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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루크 너는 왜 여기에 온 거야?”

    “그냥 바람을 좀 쐬러.”

     

    루크의 대답에, 헬레나는 약간 탓하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바람을 쐬고 싶었으면 딱히 옥상이 아니어도 되잖아.”

    “으음…….”

     

    꽤 정곡이었다.

    사실은 그냥 바람만 쐬러 온 뿐만 아니라, 리브에게 가을 바람을 타고 오는 마력을 먹일 요량으로 다른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옥상을 찾은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말을 하게 된다면 리브가 그냥 곰인형이 아니라는 것을 시인하는 꼴이라, 루크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뭐어, 너는 공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지?”

    “응. 지금은 아무도 안 오니까. 조용하잖아.”

     

    하긴, 여기서 도서관까지의 거리는 꽤 멀다.

    6학년부터는 도서관이 가깝기 때문에 괜찮지만, 헬레나 같은 저학년의 교실은 도서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쉬는 시간이 대략 10분으로 정해져 있는데, 학교가 넓다보니 빠른 걸음으로 오가는 시간만 대략 5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게다가, 6학년부터는 학구열도 꽤 강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도착한 도서관에 자리가 남아있는지도 살짝 의문이고.

     

    “조용히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는 모양이구나. 알겠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으마.”

    “그래주면 고맙겠어.”

     

     

    헬레나가 대꾸하자, 루크는 금방 자신에게 흥미를 잃은 것 처럼 다시 인형을 안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루크는 정말로 바람을 쐬러 왔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는 듯 보였다.

     

    “…….”

     

    그런데 진짜 얘는 옥상에 왜 올라온 거지?

    지금 딱히 공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하지만, 다시 그걸 묻기엔 더 이상 루크와 말을 섞고 싶지가 않았다.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고.

     

    그렇게 루크를 무시한 채, 헬레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헬레나는 아까 전에 외우고 있던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뒤, 눈을 감고 외기 시작했다.

     

    “라베트의 마력공식은 필요 마나량 곱하기 물체의 질량…….”

     

    그 때였다.

     

    “잠깐, 헬레나. 지금 뭘 하는 거지?”

     

    루크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온 것이다.

    그러자 헬레나는 기겁을 하면서 몸을 옆으로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뭐, 뭐야, 갑자기! 깜짝 놀랐잖아!”

     

    헬레나가 외쳤으나, 루크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이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설마, 그 과정은 전혀 이해하지 않고 공식만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갑자기 왜 그러나 했더니…….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다.

     

    고작 공식을 암기하고 있는 거 때문에 그랬던 건가.

     

    헬레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되받아쳤다.

     

    “그게 뭐 어때서? 어차피 시험에서 필요로 하는 건 과정이 아니라 답이야. 결과만 좋으면 되잖아? 과정을 이해하는게 뭐가 그리 중요한데? 답만 쓸 수 있으면 되지.”

     

    공식만 외워서 시험을 보면 훨씬 간단하고 빠른데, 굳이 그걸 다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루크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당연히 중요하지!”

    “가, 갑자기 왜 화를 내?”

     

    그게 정론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낼 잘못은 아니지 않나?

    루크는 곧 열변을 토하듯 말을 쏟아냈다.

     

    “과거 서클로 대표되던 마법과 비교해 보았을 때, 현대 클래스마법에서 마력계산식의 중요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게다가, 이는 고등마법으로 넘어갈수록 더욱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 헌데, 고작 2학년 수준의 마법식에서 그 식이 나타난 과정을 홀대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물론 지금과 같이 초보적인 마법을 사용할 때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을 게다.

    어쩌면 고등마법도 식만 외워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응용력이 부족해지고, 다양한 상황과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도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되면 자연스럽게 공부는 배움이 아니라 단순한 노동이 되고 말겠지! 그렇게 되면 너는 평생 마법이 어떤 학문이고, 어떤 재미를 품고 있는지 영영 깨달을 수 없는 무지렁이와 다름없는 꼴이 되고 말 거다!”

     

    헬레나는 쏟아지는 루크의 말에 기가 질리고 말았다.

     

    “대체 무슨 소리야, 그게?” 

    —–

     

    “그러니까, 이 공식은 이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풀리게 되는 것이다.”

    “그, 그렇구나. 응, 이해했어.”

     

    불과 몇 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 헬레나는 굉장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마치, 2배속으로 네트워크 강의를 듣는 느낌이랄까.

     

    솔직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개념만 짚어주도록 하겠다.’라며 속사포로 설명을 쏟아내는데도 이해에 무리가 가지 않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뭐, 루크가 누굴 가르치는 걸 잘 한다는 건 저번에 카페라는 곳에서 같이 공부를 하면서도 이미 경험해본 일이긴 하지만.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래, 왜 이런 공식이 나오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좋다.

    평소 그냥 외우기만 했던 마법공식이 사실은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알게 되는 것은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너무 가깝지 않나?

     

    물론 노트를 보면서 설명을 해야 하니까 옆에 딱 달라붙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헬레나는 그리 생각하고 싶지않더라도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설마, 이거……. 루크가 일부러 나한테 붙어 있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솔직히 조금 소름이 돋는다.  그렇다고 하면 설명을 핑계로 자신도 모르는 새 옆자리를 허락해버린 셈이 된다.

    헬레나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아냐,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왜 내가 전전긍긍해야 되는 거야?’

     

    만약 루크가 자신을 이성적으로…….

    아니, 이 경우엔 동성적인가?

     

    아무튼, 자신을 좋아한다면 문제는 자신이 아니었다.

     

    만약 루크가 고백을 한다면 거절하면 될 일이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다른 아이들이랑 똑같이 대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러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헬레나가 지금과 같은 이익을 굳이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래 연애에선 먼저 반하는 쪽이 지는거라고 하니까.

     

    루크가 남에게 설명을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그냥 지금은 이걸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헬레나가 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을 때.

     

     

    “저기, 헬레나? 혹시 어디 아픈가? 얼굴이 빨간데.”

    “으, 응? 내가?”

     

    헬레나는 루크의 물음에 그제서야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왠지 좀 열이 오른 듯 하다.

     

    영문을 모른 채 당황하고 있던 헬레나는, 돌연 느껴지는 이마의 감촉에 화들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흐얏! 차가워!”

     

    이마의 감촉은 루크의 손이었다.

     

    “열도 조금 있는 것 같고……. 맙소사, 땀을 이렇게나 흘리고 있었나?”

    “어? 내, 내가 땀을?”

    “그래, 손이 다 축축하구나. 혹시 감기라도 걸린 게 아닌가? 역시 네게 옥상은 너무 추웠던 모양이구나.”

    “그 그런가아……. 응, 그럴지도.”

     

    헬레나가 적당히 대꾸하자, 루크는 이런 쌀쌀한 날씨에 온기하나 없는 옥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헬레나가 꽤 걱정이 되어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런, 시험인데 조심했어야지. 컨디션 조절도 공부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거늘.”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결국 몸상태가 나쁘면 제 실력을 낼 수가 없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법이다.

    “괘, 괜찮아. 이 정도는. 나는 엘프니까. 아직 감기는 아냐.”

    “아무리 엘프라고 해도…….”

     

    수인과 드워프가 대체적으로 더위에 강한 경향을 보이고, 엘프는 추위에 강한 성향을 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감기에 전혀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엘프가 감기에 아예 걸리지 않는 게 아니지 않느냐. 지금 들어가는 게 좋겠어.”

    “괜찮아. 난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고 싶으면 너나 들어가. 나는 몇 분 더 공부하다가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말한 헬레나는 금방 다시 공부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을 피하는 것 같기도 하다.

    더이상 귀찮게 방해하지 말라는 뜻인가.

     

    “흐음…….”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아이가 감기에 걸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들어가라니?

    그건 자신이 헬레나를 감기에 걸리게 하는 것과 똑같다.

     

    ‘어디보자…….’

     

    루크는 혹시 뭔가 덮어줄 만한 것이라도 없나 찾아보다가, 자신 역시 서클의 사용으로 충분히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몸이라 딱히 담요 같은 걸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그렇다고 대놓고 마법을 걸어 줄 수도 없다.

    아카데미는 현재 시험의 영향으로 허가되지 않은 마법사용에 평소보다 더 엄격한 상태라, 자칫하면 헬레나가 무슨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잠깐 생각해본 루크는 곧, 명안을 떠올렸다.

     

    ——

     

    몇 분 남지 않은 쉬는 시간, 헬레나는 마지막으로 공부에 집중하고 있었다.

    루크가 해준 설명은 꽤 도움이 되었다.

    잘 외워지지 않던 공식도 한번에 기억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뭐, 확실히 그 녀석은 유용하긴 해.’

     

    헬레나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고 마법식을 속으로 읊고 있을 때쯤.

    갑자기 배 근처에 뭔가 부드럽고 폭신폭신하면서 따듯한 뭔가가 느껴졌다.

     

    “……?”

     

    대체 뭐지 싶어서 시선을 내려서 확인해보니, 그건 느낌대로 폭신한 백금빛의 털뭉치였다.

    조금 만져보니, 정말로 폭신폭신하다. 마치 인형을 만지는 것 같달까.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게 자신의 배 위에 놓여져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이게 뭐지?

     

    헬레나가 궁금증을 담아 그 끝을 따라가보니, 그곳엔 루크가 앉아 있었다.

     

    그렇다.

    그건 무려, 루크의 꼬리였던 것이다.

     

    헬레나는 기겁하며 외쳤다.

     

    “뭐, 뭐야?! 갑자기!”

    “여자아이는 배가 따듯해야 한다지. 어때, 이제는 따듯하지 않느냐?”

    “그,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확실히, 엄청 따듯하긴 하지만……!

    마치 인형처럼 감촉도 부드럽고, 폭신한게 진짜 기분도 좋지만……!

     

    루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자신의 꼬리를 쓰다듬고 있는 헬레나의 반응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너무 사양하지 말거라. 나는 조금 만지는 거 정도로 뭐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그렇지만…….”

     

    ‘그,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루크는 다시 헬레나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역시 열이 있는 것 같구나, 너는 오늘 시험이 끝나면 양호실에 가 보는 게 좋겠어. 어떤가? 내가 데려다 줄 수도 있는데.”

    “아, 아냐 괜찮아……!”

     

    ———-

     

    그렇게, 루크가 교실에 도착한 것은 정말 아슬아슬한 시간이 되었을 때다.

     

    곧 새로운 시험이 시작하기 때문인지 시루드는 깨어있었다.

     

    루크는 시루드를 바라보다가 문득, 헬레나가 시루드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소년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헬레나 정도면 굉장히 좋은 짝이 되지 않겠는가?

    수영장에 초대한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이미 헬레나도 어느정도 마음이 있는 것 같았고, 둘 다 종족이 엘프이기도 하며, 소득수준도 대충 보기엔 비슷한 것 같았다.

    고집이 센 부분이 좀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날카롭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뭐, 뭐야, 날 왜 그렇게 빤히 봐? 나한테 또 뭐 할 말 있어?”

    “헬레나는 참 귀여운 아이인 것 같아. 그렇지 않느냐?”

    “……?”

     

    시루드는 갑작스런 루크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루드 : 뭐지? 헬레나는 내 여자라고 선언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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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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