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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샤를로트는 프랑스식 이름이다.

        

       그리고 샬럿은 그 샤를로트를 영어식으로 읽은 거고.

        

       물론 지금 당장이야 아제르나 제국과 벨부르 왕국 사이에 별다른 악감정이 없다고는 해도— 그러니까, 일단 표면적인 악감정은 없다고는 하지만, 사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이름을 일방적으로 자기 나라 식으로 부르는 것은 실례다.

        

       원작 기준 친구들이 샤를로트를 샬럿이라고 부르게 되는 건 한참 뒤였다. 엄청 친해진 다음, 샤를로트가 편하게 부르라고 하는 시점에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니까.

        

       그리고 아제르나 제국이 본격적으로 벨부르 왕국을 침공하려 할 때쯤에 샤를로트는 일행에게서 이탈하고, 자길 샬럿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이 놀라운 것이다.

        

       ……설마, 고작 그때 한 번 만났던 것으로 이렇게까지 친해진 걸까?

        

       “실비아 황녀님이신가요. 처음 뵙겠습니다.”

        

       앨리스 옆에 있는 나를 보고 샤를로트가 정중히 인사했다.

        

       자리에서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는 그냥 일어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는 같은 학생, 이라는 말은 나도 동의했으니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대하는 쪽이 앞으로 다른 애들하고 얼굴 트고 살기도 편할 거고.

        

       “실비아 팬그리폰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샤를로트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황제 폐하 대신 제국의 대표로 오셨었죠. 아버님께서 많은 칭찬을 하셨습니다.”

        

       뒷담화가 아니라?

        

       뒤로 돌아서 바로 쌍욕을 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례하게 굴었는데?

        

       게다가 그 3자회담은 그 회담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왕국 혼자 물먹은 회담으로 알려져 있다.

        

       제국은 황녀인 나를 보냈고, 교황은 추기경을 보냈는데 왕국만 국왕이 직접 나왔으니까. 물론 왕국 측의 입장만 보면 ‘왕국에서 회담이 있었으니 국왕께서 배려했다’였지만, 고위 귀족들까지 그렇게 보고 있을까 의문이다.

        

       제국이야 애초에 다른 나라 군사력을 씹어먹을 수 있는 패권국이니 그렇다 치고, 법국은 영토가 극단적으로 작기는 해도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여신교가 세상 종교의 표본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 단일 종교 중에서는 신자가 가장 많은 편이기도 하니까.

        

       거기에 여신교 성당에 있는 추기경과 신부들은 모두 법국의 시민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허울뿐이긴 했지만, 여신교의 신자가 많은 국가일수록 그 영향력을 결코 무시하지 못한다. 신자들이 많을수록 성직자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니까.

        

       법국이 바로 옆에 붙은…… 아니, 법국이 만들어질 당시에 영토 일부를 할양해준 나라 중 하나인 벨부르 왕국은 그 여신교의 비율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단일 종교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더라도 단일 세력으로는 숫자가 가장 많을 것이다.

        

       그러니 그 법국의 영향력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겠지.

        

       그렇다고 그 자리에 샤를로트를 대신 보낼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애초에 회담 내용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벨부르 왕국 입장에서는 다행일 정도의 회담이었는데, 이렇게 입 밖으로 회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서 남들에게 주지시킬 정도라면, 샤를로트의 머릿속은 여러모로 꽃밭……

        

       ……일리가 없다.

        

       선하다. 위선을 꾸밀 리 없다. 그런 말이 ‘똑똑하지 않다’라는 말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샤를로트는 사람을 두루두루 잘 사귀는 성격이지만, 동시에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선별하고 가까이할 줄도 아는 애였으니까.

        

       샤를로트는 자기 국가의 백성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 다시 말하자면 필요할 때는 싫은 일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물론 싫어한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겠지만.

        

       “……그렇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샤를로트는 아직 나에게 대놓고 부정적인 감정을 품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앨리스와 대화할 때와 나와 대화할 때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랐다. 맑은 잿빛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내 의중을 간파해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때 저는 알리스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실비아의 이름이 몇 번이나 나왔죠.”

        

       알리스.

        

       앨리스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그런가. 두 사람은 그때 그런 식으로 서로를 불렀던 모양이다.

        

       “…….”

        

       “벼, 별말은 안 했거든?”

        

       내가 앨리스 쪽을 바라보자, 앨리스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그래요. 절대로 실비아를 모욕하는 일은 하지 않았어요. 맹세할 수 있습니다.”

        

       “믿겠습니다.”

        

       나는 샤를로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 조금 늦었습니다만, 교내에서는 서로의 신분은 접어두고 대화하는 것이 교칙이라고 들었습니다. 혹,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폐가 될는지요.”

        

       “아닙니다.”

        

       나는 다시 한번 대답했다.

        

       만약 샤를로트가 정말로 앨리스와 친하게 지낼만하다고 판단했다면, 나와도 친해지는 게 순서이긴 했다. 상황을 보면 앨리스와 나는 꽤 자주 붙어 다닐 것 같았고, 앨리스와 만나면 나도 어김없이 만나게 될 테니까.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샤를로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에도 말이 없으신가요?”

        

       “……그렇습니다.”

        

       앨리스 앞에서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되도록 말을 최대한 적게 하기는 했다.

        

       물론 샤를로트도 원작의 주인공 일행 중 하나이니만큼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 목록에는 올라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첫 만남부터 무표정을 깨버리면 분위기가 살지 않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컨셉충같은가?

        

       “어, 저기.”

        

       그렇게 우리가 대화하는 중인데, 거기 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클레어는 내가 나라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작에서도 묘하게 집요한 구석이 있더니, 그 성격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실비아?”

        

       시선을 돌려보니, 클레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의 레오가 서 있었다.

        

       ……황녀 두 명과 왕녀 한 명이 모인 곳에 당당히 말을 거는 의자매 때문에 쩔쩔매는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하렘물 도입부다운 분위기 아닌가? 눈치가 조금 없는 왈가닥 동생과 그 동생 뒤를 수습해주려고 따라다니던 오빠가 어느새 동생 친구들과 점점 친해지고……라고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없기는 했다.

        

       “……클레어.”

        

       나는 그냥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우기로 했다.

        

       “아, 저기, 미안. 혹시 대화하는 중이었어?”

        

       “아니에요.”

        

       클레어의 말에 샤를로트가 빛나는 은발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저 친교를 다지고 있었을 뿐입니다. 마침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분을 찾아 인사를 나누고 있었어요. 하지만 큰일이네요. 아무래도 알고 있는 분이 거의 없는 곳이라.”

        

       “아, 혹시 외국에서 왔어?”

        

       “예, 그렇습니다.”

        

       샤를로트는 양손으로 스커트 앞을 살짝 집어 보였다. 아까 클레어가 앨리스와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동작과 흡사했지만, 샤를로트 쪽이 더 우아했다. 그렇다고 클레어가 못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그 행동이 말 그대로 몸에 밴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겠지.

        

       “샤를로트 드 벨부르라고 합니다.”

        

       “꺽!”

        

       갑자기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서 이곳에 모여있던 우리 네 사람의 시선이 한 번에 한쪽으로 몰렸다.

        

       시선의 끝에 있는 사람은 레오였다.

        

       양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있는 레오는, 마치 그 손을 떼었다간 곧장 비명이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다.

        

       “드 벨부르라면…….”

        

       “예. 벨부르 왕국의 왕녀랍니다.”

        

       샤를로트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레오의 반응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어째서 남작가 자식이나 되는 사람이 옆나라 왕녀의 얼굴도 모르냐, 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실제 20세기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있는 이 세계관, 이 시대에서 초상화 대신 사진을 남긴다는 것은 볼품없는 짓이라고 인식되었다.

        

       사진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화가를 데려다 초상화를 그리는 것 보다는 훨씬 싸고, 무엇보다 사진은 흑백이지만 초상화는 컬러니까.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신문에 싣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

        

       신문 같은 곳에 자기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리면, 그걸 오려다가 모욕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슬슬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나올락 말락 하는 시대상이었지만, 여전히 제국과 왕국은 전제군주정에 가깝다. 강력한 언론통제는 언제나 존재한다. 앞으로 한 50년쯤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서 올해 초에 얇은 현대식 필름과 작은 휴대용 카메라가 만들어져 팔려나가는 와중에도 귀족이나 황족의 사진은 신문에 거의 실리지 않았다.

        

       그게 정보력에 격차를 만들고, ‘이름은 들어봤어도 얼굴은 모르는 귀족과 왕족’이 생기는 것이다.

        

       “샤를로트라고 하는구나?”

        

       클레어의 그 말을 듣고 입에서 ‘끄흡’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은 레오를 칭찬해줘야 할까?

        

       “나는 클레어라고 해. 클레어 그레이스. 그레이스 남작가의 장녀고.”

        

       설정을 따지자면 클레어는 레오보다 누나다. 생일에서 클레어가 앞서니까. 하지만 그걸 증명해줄 사람이 없었겠지. 내가 그 사실을 아는 것도 내가 설정집을 줄줄 외울 정도로 읽어댔기 때문일 뿐이고.

        

       “그런가요.”

        

       샤를로트가 그레이스 남작가를 알고 있을 리는 없다. 옆 나라의 귀족 이름까지 다 외우고 살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옆나라 귀족을 대놓고 무시할 정도로 멍청한 캐릭터는 절대 아니었다.

        

       “잘 부탁해요, 클레어.”

        

       “응!”

        

       클레어는 ‘벌써 친구가 셋이나 생겼다!’ 하는 표정이었지만, 옆에 서 있는 레오는 슬슬 심장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싶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제게 말을 거셨던 이유가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아, 맞다.”

        

       자리에 앉아 둘의 대화를 가만히 바라보던 내가 클레어에게 물어보자, 클레어는 손바닥을 짝 부딪히더니 말했다.

        

       “혹시, 수업 끝나고 시간 되면—”

        

       하지만, 클레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먼저,

        

       쾅!

        

       하고, 교실 문이 열렸다.

        

       앞의 ‘드륵’하는 부분이 생략 될 정도로 세게 문을 연 모양이었다.

        

       그리고, 교실 문을 그런 식으로 열어젖힐 사람을, 나는 원작 게임에서 딱 한 명밖에는 알지 못한다.

        

       “제군들!”

        

       20대 중반을 조금 넘었을까. 검은 머리카락을 야성적으로 풀어 헤친 여성이 팔짱을 낀 채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옷은 무려 제국 장교 정복이었지만, 제일 안쪽에 입은 셔츠 단추가 몇 개씩이나 풀어져 있었다. 어깨에는 마치 코트가 망토처럼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망토에는 훈장에 네 개 달려있었다.

        

       “밖으로!”

        

       아직 수업 종도 울리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할 정도의 사람은, 이 아카데미에는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제니퍼 윈터필드. 그 교장의 반항적인 손녀.

        

       그리고 B반의 담임이었다.

        

       *

        

       쉬는 시간도 온전히 다 즐기지 못한 채 그 교관의 뒤를 따라 운동장으로 나올 때 쯤에서야 벨 소리가 울렸다.

        

       딩동댕동, 허망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학생들은 다소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제니퍼와의 첫 만남이 이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나는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운동장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몸 쓰는 과목이 있다고 하더라도, 첫날부터 애들을 밖으로 모아두고 운동시키는 교사는 거의 없었으니까.

        

       제국 군복을 입고 있었고, 말투도 군인 같았지만, 제니퍼는 딱히 학생들을 군대식으로 가르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와 열을 맞추라고 강요하지도 않았고, 그냥 학생들이 운동장에 대충 뭉쳐 있어도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아카데미의 제군들!”

        

       우리를 대충 모아두고 단상에 올라간 제니퍼가 마이크도 없이 외쳤다.

        

       그런데도 귀가 웅웅 울릴 정도의 목소리였다.

        

       게임에서도 이런 상황에서는 제니퍼의 대사 폰트가 엄청나게 커졌다. 애들은 귀를 막거나 기겁하는 표정을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앨리스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심지어 그 샤를로트마저 미간에 주름이 잡혀있었다.

        

       “나는 제군들의 실전 능력을 키워 줄 전술 교관 제니퍼라고 한다!”

        

       그렇다. 전술 교관.

        

       일종의 사관학교도 겸하는 곳이었기에 이런 수업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책에 쓰여있는 전술을 가르치더라도 개인이 그것을 따를 능력이 없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법. 그리고 전장에서의 상황은 병사 개인이 쓰는 무기나 그 무기를 다루는 숙련도에 따라서도 필요한 전술의 형태가 바뀐다. 그러니!”

        

       목소리가 조금 줄어서 안심한 듯 어깨를 늘어뜨리던 학생들이, 갑자기 커진 제니퍼의 목소리에 다시 흠칫 놀랐다.

        

       “제군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무기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 것을 선호하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미리 확인하도록 하겠다!”

        

       짝!

        

       제니퍼가 자기 양손으로 힘차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리고 무기의 사용 방식과 실력을 측정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대련이지!”

        

       제니퍼는 씩 웃으며 말을 잇는다.

        

       “본인이 원하는 형태의 무기라면 얼마든지 지원해줄 테니, 한 번 열심히 해 보도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2.12.08 – ‘남작가의 녀’라고 되어있던 부분을 ‘남작가의 장녀’로 수정하였습니다. 확인이 늦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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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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