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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69

    <269 – 세력화>

     

    “덕분에 여러 번 목숨을 건졌군.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 오크노디. 그리고 에이프릴. 당신도.”

     

    안데르센은 굳게 결의를 다지며 헤어졌다.

    오늘, 그는 수많은 수치심을 느꼈다.

    채집에서는 순간의 방심으로 몬스터에게 역으로 착정을 당할 뻔했다.

    외부경계를 소홀히 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휴학생의 접근을 더 빨리 깨닫지 못했다.

    수레에서 들키지 않고 에이프릴의 끼인 꼬리를 꺼낼 재주도 부족했다.

    만델라 선배의 습격에서는 살아남기도 급급했다.

     

    ‘갈 길이 멀었어.’

     

    이 정도면 됐다고, 어려운 강의에 치여 지내는 것만 해도 학년평균 이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그런 어설픈 마음가짐이 근본부터 뜯어고쳐졌다.

     

    ‘내 힘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구해낼 수 없다면 무언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거야.’

     

    아이의 도움을, 자신보다 약한 여자의 도움을.

    졸업 후에는 가문의 도움을.

    서부귀족연합의 도움을.

    그런 식으로 수많은 도움과 빚을 지게 된다.

    빚이 많을수록 개인의 자유는 없다.

    원치 않는 관계와 원치 않은 시간소모를 쌓아올리며 점점 인생을 좀먹히게 된다.

     

    ‘강해지겠어. 몸도 마음도.’

     

    안데르센 대공자의 파워 업 이벤트는 <대성공> 수준으로 그의 열의에 불을 지폈다.

     

     

    * *

     

     

    각오가 달라지자 주변도 다르게 보인다.

    안데르센의 눈에는 학생들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힘들 때 서로 도울 건 가까운 사이밖에 없어. 용사가 어떻게 해줄 거라는 기대는 꿈 깨.”

    “황녀님도 마찬가지야. 물론 황녀님은 아랫사람을 쉽게 버리지 않는 상냥한 분이지만 한 팀이 되어서 혜택을 볼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어.”

    “결국 실질적으로 도울 건 비슷한 수준의 동기들밖에 없다는 거야.”

     

    우선 부쩍 늘어난 <5인1조> 연합들.

    상급반에서는 드래곤 교장 때문에 피치 못하게 탄생한 문화를 보고 배운 하급반 학생들이 5인 단위로 뭉치며 힘을 합쳤다.

     

    “안데르센 공자님.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좋습니다. 재료를 분담해서 채집해서 강의에 필요한 재료를 다른 학생에게서 빼앗지 않아도 됩니다. 역으로 숫자가 갖추어져 있으니 빼앗길 가능성도 적고요.”

     

    서귀연의 귀족자제들도 그 실효성을 인정할 만큼 5인1조는 기본으로 정착되었다.

     

    “자자, 채집이라고 해도 결국 시간이 드는 건 마찬가지잖아. 암흑상회에서 포인트 주고 사가는 편이 수련과 공부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서 강의에서 보너스 포인트 받고 포인트를 더 버는 지름길이라고.”

    “반대로 어쩌다보니 예정보다 많이 캔 재료를 포인트 주고 살 수 있는 곳은 암흑상회밖에 없다고? 자기가 직접 발품 들여가며 팔기엔 시간이 아깝잖아.”

     

    재료의 매입 및 매출을 맡아주는 암흑상회의 영향력과 상회를 이용하는 고객들, 늘어나는 상회의 운영을 도울 하급반 학생들도 그 수가 늘어났다.

    지젤과 이사벨, 손오천, 도로시, 록펠이라는 상급반 5인조가 포진한 암흑상회 세력은 1학년 내에서 사실상 최대 규모의 세력으로 거듭 났다.

     

    “5인 1조가 어쨌다는 거냐. 우리 서귀연도 그 이상을 꾀해야 한다.”

    “혹시 생각해두신 바가 있습니까?”

    “암흑상회처럼 우리도 세력을 굳히고 영향력을 늘릴 작정이다.”

    “오오!”

    “멋지십니다, 대공자님!”

    “구체적인 대안은 있는 겁니까?”

     

    순순히 감탄만 하는 학생들과 달리, 서귀연의 4인자인 옐친 브라우니는 오만하고 도도한 눈으로 자신의 넥타이를 고쳐 메며 현 1학년 구도를 되짚었다.

     

    “암흑상회가 아니라도 세력화를 이룬 1학년들은 많습니다. 최근 <펫계약>이라는 기묘한 계약서로 추종자를 늘려나가는 <카멜라 사단> 25인. 용사가 뒤를 받쳐줄 세력의 필요를 느끼고 양성하는 <용사친위대> 30인. 귀찮게 머릿수가 많아진 잔챙이들을 다같이 털겠다며 결성된 <지고쿠 해적단> 15인. 다들 분명한 목표나 결속의 수단을 지니고 있습니다.”

     

    <카멜라 사단>은 계약서에 의한 강제충성을.

    <용사친위대>는 용사에게 수혜를 얻겠다는 흑심을.

    <지고쿠 해적단>은 재료도 포인트도 날로 먹겠다는 못된 심보를.

     

    “저희 서귀연은 냉정히 말해서 서부귀족들의 친목회일 뿐, 그마저도 아카디아 공녀의 실각 이후로 세력을 이탈한 이들도 꽤 되지 않습니까?”

     

    본래 15인 규모였던 서귀연도 어느덧 그 숫자가 반 토막인 8명으로 줄었다.

     

    “뭐라는 거야, 8명 중에 4위인 녀석이.”

    “4위면 지 실력도 반 토막이잖아.”

     

    아카디아를 대신해서 서열 2위와 3위를 대신 차지한 남학생들의 타박에 옐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다른 인싸귀족들이라고 몰라서 팩트를 되짚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사기가 떨어지니까 불필요한 팩트는 잠시 접어두고 친목을 다지고 있었을 뿐이다.

    즉, 옐친은 오만하지만 눈치가 없는 아싸였다.

    그래도 안데르센 대공자는 옐친을 감쌌다.

     

    “너무 그러지 마라. 옐친의 말도 맞다. 모두가 불편해서 언급하길 꺼려했지만 우리 서귀연은 학기 초에 비해 세력이 크게 줄었지. 하지만 손실만이 있던 건 아니다.”

     

    이 여덟 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아카디아를 따르던 수십 명의 추종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따르던 수십 명의 추종자가 모두 떨어져나가도 상관없을 강력한 강점.

     

    “우리가 듣는 강의는 1학년 중에서 가장 어려운 강의들뿐이라는 사실이다.”

     

    본의 아닌 지옥훈련으로 강의 도중에 다치지 않기 위해서 단련에 매진한 8인의 정예들.

    그들의 결속은 기존 서귀연의 결속보다도 훨씬 강력해졌다.

     

    “서귀연의 새로운 모토는 이미 정해졌다. 단련이다. 단련하지 않으면 강의를 버틸 수 없다. 1학기가 아닌 2학기여도, 1학년이 아닌 2학년이어도 같겠지.”

    “그럼 저희는 단련을 중시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생각입니까?”

     

    옐친의 물음에 안데르센은 긍정했다.

     

    “그럴 작정이다. 덤으로 일정기간의 단련을 끝마치면 우리의 강함을 검증하면서 사기도 북돋을 예정이다.”

    “매점에서 과자파티라도 벌이는 겁니까?”

    “1포인트짜리 젤리 맛있더라.”

    “바보냐? 그거 슬라임 잡으면 나오는 젤리잖아.”

    “으엑.”

    “아무리 평민과 함께 다니는 아카데미라고 해도 너무 서민친화적인 식습관이군. 같은 서귀연의 일원으로서 귀족의 체통은 지켜라.”

     

    옐친의 구박에 젤리를 먹은 남학생이 시무룩해졌다.

    안데르센은 이번에는 옐친을 저지했다.

     

    “아니, 그런 허식은 필요없다.”

    “대공자님…? 누구보다 품위를 중시하던 대공자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품위란 힘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지금껏 귀족가의 위세를 빌려 그것을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며 지냈다. 하지만 실상은 널리고 널린 1학년일 뿐이다.”

    “…!”

    “1학년이 포인트를 아끼기 위해 젤리를 먹는 것이 무어가 나쁘냐.”

    “그냥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 궁금했을 뿐인데…”

     

    젤리를 먹던 남학생마저 당황하며 중얼거리자 안데르센은 그조차도 입에 담았다.

     

    “현실을 보아라. 너희가 말하는 그 ‘서민’들과 우리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대운동회에서 본 1학년과 2학년의 차이, 1학년과 3학년의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미미한 수준이다.”

     

    옐친과 젤리먹보, 다른 학생들도 그제야 눈빛이 달라졌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2학년이 되고 3학년이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 기프트 아카데미는 비정하다. 자격이 없는 자는 진급할 수 없다. 진급에 실패하고 졸업에 실패하면 그것이야말로 귀족의 수치요, 체면이 무너지는 일이 아닌가?”

    “대공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니 정했다. 우리는 단련을 중시하기에 재료를 채집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 부족한 재료는 타인에게서 얻어야 한다. 하지만 포인트를 주고 사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진급에 필요한 포인트가 미달되는 사태에 이를 수 있다.”

     

    옐친이 내키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설마 우리도 해적질을 하자는 겁니까?”

    “아니. 우리는 자경단의 역할을 수행한다.”

    “자경단…?”

    “지고쿠해적단 외에도 재료를 강탈하며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을 무력으로 저지하고 수고비로 본래 빼앗길 예정이었던 상품의 반을 챙긴다.”

    “…그렇게나 많이 대가를 챙기면 도움을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이들도 나타날 겁니다.”

    “상관없다.”

    “…진심이십니까, 대공자님?”

     

    안데르센은 보았다.

    힘이 부족한 휴학생들이 얼마나 비참한 소리를 내며 뒤에서 얻어터졌는지.

    자신은 또 얼마나 필사적으로 살아남기에 급급했는지.

    그런 수치와 굴욕에 비하면 절반의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들 깨달을 것이다.

    반이나 남겨주는 것조차도 선량한 편이라고.

     

    “장차 이 절반의 ‘감사비’가 우리 서귀연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하는 지원자들을 늘릴 힘이 되겠지. 그러니 노력해라. 절반을 가져가도 누구도 불만을 표할 수 없는 힘을 갖출 수 있도록.”

     

    옐친과 서귀연 귀족들은 그것으로 납득했지만 안데르센은 내심 이조차도 부족하다며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가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이유는 <재단의 장학생>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우리조차도 이런 수익모델을 만들고 힘을 갖추기 시작했다. 고학년과도 결속을 맺고 있는 오크노디는 지금쯤 얼마나 대단한 구조를 갖추었을까?’

     

    그들과 힘으로 충돌한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아직은 우리가 밀릴 것이다.

    그러니 민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교내에서 청소메이드를 보거든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공손하게 대해라.”

    “고작 메이드한테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까?”

    “불만이라는 건가?”

    “아, 아닙니다. 그런 무서운 표정은 짓지 말아주십시오… 무섭습니다, 대공자님.”

    “유의하리라 믿겠다.”

     

    오크노디에게 밀리지 않는 세력은 물론이고 에이프릴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세력을 만들자.

     

     

    * *

     

     

    안데르센이 조직의 기강을 다지는 사이, 오크노디는 에이프릴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오크노디 님도 슬슬 자신만의 세력을 이끄는 것이 어떠십니까.”

    “에에. 귀찮은데요.”

    “다른 1학년들은 지난 대운동회를 기점으로 성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빠르게 뭉치고 있습니다. 오크노디 님도 언제까지고 혼자 다니면서 지젤 님이나 아카디아 님, 주변 분들을 찾아다니며 의지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분들이 계시지 않으면 시간도 동선도 손실이 막대할 겁니다.”

    “아항. 귀찮은 일을 대신해줄 심부름꾼들을 모으자는 말이죠?”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그럼 마침 있네요. 제 맘대로 부려도 뭐라고 말 못할 심부름꾼들이.”

     

    오크노디가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팔랑팔랑 흔들었다.

    종이에는 <재단 장학생 명단>이 적혀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흑막노디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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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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