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69

        젊고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은 이미 이곳을 떠났다.

        이곳에 남은 이들은, 변화를 감당할 수 없는 늙은 존재뿐.

       

        그나마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어린아이들은 남아 있었으나, 그들은 부모가 없기에 아직 야생에 내던져질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이들이 보호해 주려는 것이겠지.

       

        다만 아직 나에겐 궁금한 점이 있었다.

       

        “늙은 너희들만으로 어떻게 아직 생존하고 있었느냐?”

       

        인간은 ‘금속’을 이용해 자신을 지킬 ‘무기’를 만들어낸다.

        물론 돌이나 뼈를 사용해 무기를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다른 짐승에 비해 부족한 인간의 힘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제격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금속을 다룰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껏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행히, 밖의 동무들이 필요한 것들을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렇구나.”

       

        나의 시선이 영역 밖의 인간들에게 향했다.

        한국에서 파견된 것으로 보이는 무장한 인간들.

        단순히 경계의 의미로 병사들을 배치한 것이 아닌, 이들을 보호하고 지켜보는 역할도 맡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이 있다면, 그것을 지원해 주는 역할도 맡은 것으로 보였다.

       

        나의 시선이 밭에 기대어져 있는 ‘도구’로 향했다.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농사를 짓는 데 사용되는 도구들.

        아마 밖의 인간들이 전해준 도구들일 것이다.

       

        ‘역시 인간은 재미있어.’

       

        전생에 내가 인간이었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개인적으로도 인간은 흥미로운 존재였다.

        아니, 단순히 인간만이 아니었다.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무리 생활’을 하는 ‘지성체’는 나에게 흥미로운 종류였다.

       

        그렇기에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어쩌면 그것은 내 전생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것도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니까.

       

        “조금 구경하고 싶구나.”

       

        “모시겠습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촌장과 함께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았다.

       

        ‘마을이…… 맞겠지?’

       

        도시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마을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헷갈린다.

        그냥 ‘마을’이라고 하기로 했다.

       

        어쨌든 마을은 전형적인 인간의 마을이었다.

        인간은 느끼기 힘든, 인간 특유의 느낌이 잘 녹아든 마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마을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금속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문명을 꽃피우다니.’

       

        물론 바깥의 도움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의 시선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하지만 그 강도는 금속에 버금가는 도구를 바라보았다.

        진짜 금속에 비하면 효능은 적다고 하더라도, 금속의 대체재 역할을 훌륭히 완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것들은 어디까지나 이곳에 남은 이들이 ‘노인’이라는 것을 감안한 도움이다.

        뭐, 이곳 인간들의 습성을 생각해 본다면…… 이곳에 남은 이들이 청년들이라도 도움을 주었겠지만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의 모습은 나의 놀라움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훌륭한 무리다.”

       

        “……감사합니다.”

       

        나의 칭찬에 촌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모든 마을을 구경한 나는, 다시금 황금으로 새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새 위에 올라타기 전, 촌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하나만 더 물어보아도 되겠느냐?”

       

        “물론입니다.”

       

        나는 촌장, 그리고 그 뒤에서 긴장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북한’의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을 하나하나 확인하다, 촌장에게 물었다.

       

        “사정이 어떠했든, 나는 너희의 무리를 부수어 버린 존재다. 그런데 너희들 중에선, 나에게 분노한 이가 보이지 않는구나.”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궁금했던 점이었다.

       

        비록 내가 먼저 공격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나는 저들에게서 ‘금속’을 빼앗아 간 존재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바깥의 도움을 받았고, 금속을 대체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금속이 없는 삶은 인간에게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북한’을 찾기 전, 이들에게서 원망의 말을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찾은 이곳에선, 나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뿐.

        그리고 때때로 나에 대한 호감도 보였고 말이다.

       

        “그것이 궁금하셨군요.”

       

        나의 질문에, 촌장은 자기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촌장이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선 말씀드리기에 앞서,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용신님을 원망하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용신?”

       

        아무래도 ‘북한’의 인간들은 나를 ‘용신’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으음. ‘신’이라고 불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내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문지르며 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촌장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 달 전, 용신님께선 그 누구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게다가 적인 저희에게 계속해서 관용을 베푸셨지요.”

       

        그래.

        한 달 전에 ‘북한’과 싸울 때, 나는 그 어떤 인간도 죽이지 않은 채 싸웠다.

        그것은 내가 ‘인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고, 내 전생의 고향 차원에 왔다는 기쁨의 표현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나와 인간들 사이의 격차를 보여 줄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북한’의 우두머리들이 보인 추태에 분노해 버렸지만 말이다.

       

        “그것만으로 나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는단 말이냐?”

       

        “물론, 그것만은 아닙니다.”

       

        촌장은 다른 인간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 ‘인민공화국’은 이미 끝난 나라였습니다. 그것을 억지로 붙들고 있었을 뿐이지요.”

       

        도시 하나만을 남긴 채, 다른 영토를 전부 잃어버린 국가.

        경제는 고사하고 식량의 자급자족조차 불가능한 상태.

        외부의 도움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절망뿐인 곳.

        만약 S랭크 방어막 능력자인 ‘북한’의 수령이 자기 능력으로 주변 국가를 협박하고, 그것으로 자원 원조를 받지 못했다면 진작에 무너졌을 국가.

        그것이 바로 ‘북한’이라는 나라였다고…… 촌장은 설명했다.

       

        “그렇게 온 자원도, 대부분이 상류층에게만 향할 뿐이었습니다. 민간인인 저희들에겐 희망 따윈 없었지요.”

       

        억지로 국가의 틀을 유지한 채, 희망 없이 살아가던 이들.

        그런데 거기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용신님이 나타났지요.”

       

        “…….”

       

        그리고 나는 가까스로 유지되던 북한을 무너뜨렸다.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겐 내가 ‘파괴자’였겠으나…… 이들에게 나는 구속을 풀어 준 ‘해방자’였다.

       

        ‘때때로 보였던 나에 대한 호감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고개를 끄덕인 나는 그대로 황금으로 만든 새 위에 올라탔다.

        궁금증도 풀었으니, 이제는 이곳에서 떠날 때다.

        아마…… 내가 다시 이곳에 오는 일은 없겠지.

       

        “그럼 잘 있거라.”

       

        “들어가십시오.”

       

        촌장을 위시로, ‘북한’의 마지막 인간들이 나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펄럭!

       

        “흠…….”

       

        하나의 볼일은 끝났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나를 따라오기 위해 한국의 비행 물체가 날아올랐지만, 나는 그들에게 연락해 나를 쫓는 것을 그만두게 했다.

        지금은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얀 서리가 다시금 나의 아바타에 내려앉는다.

        나의 시선이, 저 아래의 지상을 훑는다.

        그리고…….

       

        지이이이이잉!

       

        “흠.”

       

        내가 있는 지역을 포함한 넓은 지역에 이능으로 만들어진 벽이 펼쳐졌다.

        내 힘으로 파괴할 수 없는 벽은 아니었으나, 나는 황금으로 만들어낸 새를 조종해 지상으로 내려갔다.

        어차피 나 역시 이 벽을 만들어낸 존재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지상에 내려오자, 내 앞에 한 ‘인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적에 가까운 옷을 입었고, 덥수룩하게 난 수염과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

        야위긴 했으나, 분명 본 적이 있는 인간이었다.

        특히나, 인간치고는 튼튼한 벽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아선…….

       

        “북한의 전 우두머리인가?”

       

        “으, 으아아아아아-!!”

       

        나를 앞에 둔 북한의 전 우두머리가 분노의 감정이 담긴 포효를 내뱉었다.

        약화된 내 천룡안으로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저 인간은 나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저 인간을 잡지 못했다고 했던가?’

       

        전에 헌터 협회의 인간과 대화를 나눌 때, 지나가듯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번에 잠시 외출해서 북한을 방문했던 것이었으니까.

       

        그때 그 헌터 협회의 인간은, 북한의 유일한 S랭크 방어막 능력자였던 북한의 전 우두머리가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을 보아하니, 아직도 다른 인간들에게 잡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금속을 사용할 수 없는 몸으로, 용케 살아 있었군.’

       

        저 ‘인간’에게선 아직도 내 ‘용언’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자신을 ‘북한’이라는 국가의 구성원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남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북한의 인간’들과는 달리, 저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저 몰골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이겠지.

       

        “죽여 버리갓어! 죽어라 에미나이!”

       

        콰드드득!

       

        나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던 인간이 내 주위로 방어막을 전개한다.

        분노에 빠진 모습과는 달리, 그가 전개한 방어막은 조금의 틈도 없이 내 주위를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방어막이 나의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죽어라! 죽어!”

       

        “…….”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그대로 꼼짝없이 압착되어 죽어 버렸을 정도의 힘이었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생물’이었다면 말이다.

       

        ‘겨우 이 정도인가?’

       

        공간을 구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단한 막을 만들어서 조이는 것 정도로 나에게 덤볐는가?

        겨우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북한의 영역에서부터 나에게 살기를 내비친 것이었는가?

        이따위 실력으로…….

       

        “후우~! 괜히 왔군.”

       

        쩌저적!

       

        그래도 아바타의 몸에 유의미한 타격 정도는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건만, 상대의 실력은 내 상상보다 못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한 번 적대한 ‘약자’에겐 자비롭지 못한 드래곤이다.

       

        “어어어? 이, 이게…… 이럴 리가 없는…….”

       

        슈르르륵!

       

        나의 의지에 따라 땅속에서 솟아난 금속이 인간의 몸을 휘감는다.

        마치 그가 나의 몸을 빈틈없이 방어막으로 감싼 것처럼, 이번엔 내가 금속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로,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약자는, 복수할 권리도 없는 법이다.”

       

        “읍! 읍! 읍!”

       

        “사라져라.”

       

        끼기기기긱!

       

        섬뜩한 소리가 숲속에서 울려 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놀랍게도, 이것이 이쪽 차원에서 주인공이 저지른 첫 살인입니다.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