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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한시우가 나를 데려간 곳은 세트장 밖 인적이 없는 구석이었다.

         

       갑자기 그가 나를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나아아 심사위원의 한시우는 차갑고 쌀쌀한 이미지가 강했기에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혹여 내가 실수한 게 있는 건….’

         

       이윽고 한시우는 나를 구석에 세우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예린 양을 쭉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앞으로 저와 함께할 생각 없으십니까?”

         

       “…예?”

         

       이 새끼 지금 뭐라냐…?

         

       한시우가 내게 한 말은 상당히 익숙한 대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 예린아-! 지금껏 항상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말해야 될 것 같아…! 나랑 사귀자!’

         

       내가 하예린으로 태어난 후로 남자들에게 많이 듣던 고백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 미친 새끼. 나 아직 미성년자인데…!’

         

       연예인 중에 변태가 많다더니 이게 그런 경우인가.

         

       나랑 한시우의 나이 차이를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었다.

         

       이에 내가 벌레 보듯 혐오스런 표정을 지으니….

         

       “아,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닙니다!”

         

       한시우가 얼굴을 붉히며 손을 휘저었다.

         

       얼굴을 붉히니 더 변태 새끼 같았다.

         

       아무래도 강경하게 나가야 할 것 같아 나는 정색을 했다. 안 그래도 차가웠던 내 무표정은 절대영도가 되었으리라.

         

       “죄송한데 한시우 프로듀서님. 저는 교제 같은 거 관심 없고요. 그리고 저는 미성년….”

         

       “아뇨! 제가 말을 헷갈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근데 그건 절대 아닙니다!”

         

       평소 감정 변화 그리 없던 사람이 흥분하여 소리까지 지르며 부정한다.

         

       “아….”

         

       저리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닌가 보다.

         

       아니 말을 헷갈리게 하니까 오해하지….

         

       “그러면 방금 함께 가지 않겠냐 이건 무슨 의미로 하신 말이에요?”

         

       사랑 고백이 아니라면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로 한 말인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으니 한시우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답했다.

         

       다시 감정을 추스른 그는 상당히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으로의 연예계 생활을 저와 함께 하실 생각이 없냐는 의미였습니다.”

         

       “……!”

         

       그의 말을 듣고 흠칫했다가 나는 혹시 하는 의미로 물었다.

         

       “…저는 지금 나아아에 출연 중인데요? 나아아를 통해 데뷔하는 것이 목표고요.”

         

       “하지만 나아아를 통해 데뷔한 그룹은 1년 후 해체가 원칙이지요. 저는 그 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확실히 나아아를 통해 데뷔한 그룹은 1년 후 해체한다.

         

       그 후의 이야기라면 설마…!

         

       “저는 곧 제 회사를 차릴 겁니다. 3대 기획사를 주축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는 대한민국 연예계를 뒤집을 수 있는 그런 회사를요.”

         

       “…….”

         

       “나중에 나아아로 데뷔한 그룹이 해체하면 예린 양이 저희 회사로 들어오셔서 1호 아티스트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 말하는 한시우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담겨 있었다.

         

       “제가 예린 양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휘어잡는 아이돌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

         

       나는 지금 한시우가 하는 말이 허풍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년 후 한시우는 정말로 자신의 회사 HS를 세우고 HS는 실제로 대한민국 연예계에 판을 깨는 초신성 기획사가 되니까.

         

       다만 문제는….

         

       ‘이 제안을 왜 나한테 하지?’

         

       이 제안을 받아야 할 주인공이 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한시우의 회사 HS의 1호 아티스트는….

         

       ‘유 설…’

         

       …나아아의 우승자 유 설이니까.

         

       …미래가 바뀌었다.

         

       나 때문에.

         

       내가 나아아에 나와 눈에 한시우의 눈에 띄는 바람에 유 설이 받아야 할 제안을 대신해서 받았다.

         

       갑작스런 상황이 당황스러워 머리가 아파 왔다.

         

       그때 한시우가 내게 손을 건넸다.

         

       “저를 믿으세요, 예린 양. 저와 함께 갑시다.”

         

       한시우가 내게 내민 손은 그야말로 보증 수표였다.

         

       저 손만 잡으면 미래에 유 설이 누릴 성공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될 테니까.

         

       부모의 빚? 그까짓 것 정도는 푼돈으로 여길 정도로 큰돈을 벌게 될 것이다.

         

       전생과 현생 통틀어서 맛본 적 없는 성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 이 손만 잡으면.

         

       “…….”

         

       이에 나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같이 들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 있으니 따로 들어가죠.”

         

       “넵.”

         

       “저 먼저 들어갈 테니 에린 양도 금방 돌아오세요. 아마 곧 쉬는 시간이 끝날 거에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한시우는 그리 말하고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나도 잠시 자리에 서 있다가 한시우가 들어간 쪽과 다른 길로 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엇.”

         

       “…….”

         

       세트장에 들어가기 위해 코너를 돈 순간 나는 흠칫하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그곳에서 숨죽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니.”

         

       “…….”

         

       그녀는 바로 유 설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나 대신 한시우에게 제안을 받았을 유 설.

         

       그녀는 코너에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 엿들을 생각은 없었는데.”

         

       “…….”

         

       평소 뛰어난 연기력으로 표정을 꾸며내던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그냥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으니 어서 들어가죠. 이제 시작하겠어요.”

         

       “…응.”

         

       나는 그냥 이대로 태연하게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혹시….”

         

       그런 나를 유 설이 멈춰 세웠다.

         

       “왜 한시우 님의 제안을 거절했는지 물어봐도 돼? 분명히 좋은 기회였을 텐데.”

         

       “…….”

         

       그렇다.

         

       나는 한시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유는….

         

       “지금 회사 때문에요.”

         

       형제기획 때문이었다.

         

       “왜? 한시우 님이 위약금도 대신 내주겠다고 말했잖아. 지금 회사가 그리 큰 곳도 아니고…, 한시우님 회사로 가는 게 훨씬 이득이었을 텐데.”

         

       그래, 그녀의 말대로 지금의 형제기획에서 한시우의 회사로 옮긴다면 아이돌로서 큰 이득이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회사 사장님이 저한테 큰 은인이어서요.”

         

       애초에 형제기획 강형만이 없었다면 나는 아이돌 같은 건 꿈도 못 꾼 채 아직도 부모의 늪에서 갇혀 지냈을 것이다.

         

       그런 나를 구해준 강형만과 형제기획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 HS 1호 아티스트는 유 설이니까.’

         

       왠지 그녀의 자리를 빼앗는 듯한 기분이 들어 찝찝하기도 했다.

         

       “저는 지금 회사에 뼈를 묻을 생각이에요.”

         

       “…그래, 그렇구나.”

         

       내 설명을 들은 유 설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씁쓸해 보여서였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지 말고 언니가 한시우님 회사로 가는 건 어때요?”

         

       “……뭐?”

         

       그때의 나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생각 뿐이었다.

         

       원래 한시우 회사로 가야 되는 건 유 설이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미래가 원래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했다.

         

       이게 얼마나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인지도 모르고.

         

       “제가 한시우 님한테 언니를 추천 드릴게요.”

         

       “…….”

         

       “언니는 저보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니까 한시우님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어때요?”

         

       “…….”

         

       내가 그 말을 한 순간 유 설이 석상처럼 굳었다.

         

       그리고 곧….

         

       쩌적-.

         

       마치 가면이 깨지듯 그녀의 얼굴이 풀리더니….

         

       “…흐.”

         

       “…언니?”

         

       “흐흐흐…! 아하하하-!”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하지만 그 웃음도 오래가지 않았다.

         

       뚝.

         

       “예린아.”

         

       그녀는 이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던 얼굴로 나를 노려 보았으니까.

         

       “한시우 님이 제안한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너무나도 새까만 그녀의 눈동자에서 SAV 서유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적대감이 느껴졌다.

         

       “왜?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어?”

         

       “…저는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9년 연습하고도 데뷔도 못한 늙다리가 불쌍해 보인 거니?”

         

       유 설의 연습기간이 9년이었나.

         

       나는 몰랐다.

         

       그녀의 연습기간이 9년인지도.

         

       그리고….

         

       “…그래, 한 달 연습하고 한시우한테 그런 제안 받는 너한테는 내가 불쌍해 보일 수도 있겠지.”

         

       …그녀가 지금까지 나를 무슨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도.

         

       “너같은 천재는…, 나를 이해 못 하겠지.”

         

       그리 말하는 유 설의 표정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었다.

         

       분노하는 것 같기도…, 체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경쟁자들끼리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바보였어.”

         

       그렇게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뒤를 돌았다.

         

       나는 그런 그녀를 붙잡아 세우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어, 언니 잠깐만….”

         

       “건들지 마.”

         

       “…!”

         

       …그녀가 엄동설한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막아서기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살짝 흘겨보고는 싸늘한 말을 이었다.

         

       “예린아, 너도 정신 차려. 너랑 나랑 경쟁자야.”

         

       “…….”

         

       “그렇게 어설프게 할 거면 차라리 하차를 해. 네가 지금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간절한 한 명이 기회를 잃고 있다는 거 몰라?”

         

       스윽-.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세트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나는 그런 유 설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젠장, 실수했다.

       

       한시우의 제안을 듣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일을 급박하게 바로 잡으려다 나온 실수였다.

       

       유 설이 그동안 마음의 벽을 짓고 사느라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엿보지 못한 탓도 있었다.

       

       지금도 나아아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고 있는 그녀이니…, 이런 자격지심같은 것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면 9년 연습하고도 데뷔도 못한 늙다리가 불쌍해 보인 거니?’

         

       ‘…그래, 한 달 연습하고 한시우한테 그런 제안 받는 너한테는 내가 불쌍해 보일 수도 있겠지.’

         

       그리 말하는 그녀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때 내 눈에 홀린 듯이 내 상태창이 눈에 띄었다.

         

       [특성 – 천마(天魔)]

         

       주인공에게 시련과 절망감을 주는 천마.

         

       아무래도 내가 천마 노릇을 톡톡히 한 듯싶었다.

         

         

         

         

         

       **

         

         

         

         

         

       조금 멍한 얼굴로 세트장에 터덜터덜 돌아가니 제작진이 나를 향해 손을 휘젓고 있었다.

         

       “예린 양-! 어디 갔었어요! 쉬는 시간 진작 끝났어요! 얼른 오세요!”

         

       “아…, 죄송합니다.”

         

       그때까지 나는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유 설 때문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될까.’

         

       그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녀 옆에 앉으면 어색해서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예린아, 어디 갔다가 이리 늦게 와.”

         

       “……!”

         

       내가 도착하니 유 설은 평소의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반겨 주었다.

         

       이에 흠칫하여 세트장 밖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지이잉-.

         

       …역시나 카메라가 돌아가는 중이었다.

         

       “…죄송, 해요…. 늦어서….”

         

       그녀의 프로페셔널을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어 나는 로봇같은 리액션을 보이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때였다.

         

       [동기화 중….]

         

       [유 설의 잠긴 특성이 해제되는 중입니다….]

         

       갑자기 유 설의 상태창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중요 사항 하나 수정하겠습니다.

    본래 나아아 데뷔조 인원은 7명이었지만 이를 6명으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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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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