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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시즐리 에파니아.

     

   1황자가 결국 시그린의 손에 죽고, 그녀가 아서를 황제 자리에 올리기 직전.

   시즐리는 황제 권력의 상징인 백룡옥새(白龍玉璽)를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 숨긴 뒤 자살했다.

     

   백룡옥새를 지니지 못한 자는 황제에 오르지 못한다는 오랜 불문율.

   그 결과 백룡옥새를 쥐지 못한 시그린과 아서는 제국을 한점으로 모으지 못했다.

     

   그들은 어영부영 황제에 올랐지만, 허울뿐인 황제일 뿐.

   제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란을 끝끝내 잡지 못했다.

     

   시즐리가 벌인 사건 하나로 인해서 말이다.

     

   ‘그 방해꾼을 미리 없애려는 거다.’

     

   시즐리는 두뇌 자체가 남들과는 다르다.

   내로라하는 천재들도 그녀 앞에서는 한 수 접는 일이 빈번했으니까.

     

   그러니 시그린은 설령 자신이 백룡옥새를 먼저 쥐게 되더라도 어떤 식이든 시즐리가 방해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 분명했다.

   시즐리는 아서가 황제에 오르는 것을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을 테니까.

     

   ‘밤까마귀를 이용해 시즐리를 죽이게 하고, 그 죄를 밤까마귀를 쥐었다는 2황자에게 뒤집어씌워 둘 다 동시에 끝장낼 작정이군.’

     

   크라슈는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짐을 느꼈다.

     

   ‘이복형을 내 손으로 죽인 내가 할 말은 아니다만.’

     

   시그린이 얼마나 가족에 관해 손속이 없는지는 알 수 있었다.

     

   “뭐 그리 오래 생각하느냐?”

     

   붕대남 머리 위에 올라탄 크림슨가든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어왔다.

   그걸 본 크라슈는 기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상황은 대충 파악했다.

   그리고 왜 이번 무도 대회에 밤까마귀가 참가했는지 또한 말이다.

     

   2황자는 자신이 밤까마귀를 쥐고 있다며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의 대상은 무도 대회가 딱 맞았겠지.

     

   그는 밤까마귀가 이번 무도 대회에서 1등 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게 전부 시그린의 계략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리고 시그린의 칼날은 그대로 시즐리와 2황자를 동시에 가르겠지.

     

   “크림.”

   “그렇게 부르지 말라 했을 텐데.”

     

   크림슨가든이 바로 부리로 쪼려 들자 크라슈는 그녀의 부리를 가볍게 피했다.

     

   “도움 좀 더 받고 싶은데.”

   “제자로 키워주기까지 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도움까지 바라다니 염치가 너무 없지않느냐?”

   “염치고 자시고, 이건 내가 강해지는 거랑 연관 있어.”

     

   시그린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녀는 라헬른 아카데미를 가기 전에 어떻게든 1황자와 2황자를 끌어 내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만 라헬른 아카데미 졸업 당시 병으로 죽을 황제 다음으로 아서가 수월하게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노리는 건 제국의 황제.

   그리고 크라슈는 아서가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게 둘 생각이 없었다.

     

   ‘블랙 후드는 기본적으로 대상의 자존감을 기준으로 다이얼을 만든다.’

     

   그러한 자존감이 높은 이일수록 다이얼은 견고하며 쉽게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자존감이 결여될 수록 다이얼은 헐거워진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지닌 것의 가치를 높이려면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야 하니까.

     

   ‘그러니 시그린의 목적을 이루게 둬서는 안 돼.’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그녀가 가진 스킬은 반드시 훔쳐 와야만 한다.

   그러니 그걸 위해서라도 그녀가 황제에 오르게 둘 순 없었다.

     

   ‘그리고 그 망할 여자가 황제 자리에 오르면 제국은 십중팔구 망해.’

     

   검에는 타고난 재능을 가진 시그린이지만 그녀의 머리는 황제의 그릇에 못 미친다.

   애초에 사려분별을 못 하고, 아서를 황제의 자리에 냉큼 올리려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제국의 멸망은 곧 세계 침식의 범람이다.

   시그린이 황제가 되는 것만은 반드시 막고 싶었다.

     

   “스킬을 빼앗고 싶은 녀석의 일을 미리 망쳐 놔야 하거든.”

     

   크림슨가든을 그런 크라슈를 보곤 쯧쯧 혀를 찼다.

     

   “하여튼 회귀자라는 것들은 알량한 미래 지식으로 움직이려 하지.”

     

   아쉽게도 진짜 회귀자는 따로 있지만 말이다.

     

   “그런 네놈을 돕기로 한 게 나이니. 알았다. 이번만 도와주마.”

     

   다행히 크림슨가든은 선뜻 도와주겠다고 말하였다.

     

   “이 녀석은 어떻게 할 거냐?”

     

   크림슨가든이 부리로 붕대남을 툭툭 치며 묻자 크라슈는 몸을 돌렸다.

     

   “냅둬. 이제 딱히 필요 없으니까.”

     

   상황은 다 파악했다.

   시그린은 크라슈가 가장 잘 아는 만큼, 그보다 상황을 더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흐음,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종으로라도 심어두마.”

     

   그러자 크림슨가든이 붕대남의 머리를 팍팍 밟았다.

   잠시 후 붕대 사이로 검은색 별 하나가 새겨진 게 보였다.

     

   “가거라.”

     

   그러곤 크림슨가든이 명령하자 붕대남은 바로 몸을 돌려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붕대남을 보낸 크림슨가든이 터벅터벅 크라슈 앞으로 다가왔다.

     

   “간단해. 본선에 숨어든 밤 까마귀를 찾아야겠지.”

     

   그걸 위해 밤 까마귀를 끌어낼 행동 좀 해야겠다.

   그리고 마침 딱 잘됐다.

     

   “크림 너랑 이 얼굴 좀 써먹어야겠다.”

     

   어디 누가 진짜 까마귀인지 내기해 보자고.

     

     

   * * *

     

     

   시즐리는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최근 그녀가 즐거운 이유는 한 명 덕분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스타론에서 온 아이.

   크라드.

     

   자신의 돌발 행동에 그가 짜증을 부릴 때마다 시즐리는 웃겨 죽으려 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말괄량이 같은 돌발 행동에 주위는 난감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제국의 황녀.

   그녀의 장난에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그녀의 수행원인 세라 정도였다.

     

   반대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장난을 쳐봤자 그건 어디까지나 정체를 숨겼기 때문임을 안다.

     

   그러니 시즐리에게 크라드는 재밌는 소재거리였다.

   그는 분명 자신의 정체를 안다.

     

   그런 주제에 단 한 번도 황녀로서 취급한 적 없다.

   그게 참으로 흥미로웠다.

     

   어떻게 이런 고얀 녀석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기분 말이다.

     

   실눈처럼 감긴 눈 사이로 종종 보이는 이채는 그를 14살의 소년으로 보이지 않게 하였다.

   실제로 시즐리는 그가 본래 나이를 숨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부분 또한 재밌었다.

   애늙은이 같은 것이 자신과 딱 닮지 않았는가.

     

   시즐리는 그가 겉모습을 속이고 있다고까지 판단을 내렸다.

   자신도 모르는 분장을 해낸 건 묘했으나 그녀의 압도적 관찰력은 그것을 꿰뚫어 보게 하였다.

     

   분명 이름도 가명이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무도 대회 말고는 별 관심 없다는 걸 그녀는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 소년이 그리 마음에 드십니까?”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시즐리에게 세라가 질문을 해왔다.

   그 질문을 듣고, 시즐리는 피식하니 웃었다.

     

   “이성으로 흥미가 있냐고 묻는 게냐?”

   “4황녀 님도 또래 남성에게 끌릴 수는 있는 법이죠.”

     

   시즐리는 자기 턱을 매만졌다.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남성과 여성이 끌리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 종족 번식을 위해서라도 이맘때 호르몬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도 맞고. 특히 몸이 약한 나는 조금이라도 자손을 남기기 위해 오히려 필사적이어야 할 수도 있어.”

   “에둘러 말하지 마시고요.”

   “딱히 그런 쪽에 관심은 없다. 나는 그가 동성이었어도 지금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테니까.”

     

   시즐리는 단언했다.

     

   “나는 시즐리 에파니아다. 제국의 4황녀. 설령 그런 마음이 든다 한들 내가 쥐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시즐리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4황녀의 위치란 그런 거다.”

     

   그런 시즐리를 보고, 세라는 애석한 마음을 가졌다.

   그녀에게 있어서 황녀란 족쇄밖에 되지 못했다.

     

   뛰어난 머리가 있으면 무얼 하는가.

   신은 그녀에게 약한 몸과 4황녀라는 위치를 주어 버렸는데.

     

   그녀는 앞으로 영원히 말괄량이 같은 삶 말고는 삶을 영위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단지, 그 방법을 택하는 순간 시즐리는 그 머리를 이용해 주위 모든 사람을 해쳐야만 할 것이다.

   그게 싫어 그녀는 이 자리에 머물며 언제나 말괄량이처럼 살아갈 뿐이었다.

     

   “오, 왔구나.”

     

   그러는 순간 시즐리가 밖에서 걸어오는 크라슈를 발견했다.

     

   “예선전에서는 아주 거하게 해줬다지? 어디 칭찬 좀 퍼부으러 가보자 구나.”

     

   시즐리는 신이 난 표정으로 1층을 향해 내려갔다.

   세라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자연스럽게 모습을 감출 뿐이었다.

     

   계단을 뛰어 내려온 시즐리가 문 앞에 탁하니 섰다.

   크라슈가 들어오는 즉시 그를 골려줄 속셈이었다.

     

   그렇게 끼익하니 문이 열린 순간.

   시즐리의 입이 갑자기 멈췄다.

     

   자신을 바라보는 크라슈의 얼굴에서 다른 감정의 편린을 읽었기 때문이다.

     

   “무어냐.”

     

   그래서인지 본래의 말투가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네가 갑자기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느냐?”

     

   시즐리가 질문을 던졌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침부터 짜증만 부리던 크라슈의 눈에 대뜸 동정이라는 감정이 깃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감정은 세라에게서 종종 보이던 것이었지 그가 가질만한 게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기분 나빴다.

   그가 자신에 관해 어떻게 아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에게서 자신이 동정받을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크라슈는 그렇게 말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너도 참 기구한 인생을 사는구나 싶어질 뿐이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시즐리가 그의 뒤를 눈으로 쫓게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네 몸은 네가 지켜라. 그것만 기억해.”

     

   의미 모를 말을 남긴 채 안으로 가버린 그를 보고, 시즐리는 멀뚱히 서 있었다.

     

   “세라.”

   “예.”

     

   그러곤 그녀의 부름을 따라 세라가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시즐리의 눈동자는 어느 때 보다 차분하게 식어 있었다.

     

   종종 그녀가 황녀로서의 본분을 보여줄 때 나오는 모습이었기에 세라는 즉시 부복 자세를 취했다.

     

   “네가 황실에서 정보를 전해주는 이.”

     

   그녀는 그리 말하고 세라를 돌아보았다.

     

   “정말로 믿을만한 이이냐?”

     

   아무리 명석한 두뇌를 지녔다 한들 시즐리도 두 귀로 들어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황실에서 그녀는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세라에게서 듣는 이야기로 그동안 황실이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하던 그녀였기의 질문하자 세라가 고개 숙였다.

     

   “다시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부탁하마.”

     

   시즐리는 그리 말하고, 다시금 크라슈가 들어간 방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 소년이 어디서 무슨 정보를 물어온 걸까.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마저 그는 볼 수 있는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번 무도 대회.

   꽤나 큰 파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 * *

     

     

   무도 대회 예선이 끝나고 본선이 다가온 당일.

   그 당일에는 최근 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번 무도 대회 소년 부문에 미스터리 취급받던 밤까마귀가 참가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이들은 하나 같이 흥미를 보였다.

     

   밤까마귀는 늘 한 번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흥밋거리였다.

   사람이란 비밀에 부쳐져 있는 단체로 이야기를 부풀리는 걸 재밌어하니 말이다.

     

   그 때문인지 이번 본선을 보러온 구경꾼들은 베일에 감춰져 있던 밤 까마귀의 소문에 무척이나 궁금증을 보였다.

     

   과연, 소문이 사실일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진행된 본선.

   소년 부문에 유달리 사람이 모인 상황 속에서 본선은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고작해야 15살 이하.

   아이들의 수준은 어른에 비해 한참 모자란 게 현실이다.

     

   본선까지 올라왔음에도 허점이 많고, 실수가 잦았다.

   누군가에게는 재밌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화려한 어른 부문보다 재미가 적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차츰 밤 까마귀는 역시 소문일 뿐이었나라고 생각할 때쯤.

     

   “32강전 참가자 크라드!”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어깨 위에 까마귀였다.

   그 까마귀를 본 순간 사람들은 당연히 밤까마귀를 공통적으로 떠올렸다.

     

   밤까마귀의 상징이야말로 까마귀였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소년의 외형 또한 묘한 분위기를 연상케 했다.

     

   검은색 일색인 복장은 그를 제국의 뒷면 쪽 사람 느낌을 들게 했고.

   특히 감긴 실눈은 속내를 잃을 수 없게 만들어 더더욱 의심을 들게 하였다.

     

   “진짠가?”

   “진짜인 거 같아.”

   “꿍꿍이 있는 얼굴 봐봐. 무조건이야.”

     

   구경꾼들의 머릿속에 일순간 생각이 일치했다.

     

   저 아이다.

   저 아이가 바로 그 밤 까마귀다!

     

   “32강전 참가자 가르다!”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때.

   그 상대가 걸어 나왔다.

     

   상당히 단련된 몸이 엿보이는 그는 대검 한 자루를 쥔 채 크라슈를 노려보고 있었다.

     

   “까마귀, 네 녀석이 그 유명한 밤 까마귀냐.”

     

   가르다의 질문을 듣고 크라슈는 어깨만을 으쓱였다.

   부정도 그렇다고 긍정도 하지 않는 모습.

     

   그 의미심장한 태도가 더더욱 그의 실체를 의심케 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 밤 까마귀야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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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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