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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화려하게 장식된 황금 옥좌에 노인 한 명이 앉아있었다.

       

       등은 굽었고, 안색은 창백했으며, 빼빼 마른 데다가, 눈두덩이는 퀭하게 들어가 생기가 없었다. 노인은 극도의 불안함에 시달리는 듯 수시로 손을 떨어대고, 스치는 바람에도 화들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다.

       

       곧 날아갈 것 같은 허수아비를 연상케 하는 이 노인이야말로 제국의 정점이었다. 

       

       손짓 한 번에 무수한 사람들을 부리고, 헛기침 한 번으로 권세 높은 귀족의 목을 날릴 수 있는 만인지상의 자리다. 누릴 수 있는 부와 권력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나 볼품없는 모습이라는 말인가.

       

       대체 무엇을 걱정하며, 무엇에 괴로워하는가.

       

       올해로 열 살이 되었던 1황녀 일레인은, 자신의 아버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 의문을 품었다. 옥좌에 앉은 노인의 모습은, 황제보다도 노예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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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는 자식이 태어나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황손들은 어머니에게서도 분리된 채, 유모와 사용인들의 품 안에서 자라났다. 부모라는 개념은 단어로만 배웠다. 아바마마라는 단어는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유모에게 정을 붙이고 나면, 그 유모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당했다. 사용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황손들은 누군가와 일정 이상의 친분을 갖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당했다.

       

       제발 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한들, 규칙은 지켜졌다. 정이 쌓이면 이별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사용인들에게 정을 주지 않게 되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같은 황손들이었다. 

       

       그렇기에 1황녀 일레인은 자신의 배다른 두 동생을 무척이나 아꼈다. 수시로 바뀌어나가는 주변인들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가족’뿐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황제는 네 명의 자식들을 어전으로 불러 모았다.

       

       커다란 홀, 붉은색의 비단이 황금 옥좌로 향하는 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무수한 기사들이 장검을 패용하고 좌우로 서 있었고, 황제의 옆에는 소년 기사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죄인을 문초하는 자리라도 되는 것 같았다. 1황녀 일레인은 고작 열 살이었고, 2황자와 3황자는 각각 일곱, 여섯이었다. 막대기 하나 제대로 휘두를 수 없는 아이들에게 보이기에는 과한 경계심이었다.

       

       노인 황제는 무릎을 꿇고 앉은 자신의 피붙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2황자 이리드는 황제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읽어냈다. 황제가 자신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리드는 생각했다. 저 황금 옥좌에서 내려서는 것이 그토록 두렵다는 말인가? 다른 누구도 아닌, 피붙이에게도 두려움을 느낀다는 말인가? 권력이란 그토록 사람을 홀린다는 말인가? 

       

       이리드는 공포에 질렸다. 저렇게 많은 것을 거머쥔 황제마저도 남을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욱 쉬울 것이다. 유모도, 사용인도, 어쩌면 누님과 동생도, 언젠가 자신을 경계할지도 모른다⋯⋯.

       

       의심병은 그렇게 뿌리를 내렸다.

       

       

       3황자 스레도는 황제의 눈빛에서 애틋한 염려를 보았다. 황제는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스레도는 생각했다.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거둬가고, 정을 붙인 사용인들을 교체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은 건. 어쩌면 이유가 있을지도 몰랐다. 황실을 노리는 적이 존재한다던가.

       

       스레도는 결의했다. 저렇게 많은 것을 거머쥔 황제조차도 경계하며 조심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러한 위협이 존재한다면, 자신은 강해져야만 한다. 어떠한 장애물도 뛰어넘을 수 있는 초인이 된다면, 정 붙인 사람들을 빼앗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수련광은 그렇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1황녀 일레인은 황제의 눈빛으로부터⋯⋯ 많은 것을 느꼈다. 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때때로 경계이고, 때때로 슬픔이었고, 때때로 염려였으며, 사랑이거나 허무함이었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영민한 1황녀라도, 제국의 황제가 미치광이가 될 법한 이유를 떠올려 낼 수는 없었다. 저 눈빛에 담긴 감정 중 무엇이 진솔한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일레인은 그 눈빛을 깊이 기억해 두었다. 

       

       자리를 파하며, 노인 황제는 자신의 피붙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을 남겼다.

       

       “살아남아라⋯⋯ 우리들의 피는 이어져야만 한다.”

       

       아리송한 말이었다.

       

       

       1황녀 일레인은 이후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동생들과 애정을 나누고,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무지를 밝히고, 적은 부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황위 계승 경쟁에서 유력 후보로 여겨지고 있었다. 황금 옥좌가 가까웠다.

       

       여전히 황제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리드, 내 동생.”

       

       “⋯⋯누님.”

       

       “그 마법사는, 차원 이동 마법이 아니라⋯⋯ 줄곧 환상 마법이라고 이야기했다던데. 있잖아, 네가 겪은 일이 진짜라고 생각하니?”

       

       “⋯⋯⋯⋯.”

       

       이리드의 침묵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믿기로 한 거다. 설령, 하나부터 열까지 그 마법사의 농간이었다고 해도──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그렇다면⋯⋯ 진짜였으면 좋겠네. 동생이 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거든.”

       

       “이쪽이 할 말이다. 차원 이동을 겪으러 간다지? 모든 것이 끝난 뒤에, 펑펑 울면서 매달리지나 마라.”

       

       이리드는 그렇게 쏘아붙이더니 성큼성큼 걸어갔다. 1황녀 일레인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먼 옛날의, 단 한 번뿐인 알현을 떠올려냈다. 

       

       이리드에게 그 모든 일들이 가짜가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 직후.

       

       동생의 눈동자에 스친 고뇌의 색은⋯⋯ 노인 황제의 눈빛과 비슷한 색채로 빛나고 있었다. 족쇄 채워진 노예의 색 말이다.

       

       ===============================================================

       “환상 마법을 시연하겠습니다, 1황녀님.”

       

       “그래요, 시작하세요.”

       

       “모든 것은 픽션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상상의 산물입니다.”

       

       “이해했어요.”

       

       “현실 시간으로 4시간 후, 황녀님을 다시 부르겠습니다. 손목에 표식을 남겨 드릴 테니 귀환 시간을 알아볼 수 있으실 겁니다.”

       

       1황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마법진 위에 누웠다. 어느 쪽이냐면, 그녀는 의심하고 있었다. 마법사가 제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그럴듯하게 짜낸 환상 마법이 아닌가, 하고.

       

       그렇기에 이건 테스트였다. 

       

       사전에 보낸 편지로는 ‘전투를 좋아한다’고 적어 보냈다. 동부 전선에서 몬스터의 머리를 깨고 다니며 쌓인 전투광 이미지가 설득력을 높여주었을 것이다. 아마 믿었겠지.

       

       이 모든 것이- 마법사가 구현하는 환상에 불과하다면, 편지의 내용을 읽은 마법사는 전투투성이의 환상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면 환상에서 벗어나 대가리를 깨면 됐다.

       

       물리적인 의미로 깨겠다는 말은 아니다. 자색 마탑주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니까. 1황녀는 우화(羽化)에 성공했지만, 승화(昇華)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경지의 차이를 뚫고 싸움이 성립하려면, 황실 금고의 성검이라도 가져왔어야 했다.

       

       대신 정치적인 의미로 머리를 깬다. 황실 모독죄를 빌미로 거래하여, 자색 마탑을 등에 업고 황제의 자리를 보다 공고하게 다질 계획이었다.

       

       

       정말로 차원 마법일 경우에도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사건을 겪은 이리드는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생겨난 트라우마를 이겨낸 것 같았다. 그는 남들을 좀 더 믿기 시작했고, 좀 더 열정적으로 행동했다. 기쁜 일이었다.

       

       이리드가 주장하는 것처럼 ‘운명의 시련’을 부여하는 차원 마법이라면⋯⋯ 그렇다면. 자신은 성장할 수 있었다. 시련을 이겨내어 승화(昇華)의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실패할 경우의 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법이 발동했다. TRPG가 시작되었다.

       

       ===============================================================

       

       광야.

       

       잿빛 대지가 수평선 저 너머까지 펼쳐졌다. 돌가루 섞인 바람이 불어 피부를 긁고 지나간다. 저 하늘은 어두운 필터라도 깔린 것처럼 우중충했다. 이따금 거대한 괴물이 날아다녔다.

       

       1황녀 일레인은 높다란 암석 위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지를 거니는 괴물들이 보였다. 동물 여럿을 섞어 놓거나, 기괴하게 비틀어놓은 것 같은 생김새였다. 액면가로만 따지면 마계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렇게까지 강한 녀석들은 아니었다. 끽해야 오우거 정도.

       

       일레인은 오우거가 휘두르는 몽둥이를 그냥 맞아주고, 복부에 주먹 한 대를 갈겨서 죽인 전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마주친 괴물들도 그렇게 됐다.

       

       불어오는 바람도, 꿉꿉한 냄새도, 괴물들을 죽이면 나오는 이상한 점액질의 끈적한 느낌도. 맨발에 닿는 까끌까끌한 흙의 감촉도. 환상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사실적이었지만.

       

       편지에 적어 둔 리퀘스트대로, 지금까지는 오직 전투의 연속이었다. 의심이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일레인은 이 세계가 환상이라는 쪽에 조금 더 가중치를 두었다.

       

       이대로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괴물들을 잡다가 돌아가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적어도, 긴장감 있는 싸움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할 때쯤, 저 멀리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1황녀 일레인은 눈동자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160cm 정도의 신장을 가진 소년이었다. 돌가루가 섞인 바람을 막아내기 위한 것인지, 눈을 보호하기 위한 고글을 쓰고 있었다.

       

       금발에 녹색 눈동자.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표정과 눈빛에서는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딱 적절한 곳에 눈물점이 찍혀 있었다. 

       

       “⋯⋯어머나?”

       

       생긴 게 취향이었다.

       

       1황녀는 이 세계가 사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쪼끔⋯⋯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에피소드 시작입니다. 열심히 써 볼게요, 마이 프렌즈!
    지각은⋯⋯ 어, 어제 연참했으니까⋯⋯ 용서를⋯⋯!!

    +
    그, 급하게 쓰느라⋯⋯ 찐빠가, 많았습니다⋯⋯.
    다음부터는 확실히 검토하겠습니다. 읽기 불편하셨을텐데,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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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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