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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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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공포와 두려움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피아는 멍한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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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래? 무서운 거라도 봤어? 설마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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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끄덕이자 리안이 진지한 표정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잔뜩 겁에 질렸다가 탁 풀린 상태라 그런지 피아는 평소와 달리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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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마 지평좌표계와 물구나무 -…”
   “푸흐흐..큽,그..그만 웃겨 배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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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로 웃어본 게 얼마 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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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쌓여있던 감정이 한 번에 비워진 탓인지 웃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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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들어오고 뭐 해?”
   “아,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
   “푸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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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라면 불쾌했을 두 사람의 대화가 그저 재미있게 들렸다. 피아는 그런 제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유쾌해 거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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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얘기하는 거면 들어와서 해. 나도 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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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과 노아가 식당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피아는 웃음을 삼키며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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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즐거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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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입가에 지어지던 웃음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오싹한 두려움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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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즐거울 수 있어? 나를 죽였는데? }
    “아니,아니야..”
    { 언니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난 분명 살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언니는 죽어가는 날 방치했잖아. 두고 도망쳤잖아. 그러니까 날 죽인거나 다를 바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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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카만 구덩이 안에 던져지는 것만 같은 공포가 피아를 다시 좀먹기 시작했다. 피아는 본능적으로 식당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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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어디 가려고? 또 날 두고 가려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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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려오는 말에 두려움이 왈칵 치솟았다. 피아의 머릿속에 두렵다는 생각과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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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급하게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환청이 희미해지더니 사그라들었다. 피아의 시선이 식사를 막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릴리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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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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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반쯤 넋을 놓은 상태로 음식을 받아 릴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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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맛있어?”
   “언니 혹시 어디 아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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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떻게 감히 아플 수 있을까? 아픈 건 너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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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청은 끊어졌지만, 환청이 속삭인 말이 화상 자국처럼 남아 끝없이 피아를 할퀴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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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전부 유령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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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를 재차 밝은 곳으로 끌어낸 건 리안이었다. 리안이 진지한 목소리로 귀신 퇴치법을 입에 담는 순간 머릿속을 갉아먹던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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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제스 대단해!”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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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끌시끌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피아는 노예가 된 이후 처음으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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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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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기랄..! 왜 계속 마법이 끊기는 거지? 설마 보호 마법이라도 걸어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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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리안의 개그 필터 때문이었지만 도반이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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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되면 더 독한 마법을 거는 수밖에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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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이 눈을 번뜩이며 마기를 긁어모아 피아의 침대에 끔찍한 흑마법을 걸어버렸다. 도반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바람빠진 풍선같은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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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스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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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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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소리 내 웃고 있던 도반이 놀란 쥐새끼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는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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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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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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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마귀가 쓰레기 더미를 돌아다니며 특유의 울음을 길게 흘렸다. 사천왕 지소인줄 알고 바짝 쫄았던 도반은 혀를 차며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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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한 빨리 그 노예를 얻어 이곳을 떠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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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반은 흉측한 웃음을 지으며 피아의 침대에 마기를 더욱 더했다. 쓰레기 더미들 사이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처럼 기분 나쁘고 조용한 움직임 덕분에 미아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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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들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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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흥, 죽어라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여기에 처박혀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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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색으로 탄 피부, 노란색과 주황색 그 사이의 밝은 머리카락,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 실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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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왕 지소는 도반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꽤 떨어진, 높은 건물 위에서 도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높게 묶은 고양이상의 미녀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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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건가? 흥미로운데?”
    “붙잡아올까요?”
    “아냐,아냐. 어떤 보물을 가져오나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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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가 느슨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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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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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교육의 일환이니까 너는 이만 나가.”
    “하지만…”
   “리안.”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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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거지하러 주방에 왔다가 쫓겨나고 말았다. 뒷정리도 아이들이 직접 해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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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10살이 될까 말까 한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아동학대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배움은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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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방에서 벗어나자 할 일이 없었다. 라디오조차 없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명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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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마침 고민할 것도 있으니까. 산책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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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결 방법도 실마리도 없어 구석에 밀어두었던 고민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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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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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튀어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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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원래 오딜의 실험실에 팔려와 실험체 생활을 해야 했었다. 그녀가 노예 상인의 손에 붙잡혀 오기도 전에 오딜이 도망가버리고 실험실이 새카맣게 타 없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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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이 처음부터 완전히 비틀려버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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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으..정말 죽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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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막한 감정이 울컥울컥 치솟았다. 치트키로 사용될 원작도 초반부터 완전 틀어져 버린 탓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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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난 여기서 나갈 수도 없고..미아에게 심부름을 대신하겠다고 할까? 아니, 아니야. 허락해준다고 해도 순식간에 노예 상인한테 붙잡혀서 다시 팔릴 게 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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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외에도 ‘미아에게 함께 장을 보러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몰래 저택을 탈출해서 아이리스를 찾는다.’, ‘저택에서 위험해 보이지만 쓸만한 도구를 찾아서 아이리스를 추적한다.’ 따위의 의견이 나왔지만 전부 쓸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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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바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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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며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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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으아아! 진짜! 아이리스를 만나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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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울상을 짓다가 번뜩 과감한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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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냥 미아에게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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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아는 냉정한 성격을 가진 흑마법사였지만, 은근히 리안의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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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내 부탁을 잘 들어주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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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멘탈이 빠그라진 미아는 자잘한 부탁도 쉽게 들어주고는 했다. 나는 곧바로 실험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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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만 하면 도와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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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온갖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퉁퉁 뛰어다녔다. 어느새 발걸음이 빨라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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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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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르게 달린 덕분에 순식간에 미아의 실험실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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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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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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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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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멍한 얼굴로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종종 자료를 우다다다 정리하다가 저런 식으로 현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늘어져 있곤 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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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미아 혹시….사람 한명 찾아주실 수 있나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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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헛웃음을 흘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엔 약간의 분노와 짜증이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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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미아가 나에게 잘해준다고 해도 노예인 내가 미아를 용병 취급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건 내가 봐도 선 넘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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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내가 이렇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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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랑 쏙 빼닮은 여동생이 너무 걱정되어서요.”
    “동생…?”
    “내 저랑 같은 ‘핏줄’인 제 동생이요.”
    “같은 핏줄…새로운 실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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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겨져있던 미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몽롱하게 변했다. 내 육체에 흥미가 많은 미아라면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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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려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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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나에게 했던 실험을 아이리스에게도 할 수 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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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용사의 핏줄인 만큼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회복력이 뛰어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나 정도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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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렴 해골이 되었다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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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적으로 평범한(?) 아이리스의 모습을 보면 금세 실험을 멈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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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화가나 아이리스를 팔아버리겠다고 하거나, 아이리스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면 더 놀라운 개그 주민의 신비를 보여주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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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장기들이랑 인사시켜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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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술과 눈이 달린 장기가 “휘익 – ! 예쁜 아가씨 시간 있어?”라면서 어디서 꺼내온 줄 모르는 장미꽃을 건네면 어찌어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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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그땐 이곳에 끌려오기 전에 변명처럼 늘어놓았던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몸이 약해진다.’라는 설정을 끌고 와 동생이 없어서 회복력이 느려진다고 거짓말을 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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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이 어떻게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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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내 말에 홀딱 넘어왔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가 다시 미아의 얼굴로 돌아왔다.
   
   
   헛기침을 하며 아이리스가 노예라는 사실과 생김새 등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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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으윽…떡밥만 뿌리는 연재 너무 괴롭습니다.

솜씻너 히로인을 위해 열심히 쓰러갑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공포와 두려움이 모두 꿈처럼 느껴졌다. 피아는 멍한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무서운 거라도 봤어? 설마 유령?”

고개를 끄덕이자 리안이 진지한 표정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잔뜩 겁에 질렸다가 탁 풀린 상태라 그런지 피아는 평소와 달리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잊지마 지평좌표계와 물구나무 -…”

“푸흐흐..큽,그..그만 웃겨 배 아파…”

이 정도로 웃어본 게 얼마 만이지?

쌓여있던 감정이 한 번에 비워진 탓인지 웃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안 들어오고 뭐 해?”

“아,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

“푸흐흐…”

평소라면 불쾌했을 두 사람의 대화가 그저 재미있게 들렸다. 피아는 그런 제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유쾌해 거부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얘기하는 거면 들어와서 해. 나도 듣고 싶어.”

리안과 노아가 식당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피아는 웃음을 삼키며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 언니 즐거워? }

“…?!”

동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입가에 지어지던 웃음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오싹한 두려움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 어떻게 즐거울 수 있어? 나를 죽였는데? }

“아니,아니야..”

{ 언니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난 분명 살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언니는 죽어가는 날 방치했잖아. 두고 도망쳤잖아. 그러니까 날 죽인거나 다를 바 없지. }

새카만 구덩이 안에 던져지는 것만 같은 공포가 피아를 다시 좀먹기 시작했다. 피아는 본능적으로 식당 문손잡이를 붙잡았다.

{ 언니? 어디 가려고? 또 날 두고 가려는 거야? }

들려오는 말에 두려움이 왈칵 치솟았다. 피아의 머릿속에 두렵다는 생각과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 찼다.

다급하게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환청이 희미해지더니 사그라들었다. 피아의 시선이 식사를 막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릴리를 향했다.

‘아아, 내 동생.’

피아는 반쯤 넋을 놓은 상태로 음식을 받아 릴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릴리 맛있어?”

“언니 혹시 어디 아파?”

“아니?”

내가 어떻게 감히 아플 수 있을까? 아픈 건 너일 텐데.

환청은 끊어졌지만, 환청이 속삭인 말이 화상 자국처럼 남아 끝없이 피아를 할퀴어댔다.

“이건 전부 유령 때문이야.”

구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를 재차 밝은 곳으로 끌어낸 건 리안이었다. 리안이 진지한 목소리로 귀신 퇴치법을 입에 담는 순간 머릿속을 갉아먹던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오! 제스 대단해!”

“대단해!”

시끌시끌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피아는 노예가 된 이후 처음으로 마음껏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제기랄..! 왜 계속 마법이 끊기는 거지? 설마 보호 마법이라도 걸어둔 건가?”

전부 리안의 개그 필터 때문이었지만 도반이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더 독한 마법을 거는 수밖에 없겠어.”

도반이 눈을 번뜩이며 마기를 긁어모아 피아의 침대에 끔찍한 흑마법을 걸어버렸다. 도반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바람빠진 풍선같은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렸다.

부스럭 -.

“..!”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소리 내 웃고 있던 도반이 놀란 쥐새끼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는 눈을 도륵도륵 굴리며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까악 -.

“쯧…”

까마귀가 쓰레기 더미를 돌아다니며 특유의 울음을 길게 흘렸다. 사천왕 지소인줄 알고 바짝 쫄았던 도반은 혀를 차며 안도했다.

‘최대한 빨리 그 노예를 얻어 이곳을 떠나겠어!’

도반은 흉측한 웃음을 지으며 피아의 침대에 마기를 더욱 더했다. 쓰레기 더미들 사이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처럼 기분 나쁘고 조용한 움직임 덕분에 미아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들키고 말았다.

“흐흥, 죽어라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여기에 처박혀있네?”

갈색으로 탄 피부, 노란색과 주황색 그 사이의 밝은 머리카락,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 실눈.

사천왕 지소는 도반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꽤 떨어진, 높은 건물 위에서 도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높게 묶은 고양이상의 미녀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건가? 흥미로운데?”

“붙잡아올까요?”

“아냐,아냐. 어떤 보물을 가져오나 보자고.”

지소가 느슨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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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교육의 일환이니까 너는 이만 나가.”

“하지만…”

“리안.”

“알겠어.”

설거지하러 주방에 왔다가 쫓겨나고 말았다. 뒷정리도 아이들이 직접 해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이제 10살이 될까 말까 한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아동학대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배움은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주방에서 벗어나자 할 일이 없었다. 라디오조차 없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명상뿐이었다.

‘후우…마침 고민할 것도 있으니까. 산책이나 할까?’

해결 방법도 실마리도 없어 구석에 밀어두었던 고민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하아…”

바로 튀어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아이리스는 원래 오딜의 실험실에 팔려와 실험체 생활을 해야 했었다. 그녀가 노예 상인의 손에 붙잡혀 오기도 전에 오딜이 도망가버리고 실험실이 새카맣게 타 없어져 버렸다.

원작이 처음부터 완전히 비틀려버린 것이다.

‘으으..정말 죽은 건 아니겠지?’

막막한 감정이 울컥울컥 치솟았다. 치트키로 사용될 원작도 초반부터 완전 틀어져 버린 탓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난 여기서 나갈 수도 없고..미아에게 심부름을 대신하겠다고 할까? 아니, 아니야. 허락해준다고 해도 순식간에 노예 상인한테 붙잡혀서 다시 팔릴 게 뻔해.’

그 외에도 ‘미아에게 함께 장을 보러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몰래 저택을 탈출해서 아이리스를 찾는다.’, ‘저택에서 위험해 보이지만 쓸만한 도구를 찾아서 아이리스를 추적한다.’ 따위의 의견이 나왔지만 전부 쓸모없었다.

파바밧.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며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 진짜! 아이리스를 만나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잖아!’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울상을 짓다가 번뜩 과감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 그냥 미아에게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닌가?”

미아는 냉정한 성격을 가진 흑마법사였지만, 은근히 리안의 부탁을 잘 들어주었다.

“요즘 들어 내 부탁을 잘 들어주기도 하니까…”

최근들어 멘탈이 빠그라진 미아는 자잘한 부탁도 쉽게 들어주고는 했다. 나는 곧바로 실험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잘만 하면 도와주지 않을까?”

아이리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온갖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퉁퉁 뛰어다녔다. 어느새 발걸음이 빨라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하아,하!”

빠르게 달린 덕분에 순식간에 미아의 실험실 앞에 도착했다.

“후우..”

쉼호흡을 한 뒤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응…? 무슨 일이야?”

미아는 멍한 얼굴로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종종 자료를 우다다다 정리하다가 저런 식으로 현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늘어져 있곤 했기에 당황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미아 혹시….사람 한명 찾아주실 수 있나요?”

“하…”

미아는 헛웃음을 흘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엔 약간의 분노와 짜증이 넘실거렸다.

아무리 미아가 나에게 잘해준다고 해도 노예인 내가 미아를 용병 취급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건 내가 봐도 선 넘는 행동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저랑 쏙 빼닮은 여동생이 너무 걱정되어서요.”

“동생…?”

“내 저랑 같은 ‘핏줄’인 제 동생이요.”

“같은 핏줄…새로운 실험체…”

구겨져있던 미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몽롱하게 변했다. 내 육체에 흥미가 많은 미아라면 혹할 만한 이야기였다.

‘데려오기만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미아가 나에게 했던 실험을 아이리스에게도 할 수 있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아이리스가 용사의 핏줄인 만큼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회복력이 뛰어난 몸을 가지고 있지만 나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무렴 해골이 되었다가 돌아오는 건 불가능하지.’

상대적으로 평범한(?) 아이리스의 모습을 보면 금세 실험을 멈출 것이다.

미아가 화가나 아이리스를 팔아버리겠다고 하거나, 아이리스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면 더 놀라운 개그 주민의 신비를 보여주면 될 것이다.

‘대충 장기들이랑 인사시켜주면 되겠지.’

입술과 눈이 달린 장기가 “휘익 – ! 예쁜 아가씨 시간 있어?”라면서 어디서 꺼내온 줄 모르는 장미꽃을 건네면 어찌어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그땐 이곳에 끌려오기 전에 변명처럼 늘어놓았던 ‘정신적인 충격을 받으면 몸이 약해진다.’라는 설정을 끌고 와 동생이 없어서 회복력이 느려진다고 거짓말을 하면 될 것이다.

“동생이 어떻게 생겼다고?”

미아가 내 말에 홀딱 넘어왔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가 다시 미아의 얼굴로 돌아왔다.

헛기침을 하며 아이리스가 노예라는 사실과 생김새 등을 알려주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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