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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

       끼–익

         

       진성은 저택 밖으로 나선 뒤 축지를 연달아 사용해 고층건물 위까지 올라갔다.

         

       “어? 어어?! 김성일 병장님, 김성일 병장님! 일어나셔야 합니다! 거수자입니다!”

       “아이 씨발, 간부 오는 거 아니면 깨우지 말랬지.”

         

       그 과정에서 고층건물 위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군인 하나가 기겁을 하는 일이 일어났지만, 진성은 무어라 해명하는 대신에 그대로 건물의 그늘 속에 몸을 감추었다. 그가 보호색을 사용해 그늘 속으로 녹아들자 풍경 그 자체가 되었다.

         

       “아이 썅,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 아무것도 없잖아!”

        “아닙니다. 저기 분명 뭐가 있었….”

       “그래서, 있어?”

       “어, 없습니다….”

       “씨발 너 졸았지?”

         

       진성은 이제는 근무를 서는 것보다 털고 털리는 것에 집중하는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동해 쪽을 바라보았다.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닮는다. 눈의 뒷면에 작은 뱀이 헤엄치니, 나의 눈 역시 뱀과 같이 변하리라.’

         

       진성은 눈을 변질시켜 저 먼 곳을 쳐다보았다.

       몽골 사람의 시력으로도 보이지 않을 곳임에도 변질된 눈은 자신이 기계라도 되는 듯 끝없이 시야를 확대했고, 그것은 건물과 산지를 넘어 바다를 넘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확대.

         

       물결을 치듯 움직이는 바다가 보인다.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니는 배가 보인다.

       첨벙첨벙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생선도.

       먹이를 찾아 헤매는 새들도 보인다.

         

       그리고….

         

       ‘허어.’

         

       확연하게 다른 에너지의 밀도도 발견했다.

         

       ‘대주술? 아니, 주술로 한 게 아니다.’

         

       진성이 경악할 정도의 대이적이었다.

         

       ‘밀도를 다르게 만들다니! 저것 때문에 내 주술이 먹히지 않았음이야.’

         

       에너지라는 것은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뜨거운 곳에서 시원한 곳으로,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렇게 끊임없이 평형을 유지하려 하는 성질이 흐름을 만들고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영해가 시작되는 경계를 기준으로 아예 에너지의 밀도가 달랐다.

         

       이는 진성이 생각할 수 없었던 세련된 형태의 경계이자 벽이었다.

         

       ‘에너지로 열돔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그것은 비유하자면 열돔과 같았다.

       더운 공기가 돔의 형태로 한 지역을 뒤덮듯이, 여러 에너지의 밀도를 높여 한 지역을 뒤덮는 형태였다. 에너지의 형태를 높이는 것은 소환술을 사용하거나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 소규모 지역에 저러한 행위를 하는 일도 있었으나, 나라 전체에 저런 것을 행한 것은 진성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세련될 정도로 아주 약간만 밀도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확연하게 주변과는 다르게, 하지만 무지한 상태에서는 위화감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살짝. 거기다가 열돔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와 열에너지를 섞어놔서 얼핏 보면 자연현상으로 인식하게 했다.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이 축복받은 땅이라고 말하던 것이 진짜였군.’

         

       아마 일본 사람들은 저 열돔 안에서 다른 나라보다 약간의 버프를 받았으리라. 에너지의 밀도가 높다는 것은 같은 시간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더 많은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득을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이야기.

       눈에 띄지 않게 조절을 했으니 그게 크지는 않더라도 티끌이 모이면 태산이 되는 법이다.

         

       대신에 열에너지 때문에 끔찍할 정도로 덥고 축축한 날씨에 시달리게 되었겠지만….

       어찌 보면 그것 역시 단점이 아니라 장점일 것이다.

       추우면 사람이 죽지만, 더우면 그저 죽을 만큼 힘들 뿐이다.

       중동처럼 사람을 죽일 정도로 더운 것도 아닌데 무어 문제 될 게 있으랴.

         

       ‘주술도 아닌데 저렇게 만들 수가 있다니.’

         

       그냥 단순히 자연력이 충만한 지역으로 보이게 만드는 수준의 수작질.

       게다가 더 교활한 것은, 그 효과가 대주술 의식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국가 전체에 버프를 거는 것은 얼핏 보면 대주술 같기도 하다. 고강한 능력자라면 저 에너지 열돔을 인식했을 테지만, 그냥 대주술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으리. 허어. 참으로 교활하고 교묘하도다.’

         

       거대한 지역에 이로운 효과를 부여하는 대주술 의식은 흉년을 풍년으로 바꾸기도 하고, 가물어버린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도 한다.

       세계 3차 대전 당시에는 중국이 대주술 의식의 힘을 소수의 인원에게 집중해 광전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사람이라기보단 좀비에 가까운 끈질긴 생명력과 광기에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강한 것이 대주술 의식의 힘이니만큼 국가 전체에 저 정도의 버프를 거는 것 정도야 이상한 일은 아니라 여겼으리라.  의구심을 가질 이들도 분명히 있었을 터였지만, 그 위화감 역시 일본이 버블 시대에 보였던 금력(金力)에 사라져버렸을 것이고.

         

       돈 많은 국가가 돈 지랄로 대주술 의식을 매년 치른다.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니까.

         

       ‘내 주술은 열돔에 그대로 비껴갔으리라. 허, 참으로 대단하고 대단하다.’

         

       온실에서 화초가 보호를 받듯, 그렇게 저들은 주술에서 보호받는 삶을 살아갔으리라.

       어지간한 주술은 에너지 열돔에 닿자마자 밀도 때문에 비껴가고, 강한 주술이라고 해도 태풍이 열돔에 부딪혀 소멸하듯이 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부서져 버렸을 테니까. 대주술 의식 급의 힘이 투사된다면 저 열돔을 무시하고 효과를 발휘할 순 있었을 터지만, 그 효과가 감소하였겠지.

         

       끔찍한 수작질이다.

       참으로 말이다.

         

       ‘신이 머무는 땅. 신, 신이라….’

         

       진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입매를 비틀었다.

         

       외부의 주술을 거부하는 땅.

         

       ‘거기에 주술사도 오는 것을 꺼린다. 내가 회귀 전 일본에 입국하지 못했던 것은 필시 우연이 아닐 것이야.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수작을 부리는, 분명히 지성이 있는 존재가 방해했으리.’

         

       에너지 열돔은 외부의 주술을 막아낼 뿐 주술사 자체를 막아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진성이 일본에 그렇게 가고자 노력했는데도 가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히 수작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용병의 위치에 있던 진성은 닿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위치의…. 어떤 권력으로 인한 수작질 말이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오는 주술사를 감시할 수단도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문득 일본이 갈라파고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고립되어서 다른 곳과는 다른 생태를 가지게 된 섬.

       희귀하고 학술적으로 가치는 있지만, 그 대신에 끔찍할 정도로 외래종에 약하게 되어버린….

       그런 섬 같다는 생각이 말이다.

         

       그 때문에 갈라파고스섬에서는 외래종이 섬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고양이, 개, 곤충, 쥐….

       다른 곳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한 동물도 섬의 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들어가지 못할 것 같으냐?’

         

       하지만 막는다고 다 막히진 않는 법.

       소금을 뿌린다 한들 들어갈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부잣집이 어디 제가 원해서 도둑을 맞던가!

         

       세련된 수작을 부렸지만 그만큼 보안에는 약해진 바.

         

       ‘저 정도 들어가는 거야 약간의 편법만 쓰면 되는 일인즉.’

         

       끼—익.

         

       진성은 축지를 사용해서 공항으로 이동했다.

         

       『 일본에 같이 가지 못하게 되었다니 유감이다. 』

       『 일본은 나 혼자 갔다 올 터이니 둘은 러시아를 즐겨주기를 바란다. 』

         

       그는 간단하게 이세린과 이아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곤 즉석에서 표를 끊고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는.

       독일.

         

         

        * * *

         

         

         

       진성이 도착한 곳은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이었다.

         

       그는 곧바로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공항 휴게실로 이동했다. 휴게실은 딱딱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는데, 휴게실의 벽지만은 참으로 특이하게 그림인지 무늬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그려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룬.”

         

       룬.

       북유럽에서 사용한 마법 문자이자, 나치 독일 때 비약적으로 발전한 힘이었다.

         

       그는 벽을 한참 쳐다보다 X 모양을 발견하자 그 위에 손을 올렸다.

         

       “Gebo.”

         

       빠직.

         

       그가 손을 올리고 상징을 흡수하려 하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듯 살짝 불똥이 튀었지만, 이내 굴복이라도 한 듯 불똥을 튀기는 것을 멈추고 망토를 휘감듯 진성의 몸 주변을 감쌌다.

         

       ‘이건 얼마 가지 못한다.’

         

       룬 문자라는 것은 글자 하나하나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가 손을 댄 게보(Gebo) 역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강탈하듯이 빼앗은 게보의 상징은 바로 ‘선물’.

         

       그는 빼앗은 상징을 몸 주변에 둘러 자신의 존재를 희박하게 할 셈이었다.

       룬 문자가 상징을 품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공항에 새겨진 룬 문자가 반쯤 장식이었기에 강한 힘을 품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강한 힘을 품지 않은 데다가 강탈하듯 상징을 빼앗은 것 때문에 하나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Gebo.”

         

       그는 공항을 돌아다니며 X 모양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손을 올려서 상징을 빼앗았다.

         

       그 숫자가 점차 늘어나 이윽고 9개가 되었을 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휘감은 상징이 하루 정도는 자신의 존재를 숨겨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아무리 외래종을 거부한다 한들 그게 될 것 같으냐?’

         

       진성은 일본행 비행기를 타며 입매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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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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