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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 * *

       

       

       

       표트르 브란겔이 이끄는 군대에 지원군과 함께 합류한 나는 탈환한 도시마다 들어가서 러시아인들을 위로 했다.

       

       

       “저희들이 못나 차르께서 볼셰비키의 총칼에 돌아가셨습니다. 죄송합니다. 황녀님. 흐흑”

       

       

       끝까지 차르를 따르던 이들은 나를 보고는 울면서 죄를 청했다.

       

       자기들이 못 나 볼셰비키가 감히 차르 일가를 시해한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아니오. 그대들의 잘못은 없습니다. 당신들에게 폭정을 저질렀던 무능한 우리 황실의 자업자득이죠. 오히려 아직도 로마노프를 믿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들의 손을 직접 잡아주면서 위로했다.

       

       모스크바 근처인데, 왜 볼셰비키가 없냐고 물으면 간단하다.

       표트르 브란겔이 알아본 정보로는 지금 모스크바로 많은 볼셰비키들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쪽은 우리 영향권이라 볼셰비키가 날뛰기 힘들었지만, 다른 지역의 차르를 신봉하는 신민들은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당하고 있다고.

       

       그래도 볼셰비키가 한 놈도 없다니.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저놈들은 뒤로 빠졌다가 붉은 바다가 되어 우리와 결판을 낼 셈이다.

       

       우리 역시 모스크바 공방전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정말 2차대전 때까지도 내전을 끝내지 못할 거라고.

       

       열강의 지원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소련에 의해 극동까지 밀려날지도 모른다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여전히 정체성은 한국인이라고 여기지만, 역시 나로 인해 역사의 물줄기가 갈린다는 이 현실에 살이 떨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나는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전투를 끝내기 위해 여기까지 왔지만, 역시 목숨을 건다는 것은 힘든 일이거든. 그것도 전생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러시아와 인연도 없는 내가 백군의 아이돌이 되어 여기까지 왔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지만, 죽음의 기운이 몸을 잠식해드는 거 같다.

       

       

       “황녀님.”

       

       

       아무래도 내 얼굴에서 다 드러난 건지, 표트르 브란겔이 어느새 옆에서 나를 호위하고 있다.

       

       

       “검은 남작.”

       “이번 전투가 걱정되시는 모양이군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황실이 망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피를 흩뿌리는 대전투가 될 겁니다. 볼셰비키도 러시아인입니다. 전에 차르의 신민이었죠. 우리도, 그들도 동족끼리 피를 흩뿌리는 전투가 된다는 생각에 좀.”

       

       

       사실은 그냥 살고 싶을 뿐이지만, 그래도 입은 잘 털어야지.

       

       

       “전쟁이란 그런 겁니다. 결국 ,마음을 다 잡으셔야 합니다. 저희가 반드시 황녀님을 지키고 승전하여 이 러시아의 주인이 아직 로마노프임을 만천하에 알리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유리하다.

       

       내가 짜둔 판이 있으니, 백군은 실제 역사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무기의 질도 좋고, 사기도 높다.

       

       반면에 볼셰비키는 그렇지 못했다.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고.

       

       

       “네.”

       “전방에 볼세비키군대가 나타났다!”

       

       

       마침내 모스크바의 붉은 군대와 마주했다.

       

       

       * * *

       

       

       모스크바 인근.

       

       볼셰비키들은 사기를 드높이기 위해 무언가 작당을 했는지 저들 진영에서 음악 소리 들려오고 있다.

       

       아, 이 음악 많이 들었다.

       

       세상이 망하기 전에 X튜브로 들었던 노래다.

       

       분명 붉은 군대는 강력하다. 그 노래의 음악이었던 것 같다. 노래 하나는 마음에 든다면서 동영상에 좋아요를 눌렀지.

       

       언제 만들었는지도 봤었는데. 저게 벌써 나오나?

       

       지금이 20년도인가 그랬을 텐데. 아. 저 군가가 나왔던 것도 1920년이었지.

       

       과연 가사는 똑같을까?

       

       조금 기다리니 볼셰비키들 사이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Белая армия, чёрный барон

       백군과 검은 남작이

       Снова готовят нам царский трон.

       차르의 옥좌를 다시 준비하려 한다.

       Но от тайги до британских морей

       그러나 타이가에서 영국의 바다까지.

       Красная Армия всех сильней!

       붉은 군대는 가장 강력하지 않은가!

       Так пусть же Красная

       바로 그렇게 붉은 군대여,

       Сжимает властно

       총검을 든 억센 손으로

       Свой штык мозолистой рукой,

       위력 있게 압박하라.

       И все должны мы, Неудержимо

       그리고 우리 모두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Идти в последний смертный бой!

       마지막 죽음의 결전으로 가야만 한다!

       

       

       예상대로였다.

       

       적군에서 붉은 군대는 가장 강력하다를 단체 합창을 하고 있다.

       

       근본도 없는 놈들이. 실제 역사와 달리 승기를 잡지도 못한 주제에.

       

       몇 번이나 패배하고 모스크바를 방어하는 처지에 타이가에서 영국의 바다까지. 이 지랄을 하고 있다.

       

       타이가에서 영국의 바다는 러시아 전역을 의미한다.

       

       극동, 시베리아, 남러시아 전부 없는 빨갱이 새끼가 부르는 것이 참으로 오만 방자하기 짝이 없다.

       

       뭐 그래도. 이래야 좋기는 하지.

       

       저 노래가 듣기는 참 좋다는 말이지.

       

       아쉽게도 백군의 군가가 아니라서 이번 세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검은 남작이 위력적이었는지, 가사에는 검은 남작이 붙었지만. 아니 역사를 생각하면 아이러니 하다.

       

       합창으로 우리 기를 죽인다고.

       

       아니, 붉은 군대의 사기를 올리려는 수작일지도.

       

       흠, 확실히 저 붉은 군대의 노래는 잘 만들었다.

       

       저 붉은 군대에서 지금 우라 소리와 함께 전투 준비하는 듯하니까.

       

       그러니까 노래로 전투 이전에 각오를 다지는 그런 거다.

       

       유감스럽게도 저 노래는 이 전투가 백군의 승리로 끝나면 지옥에서나 듣는 노래가 될 것이다.

       

       여기에 맞춰 백군에서도 음악이 들려온다.

       

       어떤 눈치 빠른 놈이 시작한 모양이다.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하느님, 황제를 보호하소서!

       Сильный, державный,

       강인하고 위엄 가득한 차르시여,

       Царствуй на славу, на славу намъ!

       영광을 위하여 군림하소서, 우리의 영광을 위해!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하느님, 황제를 보호하소서!

       Сильный, державный,

       강인하고 위엄 가득한 황제 폐하,

       Царствуй на славу, на славу намъ!

       영광을 위하여 군림하소서, 우리의 영광을 위해!

       Царствуй на страхъ врагамъ,

       군림하사 적들을 공포케 하소서,

       Царь православный!

       정교회의 차르시여!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하느님, 황제를 보호하소서!

       Царствуй на страхъ врагамъ,

       군림하사 적들을 공포케 하소서,

       Царь православный!

       정교회의 황제여!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하느님, 황제를 보호하소서!

       

       

       백군은 러시아제국 국가 하느님 차르를 보우하소서를 부른다.

       

       예카테리나2세 시절의 비공식 국가가 더 나았을 거 같은데.

       

       뭐 공식 국가는 이거니 이쪽이 나은가.

       

       

       “소비에트의 인민들이여! 또다시 차르의 통치 아래에서 시달리겠는가! 아니면 노동자의 붉은 깃발아래에 함께 하겠는가! 보라! 저 반동들은, 여전히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한 백군 반동들이 너희를 잡기 위해 왔다! 너희를 탄압하고 다시금 쌍두독수리 아래에서 가혹한 통치를 할 생각이다!”

       “군사평의회가 너희를 전장에 부른다! 싸우자! 저들을 무찌르고, 제국주의가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온세상에 알리자! 여기서 너희가 물러선다면 저들은 너희를 죽이고 너희의 가족을 죽이고 겁탈할 것이다! 저 반동들을 막자! 우라아!”

       

       

       방어선의 적군들이 백군을 향해 우라 돌격을 감행한다.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그저 선동이 아니면 권력을 쥐지 못 하는 놈들이.

       

       지들이 밀릴 거 같으니 바로 두마 해산 시키고 권력 차지한 놈들 주제에.

       

       소련의 탄생부터 스탈린의 통치까지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 줄줄이 나열 해 보면 소련 빠는 애들이 왜 있는지 모르겠다니까.

       

       지들 말 안 듣는다고 백군쪽도 아닌 자기들 노동자를 학살하지 않나.

       

       어딜 봐도 차르 때와 다를 바가 없지 않냐고.

       

       다만 니콜라이2세가 너무 죽을 쒔을 뿐.

       

       스톨리핀이 남아 있었다면 정말 소련 같은 건 없었을 텐데.

       

       

       “달콤한 말로 신민을 유혹하며 위선과 권위주의, 탄압 외엔 할 줄 모르는 무식한 사탄의 무리가 언제까지 제 3의 로마를 차지하게 둘 셈인가? 위대한 대러시아의 백군이여! 저 사탄의 군대를 뿌리 뽑고 제 3의 로마를 탈환하라!”

       

       

       우라아아아!

       

       표트르 브란겔의 백군이 적군의 방어선을 향해 전차를 앞세우며 볼셰비키를 때려잡기 위해 진격한다.

       

       

       “저기 반동의 수괴 아나스타샤 황녀가 있다! 황녀의 치마폭 아래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백군 반동들을 모조리 죽여라! 소비에트 우라!”

       “하나님! 전러시아의 복된 성녀 아나스타샤 차리나를 보우하소서! 대러시아 제국이여 영원하라! 우라!”

       

       

       사방에서 우라 소리로 천지를 진동하며.

       

       백군과 적군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자리에 외국군의 개입은 전혀 없었다.

       

       미군도 독일군도, 영국군도, 프랑스군도 어디까지나 주재무관 아래에 이 전투를 지켜볼 뿐이었다.

       

       무타구치 렌야가 있는 건 그냥 넘기도록 하자.

       

       적군은 꽤 기세 좋게 합창한 것치고는 질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트로츠키가 나름 열심히 군대 개혁한 건지, 적군은 군복은 입기야 했는데, 전부는 아니고. 입은 애들도 붉은 별이 달린, 부됸노프카에 롱코트를 입고 있다.

       

       꼴에 군대 재건한답시고 저런 걸 빠르게 맞췄다.

       

       부됸노프카는 모자인데. 그 붉은 별이 새겨져 있어서 겨울전쟁 때 핀란드군이 대놓고 머리에 과녁판을 달고 다니는 소련군을 갈아버렸다지.

       

       당시에 유명했던 세묜 부됸니의 이름을 땄다는데.

       

       색도 밝고 형편없는 디자인.

       

       마치 몽골식 복장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

       

       굉장히 가난해 보이는 그런 복장이다.

       

       백군도 코트를 입기는 했지만. 검은색에 모자도 서구식이었다.

       

       아직 철모는 나오지 않았지만, 딱 양쪽을 보기만 해도 어느 쪽이 잘 먹고 잘 살았는지 구분이 명확하게 났다.

       

       심지어 무기도 차이가 났다.

       

       소련군은 1차 세계대전에서 노획된 열강의 무기로 무장하거나, 그 외에는 모신나강이 대부분이었다.

       

       표도로프 자동소총도 간간이 보이긴 하는데. 딱 간간이 보이는 수준이었다.

       

       이쪽은 태반이 개량한 표도로프 소총이다.

       

       무엇보다 큰 차이가 있다면.

       

       쿠르르르르

       

       이쪽은 전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수상하게 러시아어를 못 하는 전차 사단이 아니라 정말 러시아어를 쓸 줄 아는 그런 러시아의 전차사단.

       

       아직 외국 전차들이 대부분이지만 독일의 지원 아래에 생산하게 된 러시아 전차 A-1호 전차.

       

       여기서 A는 아나스타샤의 앞글자에서 따왔다.

       

       

       “빨갱이들을 잡는데 아주 좋을 거 같습니다.”

       

       

       미하일 드로즈돕스키는 같은 러시아인을 잡는데도 신이 났다.

       하기야. 빨갱이가 아닌가.

       

       빨갱이는 이미 사탄놈들. 구제 불능한 바퀴벌레란 이명이 붙을 정도니 그럴 만하지.

       

       손속을 봐줄 필요가 있었다.

       

       소련 쪽에도 전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획한 수준이거나 영프의 전차를 아무런 지원 없이 자기네 끼리 분해하고 새로 전차를 만들어 낸듯하다.

       

       모스크바를 걸고 싸우는 대회전.

       

       적군도 방어하는 측이지만, 이 싸움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몰려오는 적군과 싸우기 위해 정면에서 맞붙는다.

       

       양측에서 야포가 불을 뿗는다.

       

       볼셰비키의 야포는 상대적으로 성능도 떨어진다.

       

       반면에 이쪽은 무기가 각국의 지원품으로 다양하지만 성능은 볼셰비키가 써먹는 야포에 비하면 한참 유리하다.

       

       사거리도 파괴력도 그렇고.

       

       지휘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저놈들은 지휘관 역량도 부족한 마당에 무기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

       

       

       “황녀님 이만 뒤로 가시지요.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저로 인해 죽는 병사들이 많습니다. 직접 나가서 총칼로 싸울 게 아니라면 하다못해 이곳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이곳에서 싸우겠다.

       

       저 빨갱이들을 보라.

       

       볼셰비키 바퀴벌레의 수괴 레닌이 직접 선두에 나와 있나? 아니다.

       

       트로 츠키가 나와 있나? 아니다.

       

       지금은 그냥 ‘정예 몬스터’인 조지아의 인간백정은 선두에 나올 짬도 되지 못한다.

       

       물론 이쪽도 일단 정식으로는 표트르 브란겔이 총사령관이다.

       

       그렇다면 지금 적군의 방어를 맡은 자는 누구인가.

       

       미하일 프룬제다.

       

       실제 역사에서 남러시아를 이끌며 적군에게 위협을 가하던 표트르 브란겔은 미하일 프룬제의 공세에 밀려 결국 군인과 민간인을 데리고 망명해야만 했다.

       

       즉, 프룬제는 실제 역사에서 표트르 브란겔을 무너트린 놈이다.

       

       실제 역사는 브란겔의 휘하에 병력이 많지 않아서 중과부적이었지만.

       

       

       “이상하군.”

       “예?”

       “적군에도 기병대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근데, 기병대가 보이지 않는군요.”

       “우리의 측면을 노릴지도 모르겠군요.”

       

       

       비록 총기류의 등장으로 기병대가 이전만은 못했지만, 이 시대에는 여전히 기병대는 존재했다.

       

       볼셰비키의 적군 기병대도 그중 하나였다.

       

       분명히 이번 전투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놈들도 나올 것인데. 이놈들이 과연 어디서 튀어나오려나.

       

       아마, 그놈들에게 기회가 있다면, 백군 주력이 모스크바 방어선을 뚫기 위해 몰려갈 때, 나타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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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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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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