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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EP.27

     

   여느 판타지 속 이야기를 보면 꼭 등장하는 몇몇 직업들이 존재한다.

     

   궁정 마법사라든가 신관이라든가 근위기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보통 왕의 옆을 지키는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갑자기 밸런스를 파괴하는 간지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나와 1:1로 대치하고 있는 폰 그레고리는 딱 그런 부류에 속하는 전형적인 왕실기사였다.

     

   핏.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사람과 싸움을 많이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어야 상대가 어디로 튈지, 어떤 공격을 감행할지 추측이 가능하다는 기본적인 상식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상식 밖의 무언가’였다.

     

   카아앙!

     

   “이런 미친…!”

     

   움직이는 게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분명 정면에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폰은 나의 코앞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그 찰나의 순간 발동한 ‘빠른 납득(C-)’이 기사의 공격 루트를 추측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었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오른쪽 어깨가 뒤로 빠진다. 그의 검이 오른쪽으로 빠지고 물 흐르듯 동작이 연결되며 앞으로 내질러진다.

     

   가로로 그어진 검을 막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검이 나의 턱을 노리고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오르고 검을 눈으로 따라가려니 발길질이 연결된다.

     

   ‘병사들이 썼던 검술이다.’

     

   그나마 내가 폰의 검을 피할 수 있었던 까닭이 이것인 것 같았다.

   연무장에서 싸웠던 병사들은 모두 폰에게 검술을 배웠던 것인지 비슷한 검술을 구사했다.

     

   가로 베기, 올려치기, 발길질, 달려들어 찌르기.

     

   하지만 말이 비슷한 검술이라는 것이지 그 숙련도나 수준에서 폰은 병사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못 피할 정도는 아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그의 동선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가 지친 것이 아니다. 내가 빠르게 그의 검술을 적응해 버린 것뿐.

     

   챙! 채챙!

     

   칼이 맞부딪히는 곳마다 격렬한 불꽃이 허공을 수놓는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나의 검이 그의 검을 따라간다. 그의 어깨를 본다. 그의 발을 본다.

     

   그의 동선과 검로가 나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 나보다 능력치는 낮다.’

     

   근력, 민첩, 체력 등.

   지금 이곳이 그렇게 어려운 구간이 아닌 탑의 1층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처음에 보인 신들린 듯한 그의 움직임은 단조롭고 반복적인 정석으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그가 내지른 검의 방향을 차근차근 분석했다.

   그리고 결국 그 계산이 어느 정도에 도달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반격을 시도했다.

     

   “꺄악!”

     

   옆에서 나와 폰의 싸움을 보던 한가민이 비명을 질렀다.

     

   나의 검이 제대로 된 한 방을 위해 무방비 상태에 노출됐다. 폰의 검이 나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었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앞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의 검을 피했다.

     

   폰이 사용하는 검술의 패턴을 이해한 나의 승리.

   수십 번의 공격을 한 폰과 그것을 죽어라 막아 내던 나의 싸움은 단 한 번의 공격을 무효타로 만든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서걱!

     

   나의 공격이 그의 팔에 기다란 검상을 만들며 어깨를 깊게 베어냈다.

   절단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인간인 이상 저런 상처를 입은 손으로 검을 들지는 못할 것이다.

     

   “윽…!”

     

   그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떨어지는 그의 검을 발로 걷어차 멀리 보내 버렸고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까지만 하죠. 살인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헛소리! 왕을 시해한 자가 감히 불살을 입에 담는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건 알겠지만 저는 당신의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당신 멋대로 넘겨짚은 거니까 팔에 생긴 상처는 무고한 사람을 죽일 뻔한 업보라고 생각하세요.”

     

   나의 말에 폰의 표정이 굳어진다.

   하지만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것인지 기사는 그 자리 그대로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 너머에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해졌군요.”

     

   근위기사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궁천호가 나에게 다가오며 살며시 운을 띄웠고 나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전투 능력으로 보나 지금의 상황으로 보나 그는 확실히 탑 1층의 주요 인물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임무가 완료된 것은 아니었으니 그가 임무의 마지막 목표가 아니라는 것 또한 확실해졌다.

     

   “빨리 움직이죠.”

     

   나는 폰과의 전투로 긴장된 몸을 진정시키며 연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끼익.

     

   “읍… 이게 무슨 냄새죠?”

     

   문이 열리자 한가민이 소매를 들어 자신의 코를 슬쩍 가렸다.

     

   퀴퀴한 약품 냄새가 가득한 방.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 도구들과 구석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약품 병들이 시선에 걸렸다.

     

   “이곳이 맞습니까?”

     

   주변을 둘러보던 남궁천호가 이곳이 왕궁의 가장 높은 사람이 거처하던 공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마른기침을 하며 의문을 표한다.

     

   “확실합니다.”

     

   방의 끝자락, 가장 구석진 자리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푸른빛 보석 하나가 이곳에 내가 환상 속에서 보던 그 마법사의 연구실임을 증명하고 있다.

     

   나는 뒤에 있는 세 사람을 문가에 두고는 조심스레 지팡이에서 얻은 메모리얼 피스를 꺼내 들었다.

     

   ‘이제…’

     

   이제 이것만 가져다 대면 1층의 이야기가 끝날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했던 고생들.

   세뇌를 당하고 쫓기고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싸우고… 튜토리얼 때와는 결이 다른 고생을 참 많이도 했다.

     

   보석의 푸른빛이 아른거리며 사람들의 눈동자를 비춘다.

   그리고 보석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잠…시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장막 뒤의 감시자’가 희미하게 웃습니다.]

   [‘전쟁과 싸움 밖에 모르는 자’가 머리가 아프다며 짜증을 냅니다.]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별’이 현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상황이 바뀌었다.

   새로운 임무가 떨어지고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를 찾기 위해 죽어라 뛰어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은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환상 속에서 나는 정말 수많은 아이들이 이곳 성으로 잡혀 오는 것을 봤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이었고 그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장성하여 지금쯤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 뻔했다.

     

   ‘그때……’

     

   나의 머릿속에 성에 들어오고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붉은 눈과 금발 머리.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모습을 한 채,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눈치챌 때쯤 나 또한 한 아이의 손에 이끌려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저주의 매개체를 박살내고 방을 빠져나온 나는 한가민의 방을 찾아가 자연스럽게 상황에 녹아들었다.

     

   아이를 붙잡아 정보를 캐보자는 생각. 평소의 나였다면 컨트롤도 힘든 고작 10살 남짓한 꼬맹이를 잡아 뭔가를 해 보자는 리스크가 가득한 행동을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그랬다…’

     

   나는 이따금씩 아이의 붉은 눈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저 이 아이가 피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아이를 풀어줬다.

     

   아이를 그냥 따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연무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의 환상을 봤었다. 그때 모두가 수면에 빠졌을 때 우리를 깨운 것도 붉은 눈의 꼬마였다.

     

   “쯧.”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가민과 남궁천호의 사이에 서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붉은 눈의 금발 꼬마… ‘로랑 사가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으로 우리를 이끈 한 존재.

   가끔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존재감이 없으며 동시에 우리가 마법사의 연구실까지 오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존재.

     

   [사고회로의 과부하로 ‘빠른 납득(C-)’이 일시적으로 성장합니다.]

   [상태이상 ‘환상(B+)’이 무력화됩니다.]

     

   허름하기만 하던 방의 퀴퀴한 냄새가 서서히 흩어졌고 주변에 즐비하던 약들과 수많은 마법도구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천호 씨, 여기로 잠시만 와보시겠어요? 가민이도.”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나의 곁으로 불렀다.

   그들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 찼다. 그리고 그들이 내 옆으로 다가왔을 때 나는 메모리얼 피스를 바닥에 버리고는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그러고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로랑 사가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연구실 내부를 메아리쳤다.

     

   나의 검을 맨손으로 막아 낸 채, 조소를 띤 존재, 눈앞에 있던 아이의 모습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키는 나와 비슷해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단발이었던 금빛 머리는 허리춤까지 늘어나 신비로운 모습을 자아냈다.

     

   – 알아챘구나? 대단하네?

     

   그녀의 입이 열리며 머리를 울리는 익숙하다 못해 불쾌감이 가득한 음성이 나의 귓가를 맴돌았다.

     

   “네가 역병이었구나?”

     

   – 어머, 역병이라니?

     

   나의 말에 붉은 눈의 여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 성좌님이라고 불러야지 애송아.

     

   처음으로 만난 성좌라고 부르는 존재.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성좌라는 작자들을 좀 아는데 말이야. 이 정도의 격으로 성좌라 말하기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데.”

     

   스카이 게임즈 20층에 혼자 올라갔을 때, 토끼의 옆에서 성좌들의 시선을 느낀 적이 있었다.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압박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존재감.

     

   하지만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그런 ‘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상태창을 열어 내가 가진 코인을 확인했다.

   정확히 10,000 코인.

     

   “너는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주머니가 두둑한 자에게서 나오는 여유.

   나는 튜토리얼 이후 처음으로 통을 크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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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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