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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269화. 심연 부수기 ( 2 )

       

       

       

       

       

       원정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선배님…께서…”

       

       “아, 아아…”

       

       자그마치 7만 명이 대악마의 수작질에 꼼짝 없이 당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자력으로 일어난 것은, 라이언하트뿐.

       

       그리고 그의 최후는…

       

       《…그 인간은, 라이언하트는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분투했다. 그야말로 위대한 영혼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조금은 담담하게, 

       어딘가 슬픈 듯 말하는 서리고룡이 문득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의 시신은 위대하신 분께서 손수 거두어 가셨다. 별에 휩싸여 그의 시신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지.》

       

       “아! 여섯 번째 신께서…”

       

       라이언하트 팔라딘의 시신을 신께서 거두어 가셨다니 조금은 가슴이 편해진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그의 시신을 묻으면 악마들이 먹어 치울 테니 화장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는데.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선배님이… 아, 아아…”

       

       유독 데모닉의 충격이 큰 듯했다.

       그럴 수밖에.

       

       라이언하트는 데모닉이 갓 팔라딘으로 임명됐을 때부터 팔라딘이었고,

       지금까지도 선배 팔라딘으로서 그를 이끌어 주던 든든한 선배였으니까.

       

       “아빠. 아빠? 내 말 들려요? 아빠!”

       

       “아… 케, 케니스…”

       

       “아빠. 아니, 데모닉! 정신 차려요. 우린 지금 이럴 시간이 없어요. 아빠! 정신 차려요!”

       

       케니스가 단호하게 외치며 데모닉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던 데모닉의 눈이 케니스의 황금색 눈동자를 마주 봤다.

       

       케니스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단단한 의지만이 가득하다.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해요. 라이언하트 팔라딘 님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가야 해요.”

       

       데모닉의 동공에 천천히 초점이 돌아왔다.

       

       “그래… 그래. 맞구나. 네 말이 맞아 케니스. 이럴 시간이 없어… 내가 잠시 추태를 보였구나. 미안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심연의 독무는 계속해서 그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다. 한정된 수량의 항마부를 아끼기 위해 사제들이 최대한 정화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심연과의 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기어이 대악마를 소멸시킨 한 인간을 위한 묵념의 시간은 주어졌다.

       

       “…모두 묵념하겠습니다. 최후의 최후까지, 한 치의 망설임과 부끄러움 없이 살아온 팔라딘. 라이언하트의 순교와 그의 의지를 기억하며.”

       

       “…”

       

       “…”

       

       《…》

       

       긍지 높은 드래곤마저 고개를 낮추며 그의 최후에 조의를 표했다. 

       

       한 팔라딘의 최후를 위한 묵념이 끝나고.

       

       콰악!

       

       거대한 묵빛 대검을 꺼내든 케니스가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이 넓게 펼쳐진 광야에서 유일하게 야트막한 산이 보이는 곳이다.

       

       “이제, 전진하겠습니다.”

       

       7만의 전사들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한 팔라딘의, 한 노인의 죽음을 그들의 가슴에 품고서.

       타락한 용왕에게 최후를 선사하기 위해서.

       

       

       

       *****

       

       

       

       인간의 몸으로 심연을 가로지른다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악마는 기본이었다. 느닷없이 땅에서 짐승의 아가리가 튀어나오는가 하면, 수시로 흔들리는 방향 감각과 온갖 환각과 환청이 겹쳐 보이기 일쑤였다 

       

       독무, 악마, 온갖 기괴한 지형지물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유달리 귀찮게 구는 것이 있었으니.

       

       촤자자작! 카캉-! 콰앙! 키에에엑!!

       

       날개 달린 악마들은 원정대의 주변을 까마귀처럼 빙빙 맴돌며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이스칼! 위! 저 새끼들 끌어내려!”

       

       여섯 개의 다리로 달려오는 악마들을 상대로 분투하던 프리가가 크게 외쳤다.

       그에 맞춰 이스칼이 방패를 두들기며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쾅쾅-!

       

       “여기다! 이 더러운 마물들아! 날 봐라! 나, 이스칼을 봐라!!”

       

       하늘을 날던 악마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이스칼의 방패를 향해 내리꽂혔다. 터터터텅! 텅 빈 대가리가 방패에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이스칼이 제일 성가신 것들을 잡아두는 사이, 나머지 전사들이 악마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손톱과 강철이 난무하며 피와 살점을 나누는 전장의 바람이 몰아쳤다.

       

       꽈릉! 콰과과광!! 꽈르르릉! 콰앙!!

       

       심연의 요사한 보랏빛 구름을 뚫고, 시퍼런 천둥이 내리쳤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설 정도로 어마어마한 벼락이다.

       

       “이, 이건ㅡ!”

       

       벼락이 머금고 있는 강대한 신성의 흔적.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신의 벼락이다! 여섯 번째 신의 지팡이가 심연에 임했다!”

       

       전사들의 사기가 금세 치솟았다. 그 외침을 시작으로 온갖 기적이 일어나 전사들을 휘감았다.

       

       꽈르르릉! 콰과광! 꽈앙! 콰릉!

       

       싯푸른 벼락이 연달아 내리치며 악마들을 하나하나 잿더미로 만들기 시작했고.

       

       사아아아아-.

       

       “사, 상처가…”

       

       “쿨럭… 우, 윽…?”

       

       원정대를 중심으로 거대한 황금빛 파문이 일어나며 다친 이와 죽어가는 이의 몸을 치유하였다. 

       심연에 내려지는 신의 기적이란, 마치 사막에서 피어나는 꽃과도 같은 것.

       

       전사들은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마주한 이처럼 뜨겁게 환호했다.

       

       꽈르르릉! 콰콰쾅!!

       

       무수하게 벼락이 내리치며 원정대의 주변을 호위했다. 멀리서 보았다면 새파란 기둥이 전사들의 주변을 둘러싸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키기기긱ㅡ! 끄에엑! 어, 어째서!!”

       

       “끄루으읍! ■! ■의 권능이다!! 크롸아아악!!”

       

       악마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스러져간다. 벼락이 지나간 자리에는 까맣게 탄 잿더미만이 남을 뿐.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비처럼 내리는 번개 속에서 비틀거리는 악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악마의 아가리에 검과 도끼를 꽂아 반으로 가르고, 번들거리는 안구를 찢고 터뜨리면서 얼마나 나아갔을까.

       

       “…잠시, 정지. 정지하겠습니다.”

       

       가장 선두에서 길잡이를 자처하던 케니스가 우뚝 멈췄다.

       목표로 하던 산이 이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왜 여기서 멈춰?”

       

       멍하니 산을 바라보는 케니스에게 프리가가 물었다. 대답도 없는 케니스의 표정이 점차 띡딱하게 굳어간다.

       

       “고, 공녀님… 저기…”

       

       케니스가 떨리는 손으로 산을 가리켰다. 뭐가 있나 싶어서 케니스의 손가락 끝을 따라 눈을 찌푸린 프리가. 

       이내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어어어ㅡ?”

       

       바보처럼 입을 크게 벌리더니 말을 더듬는 프리가.

       충격과 혼돈에 빠진 표정이다.

       

       “…프리가? 도대체 왜ㅡ”

       

       의아하게 여긴 이스칼도, 한스와 에스텔, 데모닉도,

       거대한 의문과 혼란에 빠져 멍하니 산을 바라보았다. 

       

       선두에 위치하여 누구보다 산이 잘 보였던 이들의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저, 저게 도대체 무슨, 아니… 뭐야…?”

       

       드넓은 광야의 끝에 위치한 거대한 산.

       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은 산이 아니었다.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 거대하여서 산이라고 생각했을 뿐.

       

       거리가 가까워진 지금, 

       산처럼 보였던 것의 진정한 모습을 어렴풋하게 볼 수 있었다.

       

       《…영감탱이.》

       

       서리고룡 이베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산처럼 거대하게 땅을 차지하고 누워있는 그것.

       

       땅에 자리 잡아 우뚝 솟은 모양새에 너무나도 당연히 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커다란 사슬을 제 몸에 칭칭 감은 용왕이었다.

       

       “야, 야 도마뱀… 이건 좀… 너무 크지 않냐?”

       

       이 정도로 크면 절망이나 두려움보다는 어이없다는 감정이 먼저 피어오른다.

       

       가만히 누워 있는 용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자연의 일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자연의 일부였다.

       용왕이 조금 움직이거나 몸을 뒤틀기만 해도 그들은 무력하게 쓸려가리라.

       

       《으음… 내가 알던 영감탱이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베르가 당혹스럽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영감탱이가 오래 살아서 몸이 좀 크기는 했지만, 이렇게 산처럼 커다란 모습은 아니었다.

       

       《아. 혹시 지금까지 계속 성장한 건가? 잠든 와중에도 계속?》

       

       이베르가 중얼거리는 걸 엿들은 에스텔이 황망한 말투로 되물었다.

       

       “…용은 계속 성장하는 거였어?”

       

       《우리가 괜히 신화시대의 지배자이자 지상의 조율자라고 불린 줄 아느냐?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한다. 용에게 살아온 시간이란 곧 힘이지. 숨만 쉬어도 강해지는 것이 바로 용이다.》

       

       어쩐지 어깨가 으쓱해진 이베르가 위풍당당하게 말했지만,

       원정대에게 이것처럼 곤란한 일은 없었다.

       

       “그, 그래서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아니, 죽일 수가 있는 거야? 죽기는 하는 건가?”

       

       이스칼의 말대로였다.

       

       산처럼 누워 커다란 사슬에 칭칭 감긴 용왕은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 거대한 산이었다.

       

       인간이 어찌 산과 대적하고 바다에 맞서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아니.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봐라.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군. 저 커다란 사슬에 묶인 것도 그렇고, 몸 곳곳이 심하게 썩어서 부패했어. 지금도 계속 부패하고 있군.”

       

       눈을 가늘게 뜬 데모닉이 차분하게 용왕의 상태를 분석했다.

       

       과연, 그의 말을 듣고서 차분하게 용왕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대한 위용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용왕의 상태는 처참했다.

       몸 곳곳은 썩어 문드러져 누렇게 변색된 뼈가 드러났고, 열두 개의 뿔 중에서 열 개가 부서진 상태였다.

       썩어서 파인 살점 사이로 무언가 꿈틀거리는 모습은 시체를 파먹는 구더기를 연상케 했다.

       

       살아있는 시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

       

       이베르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영감, 영감! 일어나라!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이 얼마나 추하고 같잖은 모습이냔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지, 왜 살아있는 것인지.

       죽지 못해 살아있는 모습은 도대체 무슨 꼴인지.

       

       …이런 추한 모습으로 살아있을 거라면

       도대체 왜 자신에게 죽여달라고 한 것인가.

       

       이베르의 외침이 들렸음일까.

       

       쿠구구구…

       

       천 년을 버텨온 바위처럼 굳건하게 닫혀있던 용왕의 눈이,

       서서히 움직이며 그 섬뜩하게 찢어진 동공을 보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산이, 산이 무너진다!”

       

       “다들 뒤로 물러서! 뒤로 가라고!”

       

       앞에 보이는 산이 용왕이라는 것을 모르는 후방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혼란을 진정시켜야 할 데모닉과 케니스, 그 외 전방의 인원들은 그저 멍하니 앞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꿀꺽.”

       

       이글이글 불타는 거대한 눈동자가 두 개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인간들이 아닌 그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감탱이.》

       

       쿠구구구-…

       

       용왕은 입도 움직이지 않고 천둥처럼 말했다.

       

       《아아ㅡ… 오랜만이구나. 애송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 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닷…!! 히에엑…!! 원래 눈치가 없고 열심히 나서는 사람은…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법입니다…!! 이는 이름을 까먹은 군인 중 누군가도 말했던 것…!! 저 랄까의 의견은 아닙니닷…!! 히엑…!! “형 왔다!!” 하고 외치면서 들이닥치면, 정말 무섭기는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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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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