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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서문청, 출격!

       ……하려고 했으나 진장명이 찰싹 달라붙었다.

       출격 잠시 대기.

         

       “언니. 가지 마.”

       

       “영영 가는 거 아니거든? 너가 그런 분위기 잡으면 왠지 안 돌아올 것 같은 사람이 되잖아.”

       

       “뭐래. 다시 오는 거였어?”

       

       “왔다 갔다 할 거야. 생전 처음 마련한 내 집 두고 어딜 가?”

         

       청이 자신의 모옥을 떠올렸다.

       방 하나 마루 하나 아궁이는 밖에 있는 단칸식 낡은 집이었다.

       하지만 ‘내 집’이었다.

       그 울림은 현대인의 심장을 관통하는 큰 감동이 있었다.

         

       “돌아올 거지? 진짜로?”

       

       “그래.”

       

       “진짜진짜?”

       

       “진짜진짜 그거 계속 늘리지 마라. 이제 쪽끔 귀여워졌다고 해서 귀여운 척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거든?”

       

       “칫.”

       

       “겨울에는 올까 말까 생각 중이니까. 추울 땐 돌아다니기 좀 그렇지. 어쨌든 부지런히 수련하고 있어.”

       

       “그때 되면 나 초절정 될 듯.”

       

       “응. 다음 일류 나부랭이.”

         

       돌아오겠다는 말에 진장명이 손을 놓았다.

         

       “태사숙조님! 꼭 돌아오셔야 돼요!”

       

       “태사숙조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태사숙조님! 오실 때 맛있는 거!”

       

       “저도!”

       

       “저두요!”

         

       배웅을 나온 문도들이 꺅꺅 소란을 떨었다.

         

       서문수린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청이 엉엉 울면서 큰절까지 한 이후였다.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분위기에 취하고 말았다.

       어쩐지 딱 그래야 하는 분위기였다.

       K-신파처럼 자 이제 울어라! 하는 느낌이.

         

       어쨌거나 눈물값으로 새 검을 받았다.

       월광검(8호), 돌아왔구나!

         

       어쨌든 그렇게 서문청, 출격!

         

       청이 당당하게 산문을 나섰다.

         

       그리고 곧장 선업보상을 열었다.

       아직 이 소속감과 아쉬움이 남았을 때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진장명을 데려다 준 일이 선업을 왕창 쥐어주는 바람에 현재 선업은 무려 일천을 넘겼다.

       그리고 일천 점에서 교환이 한 번 더.

         

       맥을 잡아 귀신같이 알아내는 한의학의 초고수 스승님 때문에 새로운 무공을 추가할 수가 없었으므로, 기분 좋은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청은 아직도 초절정 고수의 검강을 검도 없이 마주해야 했던 그 공포를 기억했다.

       그러니까 검 없이 쓰는 무공이 필요했다.

       아주 강력한 무공이.

         

       다행히도 이미 주워들은 것이 있었다.

         

       소수마공.

       대성하면 팔꿈치 아래가 금강불괴가 된다나.

       검강도 막아내는 로켓트 주먹!

         

       영롱한 보라색 테두리가 그 강력함을 보증할 것이다.

         

       청이 곧장 선업보상을 수령했다.

         

       소수마공의 구결이 머리속에 파고들었다.

       몇 번을 겪어도 더러운 뇌새김 기억법이다.

         

       다만, 이제는 보라색 무공을 소화할 만한 수련점이 남지 않았다.

         

       청이 소수마공의 경지를 6성으로 올렸다.

       알뜰한 투자였다.

       이상하게 무공은 6성에서 한번 크게 강해지는 경향이 있었으므로.

         

       어차피 무공을 쓰다 보면 수련점이 쌓여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굳이 귀한 자유수련점을 과투자할 필요도 없고.

         

       애매하게 남은 자유수련점이었다.

       2성에 있던 여래신장을 6성으로 끌어올렸다.

         

       남은 걸 어디에 써 볼까.

       역시 캐릭터 빌드 짜는 일만큼 즐거운-

         

       캐릭터 빌드?

         

       “게임중독 멈춰! 현실 조아! 조악조악조아!”

         

       청이 급히 소리를 질렀다.

       잠깐 방심했더니 이 꼴이다.

         

       청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나름 감동적이고 인간적인 이별을 마쳤는데.

       나와서는 곧장 이렇게. 또 이렇게.

         

       청이 곧장 정신 방어술을 시도했다.

         

       여러분 게임뇌가 이렇게 해롭습니다.

       전원을 순간적으로 모두 꺼 봤습니다.

       그건 원작을 경험해보신 분들의 기준인거고요.

       고객님 개별의 선택이었고, 피해라고 보지는 않고 있습니다.

       패배 괜찮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그렇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데프트 선생님, 감사합니다.

       근데 그 말, 실제로는 한 적이 없다면서요?

         

       “후우……”

         

       청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바로 지금만이 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청이 몸을 돌렸다.

         

       어쩔 수 없지.

       우리 집에서 하루만 더 자고 가야겠다.

         

         

       —-

         

         

       진장명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지금에서야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추억이다.

       사문에서 훔친 돈이었다고 하니.

         

       어쨌든, 병약한 진장명을 위해 부모는 낙향한 태수라 하는 글선생을 붙여주었다.

         

       글선생은 항상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말이란 천금보다 귀중한 것이라, 때론 그뿐으로 사람을 살게 할 수 있다면서.

         

       진장명은 동의하지 않았다.

         

       ‘말로 사람을 살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내가 도대체 지금 왜 이 꼴인데. 남의 처지도 모르면서 입바른 소리나 하고.’

         

       그때쯤 이미 제 병증의 심각함을 알고 있었던 진장명이었기에.

         

       글선생은 얼마 안 가서 잘렸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 부모님들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알았다.

         

       술 먹고 개가 되어 감찰사를 못 알아보고 쌍욕을 퍼부었다고.

       그래서 관직에서 잘렸다고 한다.

         

       글선생이 하는 말은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다.

       구구절절 묻어나오는 진심이었던 것이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게 한다면.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었다.

       글선생이 바로 그런 심정으로 말했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의 일. 기억할 필요도 없었던 일.

       그러나 문득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그 춥고 어둡던 땅굴 속에서였다.

         

       네 잘못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쩔꺼야.

       그냥 재수가 없었다 하고 말아야지.

       니가 살려달라 했어? 아니잖아?

       엿이나 먹으라 그래.

         

       진장명은 그 순간부터 글선생의 말에 열렬하게 동의하게 되었다.

         

       어린 삶이 지고 있던 부채감, 정말 죽도록 무거워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가슴을 짓누르던 그 무게를 치워준 말이었다.

         

       그래서 진장명은 부모님이 한 행동들에 대해 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그분들을 사랑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더는 보고 싶지도 않았다.

         

       한편, 신녀문의 문도로 산다는 것은 곧 평생을 여인들끼리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진장명은 참으로 해괴한 장면들을 계속 목격해왔다.

         

       꽉 맞물려 깍지 끼고 활보하며, 다른 데는 관심도 없이 저네들끼리 눈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사저 사질 사매들.

         

       아픈 아이었기에 눈치가 빠른 진장명이었다.

         

       저건 단순한 우정의 표시가 아니구나.

         

       우정이란 귀엽다며 가볍게 껴안는다거나 혹은 팔짱을 끼거나 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마디마디 단단히 얽힌 손가락이란 망, 망측, 망측한, 망측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진장명은 그 깜깜했던 땅굴을 떠올렸다.

       그 아늑하던 어둠 속을.

       몸을 데워주던 그 따뜻한 온기를.

         

       작은 몸을 꼭 껴안아 주던, 껴안아, 껴안아서, 껴안았던, 막 껴안고, 그러니까 딱 붙어서, 막막 심장소리 쿵쿵쿵, 엄청 막 부드럽고 푹신폭신한, 살끼리도 막막 닿고……

         

       그때였다.

         

       “여, 명아. 하루만 더 자고 가기로 했다.”

       

       “……?”

         

         

       —-

         

       

       청은 배웅을 거하게 받고나선, 신녀문을 나와 반 시진만에 되돌아갔다.

       너 나 우리의 맞닿는 시선이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더랜다.

         

       하지만 정신 건강은 중요사항이었다.

         

       빠르게 재회하게 된 진장명의 눈빛이 묘했다.

       ‘대체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지?’ 하고.

       청은 살짝 상처를 받았다.

         

       그래도 내일 떠난다고 하니 밤중에 찾아와 같이 자자고 하는 기특함을 보여주었기에, 청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와는 별개로, 감히 여중생쟝과 동침을 한다는 발상조차 경악스러운 청이 돌려보내긴 했지만.

         

       그리고 다시, 서문청, 재출격!

         

       내 집 마련의 기운으로 정신을 회복한 청이 또다시 길을 나섰다.

         

       간밤에 갈 곳도 정해놓았다.

         

       원숙한 강호인은 항상 계획을 세우는 법.

       청도 이제 원숙한 강호인이었다.

         

       일단 도시로 간다.

       아무 표국이나 합류해 대접을 받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한 계획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대접이었다.

         

       그리고 무산 인근에 도시가 있었다.

       자귀. 장강에 붙은 항구도시였다.

         

       서문청도 그간 몇 번 가 본 도시였다.

         

       신녀문은 자급자족을 실행하는 여성주의 자급공동체가 아니다.

         

       여느 문파처럼 소유의 전답에서 소작을 붙이고 여인에 한정한 향화객을 받아 시주도 뜯어냈다.

       그러나 큰 수입원인 보호세를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속세의 문파보다 불리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신녀문은 꽤 부유한 편이었다.

       어떻게?

       특산품을 팔아서.

         

       신녀문은 염제와 그 셋째딸 신녀를 모시는 여인들의 신비문파였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염제는 태양신이자 더불어 농사의 신 겸 장인의 신이다.

       농사꾼과 장인들의 지지에 힘입어, 중원에서 제일로 모시는 신이 되시겠다!

         

       그러니 신녀문의 특산품은 영험하다고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부적과 축문, 수실이며 노리개 따위의 수공예품, 법문을 새긴 천쪼가리 등등…….

         

       그렇게 번 돈으로 필요한 것들을 샀다.

       덜 필요한 것들도 샀다.

       사람이 어찌 밥만 먹고 살아.

         

       보름에 한 번 문도들이 원하는 목록이 나오면, 원로급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물품을 사 왔다.

       서문청도 나름 원로급 인사였기에 심심하기도 하여 두어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사사로운 외출에서는 얼굴에 면사를 써야 한다.

       이런 신녀문의 규칙 탓에 영 재미를 못 보았다.

         

       날은 더운데 얼굴에는 면사를 뒤집어쓰고.

       온종일 목록을 따라 장만 보며 돌아다녔으니 당연히 재미가 없을 수밖에는.

         

       청이 도시로 향하며 손을 연신 휘둘러댔다.

       쐐액, 쐐애액, 공기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다.

         

       소수마공.

         

       천하에서 가장 사악한 무공 중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희대의 마공이 허공을 수놓았다.

       오죽하면 소수마공을 지닌 무인에게 소수마인, 혹은 소수마녀라는 전용 별호까지 붙겠는가.

         

       저 새끼 소수마공 가진 새끼니까 반드시 잡아 죽여야 한다는, 무림 선배님들의 지혜이자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의지였다.

         

       물론 청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다.

         

       스승인 서문수린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가의 신공을 몇 개나 가진 년이 갑자기 마공을 익히리라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했다.

         

       광인조차도 혀를 내두르며, 상상력이 뛰어나시구려! 하고 감탄할 발상이 아닌가.

         

       그 어려운 일을 청이 해냈다.

       마공의 흉악한 위력에 청이 감탄하며 말했다.

         

       “오우. 강력 싸다구. 흠. 손에 불을 좀 어떻게 붙여보면? 안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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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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