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이상이군.”
“내말이.”
제국군은 요새 내부로 진입했다.
작열탄이 남긴 흔적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폭발에 휘말린 왕국군 사상자들이 여기 저기에 방치되어 있었다.
제국군 조차도 맘 편히 볼 수는 없는,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만약 왕국군이 이런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모습을 보던 장교들 중 한명이 중얼거렸다.
“어휴. 씨.”
“끔찍하군.”
“그런 면에서 보면 다행이지. 우리는 저런 꼴을 당할 일이 없다는게.”
“음. 우선은 포로들의 처우부터…”
곧 제국군들은 요새 내부를 정리했다.
다음으로는…
“요새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겠어.”
“다시 속도를 내 보는것도 무리는 아니겠군.”
“이전보다 더욱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격하니, 피해도 적고 말이지.”
“그럼 판단해 보자고. 지금과 같은 속도를 유지할지, 아니면 더욱 빠르게 진격할지.”
회의 끝에, 그들은 결론을 도출했다.
“속도를 올린다. 빠르게 밀고 들어간다.”
***
제국군은 다시 빠르게 진격하기 시작했다.
왕국군은 미칠 노릇이었다.
“또 요새가 함락되었습니다!”
“젠장! 어째서 이리 쉽게 함락 당하는 거지?”
“신무기를 다시 전장에 투입했습니다. 성 내부의 병력을 직접 공격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미치겠군. 더이상의 진격만큼은 막아야 한다!”
제국군이 계속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수도에 도착할 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그들의 진격 속도를 늦춰야 했지만, 더 이상 그들의 진격 속도를 늦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백병전을 해도…
“포탄이 날아옵니다!”
“젠장, 진형을…”
진형을 유지하면 병력의 손실이 크다.
그렇다고 날아오는 걸 보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엎드려! 피해에 대비해라!”
“방패를 들어! 파편을 막아라!”
몇몇 지휘관들은 병력의 손실을 최소화 할 방법을 찾아봤다.
하지만 크게 의미는 없었다.
포탄이 공중에서 터지면, 서 있든 엎드리든 결과는 비슷했다.
방패를 들면 그나마 먼 거리에서는 파편을 막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날아오는 포탄은 한 발이 아니었다.
운좋게 멀리서 날아오는 파편을 막아내도, 근처에서 날아오는 파편은 막지 못했다.
그렇게 진형이 무너지면, 제국군의 2차 공격이 시작된다.
마법 공격과 기사들의 돌진, 이어서 사수들의 사격까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왕국군들은 패배를 반복했다.
요새도 제국군의 진격을 막지 못했다.
백병전은 말할 것도 없고.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결국 왕국군의 군부에서는 항복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더이상 이 전쟁은 의미가 없다. 아까운 왕국민들의 피만 흘릴 뿐이야.”
“지금도 늦었어. 진작에 항복했어야 될 전쟁이야.”
하지만.
“두번 다시 항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거라!”
국왕은 시간이 지날 수록 광기어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막아 내란 말이다! 농노들도 징병해라! 싸울 수 있는 모든 이들을 전장으로 보내!”
“만일 항복하는 부대가 나타난다면, 지휘관에게도 책임을 묻겠다!”
“하오나, 이미 많은 왕국민들의 피가 흘렀습니다. 부디…”
“차라리 훗날을 도모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왕국은 이미 큰 피해를…”
신하들이 국왕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갖은 수를 써보지만.
“본보기를 보여야겠군. 끌고가라. 성 밖에 목을 매달아라!”
“전하! 전하아!”
이미 국왕의 결정은 확고했다.
“으음. 이전까지의 성군의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으시는군…”
“큰일이야. 이미 전세는 기울었는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왕국민들은 더 이상 의미없는 전쟁을 원치 않았다.
“의미없는 전쟁을 할 바에는 차라리…”
“쉿,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네.”
국왕은 그들의 불만을 외면했고.
점차, 왕국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으음. 순조롭군.”
“보급이 느린 게 아쉬울 따름이지. 화약과 포탄만 더 빨리 보급되어도 진격의 속도를 더욱 올릴 수 있을텐데.”
“그건 동감이네. 차라리 포탄을 덜 써보는 건…”
“그 의견에 대해서는 난 동의하지 않네. 포탄 덕분에 제국군의 손실을 최소화 하는 거 아닌가.”
“그건 그렇군.”
“그나저나, 왕국군도 전처럼 죽기살기로 싸움에 임하진 않는군. 포만 몇번 쏴도 후퇴하거나 항복하기도 하니 말이야.”
“사기가 꺾인 게지. 나였어도 전투를 포기했을 거야.”
“이대로만 흘러가면 좋겠는데.”
“왕국이 항복하는 것도 기대해 볼 만 하지 않나?”
“나는 한달 내로 항복한다에 걸겠네.”
“흐음…그럼 난 보름…”
제국군의 분위기는 여유로웠다.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어. 아내가 아이를 낳은 소식을 편지로 받았는데. 빨리 돌아가서 보고싶다.”
“그건 좀 안타까운데.”
“니 아이 맞기는 할ㄲ… 미안하다. 칼은 내려 놔 줬으면 좋겠는데.”
“으음. 칼은 자네의 피를 머금고 싶다는데.”
“결투야?”
“난 칼 든 놈한테 걸지.”
“역배는 터진다…!”
“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면, 그녀에게 고백할거야.”
“아 씨. 재수없게 그런 말을.”
병사들 또한, 정비 시간에는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표정은 밝았고, 전쟁 초기와는 다르게 긴장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톰. 왤케 열심히 정비하는거야?”
“하하. 나름 재밌습니다.”
“분대 명사수 바쁜데 방해하지 말라고.”
“쩝. 이따 내기할건데 너도 할래?”
“좋습니다.”
“그럼 저녁먹고 3분대 쪽으로 와. 저놈들 탈탈 털어 보자고.”
“알겠습니다!”
선임과 이야기를 마치고, 톰은 총을 마저 정비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귀찮다고 대충 정비했지만, 그는 정비하는 것 마저 재밌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는 총을 잘 맞췄다.
방아쇠를 당길 때 마다, 자신이 조준했던 이들이 쓰러진다.
때로는 지휘관. 때로는 마법사.
물론 항상 쏠때마다 맞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 떨어진 이들을 저격하는 것은 운도 필요했다.
사격을 지속 할 수록 명중률도 저하되었고.
거기에, 전장의 상황도 무시 못했다.
그래도 그는 총을 쏘는 게 재밌었다.
명중률도 점차 높아졌고.
그리고, 방아쇠를 당길 때는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정신없는 전장의 상황에서도, 목표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목표에 명중하면, 작게 성취감도 들곤 했다.
‘군생활… 조금 더 해볼까.’
이번 전쟁이 끝나면, 신청자들에 한해 조기전역을 할 수 있다.
그 또한 충분한 보상금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빵을 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 더 총을 쏘고 싶었다.
총열의 내부가 깨끗해질 수록, 그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
“씨발,씨발,씨발! 도대체 왜 제국군을 막지 못하는 겐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집어 치워! 그놈의 변명은 듣고싶지 않다! 뭐라도 해 보란 말이야!”
“…예.”
“그래! 마도병기를 가져와라!”
국왕의 말에, 신하들이 당황한다.
마도병기.
100년 전의 마계와의 전쟁을 끝으로, 왕국의 창고 깊은 곳에 방치되어 있는 무기.
마석을 사용하며,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석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문제다.
“현재 왕국의 마석 보유량으로는, 몇 번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을 전장에 배치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의 지원을 기다려 보는 것도…”
“어떻게든 해 보란 말이다! 이만 물러가게!”
국왕의 일갈에, 신하들이 회의장을 빠져 나간다.
홀로 남은 국왕은 주변의 물건들을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으아아아아아!”
좀처럼 분은 풀리지 않는다.
창문을 깨고 나서야, 그의 폭주는 잦아들었다.
“하아…”
한숨을 내쉬는 국왕.
“저런. 일이 잘 풀리지 않나 보군요.”
분명 그 밖에 없을 텐데. 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구냐.”
국왕이 몸을 돌리며 물었다.
“이름을 댈 정도로 거창한 이는 아닙니다.”
검은 사제복으로 몸을 덮고 있는 여인.
유일하게 얼굴의 창백한 하부만 드러나 있었다.
붉은 입술이 움직이며,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잊혀진 신을 모실 뿐인 사제입니다.”
말을 마친 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잊혀진 신이라고.’
국왕은 그녀의 정체를 금방 파악했다.
‘마신교단인가.’
마계의 몰락과 함께 자취를 감췄지만, 아직도 대륙 곳곳에서 목격담이 나타나고 있는 교단.
이들과 엮이기라도 한다면 태양신교 뿐만 아닌,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린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국왕은 잠시 고민했다.
왜 자신을 찾아온 건지.
그들이 접근한 목적이 뭔지.
“어떤 사유로 찾아 온 거지.”
“그저 도움이 필요해 보였기에 찾아왔습니다.”
“…”
“제국의 신무기에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신교단의 말을 들어선 안된다.
“저희의 약간의 도움으로, 신무기의 위력을 압도할 수 있다면.”
또 다시 마계가 대륙에 나타난다면.
“제국을 이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온 대륙이 다시 지옥처럼 변할 것이다.
“관심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마신교단의 목적은.
“…대가는.”
마계를 다시 재건하는 것.
“왕국의 승리에 비하면, 사소할 것 입니다.”
국왕의 고민은 길었다.
“…”
사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매혹적인 것은 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기엔, 너무나 달콤한 제안이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