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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서커스 그랑프리의 개막식이 열리기까지는 앞으로 3주.

         

       일행은 루즈에서 제일 비싼 호텔 중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베르그송 자작의 수행원들을 모두 채우고도 방이 상당히 많이 남았기 때문에, 단원들 모두가 개인실을 받을 수 있었다.

         

       호텔 방은 에메랄드 실크 호의 객실보다 더 넓고 아늑했고, 식당의 음식은 배에서 제공되던 것보다 더 신선하고 맛있었다.

       방마다 있는 욕조는 우몬을 제외한 모두가 두 다리 쭉 뻗고 목욕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거기다 이곳은 단순히 놀고먹기에만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호텔 뒷마당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정원.

       그 전체를 서커스 단원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정원을 둘러싼 담장도 높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연습하기에 그만이었다.

         

       엘라의 설명에 다들 그렇구나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단원들.

         

       하지만 1주일이 지난 현재, 그 사실에 감사하는 단원은 아무도 없었다.

         

       “끄아아악!”

       “흐그그극!”

         

       고통에 찬 비명과 악에 찬 신음이 번갈아 들려왔다.

         

       서커스 단원들은 정원에서 곡예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만 들어보면, 흡사 단체로 고문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무슨 훈련을 하는지 궁금해서 기웃거렸던 호텔 직원들은 이제 이 시간대가 되면 아예 후원에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단원들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너무 불쌍해 보여서였다.

         

       “우몬, 허리를 죽 펴지 않았잖아! 자세 똑바로 안 해?”

         

       엘라의 눈썹이 치켜떠지는 순간, 우몬은 이제 반사적으로 목이 움츠러들었다.

       그녀가 욕을 내뱉거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실망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우몬은 자신이 요령이나 피우는 게으름뱅이가 된 느낌을 받았다.

       .

       “하, 하지만 누나! 어제만 5번을 했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그는 점점 굳어져 가는 엘라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었다.

       우려했던 대로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싸늘한 대꾸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저, 저기…….”

       “후우, 우리가 악스빌에서 며칠을 공연했는지 기억해?”

         

       질문하지 마요.

         

       우몬은 이런 식으로 ‘묻는’ 그녀의 말투가 제일 무서웠다.

       틀린 대답을 하면 틀렸다고 욕을 먹고, 맞는 대답을 하면, 그것대로 면박을 들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맞는 답을 말했다.

         

       “1주일…….”

       “‘고작’ 1주일이야. 고작! 네가 한 건 철창 안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철창을 붙잡고 흔드는 게 다였잖아.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막판에는 체력이 떨어져서 기진맥진했어. 그런데 이제는 고난도의 재주까지 수행해야 해.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오르면? 그걸 한 달 동안 해야 하지. 그것도 지쳐서 헉헉대거나 하면 안 돼! 최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로 아래 단계까지 폼을 유지해야 해. 무대 위에서 ‘어제 많이 했으니까, 오늘은 안 되겠어요.’ 같은 변명이 통할 것 같아?”

       “아, 아뇨…….”

         

       괜히 벌집을 건드렸다고 생각한 우몬은 고개를 푹 숙였다.

       괜히 땅바닥의 잡스러운 것들에 시선이 갔다.

         

       개미는 참으로 열심히 일하는구나.

       벽돌 타일 사이의 균열 모양이 신기하네.

       앗, 방금 개미가 저 사이로 떨어졌어.

         

       2m가 넘는 거인이 자기 덩치의 반의반도 안 되는 소녀 앞에서 주눅 들어있는 모습은 보기에 퍽 우스웠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것도 1주일 내내 본 단원들은 이제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저 침울한 척, 자신들도 같이 반성하고 있다는 티를 낼 뿐이었다.

       하지만 16살짜리 교관은 그런 기만조차 다 꿰뚫어 보았다.

         

       “스벤! 당신, 이때다 싶어 관절 부위 땅에 대고 쉬고 있네? 당장 일으켜 세우지 못해!”

       “트라이머리! 셋이 작당해서 요령 피우는 것 다 보여! 세 명이 의사를 맞추라고 했는데, 2명은 멍하니 있고, 혼자서 움직이고 있잖아! 그래서 훈련이 되겠어?”

       “요벨! 줄에 가만히 매달려 있지 말고, 진짜 날개로 나는 것 같은 동작을 취하란 말이야!”

       “밴딕! 붕대를 무작정 휘두르지 말고, 스냅을 사용해서!”

         

       그렇게 말을 다다다 쏟아낸 엘라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로프 아래에 드러누워 있는 유라크네였다.

         

       그녀는 땀에 푹 젖은 채,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서커스단의 식사를 담당하는 그녀를 좀 배려해줬겠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그녀에게도 뭐라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호텔 본관 입구 쪽에서 마차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렸다.

         

       현재 이 호텔은 그들이 전부 빌린 상태였다.

       다른 손님이 본관 앞까지 들어올 수 없었다.

         

       외출을 나갔던 자작과 단장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자작의 성난 목소리와 단장의 나긋한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그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원더스타인의 차분한 태도가 자작의 화를 더 돋운 듯했다.

         

       잠시 후, 입에 미소를 띤 원더스타인이 단원들이 연습하고 있는 정원으로 들어왔다.

         

       “다들 고생이 많군요.”

         

       원더스타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단원들의 얼굴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그를 바라보는 단원들의 시선에 무려 ‘반가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습은 단장이 도착하기 전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엘라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좋아.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모두 씻으러 가세요!”

         

       엘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단원들.

       단장과 부단장 중 누구에게서 멀어지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라크네는 잠시 자리에 서서 머뭇거렸지만, 자신의 몸에서 나는 땀 냄새를 맡고는 재빨리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엘라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아, 자작님이 화가 좀 나셔서요.”

       “……후원자 심기 너무 건드리지 마.”

         

       원더스타인은 땀으로 젖은 흙과 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거칠게 파인 자국이 많이 있었다.

         

       “너무 심하게 훈련 시키는 것 아닌가요?”

       “불만이야? 서커스 그랑프리 본선에 가고 싶다며.”

       “아뇨. 저는 좋긴 한데……엘라 양이 미움받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그가 단원들이랑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엘라가 유일했다.

       그녀가 괜히 단원들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면 그도 곤란해지는 것이다.

         

       “그냥 말하지 그래요. 2년 반만 노력하면, 저한테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말할 단계는 아니야.”

       “왜죠? 말하면 다들 열심히 하고, 엘라 양을 향한 원망도 없을 텐데요.”

         

       그의 말에 엘라는 모자를 벗었다.

       안에 있던 구돌이가 튀어나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정확히는 몰라. 하지만 서커스 학교에서 경험한 게 있어.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호감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움직이면……음, 일이 잘 안 풀려. 그리고 아직 닥치지도 않은 먼 미래의 보상을 눈앞에 흔들어 봤자, 그 동기는 오래 못가. 2주쯤 지나면 다들 그 보상을 받은 자신을 상상하는 시간만 늘어가지. 힘든 일을 버티기 위해서는 악과 깡이 필요해. 근데 우리 단원들에겐 아직 그게 없어. 그게 생기기 전까지는 그 얘기는 안 할 거야.”

         

       어른이다.

       16살의 그녀가 자신보다 더 사회 경험이 많았고, 사람들을 다루는 데 노련했다.

         

       조금 부끄러웠다.

       자신은 시스템상 호감도가 표시 안 되면 최소한의 교류를 쌓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적어도 대회 시작 전까지 20%까지는 끌어올려야 해.”

       “지금이 몇 퍼센트인데요?”

       “10%……조금 안 되려나…….”

         

       엘라가 언제부터인가 입에 담은 퍼센트라는 수치.

       그것은 원더스타인이 쓴 대본을 100%로 두고, 그것을 얼마만큼 소화할 수 있느냐를 의미했다.

         

       그가 쓴 대본은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문제는 아직 그걸 전부 구현하기에 단원들의 실력이 모자랐다.

       연기도, 재주도, 의상도, 분장도, 설비도, 연출도 모든 것이 부족했다.

         

       악스빌에서 공연했던 그것은 ‘요약판’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했다.

       기본적인 골격만 남기고, 곡예나 어려운 연기는 모두 뺀 것이었다.

         

       예시를 몇 가지 들자면, 거미 여인의 등장 퍼포먼스인 ‘천장에서 줄에 거꾸로 매달려 내려오기’나, 적혈귀가 ‘뿔로 무언가를 들이받아 격파하는 것’, 해골 광대가 팔과 다리를‘ 여러 개로 분리한 채 따로따로 기어 다니다가 동시에 합체하는 것’ 등이 그랬다.

         

       그 동작들은 각각 줄타기, 힘자랑, 땅재주의 기술을 모두 숙련자 이상으로 익혀야 가능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몇 년이나 연습한 곡예사도 하기 어려운 것들이니까.

         

       하지만 그들에게 배정된 재주는 모두 그들이 딱 소화하기 좋은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의 특이한 신체 구조와 시너지를 일으켜 몇 배는 적은 노력으로 몇 배는 더 큰 효과를 보일 수 있었다.

         

       앞으로 2년 반.

       충분히 할 만했다.

         

       “난 확신해. 이 대본의 모든 것을 100% 발휘할 수 있다면, 본선 진출뿐만 아니라, 우승도 꿈은 아니야.”

       “후후, 그 정도인가요?”

         

       그가 쓴 대본은 사실 TT1에 나온 각 보스 스테이지의 배경과 소품, 그리고 보스로 등장하는 단원들의 대사와 행동, 공격 패턴을 그대로 묘사한 것에 불과했다.

         

       TT1이 아트 측면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세계 최고 운운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대부분이 기존에 나온 괴수물과 공포물의 오마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게임은커녕, 영화도 없는 시대.

       그가 구현하려던 게임의 장면들은 이곳 사람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발상과 연출을 담고 있었다.

         

       “그럼 저녁 먹기 전에 씻어야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엘라.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향해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엘라 양, 저희 내일 같이 공연이나 보러 갈까요?”

       “……뭐? 당신이랑 나랑?”

         

       도저히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그녀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10일 전의 사건이 있은 뒤로, 둘이 그래도 업무상 필요한 대화는 제법 나누게 되었지만, 함께 놀러 나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일입니다.”

       “일이라고……?”

         

       엘라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원더스타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장미 풍차’를 미리 봐두는 거죠. 오늘 그 앞에 갔다가 호객꾼이 표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는 걸 받아왔습니다. 궁금하지 않나요? 서커스 그랑프리 예선전의 시험관으로 뽑힌 ‘6대 극장’의 저력이.”

         

       그의 말에 엘라는 삐딱한 표정을 풀고 눈을 빛냈다.

         

       6대 극장.

       1년 전까지만 해도 없던 단어였다.

         

       그런데 이번 서커스 그랑프리의 시험관으로 선정되면서, 마치 그들이 엄정하게 심사해서 뽑힌 세계 제일의 극장들인 양 거드름을 피우는 게 마음에 안 들던 차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궁금하긴 한데, 거기 성인만 출입 가능한 곳 아닌가? 카바레잖아.”

       “낮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연도 하더라고요. 거긴 모두 입장 가능합니다.”

       “……그럼 뭐……좋아. 단원들은 내일 자율 연습시켜야겠네.”

         

       엘라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단원 퀘스트-휴강! 휴강! 휴강!’을 완료하셨습니다.]

       [‘단원 퀘스트-쉬고 싶어요’을 완료하셨습니다.]

       [‘단원 퀘스트-누가 좀 부단장을 데려가 주오’를……]

         

       [스벤의 호감도가 2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5 (다음 보상: 호감도 15)]

       [밴딕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4 (다음 보상: 호감도 15)]

       [우몬의 호감도가……]

         

       오랜만의 호감도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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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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