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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참으로 주님의 은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어찌 이 시간에, 이곳에 찾아오셨는지…!”

         

       토마스는 진성의 방문을 기뻐하는 듯 팔을 활짝 벌렸다.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있었고, 어린 양을 기뻐하는 목자의 기쁨이 있었으며, 경사 속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집 주인의 태도가 있었다.

         

       토마스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쁨에 진성 역시 미소로 회답해주었다.

         

       “길을 안내해주는 이가 있는데 어찌 오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토마스가 자신의 밝음을 주위에 발산하고, 따스하게 만들고, 기쁘게 만들고, 미소 짓게 만들며 확산하고, 그것을 반복하여 세상을 밝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진성 역시 햇살 같은 웃음을 띠며 그에게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고 있었다.

         

       박진성의 얼굴에는 순수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품는 순수함.

       어른들이 가지지 못한 때 묻지 않은 미소.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에서 나오는 듯한 하얀 웃음.

         

       진성은 어린아이가 행사에 참여하듯 수줍게, 하지만 무언가 기대를 품은 채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쥐고서.

         

       스으윽-

       통.

       투웅.

         

       진성의 손에는 밧줄이 들려 있었다.

         

       실에 구슬을 꿴 듯, 밧줄에 경단을 집어넣은 듯한 기묘한 밧줄이었다.

       밧줄의 중간중간에는 둥그런 무언가가 꿰인 채 그가 앞으로 나설 때마다 바닥에 통통 튀었고, 왠지 모를 음산함을 풍기고 있었다.

       게다가 튕기는 소리 말고도 무언가 기묘한 소음이라도 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투웅-

       통.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끌며 진성은 토마스의 앞에까지 도달하였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악수하자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악수에 응하지 않았다.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으며, 호의는 품고 있으되 약간의 질책의 시선을 담고 진성을 바라보았다.

         

       푸욱!

         

       토마스는 약지를 들어 상처 부위를 쑤시며 입을 열었다.

         

       “진성 박. 저는 사람과의 악수를 좋아합니다.”

       “그렇습니까?”

       “악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호를 말하는 것이고, 자기 손에 무기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고, 해를 끼칠 생각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가 손바닥을 맞대고 체온을 교감할 수도 있으며, 성스러운 흔적에서 비롯된 자국을 남김으로 축복을 줄 수도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행위겠습니까?”

         

       그는 손에서 천천히 피를 뽑아냈다.

         

       그 모습은 마치 물방울이 중력을 거스르며 하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떨어진 핏방울은 한 점으로 모이며 구슬 크기의 구체가 되었고, 그 구슬은 맹렬히 회전하며 원반의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넓고 얇은 원반의 형상이 되고, 중앙에 공간이 만들어지며 커다란 링이 되었다.

         

       토마스는 그 링을 손가락에 끼우고 휘휘 돌리기 시작했다.

         

       인도의 무인이 차크람(चक्रम्)을 사용하듯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것과의 악수는 항상 재앙을 부르기 마련이지요. 악령과의 악수는 영혼을 더럽히는 것이고, 사악한 악귀와의 악수는 육체의 오염을 뜻합니다. 부정한 것은 팔을 타고 올라가 그 부정을 옮기니 삿된 것이요, 시체와의 악수는 시체 입자에서 비롯된 병마를 옮기니 그 역시 삿된 것입니다.”

       “그렇겠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진성 박. 어찌 당신이 뻗은 손에서 시체 입자의 느낌이 나는지요?”

         

       토마스는 당장이라도 차크람을 날릴 것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신부님. 그 이유는 얼마 전 당신의 악수에서 피 냄새가 났던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진성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꾸해주었다.

         

       저번의 너와 같은 것이라고.

       네가 품었던 생각과 같고, 나 역시 그 이상은 아닐 뿐이라고.

         

       토마스는 그 당돌한 답변에 웃었다.

       흐릿한 안개 같은 미소였다.

         

       하지만 햇살 같은 미소보다는 환하지 않을지언정, 그 미소는 분명히 감정을 품고 있었다.

       선의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그렇다면 진성 박은 손님으로 여기에 온 것이겠군요.”

       “그렇습니까?”

       “악한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은 적이며, 번뇌를 품고 오는 것은 어린 양입니다. 그리고 선한 마음을 품고 오는 것은 반가운 손님이지요.”

         

       토마스는 피로 만든 차크람을 돌리는 것을 그대로 멈췄다.

       대신에 피를 다시 응축시켜 구슬의 형태로 만들고 그것을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조물주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들 그 안에 목동이 아닌 살인자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것은 삿된 것이 될 것이고, 지옥의 악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들 여리디여린 소년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손님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토마스는 구슬을 손가락으로 끼운 채 펼쳤다 쥐기를 반복하더니 구슬을 그대로 없애버렸다.

         

       그 모습은 마치 마술사가 팜(Palm)으로 물건을 숨기는 것처럼 보였다.

         

       “환영합니다. 저는 기쁨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당신을 기쁘게 손님으로 맞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성은 토마스의 그 말을 듣고 잔잔하게 웃었다.

         

       “제가 손님이라면 제가 가지고 온 것 역시 손님이겠지요?”

       “하하하. 그렇게 되겠군요. 손님이 데리고 왔으니 손님의 일행이고, 손님의 일행 역시 손님이니까요!”

         

       토마스는 진성의 말에 웃으며 그를 안내해주었다.

       정말로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손님이 데리고 온 손님은 이곳에 놓으시면 되겠습니다.”

         

       그는 진성을 이끌고 움직였다.

         

       진성이 끌고 온 것은 예배용 장의자에 있는 메모판 위에 올려놓게 했다.

       그리고 진성이 들고 온 것들이 줄을 지어서 가지런히 놓이게 되자 그를 끌고 윌리엄이 있는 의자까지 다가갔다.

         

       끼이익.

         

       그는 진성과 윌리엄이 인사를 하라는 듯 의자를 돌려서 서로 마주 보게 만들었다.

         

       “읍…!”

         

       윌리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이 장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못 한 사람’이 눈앞에 있자 혼란스러워했으며, 미치광이 싸이코 토마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그 사람이 자신을 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었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으로 진성과 마주 보았고, 그에게 간절히 눈빛을 보냈다.

         

       당장 이 밧줄을 풀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윌리엄의 소망에 응하지 않았다.

       밧줄을 풀지도 않았고, 그를 격려하지도 않았고,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지도 않았다.

       뻥 뚫린 구멍에서 울컥울컥 흘러나오는 핏방울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으며, 밧줄에 묶여있는 것을 보고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제가 과하게 접근하면 곤란하겠군요. 새하얀 도화지와 같으니, 작은 얼룩도 크게 보일 수가 있겠어요.”

       “하하하. 젊은데도 지식이 훌륭하군요. 게다가 배려까지 아주 세심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는 의자에 단단히 묶여있는 윌리엄의 모습이 마치 일상 속의 풍경이라도 된다는 듯 행동했다.

         

       “보자…. 괜찮은 포박술이군요. 주술이 가미가 되어있어요. 마녀사냥 당시에 쓰였던 것 같은데….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군요. 성공회에서 변형한 주술입니까?”

         

       아니, 진성에게 윌리엄은 정말로 일상 속의 풍경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상의 풍경이 확 바뀌어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윌리엄 역시 단지 그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그의 손발에 구멍이 뚫렸어도.

       그가 의자에 꽁꽁 묶여있더라도.

       그의 저항력이 확연하게 떨어져 있더라도.

       그의 몸이 순수해지고 순결해져 있더라도.

       티 없이 맑아 외부의 수작에 취약해진 신체가 되어있더라도.

         

       진성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보다는 윌리엄의 몸을 묶고 있는 주술이 더더욱 가치 있었다.

         

       “그렇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을 다스리고 있을 적 만들어진 주술이지요.”

       “엘리자베스 1세라…. 그렇다면 가톨릭 귀족과 교인들을 붙잡을 때 사용되었겠군요.”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신앙의 형제를 포박할 때 사용했던 비극적인 주술이지요.”

       “꽤 괜찮은 주술이기는 한데…. 비극적인 역사가 있으니 사용하지 않게 되었을 테고, 결국에는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겠군요.”

       “하하하, 어린 나이임에도 주술의 흐름에 대해 정통하시는군요. 맞습니다. 신앙의 형제들을 학살할 때 썼다는 이유로 그저 기록으로만 남은 채, 서고의 한구석에서 썩어가기만 했던 주술입니다.”

         

       진성은 윌리엄의 몸을 묶을 때 사용한 주술을 천천히 살펴보았고, 그 주술에 대해 평하였다. 그리고 토마스는 이러한 진성이 대견하다는 듯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읍…!”

         

       윌리엄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둘을 보며 분노를 터뜨렸다.

         

       “읍!”

         

       대화나 나누지 말고 이거나 풀어, 개자식들아—!!

         

       그는 속으로 욕을 하며 분노를 폭발시켰고, 자신을 묶고 있는 줄을 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거칠게 움직였다.

         

       ‘마녀사냥이고 신앙의 형제고 나발이고! 당장 이 밧줄이나 풀라고! 개자식들아!’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줄이 풀릴 일은 없었다.

         

       무인도 아닌 평범한 근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풀기에는 그의 몸을 묶고 있는 것은 너무나 견고했으니까.

       신체를 충분히 단련한 가톨릭 귀족조차도 벗어날 수 없었던 포박이며, 수많은 사람이 매달린 채 목이 부러질 때까지도 풀 수 없었던 결박이다.

         

       고작 체력 좋은 일반인 수준에 불과한 윌리엄이 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흥미롭군요.”

         

       게다가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윌리엄의 발악이 두 사람에게 그 어떤 관심도 끌지 못했다는 점이다.

         

       진성은 윌리엄이 뭔 짓을 하던, 얼마나 용을 쓰든 관심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은 오직 그의 몸에 적용된 주술에만 닿아 있었다.

         

       뻥 뚫린 윌리엄의 구멍을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했고, 그의 몸에 흐르는 순수와 순결한 느낌을 흥미롭게 바라보기도 했으며, 그의 몸을 묶고 있는 포박술에 대해 알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참으로 탐이 나는군요.”

       “배움의 자세가 훌륭하시군요. 진성 박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이 포박의 주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하하하. 환영합니다. 오래전부터 교회는 배움에 인색하지 아니하였지요. 기쁜 마음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둘은 윌리엄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둔 채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참으로 기묘하지만….

       그렇기에 더없이 주술사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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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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