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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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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렇단 말이지?”

    “예,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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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 시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오메가는 제 부하의 보고를 들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얼마 전 기업 교류 파티에서 만났던 연주자. 이블스의 레갈리아가 데려온 파트너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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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도시의 대기업 재벌들이 한 번 듣는 것만으로 홀딱 반해버린 기적의 예술가. 달에서 춤추듯 내려온 천재 피아니스트. 라에몬에 대한 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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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녀석이 납치를 한 번 당했고, 이블스가 그걸 되찾기 위해 1억 달러 넘는 돈을 썼다라…….’

    ​

    이는 수용소에 갇힌 빌런과 그 당시 금액 이체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던 은행 직원을 통해 사실임을 확인했다. 제아무리 이블스 기업이라고 할 지라도 모든 걸 완벽히 숨길 수는 없었다. 하물며 비슷한 수준의 상대에게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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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질을 구하기 위해 1억 달러를 썼다는 건 퍽 놀라운 일이었다. 인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납치범에게 그만한 돈을 보내준다는 건 대기업 회장으로서도 도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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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보냈다는 점. 그리고 그 금액이 대기업 회장으로서도 맘대로 융통하기 곤란한 1억 달러나 된다는 점. 아무리 생각해도 일개 예술가 하나에게 쓰기엔 너무나 커다란 돈이라는 점은 한 가지 사실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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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라에몬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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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 그 녀석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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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블스 기업은 최근 말도 안 되는 과학적 성과를 내고 있었다. 손바닥만한 사이즈로 어지간한 최신형 컴퓨터보다 뛰어난 연산 능력을 갖춘 회로나 벌써부터 ABC상 수상이 확정되었다는 말을 듣는 반중력 장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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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까지의 이블스 기업도 E 시에서 따라올 자가 없는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대기업이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건만─ 이렇게 미싱 링크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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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기술의 개발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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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블스 기업이 꽁꽁 숨겨놓는 과학자.

    라에몬의 정체를 파악한 오메가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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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틈을 보였구나!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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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갈리아가 미쳐 숨기지 못 한 빈틈. 우연과 우연이 겹쳐 드러나게 된 그 틈을 오메가가 운 좋게 파악하고 선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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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을 알아낸 오메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다른 이들이 이 사실을 알아낼 수 없도록 정보를 차단하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간단하게 증인이었던 빌런 애송이들과 은행 직원을 죽여버리고 싶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탐정’ 같은 녀석들이 있어 그럴 수 없었다.

    ​

    “증인 녀석들의 기억을 지우도록.”

    “예, 알겠습니다. 보스.”

    “그리고 E 시의 시장과 약속을 잡아라. 공식적으로 방문하겠단 약속을.”

    “알겠습니다.”

    ​

    순식간에 일정을 정리한 오메가는 한시라도 빨리 그 남자를 만날 순간을, 그리고 그를 자신의 도시로 데려올 순간을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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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엉? 에이트 아니양-?”

    “레비탄 씨?”

    “레비땅이라고 불러줭!”

    ​

    악의 조직 본부 로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는 악의 조직으로 출근한 레비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부업으로 경찰직을 맡고 있으며 악의 조직쪽으로는 어지간해선 먼저 발을 내딛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

    “본부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엥-! 너무행! 마치 내가 볼 일이 없으면 얼굴도 들이밀지 않는 사람인 것마냥…… 휴가를 받았지롱!”

    “아- 휴가를 받으셨군요.”

    ​

    레비탄은 그리 말하며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악의 조직에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며 손으로 V를 그렸다. 그 근면성실한 모습에 나는 속으로 감탄사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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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어느 누가 휴가날에 성실하게 출근을 한단 말인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집구석에서 쉬어도 그녀가 휴가를 받았단 사실을 아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을 텐데!

    ​

    워커홀릭도 이런 워커홀릭이 없었다. 내가 입을 떡 벌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레비탄은 싱글벙글 웃으며 트레이드마크인 토끼귀를 쫑긋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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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트도 같이 놀랭?”

    “놀고 싶긴 하지만…… 저랑 가면 재미 없을 걸요? 비라 씨도 호위로 껴야하고.”

    “그럼 비라도 같이 놀면 되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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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탄은 본인의 소중한 휴가를 나 같은 거와 노는 데 소비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과연 조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싸 중의 인싸였다. 

    ​

    여자가 저렇게까지 권유하는 데 계속해서 거절하는 것도 못된 일.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비라에게 이 사실을 전달했다.

    ​

    과연 비라도 이 답답한 악의 본부를 벗어나 햇볕을 쬘 수 있단 사실에 반색했다.

    ​

    “레비땅이랑 같이? 그럼 뭐 문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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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곧장 탈의실로 향해서 순식간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연구실에서 입던 복장 그대로 로비에서 대기했다.

    ​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온 두 사람은 내 복장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

    “에이트. 정말 그러고 놀 생각이양?”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다른 옷 없니?”

    ​

    레비탄과 비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놀러 갈 때가 아니었넹.”

    “우선 백화점부터 가자.”

    ​

    “……예?”

    ​

    백화점이라는 말에 순간 끔찍한 생각이 나를 덮쳤다. 과연 내 예측대로 둘은 나를 데리고 쇼핑몰로 향했으며, 나는 그곳에서 두 사람의 등신대 인형이 되어주어야만했다.

    ​

    옷 갈아입히기 인형. 두 사람을 상대하며 수십 번 넘게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한 끝에야 그녀들이 만족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

    ​

    “아직 부족행!”

    “음…… 그렇지만 이 정도면 딱 합격선이라고 할까.”

    ​

    둘은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진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넘어갔다. 지옥 같던 쇼핑이 끝나고, 드디어 자유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

    “그럼 이제 집으로…….”

    “무슨 소리야? 놀러 나왔으니 이제부터 신나게 놀아야지. 안 그래?”

    ​

    “아….”

    ​

    몇 시간 내내 옷만 갈아입던 나는 뒤늦게서야 본부를 나선 이유에 대해 떠올렸다. 오늘은 레비탄의 휴가였고 그녀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본부를 나왔더랬다…….

    ​

    정말이지 고문에 가까운 시간을 겪느라 본초의 목적마저 까먹을 뻔했다. 한숨을 내쉬며 이제 어디로 갈 거냐고 묻자, 레비탄은 기왕 백화점에 온 김에 자신들의 옷이나 사겠다고 주장했다.

    ​

    “나중에 오면 귀찮으니깡! 온 김에 우리 것도 쇼핑하장!”

    “오- 역시 레비땅! 똑똑한데?”

    ​

    “으아…….”

    ​

    그렇게 여성들의 쇼핑을 구경하고, 내 눈으로는 대체 뭐가 다른 건지 일절 구분할 수 없는 옷을 비교하며 칭찬하고, 아까 갔었던 가게에 또 다시 들려 내려놓았던 옷을 또 다시 입어보고, 발에 땀띠가 나도록 빨빨 돌아다니고…….

    ​

    다시금 몇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풀려난 나는 카페 테이블에 축 늘어졌다. 남들이 보면 눈이 돌아갈 만한 미녀 둘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지만 전혀 좋은 시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결코 아니었다.

    ​

    “레비땅 덕분에 오랜만에 쇼핑도 하고 좋네. 얘는 영 연구실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니까?”

    “그랭? 그럼 내일도 올깡?”

    “그럴까?”

    “……내일도?”

    “응! 내 휴가는 일주일이니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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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레비탄의 휴가가 일주일이나 된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 지옥 같은 일정을 내일도 똑같이 겪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절망했다.

    ​

    마음 같아서는 어디 아파서 쓰러지고 싶을 지경…… 그러나 그럴 수도 없다. 꾀병이라도 부렸다간 보스가 얼굴에 흉터 가득한 뒷세계 의사를 다시금 불러들일 것이요, 한달음에 달려온 의사는 내가 꾀병을 부린다는 걸 곧바로 눈치챌 것이다.

    ​

    “하아…….”

    “반갑습니다.”

    ​

    그렇게 한숨만 주구장창 내뱉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모습을 나타낸 사내가 대뜸 제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자신의 원래 자리가 그곳이라는 것마냥 자연스러웠기에, 비라와 레비탄의 반응도 한 수 늦었다.

    ​

    “─에이트!”

    “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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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라가 나를 끌어안고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레비탄이 눈앞에 앉은 사내를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안경 쓴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레비탄의 발차기를 막아낸 뒤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당장 저 정장 입은 사내가 품속에서 권총이라도 꺼내들까 나도 시계를 향해 손을 내뻗는 가운데─ 사내는 품속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

    【오메가 인더스트리】

    「이사 뮤」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오메가 인더스트리?”

    ​

    레비탄이 그 이름을 보고 흠칫 놀라는 가운데, 나는 뮤가 건넨 명함을 받은 뒤 위장으로 쓰이는 명함을 꺼내들었다. 

    ​

    [만물수리점]

    라에몬

    T.0X-XXXX-XXXX

    ​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에이트 씨.”

    “……그게 누구죠?”

    “숨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알고 왔으니까요. 당신이 환상의 연주자 라에몬임과 동시에 이블스 기업의 과학자라는 사실까지.”

    ​

    뮤는 그리 말하며 제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안경에 반사된 태양빛이 반짝이며 그의 얼굴을 빛나게 만들었다.

    태양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뮤는 제게 제안했다.

    ​

    “─에이트 씨. 저희 오메가 인더스트리로 오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스카우트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저희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야! 에이트!”

    ​

    내 말에 비라가 기겁하며 노려보는 가운데,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비라를 바라보았다. 내가 뭐 넘어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몸값 정도는 들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원래 자신의 몸값을 평가받는 건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이다.

    ​

    그리고 물론 나 또한 직장인이었다. 내가 인의를 져버리고 오메가 인더스트리로 훌쩍 떠나버리지는 않겠지만 거기서 제시한 금액을 듣고 보스에게 으스댈 수는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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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긍정적인 태도를 확인한 뮤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금액을 적은 뒤 내게 내밀었다.

    ​

    화면 속 금액을 확인한 나는 표정을 굳혔다.

    뮤는 그 얼굴을 보고 충격받은 것이라 생각했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

    “어떠신가요. 지금 받는 대우보다는 훨씬─.”

    “─부족한데요.”

    “……예?”

    ​

    놀랍게도.

    뮤가 업계 최고의 대우라며 제시한 금액은 현재 내가 받는 금액과는 자릿수 자체가 달랐다.

    그것도 몇 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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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The Evil Scientist is Too Competent

Status: Ongoing
I became a scientist for an evil organization. …But I’m too compe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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