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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No. 058 : 마법 고문 48% → 62%]

    [변동중]

     

     

    상태창의 글자를 보니 기억 속에 묻어놓고 싶었던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셀라가 완전히 미쳐서 마물 마냥 폭주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지.’

     

    후반부에 아셀라가 이성이 없어 말도 안 통하는 괴물이 되어 나타날 때가 있었다.

     

    일종의 히든보스 이벤트랄까.

     

    이 엔딩은 히든보스화한 아셀라에게 붙잡혀, 마법으로 고문당하다가 죽는 배드엔딩이었다.

     

    ‘황비 때문에 이 엔딩 확률이 늘어난다고?’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배드엔딩 확률이 올라가는 이유.

     

    지금부터 아셀라는 그 원인이 될 사건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럴 때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고.’

     

    그와 반대될 행동을 할 뿐이다.

     

    “루시 누님.”

     

    “깜짝이야, 선생님?”

     

    걸음을 옮기던 시녀장의 팔을 붙잡으니 마물이라도 만난 듯 가슴을 쓸어내린다.

     

    거 너무 경계하시네.

     

    “공방으로 간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일단 밖에서 이야기를 하시는 게….”

     

    “설명을 듣기 전까지 못 가겠는데요.”

     

    “아이, 참…!”

     

    시녀장이 곤혹스러워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빠르게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월광궁 지하에 황비님의 마법 공방이 있어요. 황녀님이 제대로 수학하지 못하시는 날에는 그곳에서 추가로 특별 교육을 하셔요. 이럴 땐 바로 자리를 피해야….”

     

    “마법으로 훈육한다는 뜻입니까?”

     

    “그게….”

     

    내 질문에 시녀장이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파악했다.

     

    카밀라 황비는 나름 마법에는 상당한 식견이 있는 마녀다.

    최소한 5위계에는 도달한 마법사다.

     

    그녀의 마법 체벌이라.

     

    ‘꽤 아프겠지.’

     

    그럼에도 마법의 종류에 따라 몸에 티도 안 남 남을 터다.

     

    잠시 상념에 빠져있는데 카밀라가 우리를 향해 유리장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주치의, 듣지 못했나요? 방에서 나가세요.”

     

    “제 호칭은 선생님입니다만, 전해 듣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내가 오히려 한 걸음 나서며 대답하니 황비의 얼굴이 구겨졌다.

     

    “지금 뭐라고요?”

     

    “황녀님을 마법으로 체벌하실 예정이시라면 저는 막아야만 합니다. 주치의로서 담당 환자의 건강상태를 신경 써야 하니까요.”

     

    내 말에 아셀라의 동공이 커졌다.

     

    흔들리던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하, 치유사 놀이가 기어이 선을 넘는군.”

     

    황비가 코웃음을 치며 나를 비웃는다.

     

    “체벌이라고? 이건 제3 황녀의 교육에 관련된 일이다. 너, 여기는 황실이야. 주제넘은 짓은 적당히 하거라.”

     

    “환자가 부상을 입으면 주치의인 제 일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입니다만. 엄연히 업무 범위 안입니다.”

     

    “그럼 그때 고쳐라. 가문의 이름에 먹칠하기 싫으면 자리에 얌전히 앉아있어. 내정과 조작으로 뽑혀서 온 주제에.”

     

    “와우, 제가요?”

     

    “고트베르크 공자, 그대가 후작가에서 불경을 저질렀을 때는 후작을 봐서 넘어갔다. 성배를 낭비했을 때도 자비롭게 용납했지.”

     

    “예. 제가 아버지를 봐서 황비님의 시비를 넘어가 드렸죠. 성배도 제가 자비롭게 받아드렸고요.”

     

    “이놈이 끝까지…!”

     

    열이 머리끝까지 들어찬 황비는 증기기관차의 석탄 마냥 시뻘개지고 있었다.

     

    “내가 그대를 상대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야. 머리에 든 것 없는 망나니와 시간을 낭비해봤자 내 손해니! 하지만 이번엔 선을 넘었어.”

     

    “다다익선이요?”

     

    “아셀라는 내 방식으로 키운다. 지금 그대는 자격 없이 황가의 방식에 끼어들었어!”

     

    “혼약자의 자격입니다.”

     

    내 대답에 아셀라의 동공이 커졌다.

     

    “이…!”

     

    황비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본다.

     

    “감히 꼬박꼬박 말대답을!”

     

    “그럼 황녀님께 이뤄질 교육이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내용에 따라서는 그 특별 수업을 허가할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 황제의 처인 내 행동을 일개 치유사인 그대에게 허가받으라는 소리더냐?”

     

    뚜벅.

     

    황비를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며 말했다.

     

    “일개가 아닐뿐더러 무려 황녀님이 임명하신 주치의입니다. 의사라는 직함을 붙여 불러주시죠. 저는 승계권자의 신하이자 아셀라 황녀님 파벌의 일원입니다.”

     

    내 입에서 또박또박 논리적인 문장이 나오자 황비의 기세가 수그러든다.

     

    “황비전하께서 악의를 가지고 황녀님의 옥체를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는 외부자인 이상 허가는 필수입니다.”

     

    “지금 아셀라의 친모인 날 더러 외부자라고 지칭하였느냐?”

     

    “그럼 아닙니까? 황가에 겨우 서로 부모 형제라는 이유로 아군인 분들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 주군은 황녀님 한 분뿐입니다.”

     

    황비는 내 발언에 인내심이 다한 듯, 무의식중에 몸에서 마나를 뿜어냈다.

     

    흉흉한 검은 기운이다.

     

    “나머지는 전부 나가라.”

     

    황비가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당장에라도 단두대에서 칼날을 떨어트릴 것 같은 분위기다.

     

    타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제 임무는 선생님의 호위….”

     

    “괜찮아. 나가 있어.”

     

    고트베르크의 직계인 나는 몰라도 그녀는 황비가 불경죄로 엮어버리면 곤란해질 수 있다.

     

    주저하는 타냐를 향해 고개를 까딱여 한 번 더 눈치를 주니 퇴장했다.

     

    쾅.

     

    문이 닫히고 방에는 나와 카밀라 황비, 아셀라만이 남았다.

     

    “특별 교육 내용이 궁금하다고 했지.”

     

    카밀라가 슥, 손을 까닥여 마법진을 만들어냈다.

     

    복잡하게 생긴 네 개의 도형이 교차하며 검은 마나를 탐욕스럽게 빨아먹는다.

     

    외곽에 수식이 새겨지며 시전 준비를 끝낸다.

     

    “어마마마.”

     

    여태 조용히 있던 아셀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황녀는 그녀의 말은 귓가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오로지 마법에만 집중했다.

     

    “어디 체험해 보아라. 아셀라에게 해가 될지 어떤지, 직접 그 몸으로 느껴보면 될 것이 아니냐?”

     

    딱, 카밀라가 손가락을 튕기자 주문이 시전됐다.

     

    쿠웅!

     

    동시에 내 온몸을 바위 더미가 짓누른 듯 강력한 무게감이 덮쳐왔다.

     

    “윽.”

     

    4위계의 중력 조종 마법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만 중력이 몇 배는 강해졌다.

    자리에 서 있지 못할 정도의 압력이 강해진다. 내 몸이 내 몸에게 끌려 지면을 향해 빨려 들어간다.

     

    “어떠냐, 상처가 남거나 몸을 다치게 하는 마법이 아니야. 아셀라에게 마법의 위력을 체감하게 해주는 중요한 교육이지. 이해가 가느냐?”

     

    황비가 냉소하며 손을 튕겼다.

     

    ―쿠구구구!

     

    마법진이 더욱 거대해지며 위력이 증대한다.

     

    …이제는 숨도 못 쉬겠다.

     

    공기가 무거워서 폐를 움직이기가 버겁다.

    허리가 굽고 팔이 떨어진다.

     

    ‘나 원.’

     

    이딴 체벌을 교육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이건 그저 고문에 불과하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다.

     

    이미 상반신은 고슴도치처럼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다리만큼은 어떻게든 버텨낸다.

     

    “용케도 무릎을 안 꿇는군.”

     

    아셀라의 가학적인 성격은 황비를 똑 닮았음이 분명했다.

     

    카밀라는 늘 방해나 되고 배드엔딩 확률을 올려대는 맘에 안 드는 여자다.

     

    이 황비가 원하는 그림을 보여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납덩이처럼 무거워진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내며 이빨이 드러내도록 웃어줬다.

     

    “제 무릎은 주군께만 꿇기 위해 있는지라.”

     

    황비의 눈이 더욱 매서워진다.

     

    음, 어디서 많이 본 눈이다.

     

    불현듯 주마등처럼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용케도 무릎을 꿇지 않는구나, 용사파티의 치유사야.

     

    악마 같은 표정을 지으며 깔깔대던 아셀라.

     

    10년 후의 수많은 반복 속에서 수도 없이 봤던 마지막 장면 속 표정이다.

     

    내게는 지금 황비의 얼굴과, 황금의 마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노이즈가 낀 듯 시야가 지직거린다.

    강력해진 중력으로 피가 뇌에 돌지 못해 블랙아웃이라도 찾아오려나 보다.

     

    그저 정신을 잃기 직전의 환상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직감한 두뇌가 보여주는 그림인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얼굴이 보인다.

     

    ―어디서 감히 제국의 황제에게 바쳐진 공물을 손대려 하는가?

     

    황제 아셀라의 말투에서는 여유와 위엄이 자연스레 묻어있었다.

     

    틱틱대는 지금과는 꽤 다른 느낌이다.

     

    ‘지금 생각하면 카밀라를 꽤 닮았어.’

     

    부모와 자식은 당연히 닮겠지.

     

    마법의 재능도 그렇고, 유전자는 외모부터 신체의 성능, 정신의 성향까지 꽤 많은 걸 결정한다.

     

    하지만 당연히 환경도 무시할 순 없다.

     

    아셀라가 미친 악녀가 되는 데에 카밀라가 꽤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직감이 됐다.

     

    ‘왜 그게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아름답지 않느냐. 저주가 끝나는 날이야.

     

    저주.

     

    아셀라는 그 단어는 자주 입에 담았다.

     

    그녀가 무슨 생각이었는지까지는 나로서야 짐작이 안 가지만.

     

    “어디 이것도 버텨보아라.”

     

    황비가 팔을 올리며 마법진을 하나 더 추가하려던 순간.

     

    ―파악!

     

    그녀의 마법을 관통하는 황금색 마법진.

     

    주문방해의 마법이었다.

     

    “허억.”

     

    꼴사납게 숨을 몰아쉬며 그만 가슴팍을 붙잡아버렸다.

     

    고개를 드니 아셀라가 카밀라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조그마한 손에서 금색 마나가 넘실댄다.

     

    “…아셀라?”

     

    황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얼이 나간 얼굴이었다.

     

    “지금 무슨 짓이니?”

     

    아셀라는 각오를 한껏 들이킨 듯, 눈에서 불을 뿜으며 카밀라에게 대답했다.

     

    “제 물건에서 손을 떼세요.”

     

    들어본 적 있는 톤이었다.

     

    아셀라가 화가 났을 때 주로 들을 수 있었던, 단단하게 얼어붙은 호수를 깨는 송곳 같은 목소리였다.

     

    “당장.”

     

     

     

    ―――――――――――

     

    · 알림 : 엔딩 발생 확률이 변동하였습니다.

     

    · 배드엔딩

     

    No. 058 : 마법 고문               62% → 14%

     

    · 굿엔딩

     

    · ■■■ ■, ■■ ■■에■ 0.04%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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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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