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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조금 뜬금없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허구의 스토리에도 곧잘 공감하는 주제에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의 컷신 등에서 답답한 장면이 나오면 상당히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아, 무작정 짜증내는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단지 상황을 반전시킬 열쇠를 쥐고 있거나 여건이 되는 캐릭터가 멍 때리고 있다든가…. 적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제지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투덜거렸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초인들의 전투를.

         함부로 간섭하기 어려운 기백이 몰아치는 전장을 직관하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올바르고 합리적인 것과는 별개로, 사람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에 저항하기 힘든 법이다.

         

         “흥!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쾅!!

         

         거인의 일격에, 무슨 볼링 핀이 흩어지듯 통로로 밀고 들어오던 적들이 풍비박산난 채로 허공을 난다.

         …지혜로운 다윗이라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미래세상에는 돌멩이를 잘 던지는 것 정도로는 쓰러트릴 수 없는 강자도 존재했으니 적의 증원은 끝장났다고 봐도 좋으리라.

         

         “……콜록!!”

         

         코로 훅 들어온 매캐한 화약 냄새에 기침이 저절로 나온다.

         방 안으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원래는 조직의 핵심 제조실이었는지, 아니면 보스인 더스크의 개인 방이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던 풍경은 이제는 돼지우리처럼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당연히 돼지는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고.

         

         “죽여!! 죽이라고…! 씨발, 대체 왜 못 죽이는 거야?! 시궁창에서 살던 뜨내기들이 용병 딱지 달았다고 경호 로봇이랑 맞먹는 게 말이 돼?!”

         

         – VIP께서는 신속히 밖으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

         

         엉망으로 망가진 경호 드로이드 머리가 구석에 처박힌 채, 고저 없는 소리로 형식적인 안내문구만을 되풀이하다가 이내 전원이 끊어졌다.

         ……저게 만약 케어봇 머리 파츠였다면 조금 많이 안 좋은 기억이 되살아 날 뻔했다.

         

         최초에 있던 드로이드 중 하나는 어설프게 공격했던 대가를 이미 톡톡히 치렀다.

         

         당황한 더스크가 내벽에 숨겨 놓았던 경호 로봇을 무려 두 체나 더 추가해서 현재 호레이쇼와 도미노는 삼대이의 수적으로 열세인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숫자가 그럴 뿐, 전황은 전혀 불리해 보이지 않았다.

         

         쾅!! 콰지직…!

         타다당! 깡!!

         

         데어데블의 머리카락 겸 회로에 녹색 스파크가 맴돌고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배후의 기습을 회피한다. 인지부터 반응까지, 뇌와 가장 가까운 부위에 위험한 시술을 받은 만큼 그 속도는 에나마의 추적자와도 비견될 만했다.

         

         “더스크 아재…!! 장난감이 더 있으면 슬슬 꺼내는 게 좋을텐데!!”

         

         억지로 잡아 뽑은 톱날 달린 기계 팔을 드로이드 동력원에 역수로 꽂아 넣은 그가 포효했다.

         막을 수 있는 건 막지만 위험하면 잽싸게 물러나고 빈틈이 보이면 손이든 다리든 잡히는 무기던 마음껏 사용해서 물어뜯는다. 숫제 본능에 따르는 짐승 같은 싸움법이었다.

         

         반면 도미노의 교전은 절도와 우아함이 공존해서… 한 편의 야상곡(Nocturne)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제멋대로인 너한테 매번 맞춰야 하는 내 걱정도 좀 해줄래?”

         

         내질러지는 드로이드의 팔 끝, 바닥 타일을 긁는 다리 끝에 발사된 탄환이 명중한다. 엄습하던 죽음의 궤도가 어긋나고 어떤 환경에서도 작동하기 위해 디자인된 거미다리가 실각한다.

         과도한 약으로 인해 충혈된 그의 눈이 파리하게 떨렸지만, 이 건맨은 자신의 역할을 방폐하지 않았다.

         

         철컥…! 깡!!

         

         빈 권총 탄창이 너덜너덜한 소파 뒤에 숨은 더스크에 던져지자 경호 드로이드가 프로토콜에 따라 막아선다. 그 사이 물 흐르듯 허리춤의 탄창을 튕겨 올려 재장전을 마친 쌍권총이 불을 뿜어 각각 다른 로봇의 관절부를 타격한다.

         

         상대하기 위험한 날붙이나 화기는 총알로 틀어막고, 그냥 내젓는 팔은 총몸을 방패로 써서 튕겨낸다.

         

         “미친…… 건 카타…?”

         

         장담할 수 있는데… 저게 게임에서도 가능했다면 권총 유저가 열 배는 늘었을 거다.

         

         콰드득…!!

         

         두 짝 밖에 안 남은 거미다리를 양 발로 밟은 호레이쇼가 쓰러진 마지막 경호 드로이드를 해체한다. 결국 가슴팍과 머리가 완전히 파괴된 기계로부터 빛이 사라진다.

         지켜야 할 대상이 멍청하게 근처에 있으니, 별수 없이 내장된 고화력 무기도 봉인. 동력원을 과부하 시켜 자폭하는 최후의 발악도 없었다.

         

         “으아아…! 뻐근하구만. 아샤 누님! 멀쩡하십니까?”

         

         “……응.”

         

         조명, 타일, 온갖 실험기구들. 모든 게 박살 났음에도 내가 서있던 문가는 멀쩡했다.

         숨 막히던 열기가 잦아들고, 어지러운 잔상이 사라지니 그제야 모두의 몸에 난 상처들이 보였다.

         

         옷은 당연 피부 곳곳이 찢어져서 새빨간 실선이 드러나 있었다. 부르튼 살갗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에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심지어 오멘까지 복부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 돌아왔다. 상황이 그저 압도적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내가 바보 같다.

         

         “…도중에 영양제가 떨어졌을 뿐이다.”

         

         상처를 확인하고자 다가서는 나를 오멘이 부드럽게 밀어냈다.

         아니, 괜히 나 때문에 더 다친 것 같아서 미안해 죽겠으니까 그냥 좀 보여 달라고…!

         

         “으하핫! 원래 우리 같은 놈들이 잘 먹고 잘 살려면, 기브 앤 테이크를 꼭 지켜야 하는 겁니다 누님!”

         

         “…그쯤은 나도 알아!”

         

         피곤한 걸 넘어 다 죽어가는 안색을 억지로 밝게 만든 호레이쇼가 목소리를 높였다.

         신체강화가 해제되자 주인처럼 추욱 처처 그의 모히칸이 심히 안쓰럽다. 게다가 도미노는 실핏줄이 터진 듯 눈을 타고 나오는 피를 연신 닦아내느라 바빴다.

         

         잔인하다고 원망하기엔… 현대인도 똑같이 시간을 팔아서 돈으로 바꾼다. 역으로 돈이 많은 사람은 남의 시간을 사서 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물물교환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현재와 미래를 팔아서 크레딧을 얻고, 그 크레딧으로 다시 내일을 사는 형태로 제시되니….

         

         “하아아….”

         

         역시, 환경 때문에 극단적이었다고 쳐도 아직은 어린 애들이라 그런지 발상이 위험하다.

         …일이 끝나고 나면 세포 재건 수술 비용부터 알아보라고 꼭 권해야겠다.

         

         “?! 다… 다가오지 마라…!!”

         

         “…싫다면 뭐 어쩔 건데?”

         

         브로커를 통해 파라다이스로부터 건네받은 메모리 카드를 꺼내 들고 소파 근처로 접근하는 나를 보고 더스크가 발작을 일으켰다.

         부들부들 떨면서 바닥을 연신 더듬던 그의 손이 유리조각을 그러쥐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내밀어졌다가… 겨눠진 도미노의 권총을 보고 조용히 방향을 바꿨다.

         

         “내… 내가 죽으면 내 머릿속에 있는 배합 데이터와 제조식은 전부 사라진다!! 그래도 되나?! 엉!!”

         

         “!! 가는 길도 진짜 구질구질하시네!”

         

         “…참나.”

         

         어리숙한 얘들이야 당황했지 나는 코웃음 쳤다.

         몸 안의 임플란트나 하드웨어가 작동을 정지하고 초기화되려면 숙주가 사망해야 하는데, 저런 유리조각으로 찔러봐야 사람은 즉사하지 않는다. 내 해킹 속도라면 진짜로 저질러도 금새 뽑아낼 수 있었고.

         

         그 사실을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주고 맡은 바를 끝낼까… 했는데, 왠지 끝까지 저지른 죄와 인과관계를 파악 못하는 이 소악당에게 어울리는 절망을 선사하고 싶어졌다.

         

         “찔러.”

         

         “…. 뭐라…?”

         

         “찌르라고 씨발.”

         

         식은 땀 범벅인 자신의 목에 날카로운 파편을 누른 더스크를 내려다봤다.

         …나보다 키가 작은 건 여태 메리밖에 없었는데, 인간처럼 서는 법을 잊어버린 이 놈 또한…… 아니다. 이건 메리한테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이다. …다음에 또 전화가 오면 사과하자.

         

         “그런데… 뒤지기 전에 이건 똑똑히 기억해.”

         

         “…?”

         

         넋이 나간 놈과 눈을 맞췄다.

         

         “…내가 있는 한, 죽더라도 넌 절대 구원 못 받아.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약, 데이터, 나아가서 네 인생까지. 정말 송두리째 긁어다가 팔아 치울꺼야. 그러니까… 살아서 그 꼴을 직접 보던가, 빨리 죽어버려.”

         

         “…….”

         

         쨍그랑! 하고, 손에서 흘러내린 유리가 바닥에 떨어져서 깨졌다.

         알량한 배짱과 허세가 깡그리 사라진 그 늘어진 얼굴은 옐로우 섹터를 주름잡던 범죄조직의 수장치고는 참으로 볼품없었다.

         

         

         “…데어데블, 저런 건 보고 좀 배우도록….”

         

         “아샤 누님!! 최고에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라.”

         

         …누구는 떡진 머리에 손을 대고 열심히 데이터를 꾸겨 넣느라 바쁜데, 외야가 지나치게 시끄러워서 조용히 좀 하라고 노려봐 주었다.

         …금방 조용해졌다.

         

         

         

         

         – 이쪽은 회수팀 해커, 물건을 확보하고 귀환합니다. 더스크는… 안타깝게도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사살되었습니다. –

         

         – …데이터만 무사하다면 상관없다. 제압팀은 잔당 소탕과 물품 압류에 집중, 회수팀을 만날 경우 귀환을 우선적으로 보조하도록. –

         

         파라다이스 사로부터 흡족한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용병들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흘렀지만… 별 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꽤 오랫동안 꿈꾼 복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루고 나니까 허무하네.”

         

         손 댈 가치도 못 느끼겠다고 마음을 바꾼 둘과는 달리. 약을 시작하게 된 원흉이 더스크의 시제품이었다는 도미노는 추출 작업이 끝난 후, 옐로우 섹터의 암덩어리에 몸소 종지부를 찍었다.

         

         “원래 어릴 때 꾼 악몽은 더 무섭게 기억하는 법이야.”

         

         “큽…! 끄응.”

         

         아직 배에 박힌 총알도 그대로면서 최전방을 고집한 오멘이 웃다가 신음을 흘렸다.

         괜찮냐는 의미를 담아 등…은 너무 높아서 대신 장딴지를 두들겨줬다. …빨리 가자는 뜻이 아니야! 환자면 좀 천천히 움직여…!!

         

         간간히 복도를 울리는 교전음을 피해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간다.

         계단을 올라 해치를 빠져나온다. 이제 통제선 근처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브로커나 담당자에게 메모리 카드를 건네면 끝.

         

         걱정했던 것보다 일이 잘 풀려서 정말 다행….

         

         “…뭐야, 천하의 오멘도 피는 붉은색 이구만?”

         

         “…흥! 살짝 긁힌 것뿐이다. 비켜라.”

         

         “어…?”

         

         지하실 계단 앞을 7번가로 들어갔던 제압팀이 가로막고 있었다.

         일부러 보조를 위해 나와줬다기엔 더 깊은 지하에서는 아직도 전투가 한창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휘감은 분위기와 발치에 있는 커다란 상자도 심상치 않았다.

         

         ……안 좋다. 불길하다.

         공적인 의뢰였던 만큼 파라다이스에서 입막음을 하려는 건 아닐 터이다. 이건 아마…!

         

         “그것 참 존나 다행이야. 니 새끼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쾅—!!

         

         “?!”

         

         대포라고 착각할 수준의 총성이 울려 퍼지고, 단 한번도 물러나지 않던 오멘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 미친 개새끼들이…!!”

         

         “……씀씀이가 너무 짠 파라다이스를 원망하라고.”

         

         벼락처럼 달려든 호레이쇼가 오멘의 옷을 잡아 끈다. 뽑아진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하지만 누구를 겨냥해 준비되었는지 명백한 산탄총이 다시 한 번 무자비하게 발사되었고….

         

         오멘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LazyAnt 님의 강렬한 100코인 후원!
    batch 님의 쿨한 5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샤를 못 살게 굴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있어야 인연과 행복이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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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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