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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47년이라는,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그것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군림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탐욕이었다.

       

       

       기득권의 힘은 지크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다. 권력은 사슴조차 호랑이로 바꿀 수 있었다.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리면 되니까.

       

       

       지크는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아이작은 재빨리 지크를 부축했다. 아직 지크가 알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더러운 세상이었다. 아이작이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나?”

       

       

       “가,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아요.”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단순히 사람을 구하는 것만이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에 살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과연 인간을 구하는 게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지크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심을 애써 집어삼켰다. 마스터에게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마스터가 알아버리면. 분명 실망할 테니까…….

       

       

       지크가 괜찮아진 것을 확인한 아이작은 다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크는 새삼스레 마스터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떻게 마스터는 저렇게 멀쩡한 것일까.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저렇게 걸어갈 수 있는 걸까. 나도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이런저런 의문을 곱씹으며 지크는 조심스럽게 마스터에게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범인을 잡아야지.”

       

       

       “무슨 방법이라도?”

       

       

       “미끼는 이미 던져놓았다.”

       

       

       지크는 아까 마스터가 사령관에게 편지를 건네주는 모습을 떠올렸다. 지크의 짐작대로, 마스터가 던진 미끼는 바로 그 편지였다. 사령관이라면 바로 눈치를 챘을 거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해.”

       

       

       “필체로 알아볼 수 있지 않나요?”

       

       

       “어떻게든 잡아떼면 그만이니까.”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행히 아이작은 범인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으며, 또 어디에 있는지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알고 있었다.

       

       

       “전에 내가 말했던 홍열 나무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나?”

       

       

       “네, 분명히 매우 희귀한 약재라고 하셨었죠.”

       

       

       “그래. 부르는 게 값인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지.”

       

       

       실제로는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병이나 상처 따위는 바로 치료할 수 있는 약재였으며, 또 노화를 어느 정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니 비쌀 수밖에.

       

       

       “하지만 그런 홍열 나무의 잎을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다면? 그러면 막대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쉬울 리가 없지 않나요?”

       

       

       “바로 맞췄다.”

       

       

       지크가 의문을 표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게 손쉽게 유통이 된다면 병이나 상처로 죽는 사람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홍열 나무는 인간의 손으로 키울 수 없었다.

       

       

       원작을 기준으로, 사실 홍열 나무는 식물보단 기적에 가까웠다. 1년에 한 번, 장소나 기후에 관계없이 대륙 곳곳에서 열리고.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린다.

       

       

       길게는 반 년 정도, 한 자리에 머물지만. 짧으면 1주일만에 소멸하기 때문에. 나무의 잎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다. 이야기를 듣고 지크는 경악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런 잎을 찻잎으로 쓴다고요?!”

       

       

       “그만큼 희귀해서 홍열 나무 잎을 알아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애초에 이름조차 들어본 사람도 적을 거다. 그러니 가능한 일이겠지.”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렇게 희귀한 약재를 고작 찻잎으로 사용한다고? 당장 눈앞에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지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팔아서 돈이라도 벌면 이해라도 할 수 있지.

       

       

       “대체 뭐 때문에……?”

       

       

       “우월감.”

       

       

       “네?”

       

       

       “나는 저런 하찮은 것들과 다르다는 우월감. 거기서 만족을 느껴서 그런 거겠지.”

       

       

       적어도 아이작이 읽은 원작에서는 그러했다. 처음에는 한낱 탐욕에서 시작된 그것은 변질되어 우월감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고이면 썩어버리는.

       

       

       이윽고, 아이작의 걸음은 골짜기 앞에서 멈췄다. 네메아 요새의 서쪽에 위치한 매우 깊숙한 절벽이었다. 오죽하면 너무 깊어서 바닥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아이작은 잠시 고민했다. 돌아가자니,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리고. 그렇다고 바로 가자니 위험하고.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작은 바로 지크를 안았다.

       

       

       졸지에 갑자기 마스터에게 안기게 된 지크는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더 있고 싶었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까지는.

       

       

       “잠깐만 참아라.”

       

       

       “꺄아아아아아아악?!”

       

       

       ‘무슨 비명이 계집애 같냐.’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던 아이작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 것으로 그 생각을 부정했다. 지크가 여자라고? 그럴 리가. 지금까지 원작 지식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원작대로 지크 또한 틀림없는 남자일 것이다.

       

       

       정작 지크 본인은 속도감에 정신 못 차리고 있었지만.

       

       

       * * *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세요!”

       

       

       “미안하다.”

       

       

       병아리처럼 빼액하고 소리를 지르는 지크에게 아이작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지크는 씩씩거리며 아이작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왜 갑자기 절벽에서 뛰어내린 거죠?”

       

       

       “네메아 요새에서는 시체의 일부를 절벽에 버려서 처리한다.”

       

       

       “맙소사, 묻어주지는 않는 건가요?”

       

       

       분노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지크의 목소리는 까칠했다. 아이작은 지크를 진정시키고자, 왜 갑자기 절벽으로 떨어졌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령관 몰래 벌어지는 일이지.”

       

       

       “어떻게, 그럴 수가. 아니, 대체 무슨 이유로?”

       

       

       “그 이유는 바로 앞에 있다.”

       

       

       그 말을 끝으로, 아이작은 몸소 앞으로 걸어갔다. 지크는 호기심을 품고 아이작의 뒤에 바로 붙었다. 얼마 걷지 않아서 그들은 매우 붉고 거대한 나무를 발견했다.

       

       

       그냥 일반적인 나무보다 몇 배는 두꺼운 나무였다. 특히 두꺼운 뿌리는 양분을 갈취하는 것처럼 절벽 여기저기에 박혀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저게, 홍열 나무?

       

       

       “워, 원래 저런 나무인가요?”

       

       

       “그럴 리가 없지. 저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나무를 유지하고 있는 거다.”

       

       

       “네?”

       

       

       “앞에서 말했었지. 홍열 나무는 기적에 가깝다고. 그런데 그 홍열 나무가 기적이 아니게 된다면?”

       

       

       [아아악!!! 아아아악!!!]

       

       

       귀를 찢어발기는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새빨간 핏빛으로 가득한 나뭇가지가 소음에 흔들렸다. 덕분에 나무가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으로 보였다.

       

       

       너무 끔찍한 소음에 지크의 다리가 얼어붙었다. 단지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나무가 느끼는 고통이 화살처럼 가슴을 관통하는 느낌이었다. 지크는 결국 주저 앉았다.

       

       

       귀를 틀어막고 주저 앉은 지크를 데리고, 아이작은 일단 뒤로  빠졌다. 역시 아직은 지크에게 너무 일렀던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아이작은 지크를 진정시켰다.

       

       

       “지크, 지크!!”

       

       

       “허억! 헉!!”

       

       

       “몸은 좀 괜찮나?”

       

       

       “네, 네. 지금은 어떻게든…….”

       

       

       바위 뒤에 숨자 거짓말처럼 비명 소리가 멎었다. 지크는 그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있었다. 아이작은 지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 끝날 거다. 조금만 더 참을 수 있겠나?”

       

       

       “어, 어떻게든 참아볼게요.”

       

       

       “고맙다.”

       

       

       잠깐 마주쳤을 뿐인데, 고통이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지크가 순전히 지옥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마스터의 존재 덕분이었다.

       

       

       마스터의 굳은 살이 박힌 손은 소녀에게 말도 안 되는 안도감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지크를 진정시킨 아이작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오래 끌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아이작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괴물이 되어버린 홍열 나무와, 그런 나무를 관리하는 3명의 마법사. 원작에서 다들 한 가닥씩 하는 마법사로 나오긴 했지만.

       

       

       아이작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전부 죽을 테니까. 이윽고, 포탄처럼 돌진한 아이작의 주먹이 홍열 나무 줄기를 강타했다. 줄기는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뭐, 뭐야?!”

       

       

       “침입자! 침입자다!!”

       

       

       “안 돼! 나무가 소멸한다!!”

       

       

       마법사들 중 한 명이 노련하게 움직여서 홍열 나무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줄기가 반파된 홍열 나무는 형체를 유지할 수 없었다. 파괴된 줄기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홍열 나무는 신들이 인간을 위해서 내려준 기적이다.]

       

       

       [신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기적을 받기를 원했다.]

       

       

       [얄궃게도, 그런 신의 의지를 거부한 것은 인간이었다.]

       

       

       [그것도 같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면서까지 말이다.]

       

       

       피가 잔뜩 묻은 줄기의 파편은 인간의 내장처럼 보였다. 아이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소설 묘사로 봤었지만, 실제로 직접 보게 되니.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고 또 역겨웠다.

       

       

       홍열 나무는 신이 내려준 기적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손으로 구속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선택했다. 기적을 마수로 바꿔버려, 이 땅에 영원히 속박해두는 것으로.

       

       

       그리고 대가는 당연히 인간이다.

       

       

       마법사들은 갑자기 난입해 모든 것을 망쳐버린 침입자에게 아낌없이 분노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그 분노는 아이작에게 닿지 못했다. 닿기에는 느려도 너무 느렸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지?’

       

       

       침입자를 처리하기 위해서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법이 발동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보았다. 자신의 두 팔이 잘려나가는 광경을.

       

       

       그나마 그는 동료들에 비해서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동료들은 자비없이 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귀에, 목소리가 들렸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움직여라.”

       

       

       악귀.

       

       

       적어도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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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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