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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천미라의 반문에,

       검귀는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마치, ‘실망했다…’라는 표현.

       이내, 그답지 않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누님이라면…진작에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결국, 누님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했구려. 한성 형이 말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설마 누님에게도 나의 본성을 말하지 않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누님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인간을 아예 잘못 알고 있다는 소리오.”

         

       파캉-!

         

       단숨에 하반신의 얼음을 깨부수는 검귀.

       그와 동시에 소름 끼치는 소음을 내며,

       ‘4’라 적힌 특대검을 휘둘렀다.

         

       천미라는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잘 대응했다.

       다시금 이어지는 전투 속,

       검귀가 말했다.

         

       “우선은 이것부터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나는 딸아이에게 일말의 애정이 없었소.”

       “…!?”

        “정확하게는 태어나 키운 지 5년, 다섯 살이 되는 그 시점. 흥미를 잃었다는 게 맞겠지.”

       “…흐, 흥미를 잃었다고?”

       “그렇소.”

         

       나 정도의 피를 이어받은 싹이라면…

       저 하늘의 별에 도달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그것조차 넘어설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

         

       나를 뛰어넘는…

       내가 그토록 바라고 찾아다니던 재능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고 여겼소.

         

       “나는 우수했으니까.”

       

       나는 강했으니까.

       나는 한성 형이 인정한 천재였으니까.

       나는 천외천(天外天)의 영역에 발을 들였던 자였으니까.

       당연히 내 딸도 그럴 거다,

       라는 기대를 조금은 했었소.

         

       “하지만 아니었소. 내 딸은 열등했소. 기껏해야 A급에 간신히 도달할까 말까 한 비루한 재능.”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검귀의 공허한 눈동자.

       그것이 천미라의 심장을 강하게 꿰뚫었다.

         

       “단언할 수 있소, 내 딸은 쓰레기였소.”

       “…너, 너 지금 자기 딸을, 향림이를…그렇게 평가하는 거냐? 그 아이의 노력을 직접 두 눈으로, 심지어 내 밑에도 배우게 했으면서?!”

       “누님.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보기 싫어서 그 쪽에게 보낸 거요.”

       “……!”

       “마저 말하겠소. 그렇기에 나는 아버지로서의 기본적인 책임만 다하고 놔뒀소.”

         

       애초에 결혼이라는것도,

       나에게는 불필요한 일이자 연결이라고 여겼소.

         

       일부러 족쇄를 채우고, 같이 돌아다니며,

       더욱더 나약해지고.

         

       ‘정’이라는 같잖은 것 하나로 도태되는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결정.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소.

         

       “그저 한성 형이…”

         

       형님이…

         

       ‘가정을 꾸리면 행복해진다.’라는 그 말에 한 번 해본 것에 지나지 않소.

       여자를 고르는 기준도 나에게는 별것 없었소.

       강함과 재능.

       오로지 그것뿐.

         

       “…지금 생각해도 참 이해하기 어렵군. 모체가 되는 여자 또한 꽤 우수했는데…왜 그런 열등한 아이가…”

       “…장 씨는 모체가 아니라 네놈의 아내 되는 사람이다!”

       “그 말부터가 누님을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증거요.”

         

       나에게 있어 아내든, 딸이든…

       그저 입이 달린 고깃덩이에 불과했소.

       재능 없는 쓰레기이자 버러지.

       같은 종족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무기물.

         

       “만약 한성 형이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면, 거두어 주지 않았다면, 언제나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면, 이런 짓도 하지 않았겠지.”

         

       지금도 생각나오.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그리도 기뻐하는 한성 형의 얼굴을.

         

       “이것이 나라는 존재의 본성을 알고도 키워준, 한성 형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일 뿐이었소.”

       “……”

         

       천미라는 숨을 헐떡였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녀는 어리석게도 지금에 와서 이해했다.

         

       검귀의 말대로 자신은 소항우라는 인간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것을 눈치채는 검귀.

       그는 그제야 서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나도 순수해서…

       천미라는 절로 소름이 끼쳤다.

       동생이라고 여겼던 자가 얼마나 인간 같지 않은 본성을 품었는지 알아챘다.

         

       “너, 너, 너…!”

       “나는 세간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흔히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인간일 거요.”

         

       나는 도덕과 양심을 아오.

       선과 악의 개념을 아오.

       살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한성 형이 언제나 지겹도록 말했던 소중한 이를 위해서 힘을 쓸 때 남자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하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소?

         

       “나랑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인 것을…”

       “……”

       “이제부터가 반론이요. 딸아이가 죽은 그날 바로 복수하지 않은 이유, 클랜 마스터라고 어깨에 힘 좀 주던 그 기생오라비를 죽이지 않은 이유.”

         

       자연스러운 이치였으니까.

       뭐가 어찌 되었든, 딸아이가 약해서 죽은 거니까.

       애초에 복수라는 감정을 가지는 것조차 어이가 없는 거지.

         

       “항복한 상태라고 해도, 방심해서 죽은 것이 아니오? 뭐가 문제라는 말이오?”

       “…미, 미친놈…”

        “5년 뒤, 그 기생오라비를 찾아가 죽인 이유는…그놈이 경복궁 <시련>에서 가지고 온 무기가 나에게 필요했던 무기라서 그랬던 것뿐이오. 그냥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여러모로 껄끄러워 도구를 쓴 거고.”

         

       말을 마친 검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검을 꺼내 들었다.

         

       흉흉한 형태의 장검.

         

       아무런 숫자도, 이니셜도 박히지 않은 오로지 검귀라는 존재를 상징하는 검.

       그것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것이 탐났으니까.”

         

       마지막 해명이라는 듯 대꾸하는 검귀.

         

       “그리고 뭐라고 했더라? 문하연, 그 아이에게 부성을 느껴서 도와줬다?”

         

       ―푸하하하!!!

         

       검귀는 웃었다.

       너무나도 같잖다는 듯 크게 웃었다.

       천미라 또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식 없는 진짜 웃음이었다.

         

       “내 살다 살다 그런 소리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검귀는 어리석다는 듯 천미라를 쳐다봤다.

         

       “내가 문하연, 그 아이의 옆에 있는 것은…다른 종류의 강함을 보았기 때문이오. 그걸 위해서 도와주는 거고.”

       “…다른…강함?”

         

       검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문하연을 마주쳤던 그날.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밤,

       뒤를 쫓던 남자들에게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발버둥 치는 어린 소녀를 보는 순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거든.”

       “…가능성?”

       “그 아이의 재능은 우수하지만, 그래봤자 별이 될 정도는 아니었소. 피 터지게 노력해야 S급은 겨우 될까 하는 정도였지.”

         

       별이 되지 못한 존재가,

       어찌 별을 넘어 천체의 세상.

       그 끝자락.

       지존의 길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원래라면 문하연 또한,

       검귀에게 고깃덩이나 다를 바 없었다.

         

       “제 혼자서라면 말이야.”

       “…무슨?”

       “내가 그 아이에게 그날 본 빛은 그 아이의 방식이었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악착같음.

       다른 이를 짓밟아서라도 목표를 향해 도달하려는 집념.

         

       마지막으로 최소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축적되어,

       그 무엇보다 크고 잔혹한 악의 꽃을 피워낼 가능성을 가진 ‘추잡한 피’이자, <문가>의 재능.

         

       “장담하는데 그 아이는 천체의 세상에 발을 들일 거요. 나처럼…”

       

       그게 절대 제 혼자의 힘은 아닐지라도…

       넘는다는 것이,

       도달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였다.

         

       검귀에게 있어 스스로 그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

       하지만 구태여 본인이 아니어도 좋다.

         

       그 누구라도 갈 가능성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르치고 올려서 도달하게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본인의 생사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이것은 필시 어려운 일이지. 스스로의 재능으로 피워내는 꽃보다 더욱 가혹하고 힘든 일. 그렇기에 나는 중간, 중간 그 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소.”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제명에 살 수 있다.

         

       ―너는 젊다. 사랑을 할 수도 있고,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먹고. 좋게 지내다 보면. 너의 증오도 조금은 가라앉을지 모른다.

         

       “타인이 보기에는 이것은 부성애이자, 연민의 단어로 여길지 모르나 나에게는 시험이었소.”

       “…시험?”

       “그 아이가 나약함을 보이는 순간…죽일 생각이었소. 전력을 다해 올라가야 할 꽃이 땅에 떨어진 미물에 신경 쓰여 방향을 트는 순간 모가지를 꺾을 생각이었지.”

         

       하지만 문하연.

       그 아이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소.

         

       “물론, 솔직히 말해서 의중을 간파하고 대처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저 상황 자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거겠지.”

       

       하지만 상관없소.

       그 아이는 크게 될 거요.

       그거면 충분하오.

       이것이 내가 그 아이를 돕는 이유요.

         

       검귀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

         

       착.

         

       천미라는 뒤늦게 눈치챘다.

       어느새 검귀의 칼이 납도 되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화끈한 감촉과 함께 복부가 베였다는 것을.

         

       천미라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얼음을 몸에 둘렀기에 허리가 동강 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는 치명상이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검귀.

       다시 한번 칼을 뽑고 납도 했다.

         

       “내 살아온 인생 이 정도로 친절하게 설명하고 말한 것은 누님이 유일하오. 그리고 다시는 없을 거요.”

         

       오랜만에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어 즐거웠소.

         

       쿠구구구-!!!

         

       총 4개.

       아니, 8개가 넘는 팔각형을 이루는 정체불명의 검기.

         

       흔히, 귀영검(鬼影劍)이라고 불리는 지고의 검기가,

       그 누구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법칙을 머금은 검기가,

       흉흉한 기세를 머금고 닥쳐왔다.

         

       지켜보던 천미라.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번 에피소드는 호흡이 좀 깁니다. (20화 정도…?)
    아무래도 최종장 에피소드 중 하나인지라,
    최대한 연참해서 빨리빨리 이어가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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