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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무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것인가. 흐음. 괜찮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면 되는 것이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내가 그리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화령의 말에 하린이 환호했다.

       

       그녀는 두 손을 꼭 쥐면서 의욕을 드러냈으나 얼마 가지 않아 그 의욕은 삶에 대한 갈망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하린의 성취는 빨랐다.

       

       화령이 훌륭한 교육자인 덕도 있었지만 애초부터 풍류권을 수년간 갈고 닦았던 그녀다.

       

       이미 풍류의 이치는 그녀의 몸에 배어 있었다. 여태는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

       

       이 때 까지만 해도 하린은 자신의 성취에 전율했다.

       

       화령이 알려주는 바는 명확했다.

       

       이젠 잡아주는 연어를 먹는 게 아니라 직접 연어를 잡으라고.

       

       시스템이 펼친 무공을 따라할 게 아니라 몸으로 직접 이치를 따라 무공을 펼쳐보라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풍류의 권을 펼칠 수 있도록.

       

       처음 해보는 것이라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이전과 전혀 달라졌다는 것은, 그리고 또 이렇게 하면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란 건 확실했다.

       

       불을 발견한 원시인 마냥 신이 나서는 이것저것을 해보던 하린은 화령이 무엇을 하든 간에 따르겠단 결심을 했다.

       

       그녀의 방침은 언제나 옳을 것 같았다. 그건 일종의 맹신이었다.

       

       “이제 대충 감은 잡았느냐?”

       “네! 아직은 느리지만 알 것 같아요!”

       “그건 걱정 말거라. 이제 자연스레 익숙해 질 테니.”

       

       무엇이든 처음 하는 것은 서투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린은 이제. 라는 단어가 걸렸지만 일단은 화령이 하는 말을 격려로 받아 들였다.

       

       “사람이 두 번째로 빠르게 학습을 할 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만 첫 번째가 어떤 때인지는 무인 모두가 하나라고 말을 한다. 언제인지 아느냐?”

       “아..니요?”

       “죽기 직전. 혹은 죽어가는 도중이란다.”

       

       화령의 목소리에 하린이 뒷걸음질을 쳤다. 허나 하린의 어깨에 화령의 손이 닿아버리는 바람에 그녀의 도주는 실패로 끝났다.

       

       “공교롭게도 아피스에선 얼마든지 죽음을 맞을 수 있지. 다만 그 때문인지 현실과는 다르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크지 않더구나. 그래서야 죽음의 가치가 옅어지지 않으냐.”

       

       하린은 떨리는 눈동자로 화령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부드러운 웃음을 흘리는 것이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사곰을 보며 느꼈지. 분위기와 상황만 맞추어 진다면 가상현실 속에서도 현실과 같은 공포를 심어줄 수 있겠구나. 라고.”

       

       허나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은 살벌하기 그지 없는 말이었다.

       

       “그대도 무인이니 말이다. 빠르게 강해지는 게 낫지 않겠느냐?”

       

       아뇨. 아닌데요. 저 그렇게까지 하면서 강해지고 싶진 않은 것 같아요.

       

       하린이 속으로 비명을 질러댔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화령은 자신의 앞에 선 무인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도망치거라. 오롯이 풍류의 이치만을 활용해서.”

       

       분명 지금 이 몸은 VR속 몸일 텐데 왜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지?

       

       “단 이전처럼 동작에 이치를 맞추려 한다면 벌을 할 테니 그건 유의하거라.”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린은 화령의 몸이 커진 것 같다고 느꼈다.

       

       주변의 공기가 무거웠다. 발을 떼는 것도 버거웠다. 어느새인가 이빨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공포. 공포였다. 처음 외신을 만났을 때 느꼈던 공포감이 이것과 한없이 유사했다.

       

       “자. 뛰거라. 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는 하린을 보며 화령은 느긋이 발을 내딛었다.

       

       아주 즐거운 교육시간이 되겠구나. 천마신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보통 내게 가르침을 청하는 무인은 무공에 미쳐버린 자들이었다.

       

       더 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 놓을 수 있는 미치광이들.

       

       내 악명을 듣고서도 나를 찾아오는 이들은 모두 그런 자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누구도 나의 교육방침에 대해서 무어라 한 일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무인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 쯤은 웃으며 버티리라 생각했다. 하린도 다른 무인들과 같을 것이라 여겨 버렸다.

       

       그러니까 이것은 현대에 와 처음으로 무인이라 할만한 이를 만난 탓에 일어난 참사였다.

       

       “흐아아앙!”

       “미안하구나. 내가 너무 과했다. 제발. 부탁이니 울음을 그쳐다오.”

       

       천마신교의 수련은 공포 속에서 진행된다.

       

       상승을 향한 의지보다는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더 강하고 보편적이라 판단하기 때문에.

       

       특히 유망하다 평가되는 무인을 가르칠 때는 아예 죽음 바로 앞에 데려다 놓는다.

       

       나만 해도 신교에 머물 무렵에는 차라리 죽여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내 신교의 학습법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으나 공포의 효율성만큼은 인정하는 바 하린이 빠르게 무공을 익힐 수 있게 도와 줄 생각이었다.

       

       내가 추적을 시작하자 하린은 살인귀를 피해 달아나듯 다급히 발을 움직였다.

       

       언제든 그녀를 붙잡을 수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잡힐 듯 말 듯한 거리를 유지했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수련을 돕는 것이었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진행이 잘 되고 있다 생각했다.

       

       더 빠르게 더 멀리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풍류의 이치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나 그리 생각했으리라.

       

       몸에 버릇이 든 탓인지 가끔 이전의 방식을 쓰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살기로 겁을 주니 이전 방식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되었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은 도망을 치다 발을 헛디딘 하린이 넘어졌을 때였다.

       

       일어날 시간을 주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다가갔음에도 하린은 일어나지 못했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내게서 멀어지기 위해 기어갈 뿐.

       

       그러다 손을 잘못 디뎌 얼굴을 바닥에 박은 그녀는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흔들리는 등만이 그녀의 흐느낌을 알렸다.

       

       그제야 나는 내 잘못을 깨우쳤다.

       

       이 아이는 무림인이 아니었다. 하린에게 무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취미에 불과할 뿐 목숨을 걸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인식의 괴리였다. 무공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이들 사이에 있던 나는 무공의 배움을 취미로 여길 수 있단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하린을 달래는 데 필사적이었다.

       

       본인은 누군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데는 달인이었지만 아이의 울음을 달래는 데는 한없이 미숙했다.

       

       다행히 이런 내 미숙이 하린을 미소 짓게 만들었지만 그렇다 해서 내 잘못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여전히 하린은 감정을 모두 다스리지 못한 듯 훌쩍이고 있었다.

       

       가끔 내 얼굴을 보고 흠칫거리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공포가 다 달아난 것은 아닌 듯 했다.

       

       방금의 공포는 현대를 살던 평범한 여자아이가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겠지.

       

       하아. 그냥 얌전히 엔리를 가르칠 때처럼 차근차근 나아갔어야 했거늘.

       

       하린을 아이가 아닌 무인으로 바라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엣 버릇이 튀어 나와 버렸다.

       

       “방금… 꼭 외신 앞에 선 것 같았어요. 어떻게 한 거에요?”

       

       말을 더듬으면서도 질문을 던지는 걸로 보아 공포가 그리 깊숙하게 박힌 건 아닌가보구나.

       

       그나마 다행이야.

       

       “살기라고 들어보았느냐?”

       “그거 진짜로 쓸 수 있는 거에요?”

       “방금 전에 몸으로 겪지 않았느냐.”

       

       의지에 기를 담을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면 단순한 살의조차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하수를 제압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고, 고수와의 대전에서도 살기는 유용히 쓰인다.

       

       특히 아피스가 아닌 현실의 내 경지쯤 이르면 살의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해지지.

       

       “이제 좀 진정이 되느냐?”

       “네. 네에.”

       “미안하구나. 내 서투름 때문에 너를 겁박했으니.”

       “정말 괜찮아요. 화령님. 제가 부탁드린 것인걸요.”

       

       그래봐야 실행한 게 나라는 건 바뀌지 않는단다.

       

       이 아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말로야 괜찮다고 하지만 공포감이 남아 있는게 뻔히 보인다.

       

       저 감각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면 밤잠을 설치게 되겠지.

       

       현실이었다면 술이라도 먹여 감정을 풀게 만들어 줬을 터이다만 이 곳은 게임 속 세상이지 않은가.

       

       아니지. 그럼 게임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공포심을 잊어버릴 정도로 즐거운 기억을 심는다면 될 문제야.

       

       이 세상에 있는 게임 중에서 그 만큼 즐거운 것이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괜찮다. 이 사안에 한해서 만큼은 든든한 지원군이 있으니.

       

       도와다오! 엔리!

       

       하린의 양해를 구한 후 엔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그녀는 오랫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결음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이 타들어가는 게 느껴졌지만 다행히 전화가 끊어지기 직전 엔리가 전화를 받았다.

       

       “아라 씨?”

       “늦은 시간에 미안해요.”

       “무슨 일인가요?”

       “제가 사람 한 명을 울려 버려서.”

       “…네?”

       

       살기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아예 빼고 단순하게 사건만을 나열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다 선을 넘어서 울려버렸다고.

       

       그래서 이 사람을 좀 달래고 싶은데 기분이 풀릴만한 게임을 추천해 달라고.

       

       “상대는 누구에요?”

       “여자아이에요. 냥냥권법이라는 이름을 쓰는데.”

       “아. 그 분이요?”

       

       엔리는 하린을 아는 기색이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전에 엔리의 방송에 게스트로 출현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무협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튀어나오는 분이라서 잘 알고 있다며 엔리는 반가움을 표했다.

       

       “어쩌다 만나셨대요?”

       “엔리가 추천해준 가게에서 만났어요. 그 가게 종업원 따님이시던데요.”

       “엑. 정말요?! 세상이 참 좁네요.”

       

       한참을 웃던 엔리는 냥냥권법이란 사람에 대해 잘 안다면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게임은 정해져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말했다.

       

       엔리.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이가 그대란 사실에 고맙구나. 정말 너무도 든든해서 감사하기 그지없어.

       

       “‘복수’라는 게임이 괜찮을 것 같아요. 무인이 되어서 복수의 대상을 쓰러트리는 게임인데 냥냥권법님 성향 생각해 보면 분명 좋아할 거에요.”

       “고마워요. 엔리.”

       “그렇게 고마우면 다음에 저랑 쇼핑이나 한 번 더 가요. 입히고 싶은 옷이 있거든요.”

       “…알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단호히 거절을 하고 싶었으나 그녀에게 입은 은혜가 한 둘이 아닌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있나. 그 날 하루만큼은 인형이 되는 수밖에.

       

       “정말요? 진짜죠? 약속한 거에요?”

       “네.”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 눈이 질끈 감겼다. 한숨이 절로 새나왔으나 이 또한 나의 업보였다.

       

       전화를 끊고서 하린에게 다가갔다. 슬슬 감정이 추슬러지는 듯 하린은 훌쩍임을 멈춘 채였다.

       

       “하린. 일단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네에. 그럼 다음에 뵐게요.”

       “아니. 당장 헤어지면 아쉽지 않으냐. 그래서 내 그대와 ‘복수’라는 게임을 하고 싶은데.”

       “복수요?! 화령님이요?!”

       

       하린은 잔뜩 충혈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전까지 울적했던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그 곳엔 활기밖에 남지 않았다.

       

       “그대가 싫다면 거절해도 괜찮다.”

       “아뇨! 좋아요!”

       “무리하지 않아도.”

       “정말로 괜찮아요! 저 멀쩡해요! 봐요!”

       

       그녀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방방 뛰어가며 자신의 멀쩡함을 과시했다.

       

       그리도 복수란 게임을 같이하고 싶더냐. 분명 좋아할 거라더니. 엔리의 말은 틀린 곳이 없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팬심을 때로 공포(?)를 이기나 봅니다.
    팬심과 공포의 주체가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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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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