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

    마침내 다이튼이 옷을 다 입었는지 방에서 나왔다.

    “오래 기다렸나.”

    다이튼의 복장은 꽤 차려입은 모양새였다.

    머리도 빗어내렸는지 차분하게 내려와있었고, 옷도 평소에 입던 반팔 티셔츠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집에서 편하게 입을만한 복장은 아니었지만, 루크의 시선을 끈것은 그의 복장이 아니었다.

    “다이튼, 그 팔은 대체 어쩌다 그리 되었는가? 전투중에 입은 부상인겐가?”

    다이튼은 오른팔에 붕대를 칭칭감아서 깁스를 해둔 상태였던 것이다.

    과연, 손이 저래서야 옷을 입는게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전투라…….”

    루크의 걱정스런 질문에 다이튼은 곰곰히 생각하는듯이 눈을 살짝 감았다.

    여기서 ‘사실 예르나가 때렸어. 너무 아팠어.’라고 대답하는건 솔직히 멋이 안났다.

    그래, 루크에게 쪽도 팔리고 말이다.

    루크가 모르는걸 보면, 예르나도 말한건 아닌것 같고.

    다이튼은 그녀와 자신을 위해, 입을 닫기로 했다.

    “전투, 맞아. 전투였지.”

    ‘확실히, 몬스터만큼 저돌적이기는 했으니까…….’

    다이튼은 자신을 구타하던 예르나를 떠올렸다.

    진심으로 때린다는 느낌은 아니긴 했지만, 사실 다이튼에겐 진심으로 아팠다.

    인간의 육체강화마법과 마력감응력이 뛰어난 엘프의 육체강화는 똑같은 마법을 쓰더라도 더욱 효과가 좋았다.

    게다가, 육체강화계열의 마법은 쓰면 쓸수록 자신의 몸이 그 마법에 적합하도록 적응하게된다.

    더욱 그 마법을 잘 받게되는 몸이 되는것이다.

    그런 예르나의 숲지기경력은 10년이상.

    그만큼 실전적인 육체강화로 단련된 예르나의 육체는 실제로 몬스터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으리라.

    예르나는 다이튼이 자신의 손에 다친것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의아하기도 했다.

    ‘쟤는 아무리 때려도 괜찮아보였는데…….’

    원래 다이튼에겐 특히 손이 매워지는 예르나였다.

    솔직히 다이튼의 자업자득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말을 하지 못했을 뿐이고, 다이튼이 맞으면서도 쪽팔린다는 이유로 아프다는 티를 내지도 않았으니까 예르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기는 했다.

    예르나는 ‘아, 여기까진 괜찮나보네! 다이튼은 참 튼튼한 친구구나.’따위의 생각을 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다 감정이 살짝 담기니, 힘조절을 실패한것.

    “몬스터라니……. 조심하지 그랬는가.”

    루크는 그저 다이튼의 말에 납득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숲지기는 최전방에서 몬스터와 대적하는 직종. 따라서 부상은 그들에겐 거의 일상과도 같은 일이니 별로 신기할 일은 아니리라.

    루크는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의아했다.

    “힐링은 쓰지 않은겐가?”

    “그정도로 다친건 아니라.”

    힐링.

    개인의 마나배열을 분석해서 신체에 맞게 마나로 육체를 이어붙이고 재구성하는 마법.

    그리고 그것은 꽤나 비싼 최상위급 의료기술이었다.

    힐링은 6클래스 이상으로 분류되는 하이클래스마법이니까.

    마법의 클래스분류법엔 여러가지 세세한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악용에 따른 부작용에 큰 중점을 둔다.

    그것이 의학과 관련된 마법이라면 어떠한 종류를 불문하고 무조건 5클래스 이상으로 시작되는 이유다.

    의학마법이란 자고로 그 반대로 사용될때 가장 지독한 법.

    만약 ‘힐링’을 육체를 이어붙이는데 사용하지 않고 신체변형에 중점을 둔채 작동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큐어 포이즌’을 이용해 신체 내부에 작용하는 화학작용의 밸런스를 깡그리 무시한채 모든 화학물질을 제거해버리는데 사용한다면?

    사람의 신체를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마법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얼마든지 사람의 생명을 직접 해할 수 있다는 말을 의미하기도 했다.

    신체에 직접 작동하는 마법은 위험할 수밖에 없고, 고위클래스로 지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든지 살인적인 기술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이튼의 붕대엔 단순히 4클래스의 헤이스트마법이 인챈트된 상태였다.

    부분적인 신체가속을 이용해 회복속도를 높이려는 심산이리라.

    그것을 마력시로 읽어낸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헤이스트를 쓰는게지?’

    신성력을 사용한다면 더 쉽고 빠르지 않은가?

    마법의 주체는 인간이므로, 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하는 마법은 사실 회복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신성력은 다르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고, 신은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존재니까.

    그런 신을 ‘필터'(신성모독적인 발언으로 사제들은 천인공노할 표현이지만, 루크는 이렇게 표현하는걸 즐겼다.)로 사용하는 신성력은, 똑같은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회복엔 훨씬 적합했으니까.

    “신에게 기도하진 않는겐가?”

    “응?”

    루크의 뜬금없는 말에 예르나와 다이튼은 어리둥절해졌다.

    “신? 기도라니?”

    예르나의 물음에 루크는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한번 물었다.

    “그러니까, 여기에 신전은 없냐는게다.”

    “신전? 아아, 루크는 신을 믿는구나.”

    예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뭐, 루크라면 신을 믿는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을테니까, 아마 뭐에라도 기대고싶었을것이다.

    그런 생각에 닿은 예르나는 또 한번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디아나는 그걸 보면서 ‘예르나언니 왜그래? 눈에 뭐 들어갔어?’ 같은 소리를 했고.

    루크는 당황했다.

    “믿고 자시고, 실제로 신은 존재하는 개념일터인데…….”

     

    애초에 레니에에게 불사의 권능을 내려준게 ‘신’이지않았나?

    5000년전엔 마법사와 신전의 사이가 좋지는 않았을지언정,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마법사는 실제를 믿는 자들. 그리고 그때의 신은 자신의 존재를 실증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 존재를 ‘믿느냐’따위의 말이 나온단 말인가.

    그건 마치, 이제 신을 믿는건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는…….

    “설마, 이 세계엔 이제 신마저도 없단 말이냐?”

    루크가 마침내 그것에 생각이 미치자, 레니에가 어째서 죽었는가에 대한 퍼즐조각이 끼워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모종의 이유로 신이 자취를 감췄는가.

    어째서일까? ‘신’이라는 개념은 그리 쉽게 자취를 감출만한게 아닐텐데.

    소멸? 단절? 아니면, 그저 신쪽에서 우리를 무시하는것인가?

    루크가 몇가지의 가설을 띄우고 머릿속에서 반박하는 과정을 거치며 논리를 전개하는 순간.

    루크의 심각한 표정을 본 예르나는, 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말을 돌렸다.

    “저기, 다이튼! 이거! 받아!”

    과장된 몸짓. 누가보아도 어색한 움직임이었으나…….

    “아니, 뭐 이런걸 다……!”

    다이튼은 별 생각도 없이 예르나가 건네는 과일바구니를 받아들며 기쁜듯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애초에 다이튼은 루크의 표정은 보지도 않고 있었다. 아까부터 시선이 쭈욱 예르나에게 꽂혀있었으니까.

    ———

    다이튼은 바구니에 가득한 과일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거 완전히 병주고 약주는 꼴이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일도 쉬면서 이렇게 예르나가 직접 병문안도 와주었다는게 어딘가!

    성공한 인생이라는 기분이 팍팍 들었다.

    이런 보상이 있다면 솔직히 부상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피학적인 성취향이 있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예르나의 걱정스런 시선을 한눈에 받게된 다이튼은 기분이 좋았다는 얘기였다.

    “그, 몸은 좀 괜찮아? 잘 쉬었어?”

    예르나의 걱정에 다이튼은 호탕하게 웃으며 센척을 시작했다.

    “물론이지! 하하! 좀만 있으면 복귀할 수 있을거야!”

    다이튼의 말에 예르나는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정말 다행이야. 잘 쉬어서 그런가? 안색도 좋아보이네.”

    “음, 그, 그렇지!”

    사실 안색이 좋은것은 예르나가 집에 방문했다는 상황에 흥분했을 뿐이지만 말이다.

    “아차, 내 정신좀 봐라. 뭐라도 대접을 해야지. 잠깐만, 차라도 내올…….”

    그때였다.

    “오빠! 오빠!”

    디아나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바짓단을 꼬집으며 다이튼을 부른것이다.

    “왜 그래?”

    다이튼은 예르나를 의식해 최대한 인자한 억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디아나는 이미 성공했다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손님 왔으니까, 나 아이스크림 먹고싶어!”

    “아이스크림?”

    디아나가 내뱉은 말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논리의 도약이 심했다.

    손님과 아이스크림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다이튼은 그것이 어떻게 이어진 논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손님이 오는 경우에는 차를 내오거나 간식거리를 준비하곤 했고, 그럴때마다 여동생은 옆에서 간식을 같이 주워먹곤 했다.

    어린이가 내온 음식을 먹는다고 화를 낼 사람은 없으므로, 그때가 디아나에겐 대놓고 간식을 과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평소엔 이빨이 썩고 건강에 좋지 않다며 간식을 아주 조금만 주니까.

    아마,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간식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이 먹고싶다는 얘기일 것이다.

    날씨도 따듯해졌고, 아이스크림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으니까.

    “그런데 아이스크림 없는데.”

    하지만 며칠 전만해도 추운 날씨였잖은가?

    디아나가 추운날씨에 차가운걸 먹다가 감기에 걸릴수도 있으니 당연히 집에 아이스크림은 없었다.

    “으악! 안돼!”

    그 말을 들은 디아나는 절규하듯이 외쳤다.

    “그럼 사조!”

    “그냥 네가 먹고싶은거잖아 임마. 안돼.”

    대답은 단호했다.

    다이튼에게 떼를 써봤자 통하지 않으리란걸 깨달은 디아나는 타겟을 바꾸기로 했다.

    “루크언니! 아이스크림 좋아하지!”

    디아나는 생각했다.

    자기랑 비슷한 또래인 여자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싫어할리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루크의 대답은 디아나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디아나야, 그……. 아이스크림이란게 대체 무엇이느냐?”

    “…….”

    디아나는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는듯이 루크를 바라봤다.

    “말두안대! 언니가 거짓말하는거지?!”

    “…….”

    루크는 디아나가 아무리 그렇게 바라보아도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지만.

    디아나는 급기야 루크의 팔을 끌어당기며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하고 떼를 쓰기 시작했고, 루크는 그것이 마치 자기가 일으킨 상황같아 안절부절했다.

    “예르나? 그대가 말좀 해주거라.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예르나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다이튼, 우리 아이스크림 사러갈까?”

    “어? 조, 좋아!”

    다이튼은 뜻밖에 횡재에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이스크림 먹고싶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