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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서는, 절대로 그 의도를 수면 위로 드러내서는 안된다. 마지막까지 숨기고 숨기다, 참다 못한 상대가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어야 한다.

       

       키엘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키엘이 가문을 내팽겨치고 대륙이나 싸돌아다니는 방랑 검사라지만, 그는 정치 외교와 같은 고등 학문을 익힌 엄연한 귀족이다. 

       

       현대의 정치인들이 그러하듯, 이 세계의 귀족들은 어렸을 때부터 상대방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서 숨은 뜻을 유추하는 법을 배운다.

       

       자작과 남작 같은 하급 귀족들은 대형 상단의 잔뼈 굵은 상인들과 이문을 두고 다툰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중소 상단 수십 개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후작과 백작 같은 고위 귀족들은 그런 하급 귀족들을 제 휘하에 두고 부린다. 그들은 자연을 통제할 수 없지만, 흘러드는 강물의 양을 통제함으로써 곡식의 수확량과 시세를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세치 혀로 수만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귀족들. 그 귀족들의 정점에서 군림하는 것이 바로 공작(公爵)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그게 키엘의 현 주소였다.

       

       그런 키엘에게 어줍잖게 의도를 드러냈다가는, 시커먼 속내를 들키고 나가 떨어질게 분명했다.

       

       어쩌면 ‘올리비아의 의식을 차지하려 들었던 유령’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지.

       

       절대로 급하게 들이대서는 안된다. 원래 사람 심리라는 것이 그렇다. 상대방을 급하게 만들려면, 이쪽은 오히려 차분해져야 한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더라도, 항상 담담해야 한다.

       

       대화란 그런 것이다. ‘다급함’이라는 감정을 먼저 드러낸 쪽이 주도권을 잃는다.

       

       [남은 시간 : 9분 34초]

       

       ‘그리고 이기는 건 내 쪽이야.’

       

       정보도, 시간도 올리비아의 편이었다.

       

       정보는 이쪽이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 또한, 올리비아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동료의 시한(時限) 앞에서 강짜를 부릴 수 있는 인간은 없으므로.

       

       키엘은 매우 혼란스럽다는 얼굴이었다. 당연하다.

       

       지금쯤 몇 달 동안 함께했던 완벽한 올리비아와, 지금 눈 앞에 있는 인간적인 올리비아 중에 과연 어느 쪽이 진짜인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을테니.

       

       ‘여기까지가 분리.’

       

       몰살 회차의 올리비아와 작금의 자신을 각각 다른 존재로 인지하도록 만드는게 첫 단계다.

       

       원래라면 당연히 ‘완벽한’ 올리비아를 진짜라고 생각해야 맞다. 함께한 절대적인 시간의 양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키엘은 그렇게 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기를 택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완벽했지.’

       

       자랑을 하려는게 아니다. 몰살 회차를 플레이 할 때의 자신은 흠 잡을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항상 최고로 효율적인 루트로 움직였다.

       

       결과적으로 만렙을 찍은 걸로도 모자라 모든 주요 NPC들의 호감작까지 마쳤으니까.

       

       완벽한게 왜 이유가 되냐고?

       

       키엘은 살아 숨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토마토를 뺀 샌드위치 하나 건네준다고 호감도가 올라가는 데이터 쪼가리가 아니다.

       

       인간은, 완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표정이 왜 그래? 누구 죽는 것도 아닌데.”

       “…….”

       

       올리비아가 태연하게 말했다.

       

       “물어볼 거 있으면 지금 물어봐. 지금 이러는 중에도 시간은 계속 가고 있으니까.”

       “너는…….”

       “아이, 지지리 궁상 떨 시간에 질문이나 하라니까? 왜 그래? 답지 않게.”

       

       키엘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사람처럼 한참을 말 없이 서있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올리비아가 아공간에서 무언가를 꺼내 키엘에게 던졌다.

       

       탁, 키엘은 손에 잡힌 물체를 확인했다.

       

       그건 낯익은 풀떼기였다. 

       

       “씹어. 아르니카라는 약초인데, 진정하는 데 도움이 될꺼야.”

       

       아르니카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키엘을 보고 올리비아가 눈을 치켜떴다.

       

       “내가 씹어서 입에 넣어줄까? 씹으라니깐?”

       

       오독.

       

       아릿하니 밀려드는 씁쓰름한 향기에 키엘이 눈꺼풀을 찡그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짓말처럼 심장 박동이 정상궤도로 돌아왔다.

       

       “어때? 효과 좋지?”

       

       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사실 물어보고 싶었다. 

       

       둘 중에 누가 진짜냐고. 네가 내가 아는 올리비아가 맞냐고. 

       

       하지만 키엘은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

       

       올리비아의 눈동자 너머에 숨겨진, 끝없는 공허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그건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눈이었다. 

       

       왜 그녀만 만나면 가슴이 먹먹해오는지, 왜 심장이 떨리고 말문이 막히는지. 

       

       그 답을 지금 알아낸 기분이었다.

       

       ‘도대체…….’

       

       그 어떤 인간도 죽음 앞에서 스스로의 나약함을 감추지 못한다. 

       

       최전방에 서는 장군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다만 공포를 억누르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날 뿐이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단숨에 온 몸을 불태우는 마법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신체가 난자당하고, 정신을 무너뜨리는 고통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수단들이지,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미지(未知)이기에 두렵다.

       

       죽음은 그 종착지를 모르기에 두렵다. 

       

       최후의 선택이 옳았는지 확인할 도리가 없기에 두렵다.

       

       사랑하는 이들과 다시는 마주할 수 없기에 두렵다.

       

       그렇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이들은 다 거짓말쟁이다.

       

       적어도 키엘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훈련을 반복해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은 떨쳐낼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했다.

       

       죽음이라는 미지를 이해하기 위한 여행을.

       

       처음에는 아무때나 막무가내로 전투에 임했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서면,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한 번은 드래곤과도 싸웠다.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뿜을 때마다 생사의 기로를 오갔다. 

       

       한 번은 죽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인 적도 있다. 맨 몸으로 절벽에서 떨어지고, 맨 손으로 오우거에 맞선 적도 있다.

       

       그 짓을 삼 년을 반복하고 깨달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면 커졌을지언정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것들은 결국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각지의 성지(聖地)들을 찾아 떠났다. 각 종교의 성인들을 만나 현답을 여쭌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녀 리브가와 만났다. 그녀는 키엘이 여태껏 만난 성인들 중에 가장 ‘성(聖)’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말뿐만이 아닌 진심을 다해 원수를 사랑했고, 신이 제게 내린 역할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충실히 수행했다. 일언반구도 없이 찾아온 무례한 불청객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주기까지 했다.

       

       – 키엘 공작님. 죽음이 두렵지 않냐고 물으셨습니까? 당연히 두렵지요. 두렵지 않은 인간이 과연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을 죄가 더 두려울 뿐입니다.

       

       그들의 신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지옥을 만듦으로써 신도들을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키엘이 원하는 해답이 아니었다. 그는 지옥이라는 도피처 없이 죽음을 그 자체로 이해하길 원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금색 마탑이었다. 대륙 최고의 지성을 가진 그들이라면, 죽음이라는 미지를 연구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 죽음이라. 흥미롭네. 키엘 자네에게 이렇게 감성적인 면이 있었을 줄은 몰랐어. 하지만 키엘, 내 하나만 묻겠네. 자네는 왜 마법사들이 수명을 늘리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지 아는가? 리치라는 언데드까지 되어가면서?

       

       멜리나는 하늘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말했다.

       

       – 진리에 닿기엔 인생이 너무 짧거든.

       

       대륙 최고의 지성들은, 최고로 현명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죽음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키엘은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는 멈추지 못했다.

       

       강철보다 단단한 의지로도, 종교적 믿음으로도, 정점에 달한 지성으로도. 그 어떠한 것으로도 죽음을 이해하고 이겨낼 수 없었기에.

       

       하지만…….

       

       하지만 눈 앞의 올리비아는 달랐다. 

       

       그녀는 제 소멸을 말하면서 웃고 있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허세가 아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수없이 만나보았기에 안다. 그녀의 눈은 그들의 눈과 닮아 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어두웠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차가웠다.

       

       “질문 안 할거야? 나 이제 진짜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녀는 진심으로, 제 소멸을 괘념치 않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왔기에.

       

       어떤 죽음을 겪어왔기에.

       

       제 소멸 앞에서 담담히 웃을 수 있는가.

       

       키엘은 낯선 벗에게 말했다.

       

       “……다음에.”

       

       키엘은 고개를 들었다. 달빛에 아련히 비친 올리비아의 어깨는, 오늘 따라 유독 작고 연약해보였다.

       

       “다음번에는 언제 온다고 했었지?”

       “열하고도 이틀 후에.”

       “그런가?”

       

       키엘이 잔잔한 미소로 화답했다.

       

       “기다리마.”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

       

       

       [단서 #1 열람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현실로 돌아온 올리비아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

       

       ……왜 누가 진짜냐고 안 물어보지?

       

       분명히 물어봐야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작인 키엘이라면 반드시 그랬어야만 했다.

       

       올리비아의 얼굴에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상태창.’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바뀐게 있나 확인이라도…….

       

       음?

       

       뭔데 저거?

       

       올리비아가 눈을 부릅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또 다른 회귀자가 나왔군요.

    성녀 리브가입니다.

    비록 한 줄 언급됐지만요 ㅠㅠ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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