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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황금 카니발의 선수 4명이 방금 8번 경기장인 ‘운동장’에서 보물상자를 열었습니다!”

       “가장 탈락률이 높은 경기장이 수영장이라면, 가장 힘겨운 경기장은 바로 이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죠.”

       “맞습니다. 특히, 화물 상자를 이용한 블록 쌓기는 기술뿐만 아니라 완력과 끈기 역시 상당히 요구하는 과제였는데 저 4명은 너무나 깔끔하게 해냈습니다!”

       “4명 모두 레카체프 출신다운 솜씨였습니다. 아, 레이나 선수도 트랙으로 나오고 있군요. 그녀는 홀로 떨어져서 활동했지만, 엘라 선수와의 대결을 직관한 사람이면 누구도 그녀에게 트로피를 쥘 자격이 없다고 말 못 할 겁니다!”

         

       노란색 체육복을 입은 선수 4명과 레이나가 트로피를 높이 든 채 트랙을 따라 돌았다. 그렇게 학교를 일주한 그들은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강당 안으로 들어섰다.

       황금 카니발 진영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동료들의 등을 마구 두드리며 그들을 축하해주었다. 객석에서 경기장의 상황을 살피고 선수들에게 전략을 전달했던 직원들은 그들이 탐색 중에 펼쳤던 묘기들에 대한 찬사를 아낌없이 늘어놓았다.

         

       특히, 아까 레이나와 엘라가 펼쳤던 대결은 참모팀의 지시를 전달하러 왔던 직원조차 돌아가는 것을 까먹고 지켜봤을 정도라고 극찬했다.

         

       “정말 대단하더군요! 레이나 씨가 그렇게 눈빛이 이글거리는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라이벌이라는 게 정말 중요하군요. 그렇게 불이 붙을 줄이야!”

       “마지막은 좀 아쉬웠지만, 그 정도면 명예 회복이 충분히 된 것 같군요.”

       “그래. 더는 프랭크 10이니 뭐니 떠드는 인간들이 없을 거야. 잘했어.”

         

       그들의 칭찬에 레이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자신이 엘라와 맞붙은 것은 딱히 팀을 위해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저 서커스단을 나가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지몬과 그녀의 거래를 모르는 단원들은 그녀가 지난 사건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그런 퍼포먼스를 했다고 여겼다.

         

       “죄송합니다. 괜히 제 욕심 때문에 탐색 팀의 다른 네 분께 폐를…….”

         

       레이나가 딱딱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자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은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들은 레이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싸늘한 태도 때문에 그녀도 제 아버지처럼 오만하고 차가운 성격을 가진 인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감정이 메마른 게 아니라 지나치게 감정표현을 억압하는 환경에서 자란 것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간에서 떠드는 고고한 ‘황금 천칭’의 이미지는 그녀의 아버지가 반강제로 만든 것에 불과했다. 그녀의 속마음은 성실하고 착했으며 순수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황금 카니발의 곡예사 중에는 지몬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레이나까지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17살짜리답지 않게 그녀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지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엘라를 꺾고 싶다는 뜻을 비쳤을 때,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기뻐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것 말고 그녀 스스로 뭔가를 욕심내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레이나가 자신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려는 것을 제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 미리 얘기를 다 했고 우리가 동의한 거잖아.”

       “그래그래. 오히려 우리는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학교에서 놀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기분 좋았는걸?”

       “삼촌하고 이모들은 그저 레이나 네가…….”

       “잠깐만요, 이모들이라뇨? 저는 레이나랑 10살 차이밖에 안 난다고요. 언니에 해당하죠. 선배들은 아저씨, 아줌마들이지만…….”

       “뭐? 아줌마?”

       “이게 은근슬쩍 나이를 줄이네. 13살 차이가 왜 10살 차이가 되냐? 30살이잖아. 너?”

       “한 자릿수는 원래 빼는 거예요.”

         

       레이나는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즉석에서 만담을 펼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면 아래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역시 황금 카니발의 곡예사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가 패악질을 부릴 때도 그들은 말없이 자신을 위로해주곤 했었다. 대놓고 감싸면 그가 더 집요하게 못살게 군다는 걸 알기에 직접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그들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부디 자신의 결정을 듣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때, 후원자 측과 인사를 마친 지몬이 황금색 망토를 휘적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봤다.

         

       “왜 마야 렌데린을 떨어트리지 않았지? 분명 기회가 있었을 텐데.”

         

       떠들썩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멋진 승부를 펼치고, 우승 트로피까지 쥐고 왔음에도 다짜고짜 질책하는 그에게 다들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이나는 원래 오자마자 그에게 서커스단을 나가겠다고 선포하려 했다. 그러나 막상 그와 눈빛을 마주하자 호흡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입술이 덜덜 떨렸다.

       그의 싸늘한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당장 그가 원하는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아버지.’

       ‘엘라가 트로피를 찾아내면, 아버지와 약속한 대로 황금 카니발에 머무를게요.’

       ‘아버지, 괴물 서커스에 가는 건 취소할 거예요.’

         

       온갖 변명이 그녀의 입속을 맴돌았다. 그것들은 분명 그녀의 진심이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심리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것이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그가 자신을 길들였던 방식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열리고 뭔가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한 가지 단어가 그녀의 목에 턱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그녀는 입을 꾹 닫고 말을 꿀꺽 삼켰다.

         

       레이나는 아까 원더스타인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멋대로 황금 카니발을 떠나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아버지는 반드시 복수하려 들 거예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감수할 수 있어요. 레이나 양을 위해서라면…….’

       ‘하지만 저……단장님이 별을 획득한 상태에서 이적하면, 곡예사로서 활동할 수 없어요. 제가 쓸모 있을까요?’

         

       그것은 레이나가 이때까지 가장 꺼내기 두려워했던 질문이었다.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도, 부녀 놀이 같은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어울려 주는 것도 그저 본선 진출을 위해 ‘곡예사 레이나’가 필요했기 때문 아닐까?

         

       질문과 대답 사이의 짧은 침묵은 레이나를 극도의 불안감에 빠트렸다. 그러나 곧이어 들린 그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그녀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물론이죠. 굳이 무대에 서지 않아도 좋아요. 음, 우리 단원들의 훈련을 지도해주는 건 어떨까요? 다들 레이나 양의 교육을 그리워하더라고요.’

       ‘그, 그럼…….’

       ‘네. 우리가 지든 이기든 상관없이 언제든 환영입니다.’

         

       레이나는 고개를 들었다.

       용기를 내. 단장님은 괜찮다고 하셨어.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지몬을 똑바로 바라봤다.

         

       “왜 마야를 공격 안 했냐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싸늘하고 도도했다.

       그녀는 지금만큼 완벽하게 황금 천칭의 캐릭터가 몸에 맞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 진심으로 상대를 경멸해야 하는 거였어.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지몬을 쏘아봤다. 우는 여자의 가면 덕에 자신의 표정이 읽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힘이 솟았다. 그녀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마야와는 동료가 될 거니까요.”

         

       그녀의 대답에 지몬이 눈살을 찌푸렸고, 주변에 있던 다른 단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레이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고 오직 지몬만 노려보며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저는 황금 카니발을 떠나서 괴물 서커스로 가겠어요.”

       “네가 감히…….”

         

       지몬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로서 그녀의 태도가 어떻게 이렇게 돌변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다른 단원들 앞에서 이적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단원들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식으로 암시를 걸어 놓았는데…….

         

       레이나는 그런 지몬의 마음을 읽은 듯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며 변명했다.

         

       “죄송해요. 여러분이 싫어서 떠나는 건 결코 아니에요. 저는…….”

         

       그러나 그녀가 뭐라 이유를 말하기도 전에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이해해.”

       “저 인간 지랄병을 우리가 몇 달을 봤니?”

       “괴물 서커스는 엘라가 있는 곳이지?”

       “역시 너도 레벨이 맞는 애와 있는 게 즐겁다는 거지?”

         

       단원들의 반응은 레이나가 걱정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그녀의 결의를 듣자마자 두팔 벌려 환영했다. 너무 반가워하는 것 같아서 오히려 섭섭할 지경이었다.

         

       아, 그래. 단원분들은 늘 내가 이러기를 바라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지몬이 마지막으로 걸어놓았던 암시도 깨져 버렸다. 레이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지몬을 바라봤다. 그는 황금 장식이 달린 지팡이를 손에 쥐고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방금 레이나 선수가 이적 선언을?”

       “하지만 별의 규칙에 따르면…….”

         

       우승 소감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은 뜻밖의 소식을 듣더니 앞다투어 달려 왔다.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은 레이나의 옷자락을 붙들려고 하는 그들을 제지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가. 어서 새 단장님에게 인사드려.”

       “그래. 나머지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이봐!”

         

       지몬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탈퇴 절차니, 후원자들께 인사니, 송별식이니 하는 핑계로 레이나를 좀 더 붙들고 있다가 다시 제재를 걸려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속셈은 이미 그와 1년 가까이 함께한 황금 카니발의 단원들은 훤히 꿰뚫고 있었다.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건 아니지만…….”

       “이 양반. 진짜 우리도 많이 참았소. 그만하쇼.”

       “그래. 지몬 군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크윽!”

         

       지금까지 중립을 지켜왔던 핵심 단원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자 지몬도 더는 억지를 피우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레이나는 단원들과 직원들에게, 그리고 멀리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원자 측에도 인사를 한 뒤,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곳에는 우몬, 트라이머리, 유라크네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레이나 누나, 정말 우리 쪽으로 오는 거예요?”

       “이 자식, 그저 예쁜 누나만 온다면 신나서.”

       “어쨌든 반갑다.”

       “이해가 안 가는군. 저런 일류 서커스단에서 나와서 우리에게 오다니.”

         

       트라이머리 중 둘째의 투덜거림에 유라크네가 이것 봐라는 식으로 그를 장난스레 흘겨봤다.

         

       “어, 레이나 양이 온다고 했을 때, 제일 반겼던 게 두네돌 씨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양쪽에 있는 다른 머리들도 장난기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어어, 잠시만. 밑에서 뭔가 느껴지는데?”

       “그래. 우리 몸 아래에서 뭔가 뜨거운 게 솟고 있어. 두네돌 가라앉히지 못하겠냐!”

         

       우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솟는데요?”

       “그건 말이지…….”

       “다, 닥쳐!”

         

       단원들과 인사를 나눈 레이나는 대기석 끄트머리에서 다른 선수들이 경기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원더스타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그녀가 황금 카니발을 나오는 데는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그녀를 생각해서 내린 조치였다.

         

       이 기회에 그녀 스스로 지몬의 속박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레이나는 그에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지몬과 맞서서 그의 암시와 세뇌를 깨버릴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괴물 서커스에 제가 들어가도 될까요?”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수고 많았습니다. 환영합니다, 레이나 양.”

         

       단원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기자들은 이쪽으로 다가오고 싶어 했으나, 아직 대회가 진행 중인 팀을 방해하는 것은 주최 측이 엄격하게 금했기에 감히 선을 넘지는 못했다.

         

       그래도 레이나는 혹시나 누가 들을까 두려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홀로 속삭였다.

         

       “고마워요, 아빠.”

         

       아마 단장님도 못 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녀는 원더스타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향해 입꼬리를 슬쩍 올리는 것을 보았다.

         

       헤헤.

       그녀는 가면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안 그랬으면 바보같이 히죽대는 얼굴을 모두에게 보이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의 미소는 또 자기가 하는 경기를 안 보고 있었다며 밴딕이 투덜거리며 들어올 때까지도 멈출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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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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