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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2기생 마학과 차석 벨 반데스크만.

   크라슈를 앞에 둔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느끼고 있으나.

   그는 감히 거기에 관한 불합리함을 설파하기 위해 입술을 열 수가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크라슈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계속해서 옥죄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헬른 아카데미를 세운 총장 듀란달 님이 자주 하시는 말이 있지.”

     

   크라슈는 벨의 앞에서 목을 두둑하니 풀며 언제든 싸울 의지를 보였다.

     

   “의견을 말하고 싶다면 무력과 힘으로 증명하라고 말이야.”

     

   힘이란 곧 법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하는 이는 그만한 힘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세상이었다.

     

   “증명할 거냐.”

     

   크라슈는 기세를 거둠과 동시에 벨에게 물었다.

   불합리함을 뒤엎을 힘을 네가 보일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벨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졌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자존감과는 별개로 반드시 패배할 것이 분명한 싸움을 걸만한 용기도 그에게는 없었다.

     

   벨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이들이 하나같이 흠칫하며 시선을 피했다.

     

   다들 괜히 불똥이 튀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하하, 역시 이런 패기스러움! 크라슈 님다우시네요!”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돌프론이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이놈에게는 뭘 하든 좋게 보이는 건가.

     

   웅성웅성-

     

   그때 마침,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3기생 아이들이 오고 있었다.

     

   그중 한 명.

   크라슈와 바로 눈이 마주친 인물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음꽃이 피어오른 이는 다름 아닌 비앙카였다.

     

   볼 때마다 저렇게나 웃음을 짓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어느새 비앙카의 웃는 얼굴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동시에 그 뒤에 한 명의 사람이 더 보였다.

     

   은발의 소년.

   마황의 아들로서 라헬른 아카데미에 입학한 진짜 마황, 테라시우스 제블람.

     

   그는 무심한 눈으로 주변을 천천히 훑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그의 눈동자가 크라슈에게 닿았다.

   마주친 눈동자와 함께 그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내 ‘아’ 하고 가볍게 소리를 내었다.

     

   그 순간 그의 입꼬리가 아주 짧게 올라갔다가 사라졌다.

     

   다른 이들이라면 눈치도 채지 못할 만큼 잠깐이었으나.

   이미 마황의 정체를 알고, 그를 겪어보기까지 했던 크라슈는 오싹한 감정을 느꼈다.

     

   ‘저 인간.’

     

   테라시우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크라슈는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테라시우스의 관심사 중 크라슈 본인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신경을 건드릴만한 건 죄다 끌어 놨었으니.’

     

   하긴, 진작 관심을 가져도 이상할 건 없었다.

     

   ‘진짜 목적은 따로 있는 거 같기는 한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차차 알아봐야겠지.

     

   ‘어찌 되었든.’

     

   저쪽이 관심 가져준다면 오히려 이용할 뿐이다.

     

   ‘눈치 싸움.’

     

   시작이다.

     

     

   * * *

     

     

   크라슈가 마학과 수석을 데려가겠다고 선언한 뒤.

   학생단 대표 중 어느 사람도 감히 섣부른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

     

   1기생조차도 어쩔 도리가 없는 인물이 바로 크라슈다.

   2기생 중에서 크라슈와 대적할 수 있는 이는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그러므로 크라슈는 생각보다 더 손쉽게 마황을 데려올 수 있었다.

     

   “테마린 제블람, 비앙카 하덴하르츠.”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름은 테마린 제블람.

     

   그리고 마학과 수석을 데려간다 선언한 뒤.

   자연스럽게 무학과 수석인 비앙카를 노리는 이가 없어졌다.

     

   그러니 크라슈는 두 사람을 별다른 이의 없이 데리고 올 수 있었다.

     

   크라슈는 수석 두 명을 받아왔으니 나머지 학생들은 기꺼이 다른 단들에게 넘겨주었다.

   지금은 당장 인재에 욕심낼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크라슈는 동경 섞인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학생들을 보았다.

     

   사자단은 오직 수석인 두 명만 뽑아갔다.

     

   즉, 실력 있는 자가 아니면 데려가지도 않겠다는 뜻을 3기생들에게 보여준 거였다.

     

   그것은 아이들의 동경과 상승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마치, 사자단이 최종 관문인 것처럼.

   자신들도 강해져서 사자단에 들어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하여튼 정치질은 일가견 있구나. ]

     

   확실히 경험이 부족한 또래 학생들은 섣불리 할 수 없는 방식이긴 했다.

     

   “둘 다 가자.”

     

   크라슈가 두 사람에게 눈짓하자 두 사람이 그대로 크라슈의 뒤를 따랐다.

     

   우선, 둘 다 사자단의 임시 단원이 된 만큼 사자단에 들러 임시 등록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걷는 내내 크라슈의 신경은 전부 마황에게 쏠려 있었다.

     

   무슨 목적인지 모를 그는 무표정하게 복도의 창문만을 보고 있었으나 크라슈는 그의 눈동자가 무언가를 찾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뭘 찾으러 온 거지.’

     

   찝찝한 기분과 함께 크라슈가 사자단 앞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크라슈는 문 앞에 몰린 기척을 느끼곤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이윽고, 문을 열어젖히자 문 앞에 몰려 있던 이들이 서둘러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다들 시선은 이쪽으로 향해 있었다.

   크라슈가 가볍게 몸을 옆으로 비키자 이윽고, 모두의 눈이 비앙카에게 닿았다.

     

   여러 감정이 담긴 눈동자들을 받은 비앙카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이내 크라슈의 팔을 당기더니 자연스럽게 안겼다.

     

   인사라도 시킬 속셈으로 비켜줬더니.

     

   비앙카의 행동을 전혀 예상 못 했던 크라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앙카는 평소보다 더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드러냈다.

     

   “크라슈 님의 약혼자, 비앙카 하덴하르츠예요.”

     

   모두가 굳은 얼굴로 비앙카를 보고 있자 비앙카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 소개말은 모두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푸흣, 흐흐흐흣.”

     

   딱 한 명, 시즐리만큼은 입을 애써 가린 채 웃음을 참고 있었다.

   저 여유로움만큼은 이 중에서 가장 타고나지 않을까 싶었다.

     

   “오랜만이야. 비앙카 양.”

     

   그때, 아슬란이 분위기를 환기 활 겸 비앙카에게 인사를 건넸다.

   비앙카와는 면식이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본 적은 있는 아슬란이었다.

     

   그의 인사를 받은 비앙카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네, 오랜만이에요. 아슬란 님.”

   “엄청 예뻐졌네. 크라슈가 좋아하겠어.”

     

   아슬란은 비앙카에게 덕담해두었다.

     

   “……저도 오랜만이에요. 비앙카 씨.”

     

   거기에 아스트리아도 비앙카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비앙카가 끌어안고 있는 크라슈의 팔을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요.”

     

   비앙카는 그 시선에 크라슈를 감싼 팔에 더 힘을 줄 뿐이었다.

   그러자 아스트리아는 눈썹을 꿈틀대더니 이내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니까 애정 행각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스트리아의 눈에서 질투가 뚝뚝 흘렀다.

     

   “애정 행각 아니에요.”

   “하, 그럼 뭔가요?”

   “일상생활이에요.”

   “……일상생활이라면 매일 그러고 다닌다는 건가요?”

   “네, 약혼자니까요.”

     

   반면에 비앙카의 눈동자에서는 얼음 같은 한기가 뚝뚝 흘렀다.

     

   “한 명은 태양에 다른 한 명은 달이로구나.”

     

   시즐리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와, 와아, 왜인지 교실이 뜨거워진 거 같지 않나요? 환기라도 시킬까요?”

     

   여기서 꼈다간 몰매 맞을 걸 눈치챈 카란디스가 손부채질하며 딴청을 피웠다.

     

   “…….”

     

   하링은 옆에서 달콤한 사탕을 보는 어린애처럼 부럽게 크라슈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슬란이 슬쩍 크라슈 쪽을 보았다.

   그리고 곧 그는 터질 게 터지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의자를 뒤로 빼었다.

     

   “다 그쯤 해.”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크라슈의 낮은 목소리가 조용히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뭘…….”

     

   순간 욱한 아스트리아가 크라슈를 보았다가 멈칫하였다.

     

   지금까지 크라슈는 나름대로 그들의 어리광을 받아 주었다.

     

   딱히 서로 사이가 틀어지기를 바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친해지는 게 좋았으니까.

     

   그게 자신을 놀리는 방향으로라도 서로 돈독해진다면.

   크라슈는 어렵지 않게 어울려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슬슬 도가 지나치고 있었다.

     

   비앙카와 아스트리아 사이에 있는 냉랭함과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다른 이들의 눈치 보는 행동.

   이건, 명백히 가만히 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자기 사람한테는 화낸 적 없던 크라슈의 눈에 처음으로 노기가 서렸다.

     

   그러한 크라슈의 화를 눈치챈 아스트리아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자신도 크라슈가 받아 주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 그의 입장을 생각 못 했다.

     

   크라슈는 오늘 자신의 약혼자인 비앙카를 모두에게 소개하기 위해 왔다.

     

   그런 비앙카를 환영해 주지는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분란을 만들었으니.

     

   당연히 그가 화를 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비앙카, 오늘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함께 지내게 될 동료이자 친구야. 그런 태도 취하지 마.”

     

   크라슈가 제일 먼저 다그친 건 비앙카였다.

   비앙카의 마음도 모르지 않지만, 이번 자리는 그녀가 먼저 도발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그러니 크라슈가 혼내자 비앙카는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네.”

     

   이러나저러나 말은 잘 듣는 그녀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겠지.

     

   “아스트리아.”

   “아, 응, 응!”

     

   크라슈가 부르자 아스트리아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라슈가 화난 모습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이 딱 또래 소녀다운 모습이었다.

     

   “난 네가 이렇게 속 좁게 행동하는 녀석이 아니란 거 알아. 넌 내가 아는 녀석 중 가장 아량 넓은 녀석이잖아. 너보다 한 살 어린 애한테 트집 잡는 성격도 아니란 거 알고.”

     

   그 말을 들은 아스트리아는 미안한 듯이 눈을 아래로 향했다.

   그녀도 이성보다 마음에 앞서 저지른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잘못했어. 비앙카 씨한테도 잘못했어.”

   

   

   

   

     

   그녀가 순순히 사과하자 크라슈의 얼굴은 조금 풀렸다.

     

   “그리고 하링.”

     

   크라슈의 부름에 하링이 고양이처럼 반응했다.

     

   “최근에 내 앞에서 너무 굳어 있어. 나를 신경 써주는 건 고맙지만 네가 불편하면 안 되잖냐. 너답게 해.”

     

   크라슈가 자신을 그리 생각해줄 줄은 몰랐던 하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라슈의 말대로 하링은 최근 자신의 마음을 애써 누르고자 노력하며 크라슈에게 크게 다가가지 못했다.

     

   다가가기만 해도 자신의 마음이 자꾸만 넘쳐 버리니.

   차라리 크라슈를 한 발짝 멀어진 곳에서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크라슈와 하링의 사이는 꽤나 서먹한 상태였다.

     

   그 부분을 크라슈가 직접 언급하자 하링은 크라슈가 자신을 생각해준 마음에 곧 천천히 미소 지었다.

     

   “……응.”

     

   크라슈는 고개를 돌리다가 카란디스와 마주쳤다.

   그녀는 자신에게도 뭔가 말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보다 눈치 빠른 그녀에게 할 말은 없었다.

     

   “어, 저, 저만 왜 아무것도 없나요!”

     

   카란디스가 울상을 지으며 시위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시즐리, 너도 적당히 해.”

   “음, 그러마.”

     

   시즐리는 괜히 불붙이는 장난은 이쯤 하겠다며 양손을 들어 보였다.

     

   크라슈는 마지막으로 리리나 쪽에 시선이 닿았다.

   그녀는 크라슈와 눈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름대로 눈치 챙기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이걸로 정리를 마친 크라슈는 한차례 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한 번쯤 정리가 필요했던 일.

   이참에 했으니 다행이다.

     

   “찍찍.”

     

   주머니 안에 있던 쥐 하나가 찍찍거리긴 했는데.

   크라슈는 이쪽은 무시하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거기에는 지금 상황을 꽤나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던 마황이 있었다.

     

   “……그리고 이쪽은 3기생 마학과 수석, 테마린 제블람.”

     

   그에게 대체 어떤 첫인상이 박혔을까.

   크라슈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소개할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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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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