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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이쯤 되면 황제가 나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할 거다.

        

       내가 한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러니까 내가 정말로 황제와 몰락한 황실의 한 여인 사이에서 나온 아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내가 알 수 없을 만한 정보를 잔뜩 가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황제는 아직 내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는 못했다. 내가 시간을 돌린다는 사실은 둘째치고, 내가 전함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거나, 황궁 내부 구조를 구석구석 다 살펴봤다거나 하는 것은 황제의 시선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한 번 자고 방치할 여자와 말을 섞으며 국가 기밀에 대해서 떠벌리지는 않았을 터였다.

        

       게다가 그레이스 가는 전통적으로 황제의 편에 서는 가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끼어드는 가문도 아니었다. 제도를 수호해야 하는 순간에 힘이 될 가문이긴 했지만, 황제의 정치싸움에 도움이 될만한 가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그레이스 남작가의 영애로 자랐을 뿐인 내가, 황제가 시행하려는 최종 목적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걸 해결하는 것을 돕겠다고 하고 있으니—

        

       “……너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그런 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크로우필드 백작과 린드버러 공작은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그들도 귀족식 정보수집 방법을 알고 있고, 내가 가진 정보를 상대가 모르거나, 반대로 상대가 가진 정보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남작가이기는 하지만 황실과 가깝고, 유사시에 군사적으로 움직이게 될 가문의 첫째 딸인 나였으니 그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들도 나름대로 그 정보를 교차검증하겠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내 말만 믿고 목숨을 버릴 사람들은 아니다. ……아닌가? 그때 크로우필드 백작이 지었던 표정을 보면 여자 하나 때문에 인생 망칠 사람처럼 보이긴 했는데.

        

       뭐, 아무튼.

        

       그러니 두 사람에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작전이 실패해도 상관없다. 그 둘은 자기 부하 한둘이 자기네 명령 때문에 죽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하늘에서 전함이 폭발해 추락한다. 그 안에서 누가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그 광경을 보고 두 사람은 각자 자기네가 성공했다고 생각할 거다.

        

       중요한 것은 전함이 진짜로 떨어지는 것이다.

        

       드레드노트 함의 위치는 제국에서 매우 상징적이니까. 황제 본인조차도 자기 계획에서 사실 전함의 위치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는 것을 잠시 잊을 정도로.

        

       “폐하는 저의 어머니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하시겠죠.”

        

       “…….”

        

       나는 최대한 목소리에 원망하는 기색이 없도록 조심하며 말했다. 사실 진짜로 원망 따위 하고 있지는 않았으니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저는 제 어머니에 대해서 기억합니다. 제 어머니는……”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평범하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폐하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폐하에 대한 증오를 내비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한순간이지만—”

        

       그리고 나는 그 단어를 꺼냈다.

        

       “세상의 질서가 너무나 어지럽혀졌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시선을 들어 황제와 눈을 마주쳤다.

        

       황제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 있던 루카스와 벨라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나와 황제 사이에 어떤 사인이 흘러가긴 했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했을 테니까. 애초에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고.

        

       “그렇다면, 너는 어째서 나를 돕는 것이지?”

        

       “저는, 어머니의 뜻대로만 살고 싶지 않습니다. 폐하, 제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계십니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부분만 알고 있다.”

        

       “하지만 제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요.”

        

       “머릿속이라.”

        

       “그렇습니다. 저를, 어떤 저주가 옭아매고 있습니다. 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어떤 저주가.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한 강박이. 그게 저의 자유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해가 갈수록 느끼고 있습니다.”

        

       “…….”

        

       “저의 말 때문에 폐하는 저를 의심하겠지요. 제 피의 절반이 그런 어머니의 피라는 것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제 피의 절반은 팬그리폰의 피입니다.”

        

       나의 말에, 황제는 마치 나를 가늠해보겠다는 듯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나도 바닥에 꿇어 엎드린 채 그런 황제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제 절반의 자유가, 저를 이곳까지 이끌었습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지보를 황제 쪽으로 다시 밀어놓으며 말했다.

        

       “부디 마지막 순간에, 폐하께서 저를 이 저주에서 해방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저의 온전한 바람입니다.”

        

       “…….”

        

       내 이야기를 알아들은 이도, 알아듣지 못한 이들도, 모두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폐하께서 모든 힘을 가지게 되셨을 때, 조금 더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적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를 구분해두는 것이 편하겠죠. 전함에 대한 것은 그런 뜻입니다. 제가 이미 손을 써 둔 부분이 있습니다. 폐하께서 그런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해주신다면, 폐하께서 만들어내실 새로운 질서에 도움이 될 것이라, 이 미천한 머리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그렇게 말을 마쳤다.

        

       내가 말을 마친 뒤에도 황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채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황제의 발이 살짝 움직이는 게 보였다.

        

       저벅, 저벅. 황제의 걸음 소리가 들린다.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온 황제가 허리라도 숙였는지, 시야 위쪽에 황제의 손이 불쑥 나타났다.

        

       황제의 손은 내 앞에 놓인 지보를 집어 들었다.

        

       “그 바람, 알아들었다.”

        

       그리고 다른 손이 내 어깨에 올라왔다.

        

       “너는, 정말로 나의 딸이 맞는구나.”

        

       아닌데.

        

       물론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황제가 앨리스 같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앨리스가 지금의 내 표정을 봤다면, ‘좋아?’하고 물었을 테니까.

        

       *

        

       들린 것은 폭음.

        

       아니, 폭음이라고 표현해도 되는 걸까?

        

       공중에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눈에 직접 보일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었다.

        

       저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죽었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여신의 제안을 거절했던 시점에서, 나는 이 땅에서 불행하게 죽어가는 모든 이들의 죽음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자격을 잃었다.

        

       여신의 그 말을 들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말에 동의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동의했을 거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나는 모든 히로인들이 살아남은,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도 살아있는 온전한 의미의 해피엔딩을 원했다.

        

       그리고 그 생존자의 안에는 내가 얼굴도 모르는 이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저게…… 어떻게…….”

        

       내 옆에 있던 앨리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클레어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우리와 대적하고 있던 샤를로트도 마찬가지였다.

        

       대적, 이라고 해야 할지.

        

       결국 전쟁은 벌어졌다. 제국은 자치국을, 벨부르를 침공했다. 제국 해군이 바다를 가르며 이벨리아 왕국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고, 기타 수많은 나라들이 크고 작은 타격을 받았다.

        

       이기기 위한 전쟁이 아닌, 그 안에 단 하나의 작은 목표를 위한 전쟁.

        

       공중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 제국 군사력의 상징은, 한순간 전장의 모든 군대의 시선을 빼앗기에는 충분했다.

        

       심지어 이 루테티아 지하에 있을 법국의 군사들까지.

        

       지금쯤 황제와 아이들은 그 지하를 털고 있을 것이다. 가면녀가 없는 이 세상에서는 그들이 모아둔 지보 말고 다른 지보는 없으니까.

        

       “적어도 이것으로, 루테티아 궁전은 무사하겠죠.”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전함은 추락하는 중이다. 내부에 있는 헬륨이 전부 빠져나가고 나서도, 그 거대한 덩치를 어떻게든 공중에 고정해두기 위해 아낌없이 사용된 마르마로스와 마력석 덕분에 그 잔해들은 기괴할 정도로 천천히 떨어지는 중이었다.

        

       옆을 호위하던 복엽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날개를 구성한 캔버스 천에 불이 붙어서, 목재 몸통에 불이 붙어서 활강하듯 추락하는 무수한 비행기들을 보면 예술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세상이 성공적으로 파괴되고 나면, 저 희생들도 없던 것이 될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시선을 내려 샤를로트를 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에게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이런 상황이라도, 친구의 집이 부서지고 그 가족이 죽게 되는 상황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모순된 말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죽여버리고 이 세상이 사라지면 어차피 없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말.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인터넷에서도 열심히 말을 바꾸고,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거짓말을 하고.

        

       애초에 세상을 구하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다는 거지.

        

       여신은 사람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어.

        

       나는 샤를로트를 향해 다가가면서 아무것도 들지 않은 양 팔을 벌려보았다.

        

       “찌르고 싶다면 찔러도 좋아요. 저는 당신을 절대로 해치지 않겠습니다.”

        

       “…….”

        

       나의 말에 샤를로트의 눈에서 독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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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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