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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하, 과연. 신입이 죽은 이유를 알겠군.”

       

       

       알록달록한 얼굴의 카멜레온 수인이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죽여라. 내가 졌으니.”

       

       “···.”

       

       

       뭐야.

       

       왜 안 죽이지?

       

       유시우는 빌런의 목을 베지 않고 그저 칼을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죽이지 않는 거냐?”

       

       “으, 큭···.”

       

       [아, 이거 그거다.]

       

       

       작가님의 깨달은 듯 작게 탄성을 흘렸다.

       

       나도 주인공이 왜 저러는지 눈치채버렸다.

       

       그러지 않았으면 했는데.

       

       하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유시우가, 사람을 죽이는 걸 망설이고 있었다.

       

       

       “뭐냐.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망설이다니. 신입은 이런 녀석에게 죽은 건가.”

       

       “나는 너를 죽이지 않아.”

       

       “···왜지?”

       

       “그 위버멘쉬라는 조직의 정보를 들어야 하니까.”

       

       

       변명이었다.

       

       작가님도, 나도, 아멜리아도.

       

       당사자인 유시우와 카멜레온 수인도 그걸 눈치챘다.

       

       

       “나는 고문을 견디는 훈련도 받은 몸이다. 시간 낭비야.”

       

       “아니, 너를 죽이지 않고 정보를 얻을 방법이 있을 거야.”

       

       “···.”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다는 듯 빌런의 입이 닫혔다.

       

       으음, 어쩌지.

       

       주인공이 이렇게 불살을 지향하는 건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데.

       

       지금 이 타이밍에 한 번쯤 죽여봐야 한다고.

       

       아, 그래.

       

       그게 좋겠다.

       

       

       “뭐, 뭣···?!”

       

       “···더 할 셈이냐! 그 몸으로는 움직일 수 없어! 항복해!”

       

       

       미리 깔아둔 실의 일부분을 조작해 카멜레온 수인을 묶어 강제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은 실이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유시우가 눈치채겠지만 지금은 평범한 상황이 아니지.

       

       아마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천장에서 슬며시 내려온 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으음, 역시 미숙해. 언젠가는 이런 것도 눈치채야 할 텐데.

       

       자면서도 공격을 피할 정도는 되어야지. 암.

       

       

       “크···?!”

       

       

       카멜레온 수인이 잔뜩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당연히 당황하겠지.

       

       자기는 몸을 움직인 적이 없는데, 저절로 몸이 움직이고 있으니까.

       

       몸을 움직여보려고 해도 강하게 묶인 실 탓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다.

       

       귀신이라도 들린 기분 아닐까?

       

       

       “머, 멈춰! 네가 그런다고 이길 수 있을 리가···!”

       

       

       갑작스레 돌변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며 맹공을 가하는 빌런의 모습에 유시우가 당황했다.

       

       그래. 움직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당황스럽겠지.

       

       실제로도 움직일 수 없는 몸은 맞다.

       

       옆구리가 점점 붉게 물드는 걸 보아하니, 진짜 내장이라도 터진 모양이니까.

       

       아마 엄청 아플걸.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카앙! 카앙!

       

       

       “윽···!”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방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습 같은 게 아니라 대놓고 힘을 겨루고 있다는 점일까.

       

       그러나 유시우는 빌런을 손쉽게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할 수 있는 틈이 보여도 그쪽으로 공격을 가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때리면 쉽게 이길 수 있을 텐데.

       

       이래도 안 때릴 거야? 이래도?

       

       목과 심장, 피가 새어 나오는 옆구리를 때리기 쉽게 들이밀어도 공격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 대 맞으면 죽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뭐, 죽는 건 맞긴 해.

       

       

       “너, 그러다가 진짜로 죽는다고!”

       

       

       말을 걸어도 소용없는데.

       

       조종당하고 있다고 말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입을 꿰매둔 상태거든.

       

       아, 근데 이거 좀 재밌다.

       

       뭔가 게임 하는 기분이야.

       

       받아랏! 필살, 횡베기!

       

       ···안 맞네.

       

       

       “윽, 큭···!”

       

       “이, 이게 대체···!”

       

       

       갑자기 즐거워져서 이리저리 조작하다가, 금방 질려버렸다.

       

       처음에는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공격은 당연하게도 전부 막히고, 유시우가 끝낼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재미없네.

       

       슬슬 끝내볼까.

       

       이 정도면 충분히 싸운 것 같고.

       

       실을 조종해 인형의 몸을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몸을 추스르지도 않고 휘두르는 검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방어하는 유시우.

       

       죽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공격을 막기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기절시키기 위해 틈을 보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래서는 안 돼.

       

       웹소설 주인공은 호쾌하게 장애물을 모두 부숴가며 전진해야 하니까.

       

       이런 사소한 일에 얽매여 멈춰설 수는 없는 법이다.

       

       빌런을 조종해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당연히 공격을 막기 위해 유시우도 검을 휘두르겠지.

       

       좋아. 예상대로네.

       

       그 상황에서, 강제로 팔을 꺾어 궤도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

       

       

       뭐, 당연한 결과다.

       

       검을 휘두르고 나서 유시우도 눈치챈 모양이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어.

       

       빌런의 공격 궤도가 강제로 꺾였으니까.

       

       이미 휘두른 상태의 공격은 그대로 곧게 나아간다.

       

       나처럼 누군가 강제로 꺾지 않는 이상은.

       

       인형의 목을, 궤도를 바꾸지 못한 횡베기가 갈랐다.

       

       

       “주, 죽었···?!”

       

       

       그래, 죽었다.

       

       확실하게.

       

       머리와 몸이 작별했는데 살아있으면 이상한 게 아닐까?

       

       우엑, 징그러워.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은 유시우를 뒤로한 채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좋아, 이제 히로인이 그 포용력 넘치는 가슴으로 달래줄 시간이네.

       

       

       “···후으, 후으으.”

       

       

       야?!

       

       아멜리아가 시체를 보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그러면 안 되잖아!

       

       왜 너까지 멘탈이 나간 건데에···!

       

       크, 큰일 났다. 아멜리아는 당찬 성격이라 멀쩡할 줄 알았는데!

       

       주인공이 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금 이 타이밍에 누가 달래줘야 하는 상황이거늘.

       

       아멜리아···! 정신 좀 차려봐!

       

       그러나 내 마음속 절규는 닿지 않았다.

       

       아멜리아의 능력은 독심술이 아니니까 당연하겠지.

       

       아악, 젠장. 어쩔 수 없나.

       

       슬쩍 내 가슴을 한번 만져보았다.

       

       ···이 정도면 꽤 크지?

       

       

       “걱정하지 마세요, 유시우 군.”

       

       “···아르테.”

       

       “그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어요. 저와 아멜리아 양이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하, 하지만···!”

       

       

       아아, 거참 말 많네.

       

       

       “?!”

       

       

       아무리 그래도 얼굴을 껴안는 건 거부감이 심하게 들어서, 뒤통수를 껴안아 주었다.

       

       하, 인생.

       

       아멜리아만 멀쩡했어도 이런 짓 할 필요는 없었는데···.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으윽.

       

       ···이 정도면 괜찮겠지?

       

       

       “모든 게 괜찮을 거에요. 당신의 탓이 아니에요.”

       

       “···.”

       

       “그가 자신의 몸을 던졌을 뿐, 시우 군에게는 잘못이 없답니다.”

       

       

       점점 유시우의 떨림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진정했지? ···진정한 거 맞지?

       

       좋아. 성공이다.

       

       이제 사람을 죽이는 거부감은 줄어들었겠지.

       

       원래 한 번이 어려운 법.

       

       선을 한 번 넘으면, 다음에는 넘기가 쉬워진다.

       

       

       “무슨 일이냐! 큰 소란이···?! 너희, 괜찮나?!”

       

       

       아, 드디어 왔네, 선생님.

       

       하긴. 그렇게 큰 소리가 났는데 선생님들이 오지 않는 게 이상하지.

       

       좋은 타이밍이었어.

       

       황급히 현장을 보존하고 통제를 시작한 선생님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즐거웠어요···! 완벽한 장면이에요!]

       

       

       작가님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양이었다.

       

       대성공이네.

       

       

       

       ***

       

       

       

       “···.”

       

       

       손을 한번 쥐어보았다.

       

       ···아직도 감촉이 느껴진다.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

       

       손쉽게 베어지는 와중에 턱, 하고 막히는 감각. ···아마 뼈겠지.

       

       소름이 끼쳐왔다.

       

       그저 말하지 못하게 할 생각뿐이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아르테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사소한 실수로 그녀가 눈치챈다면.

       

       빌런이 아르테에게 자신이 속옷을 뒤진 게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렇기에 그를 빨리 사로잡고 싶었다.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성공은 했네.”

       

       

       그래.

       

       성공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죽었으니까.

       

       하지만 기분이 착잡했다.

       

       분명 그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다.

       

       아카데미에 침입한 행동 만으로도 이미 중죄니까.

       

       그런데 변절한 라이라와 같은 조직 소속이라니.

       

       패배한 순간 살아남을 것이라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그도 죽이라고 종용했던 거겠지.

       

       하지만, 죽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목숨을 끊은 것은 결국 나였다.

       

       

       “후우···.”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우울한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울한 생각을 꺼내는 순간 다음 장면이 뇌리에서 떠올랐으니까.

       

       

       “윽, 아니야. 생각하지 말자···.”

       

       

       고개를 붕붕 돌려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오히려 더 생각나는 법.

       

       뒤통수를 부드럽게 누르던 말랑한 감촉이 떠올랐다.

       

       

       “···윽!”

       

       

       -쿵!

       

       

       머리를 벽에 한 번 들이박았다.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서.

       

       ···그러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초인이라 별로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고.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사람을 죽여놓고 여자의 가슴 감촉이나 떠올리다니.

       

       쓰레기나 할 법한 행동이 아닌가.

       

       그러나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면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인가···.”

       

       

       그녀의 목적은 도대체 뭘까.

       

       의문이 들었다.

       

       처음에는 나를 죽이려고 하는 줄 알았지만, 그건 오해였다.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나를 지켜보는 걸까.

       

       그저 관찰하고 싶을 뿐일까?

       

       그녀는 마수를 아카데미에 습격시키고, 숨어있는 모종의 아티팩트를 찾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나를 지켜보는 것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모르겠다!”

       

       

       어려운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알 방법도 없었고.

       

       계속 생각하다간 또 자괴감에 빠질 것만 같아서, 한숨 푹 자기로 했다.

       

       

       “···잠이 안 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계획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법.

       

       시우는 뒤통수를 짓누르던 감각과 아찔한 향기가 떠올라 잠을 설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멜레온 아저씨를 음해하지 말아주세요···.

    그의 조상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미 시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 야스는 하지 못했습니다.

    라이라만 강제로 조상이 가능충이 되었을 뿐이고, 그는 그냥 눈알이 툭 튀어나온 못생긴 카멜레온 인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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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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