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

   아그라는 소울 아카데미 세계관 속 악신이다.

   

   소울 아카데미에 던전이 있는 이유도 이 녀석 때문이고 몬스터가 나타난 이유도 이 녀석 때문이고 어쨌건 대개 안 좋은 것이 있다 싶으면 다 이 녀석의 잘못이 되는 영국 같은 녀석이지.

   

   이런 녀석이 뿌려대는 아그라의 저주라는 건 무엇이냐.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질투다.

   

   자신이 미워하고 또 증오하는 아르마디의 사랑을 받는 자를 향한 질투.

   

   아그라의 저주는 아르다미의 총애를 받는 자에게 내려온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주인이 내린 총애를 갉아먹다가 그 총애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 그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 간다.

   

   만약 이 아이가 정말로 아그라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면 평범한 수단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

   

   악신의 저주라는 게 어디 쉽게 해주되는 것이겠나.

   

   아르마디의 자비 숙련도를 끝까지 높이면 악신의 저주도 해제할 수 있겠지만 그건 너무도 먼 미래의 일이다.

   

   이 아이는 결코 그 때까지 버티지 못하리라.

   

   지금 내겐 이 아이를 치료할 방법은 있다.

   

   내 품 안에는 치유의 기적이 담긴 물약이 있으니까.

   

   지난 번 할배가 날 미노타우르스로 뭉개고 나서 선심 쓰듯이 준 이 물약은 시련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여전히 내 품 안에 있었다.

   

   이 물약의 효과는 모든 상태이상의 해제와 체력 50%의 즉각적인 회복.

   

   모든 상태이상이라는 것엔 아그라의 저주도 들어있다.

   

   실제 게임 속에서도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는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었으니 분명 이 아이를 치유할 수 있겠지.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는 이유는 물약이 아깝기 때문은 아니었다.

   

   물론 이 물약이 쓸 데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딴 소모품 하나와 사람 목숨 중에서 더 귀중한 게 무엇이냐 물으면 당연히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왜 망설이느냐.

   

   아그라의 저주를 할 경우 발생하는 히든 퀘스트 때문이었다.

   

   히든 퀘스트 ‘아그라의 저주’는 유저가 처음으로 아그라의 저주를 해제했을 때 자동으로 얻어지는 퀘스트다.

   

   내용 자체는 별 대단치 않다.

   

   여러 지역에서 아그라의 저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치료해 달라는 것뿐이니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이 히든 퀘스트를 받는 순간 아그라가 유저를 주시한다는 점이다.

   

   악신답게 치졸한 아그라는 자신의 저주를 없애버린 인간을 괄시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던전에 들어올 때마다 여러 위험요소들을 추가해서 유저를 괴롭히지.

   

   괜히 소울 아카데미 공략에서 초반부에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충분히 준비가 된 중후반부에야 리스크가 있건 없건 던전을 공략할 수 있지만 초반에는 다르다.

   

   상대적으로 준비가 덜 된 초반에 아그라의 저주를 받았다간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 버린다.

   

   게임을 할 때야 아그라의 저주를 받던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위협이 있더라도 게임을 클리어 할 자신이 내게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곳은 현실이고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그라의 저주를 받아도 괜찮은 걸까?

   

   미노타우르스 하나를 못 잡아서 빌빌거리는 내가?

   

   자비를 받은 덕에 편안한 숨을 쉬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얘를 죽게 내버려 둘 거야?

   

   그래. 좋게 생각하자.

   

   어쨌거나 평판작 하나는 제대로 되잖아.

   

   아그라의 저주를 해소한다는 건 세상에서 악신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주신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이행하고 있는 일.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했다고 교회에 보고하게 되면 교회와의 관계가 급격하게 좋아진다.

   

   주신 교회가 어디인가! 현 대륙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종교다!

   

   이 곳과의 사이가 좋아지면 자연스레 대륙 전체에서 평판이 높아지게 된다!

   

   아그라의 저주 네 개를 해제할 즈음이면 대륙 어디를 가더라도 영웅 취급을 받을 수 있지!

   

   지금 루시의 악명이 악명인지라 아그라의 저주 한 개를 해소한 걸 가지고 그 모든 걸 뒤엎을 수는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융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공적이 될 가능성은 확연히 줄 것이다.

   

   그래. 던전이 어려워져봐야 던전이지.

   

   플레이 타임 만 사천 시간의 고인물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던전의 난이도를 대가로 평판을 올릴 수 있다면 이득이다.

   

   그리 결심을 한 나는 품 안에서 물약 병을 꺼내서 여성에게 건네주었다.

   

   “영애님. 이건?”

   

   ‘저기…’

   “허접 평민. 이걸 이 잔챙이한테 먹여.”

   

   “이런 귀해 보이는 물약을요?”

   

   ‘네…’

   “그래. 너희 따위에게 쓰기엔 아까운 물건이지만 특별히 사용해 줄게. 고마운 줄 알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영애님!”

   

   내게서 물약을 가져간 여성이 조심스럽게 남자아이에게 물약을 먹인다.

   

   이전에 자비를 받아 상태가 한결 나아진 덕분일까.

   

   아이는 여성이 주는 대로 곧잘 물약을 받아 먹었다. 그렇게 아이가 모든 물약을 들이킨 순간에.

   

   “…엄마?”

   

   아이가 눈을 떴다.

   

   아그라의 저주가 해주된 것이다.

   

   “칠리!”

   

   자신을 끌어안고 엉엉 우는 여성의 모습에 아이가 당혹스러운 듯 뒤에 있는 우리를 쳐다봤다.

   

   허나 나는 물론이고 칼이나 시녀도 굳이 아이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저 웃어주었을 뿐.

   

   나는 아이가 여성에게 왜 그러냐 묻는 동안에 내 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처음으로 아그라의 저주를 해주하셨습니다.]

   [퀘스트가 해금됩니다]

   [‘아그라의 저주’]

   [악신 아그라는 아르마디의 총애를 받는 자를 해하기 위해…]

   [각지에서 아그라의 저주를 받고 있는 자들을 치유하십시오.]

   [보상 : ???]

   

   역시나 아이를 괴롭히던 건 아그라의 저주였던 건가.

   

   그럼 메시지가 몇 개 더 나오겠네.

   

   [아그라가 당신의 존재를 인지합니다.]

   

   아. 제기랄.

   

   [아그라는 자신의 저주를 해주한 당신을 주시할 것입니다.]

   

   이럴 줄 알고 한 일이지만 직접 메시지로 보게 되니 숨이 턱하고 막히는 느낌이었다.

   

   하아. 이렇게 하드 모드 진입을 하게 되다니.

   

   이게 썩은물의 숙명이라는 건가.

   

   내가 좀 더 비정하고 멘탈 강한 인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 띠링!

   

   메시지 창을 보고 자책을 하던 중에 또 다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아그라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아르마디가 당신의 위업에 관심을 가집니다.]

   

   …네? 누구요?

   

   제가 아는 아르마디씨는 그 주신 되시는 분 밖에 없는데 동일인이신가요?

   

   [아르마디가 아그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신의 위업을 칭송합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아르마디의 자비가 지닌 숙련도가 높아집니다.]

   [루엘의 메이스에 잠들어있던 기능이 일부 해제됩니다.]

   

   메이스에 잠들어 있던 기능?

   

   이 메시지 게임에선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데?!

   

   아니 애초에 게임 속에서는 아르마디가 직접 등장한 적 자체가 없어!

   

   악신은 필사적으로 활동하는 데 왜 주신이란 놈은 아무것도 안하냐고 욕을 먹는 게 소울아카 커뮤의 레퍼토리였단 말이야!

   

   업데이트라는 게 몇 년 동안 없었던 게임에 내가 몰랐던 요소가 있었다는 거야?!

   

   에바지! 그럴 리 없어!

   

   소울 아카데미 고인물인 내가 모르는 요소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이건 분명 게임이 현실이 되면서 생긴 요소 일 거야!

   

   그래야만 해!

   

   <흠?>

   

   고인물로써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어 현실을 부정하던 중에 진중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귀를 타고서 전해지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머리를 뚫고 뇌에 직접 전달이 되는 듯한 목소리였다.

   

   <벌써 나를 깨울 줄이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그 목소리는 분명 얼마 전에 시련 속에서 들었던 할배의 목소리였다.

   

   왜.

   

   또.

   

   내가 모르는 요소가 모습을 드러낸 거지?!

   

   당신은 또 뭔데!

   

   설마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게 이런 이야기였어?

   

   메이스에 할배가 깃들어 있던 거야?!

   

   루엘의 메이스 설명에 ‘루엘의 영혼이 서려 있는 것 같습니다.’ 라는 문장이 있긴 했지만 그게 뒷설정이었다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연속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나를 찾아오니 도저히 냉정할 수가 없었다.

   

   씨발.

   

   이런 설정이 있었으면 DLC로 내면 되잖아!

   

   개같은 제작사 새끼들아!

   

   *

   

   ‘그러니까…’

   “그러니까 할배의 영혼이 이 메이스 안에 잠들어 있었다는 소리야?”

   

   아이가 있는 집에서 빠져나와 숙소로 온 나는 루엘의 메이스를 향해 말을 걸었다.

   

   저택의 시녀가 보았다면 아가씨가 미쳤어요! 라고 외칠 풍경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메이스에서 대답이 돌아왔으니까.

   

   <그렇다. 소유자의 힘이 충분할 정도로 강해지면 깨어날 예정이었다.>

   

   소울 아카데미 업적작을 100% 완료하고, 수많은 이스터에그를 다 찾아낸 데다가, 설정집까지 사서 찾아 본 나지만 이건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였다.

   

   영혼이 있단 문구는 있어도 인격이 있단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단 말이다!

   

   그치만 이 할배의 말이 사실이라면 둔기 스킬의 숙련도 증가 같은 부가기능이 체감되지 않았던 이유가 납득이 된다.

   

   루엘의 메이스에 그런 부가 기능이 붙어 있었던 건 이 할배가 옆에서 조언을 헀기 때문이겠지.

   

   성격 더럽고 치졸하고 꼰대 같은 변태 할배지만 그래도 이 인간은 영웅이라 불렸던 성기사다.

   

   이 사람이 옆에서 조언을 해준다면 둔기를 더 잘 다룰 수 있게 되는 게 당연하지.

   

   여태 그 능력을 체감할 수 없었던 건 이 할배가 없었기 때문일 테고.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 같다마는 이 또한 신의 인도겠지.>

   

   뻔뻔스레 말을 하는 할배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열불이 차올랐다.

   

   ‘할아버지. 저한테 할 말 없어요?’

   “꼰대 할배. 나한테 할 말 없어?”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건지 모르겠구나.>

   

   ‘수호의 시련에서 미노타우르스 불러낸 거요.’

   “수호의 시련에서 소대가리를 불러낸 걸 말하는 거야. 설마 노망이 나서 잊어버린 거 아니지?”

   

   <그 일을 말하는 것이더냐? 그는 그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할배가 말하길 수호의 시련에서 고블린을 상대하는 나는 그리 고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단 모양이다.

   

   고블린들로는  내가 지닌 수호의 마음을 시험할 수 없다 판단한 그는 미노타우르스를 불러냈다.

   

   내게 넘어설 수 없는 역경을 선사해 나를 시험하려 한 것이다.

   

   <그를 보고 적합하다 판단해 그대에게 다음 시련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지.>

   

   ‘제한시간이…’

   “제한시간 때문에 소대가리가 사라진 거 아니었어?”

   

   <제한시간?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어. 음. 그러니까 사실 수호의 시련에 제한시간 같은 건 없었다는 거구나?

   

   게임적인 허용 뭐 그런 거였던 거야?

   

   이건 현실이 되면서 바뀐 요소라 치고 넘어갈 수 있어.

   

   근데 그렇단 소리는 할배의 마음에 못 들었다면 미노타우르스한테 뒈졌을 됐을 거란 소리잖아.

   

   아. 이 빌어먹을 할배한테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해야 하지?

   

   내 눈을 보고서 무언가를 눈치 챈 걸까. 할배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진심이다!>

   

   아 그러십니까?

   

   <신의 아래에 선 성기사가 남을 죽일 리 없잖나! 난 그대를 몰아붙이려 했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할배. 그 변명을 들어주도록 하지요.

   

   하지만 메스가키인 루시는 다르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하핫! 내가 저 변태 할배를 용서할 리가 없잖아?♡

   

   저 할배가 울부짖으면서 미안해~ 미안해~ 말하는 걸 꼭 보고 싶단 말야♡

   

   이 빌어먹을 할배를 어떻게 조지면 좋으려나♡

   

   내가 할배가 깃든 메이스를 쥐고서 콧노래를 부르자 할배가 다급하게 목소리를 냈다.

   

   <그. 그보다! 여아야! 너는 왜 속으로 말하는 것과 겉으로 말하는 것이 다른 것이더냐!>

   

   ‘…네?’

   “…할배. 다시 말해봐.”

   

   내가 멈춰선 것을 보고 희망을 느낀 듯 할배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속으로는 정중히 말하면서 왜 겉으로는 꼬맹이 같은 언행을 하는 것이냐 묻고 있는 것이다!>

   

   잠깐만. 할배. 내 속마음이 들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인데요.

늦가을 모기는 메스가키 같지 않나요?

주제도 모르고 옆에서 위이잉대다가 전기 파리채에 참교육을 당하잖아요.

요즘 메스가키 소설을 써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제가 잘 때마다 메스가키들이 주변에 몰려다니네요.

모기 때문에 너무 꼴받아서 한 개소리였습니다. 흘려 들어주세요.

—–

파페포포님 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더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