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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이런 귀신을 다 보네.”

       

       엘프의 영혼.

       

       사람의 영혼과는 그 기질 부터가 달랐다.

       

       아이린에게서 식물이 느껴졌듯이 이 영혼들에게서도 같은 느낌이 난다.

       

       식물이 인간이 된 귀신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난생처음보는 종류의 귀신이다.

       

       “오래도 사셨네…”

       

       수명이 길다 하더니 영혼에 쌓인 것들도 굉장히 많다.

       

       “크리스, 그쪽이 아니에요.”

       

       “아니요. 엘프의 영혼들이 다 저쪽을 가리키고 있어요.”

       

       내 주위의 나무들에 영혼들이 하나씩 달라붙어 있었다.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한 역시 특이하다.

       

       각오, 굳건함, 수호.

       

       무언가를 지켜내고자 하는 염이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영혼과는 달랐다.

       

        그 바람들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영혼이 나눠져 있어서 여러 개의 한일 뿐이지 다 섞어 놔도 이질감이 없을 정도였다.

       

       파라몬 영감이 내 뒤로 바짝 따라 붙었다.

       

       “계속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네. 주변은 신경 쓰지 말고 걸으시게.”

       

       깊이 들어 갈수록 나무들이 많아졌다.

       

       온갖 식물들이 피어 있었다.

       

       클로셀 영감이 작게 읊조렸다.

       

       “더 들어가기는 힘들겠군.”

       

       발을 딛기조차 힘들 만큼 여러 식물들이 자라 있었다.

       

       길이란 게 없을지경이다.

       

       하지만 엘프의 영혼은 여전히 그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린, 이쪽으로 가면 뭐가 나오나요?”

       

       “갈 수만 있다면 마을이 있는 방향이 맞아요.”

       

       “왜 이쪽으로 가라고 하는 거지?”

       

       마을이라면 가던 길을 따라 가도 되었을 것이다.

       

       영혼들이 이쪽을 가리킨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순간, 아이린에게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

       

       무언가를 느낀 듯 아이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지들이…가지들이 흔들리고 있어요.”

       

       “음….?”

       

       가지가 흔들린다는 말은 아직도 나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엘프의 영혼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로 부지런히 옮겨다니는 게 보였다.

       

       아이린의 눈이 커지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설마….”

       

       그 순간, 숲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느낌이 아니다.

       

       반가워하는 환영의 인사였다.

       

       모든 영혼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우드득 –

       

       스으으 –

       

       “….이게 뭐야.”

       

       나무들이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마치 기지개를 피듯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가지들이 솟아 오르고, 식물들이 몸을 눕혔다.

       

       스으으 –

       

       비스듬하게 서 있던 나무가 곧게 몸을 세우고, 또 어떤 나무들은 비스듬히 몸을 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사이로 길이 생겨났다.

       

       아이린이 흥분한 듯 몸을 떨었다.

       

       “…숲의 길….가지들이 당신을 반기고 있군요.”

       

       뻥 뚫려진 길.

       

       그리고 이어진 길의 끝에서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멀리 떨어진 거리임에도 그 나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게 와닿을 정도였다.

       

       “하이 엘프들에게만 열리는 숲의 길이 어째서….”

       

       “허허….”

       

       “자네, 조상 중에 하이 엘프가 있는가?”

       

       “없을 걸요…?”

       

       아이린은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일단 다들 가보시죠.”

       

       여전히 엘프의 영혼은 그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마 나를 환영하며 길을 열어 준 듯싶었다.

       

       “특이한 영혼들이네.”

       

       아무리 봐도 특이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라 영혼의 형태도 다른 것일까···.

       

       발을 내디뎌도 땅에서 딱딱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을 누인 풀들이 푹신함을 주었다.

       

       “세계수라는 거 엄청 크네요.”

       

       막 상상처럼 하늘을 뒤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저 나무가 가진 격은 그만큼 클지 몰라도 실체는 나무인 것이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안느껴지지만.

       

       “세계수는 엘프의 근원이랍니다.”

       

       거리가 제법 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을 팔지 말고 타고 왔어야 했는데.

       

       “숲의 길은 고귀한 엘프에게만 열려요. 인간에게 열린 적은 처음이예요.”

       

       아이린의 눈빛이 한층 더 초롱초롱해졌다.

       

       영감들이야 놀라기는 했으나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었고, 한스는 대놓고 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부담스러우니까 앞을 좀 봐요…”

       

       숲의 길을 따라 걸은 후로 나 또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찝찝함도 사라졌고 우중충한 느낌도 사라졌다.

       

       엘프의 영혼들이 나무를 옮겨 가며 따라오는 게 관련이 있지 싶다.

       

       우리는 또다시 걸었다.

       

       그리고 길의 끝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엘프무리들을 볼 수 있었다.

       

       “….숲의 길이라니!”

       

       “누가 이 길을 걷는단 말인가.”

       

       “하이 엘프께서는 아무도 숲밖을 나서지 않았을 텐데…”

       

       이윽고 우리에게로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떻게 인간이 저곳을 걸어온 거지?”

       

       웅성.

       

       웅성.

       

       엘프들에게서 경계심이 느껴졌다.

       

       호기심과 신비로움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이린이 앞으로 나서며 손을 뻗었다.

       

       “가지의 평화로움을.”

       

       “가지의 안식을… 돌아왔구나 아이린.”

       

       살짝 특이하긴 한데 저게 엘프의 인사법인가 보다.

       

       우아하긴 하네···.

       

       앞으로 나선 엘프가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이린, 이 인간들은 누구지? 어떻게 숲의 길을 걸어온 것인가?”

       

       여러 시선이 우리들 사이를 지나다녔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아이린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세계수의 의지로 가지의 인도를 받은 인간입니다.”

       

       “….”

       

       “….”

       

       다시 한번 엘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여는 엘프가 없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기요?”

       

       그리고 곧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가지의 인도를 받은 인간이 도착했다!”

       

       “이미 번개와 함께 나타난 인간이다!”

       

       “숲의 길을 걸어왔다!”

       

       

       ***

       

       

       얼떨떨했다.

       

       무당 팔자에 이렇게 환대를 받는 날이 오다니···.

       

       나는 지금 수많은 엘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숲의 길은 어떻게 열었나요?”

       

       이거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물론 연예인이 무당과 팔자가 비슷하다지만 이런 관심은 과하다.

       

       중간중간 엘프의 영혼까지 섞여 있으니 정신이 없었다.

       

       나름 기분이 좋기는 하다.

       

       엘프들은 하나 같이 예뻤으니까.

       

       “그만, 로메넬님을 뵈어야 한다.”

       

       나를 안내하던 엘프가 다른 엘프들을 중제했다.

       

       로메넬은 인간들의 개념으로 치자면 왕과 같은 위치에 있는 엘프라고 한다.

       

       “허허…엘프들이 이렇게 환대를 해 주다니.”

       

       영감들이 허탈하게 웃었다.

       

       조화로운 종족인 엘프들은 누군가를 적대하는 일도 드물지만 이렇게 환대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인 것이다.

       

       “…엘프의 숲이 상상이랑 조금 다르네요?”

       

       “나도 와보지 않았을 때는 나무 속에서 산다고 생각했네.”

       

       엘프의 숲 안에는 거대한 도시가 있었다.

       

       인간들 처럼 성만 덩그러니 있는 게 아니었다.

       

       나무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도시.

       

       건물을 지어 올린 게 아니라 원래 있던 땅을 깎아서 만들어 놓은 듯한 생김새.

       

       놀랍게도 그 건물 사이 사이로 나무들이 얽혀 있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로메넬님께서 계신다.”

       

       제법 강직한 인상을 가진 엘프가 이 말하고 물러섰다.

       

       표정을 굳히고 있지만 두 눈에 호감이 가득했다.

       

       “감사해요.”

       

       나무들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온갖 냄새들이 밀려왔다.

       

       아이린에게서 나는 향기가 더 짙어진 느낌이다.

       

       “정령의 냄새인가…”

       

       걸어 들어 갈수록 익숙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난 곧 그 느낌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가지의 인도를 받은이여, 환영합니다.”

       

       신비로운 은색머리의 하얀 피부.

       

       완벽하다 싶을 정도의 이목구비.

       

       로메넬이라고 불린 이 여자 하이 엘프는···.

       

       “음…”

       

       신가물이었다.

       

       그것도 온전하지 못한.

       

       신을 담는 그릇이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아니, 반 토막도 아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그릇을 조금 나눠받은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조화로웠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로메넬이 화사하게 웃었다.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기는 한 걸까?

       

       “혹시 신을 모시나요?”

       

       “모든 엘프들은 세계수를 모신답니다. 저는 그중에 가지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습니다.”

       

       하이 엘프라는 게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세계수와의 소통을 위한 자리였다.

       

       마치 인간이 망자와 소통을 할 때 무당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비슷한 게 있기는 하네.”

       

       로메넬이 내 뒤에 있는 일행들을 보며 웃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신관님도 반갑습니다.”

       

       인사를 나눈 로메넬이 다시 나를 쳐다 봤다.

       

       “세계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으음….”

       

       또다시 찝찝함이 찾아왔다.

       

       지금 가야 하는 것 같긴 한데···.

       

       “혹시… 어디 아프신곳은 없나요?”

       

       로메넬의 대답은 없었다.

       

       그저 싱긋 웃고는 걸어 갈 뿐.

       

       커다란 나무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동시에 찝찝함 역시 강해졌다.

       

       이제는 찝찝함을 넘어 거슬리기까지 했다.

       

       “저 나무가 세계수님 인가요?”

       

       “정확히는 세계수님의 육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수의 그릇으로 보이는 로메넬의 상태는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연결된 세계수도 이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커먼 놈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 흔적을 느끼고 있지만 실체가 잡히지 않았다.

       

       세계수의 지척에 다달았을 때, 나는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세계수의 정체를.

       

       “….이건 또 무슨 경우야?”

       

       이 커다란 나무 전체가 신을 담는 그릇이었다.

       

       아까 로메넬에게서 느껴졌던 그릇이 곧 이 나무이기도 했다.

       

       로메넬의 설명을 듣고도 가까이에 와서야 이 나무가 무엇인지 알아체다니···.

       

       신령이 머무는 나무였다.

       

       마을을 지키며 수호신을 모시는 나무.

       

       이렇게 칭하기도 한다.

       

       “이거 당산나무네…?”

       

       이러니 아무것도 안 느껴졌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산나무 댓글로 스포 당해서 당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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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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