 빠질 때를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다.

       

       평소엔 오만한 듯 보이나 실은 매우 신중한 그녀였다.

       

       “네 친척을 좀 본받아라. 어째 하는 짓은 호천처럼 방종한지.”

       [지금 길라흐 님을 모욕한 건가?]

       “그 새끼는 욕 먹어도 싸.”

       [무엄하다.]

       “그리고 시답잖은 상관의 계획에 휘둘리는 건 상급 마수만도 못하지. 창천이 너에게 뭐라고 말하든?”

       [창천께선 일이 끝나는 대로 1차 도련선으로 후퇴하라 하셨다. 그곳에서 이동진을 보호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용족의 명예를 위해 네년과…….]

       

       해룡은 거기까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 이동진이 있었구나?”

       […….]

       “도련선 근처에 있다는 건, 나중에 마왕군이 이곳에 들어오기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고.”

       

       설마 전투 중에 정보를 캐내리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리바이어던.

       

       느낌상 이건 전조였다.

       

       놈이 미친 듯이 날뛸 것이라는 전조.

       

       예상대로 리바이어던은 몸을 이리저리 꼬아대며 비늘에서 마수들을 쏟아냈다. 등줄기에선 포탄이 펑펑 터져 나왔다.

       

       이 와중에도 세실 총장과 버멜을 필두로 한 마도사들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다 쓴 전구를 부수듯이 해룡의 눈을 찔러대며 항복을 재차 권유했다.

       

       [용서할 수 없다!!]

       

       수세에 몰린 해룡이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육상에서라면 몰라, 바닷속에선 놈이 훨씬 유리하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땅을 밟았다.

       

       “놈이 도망치고 있어요. 빨리 쫓아야 하는데….”

       

       결국 튀는구나.

       

       하지만 저대로 보낼 생각은 없었다.

       

       “아스테야 선생, 혹시 비행 마법 쓸 줄 알아요?”

       “물론 할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바로 놈을….”

       “총장님.”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된 거, 도련선까지 밀어버립시다.”

       

       

       **

       

       

       불가항력이었다.

       

       상천의 무력이 상상 이상이었기에, 리바이어던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분한 줄 알면서도 이 선택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내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리라.’

       

       상천의 면상을 떠올리자마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박살 난 눈알 서른 개가 칼날로 쑤신 것처럼 아려왔다.

       

       따지고 보면 칼날로 쑤신 게 맞긴 하지만.

       

       리바이어던은 몸을 굽이치며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리바이어던이 헤엄치는 속도는 100노트를 상회한다. 물속에서 시간당 185km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빠른 속력이었음에도 불안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이조차도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후퇴하기로 했던 도련선에 가까워졌다.

       

       ‘멍청했다. 왜 그걸 불어가지고….’

       

       도련선으로 이어진 섬 어딘가에 공간이동진이 숨겨져 있다는 걸 말해버린 이상 에테르는 반드시 이곳으로 온다.

       

       그러니 여기서 반드시 막아내야만 한다. 막지 못하면 마왕님 부활 이후 카우렐리아를 침공할 때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우선 만약을 대비해서 이동진의 위치를 암호화할 필요가…. 응?’

       

       이동진이 깔린 섬으로 다가가던 리바이어던의 남은 눈동자들이 휘둥그레졌다.

       

       섬 위로 웬 여자애 하나가 서 있었다.

       

       발끝까지 닿는 머리카락은 아주 옅은 연두색이었고, 눈은 그보다는 진한 에메랄드색이었다.

       

       머리에는 나뭇잎을 엮어 만든 월계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게 소녀가 입은 의복의 전부였다.

       

       ‘치녀인가?’

       

       그런 생각이 잠시 떠올랐으나, 곧 오싹한 기운에 잠식되고 말았다.

       

       [도리도리.]

       

       소녀는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로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눈매는 샐긋 뒤틀렸고, 볼은 살짝 빵빵하게 부풀린 모양새였다.

       

       귀여운 외모에, 귀여운 행동거지였다. 하지만 리바이어던은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

       

       늑대를 피해 달아났더니 호랑이를 만난 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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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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