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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0

       ‘저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건데.’

       

       에어리얼과 눈을 마주친 리바이어던은 지레 겁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긍지 높은 해룡이라지만, 정령왕은 논외의 존재. 용족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 요르문간드조차도 저 정령왕을 이기긴 어렵다.

       

       스윽.

       

       그런 괴물이 해룡을 향해 손을 내뻗는다.

       

       ‘제기랄.’

       

       다음 순간, 거친 풍랑이 일기 시작했다.

       

       귀를 간질이는 것처럼 보드라운 순풍. 그러나 마수에게는 한없이 잔혹한 칼바람.

       

       리바이어던이 일으키는 해풍과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도망칠 곳이 없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리바이어던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래, 바다라면.’

       

       바닷속을 경유해서 도망친다면 에어리얼의 눈을 피할 수 있다.

       

       [해룡이다!]

       [잡아!]

       

       그러나 밑에는 이미 바람의 정령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진퇴양난이다.’

       

       섬 위로는 에어리얼, 해저에는 다른 정령.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쫓아오고 있을 에테르 일행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돌파를 해야 한다.’

       

       리바이어던은 정령 중 약한 개체들이 있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철갑을 두른 배 부분을 열어젖히자 그 안에서 어뢰와 기뢰가 쏟아져 나왔다. 잠수한 상태로 어뢰를 쏘며 나아가는 리바이어던 앞으로 정령들이 비명횡사하며 달아났다.

       

       ‘됐다.’

       

       가까스로 퇴로를 확보한 리바이어던은 전력을 다해 꼬리를 흔들었다.

       

       ‘일단 튀고 보자.’

       

       1차 도련선이 에어리얼에게 점거당했다. 이젠 2차 도련선이나 그 뒤로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도망친다고 가만히 있을 정령왕이 아니었다.

       

       [……!]

       

       예상대로 에어리얼은 자신이 도망치는 광경을 목격하자마자 진풍과도 같은 속도로 추격해왔다.

       

       […!]

       

       에어리얼은 지금 불만이 많았다.

       

       분명 그녀는 마수들이 로드스톤을 들고 도망치는 것을 발견하고는 뒤를 쫓았다.

       

       자신이 내달리는 속도는 바람과도 같다. 마수들이 도망친 이곳은 사방이 탁 트인 섬이라 추격하기도 쉬웠다.

       

       때문에, 에어리얼은 마지막 순간까지 뒤쫓던 마수들을 우습게 생각했다.

       

       그들이 숨겨진 공간이동진을 통해 워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 잡은 쥐를 놓친 에어리얼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이동진으로 살랑살랑 걸어갔었다.

       

       워낙 정교한 형태의 마법진이었기에 동작은 까다로워 보였다. 설령 동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무턱대고 들어가면 안 되고.

       

       결국 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때마침 리바이어던이 나타났으니.

       

       너 잘 걸렸다, 그런 생각을 한 에어리얼이 씩 웃으며 추격 속도를 높여왔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힌다.’

       

       리바이어던은 모터를 최대한으로 가동하며 죽을 둥 살 둥 도망쳤다.

       

       그러나 정령왕 상대로 도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웅, 하며 리바이어던의 몸이 날치처럼 튀어오른다.

       

       ‘……!’

       

       에어리얼이 손을 내리쳐 만들어낸 바람이 바다를 좌우로 갈라냈다.

       

       잔잔했던 파도가 격하게 흔들리며 급물살을 형성한다. 궁중에 부웅, 하고 뜬 해룡은 더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짧은 순간에 시야가 일변하며 세상이 반 바퀴 뒤집혔다.

       

       이대로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구천지대계다. 반타 토터스, 그 말도 못 하는 멍청한 거북처럼 최후를 맞이할 수는 없었다.

       

       리바이어던은 순간적인 판단으로 비늘을 떼어 고래들을 불러냈다. 그 크기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재앙급 마수들이었다.

       

       석유를 뒤집어쓴 것처럼 검은 형체를 한 고래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해룡의 방파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도리도리.]

       

       가소롭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는 에어리얼.

       

       그녀가 팔을 뒤로 내뻗으며 타격 자세를 잡는다. 이윽고 부웅, 하며 말벌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고래의 턱에 주먹이 꽂혔다.

       

       끼기긱!

       

       고래 한 마리가 배를 까뒤집으며 그대로 절명했다. 남은 고래들이 용감하게 덤벼들었지만 그들도 좋은 꼴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저 정도면 충분하다.’

       

       에어리얼이 고래들을 처리한 시간을 틈타서 도망칠 수 있었다.

       

       [창천이시여. 저는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리바이어던은 장탄식하며 자신의 상황을 고했다. 얼마 후 무전으로 음침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1차 도련선을 빼앗겼는가?

       

       [그렇습니다.]

       

       – 멍청한 놈.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을 제압당하다니.

       

       파스모가 역정을 내어도 리바이어던은 무어라 할 수 없었다.

       

       첫째, 그는 창천이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이니 따라야 한다.

       

       둘째, 어쨌거나 자신은 실패했다. 로드스톤을 빼앗는다는 목표는 달성했으니 전략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었지만, 한순간의 과오로 인해 1차 도련선이 붕괴되었으니 이는 전술적인 패배였다.

       

       만약 자신이 먼저 후퇴하여 도중에 에어리얼과 만났더라면. 해서 저 정령왕의 발을 도련선보다 앞선 지점에서 묶어냈더라면.

       

       이동진이 위치한 섬들도 잃지 않았을 것이고, 로드스톤도 더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현장을 지휘하는 존재이면서 개별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다니.

       

       [송구합니다.]

       

       – 이래서 멍청한 용족에게 중책을 맡기는 건 내키지 않았는데…… 응?

       

       모욕적인 말을 내뱉던 창천의 목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리바이어던은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그 변화를 예리하게 잡아냈다.

       

       – 뭐지. 네가 여기 왜 와 있어?

       – 무엇 때문이겠느냐. 여(余)가 직접 흑주의 제작 상황을 점검하러 온 것이니라.

       

       통신기를 통해 익숙한 소음이 잡힌다.

       

       – 슬슬 상천이 목표했던 시한이 다가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3석을 데려와라. 진행 상황이 얼마나 되었느냐?

       – …….

       – 무어냐. 여가 말하는데 어서 데려오지 않고?

       

       누구인지 알겠다.

       

       [누님? 누님이십니까?]

       

       동족의 목소리를 들은 리바이어던은 부리나케 언성을 높였다.

       

       – 무어냐. 해룡인가? 오랜만이구나!

       

       곧이어 고조된 답변이 들려왔다.

       

       리바이어던은 무언가 울컥, 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반가움이기도 했고, 불안함이기도 했다. 공포이기도 했으며, 일말의 아쉬움이기도 했다.

       

       –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인데 목소리가 그리 어두워?

       – 저리 가 있어라. 해룡은 지금 나와 통화하는 중이니.

       – 여의 친척과 대화를 나누겠다는데 네놈이 무슨 권한으로 여를 이리 대하느냐? 잠깐만 비켜서 있거라.

       – 지금 긴히 작전하고 있는 내용이 있다. 저리로 가 있으라고 했다.

       – 에에잇, 무엄하도다!

       

       급기야 수화기 너머로 두 사천이 투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말발은 파스모가 우세했지만 우직함은 요르문간드가 사천 중 제일이었다.

       

       – 여를 방해한다면 평생 마도를 못 하는 몸으로 만들어주겠다!

       

       결국 수화기 너머로 창천의 한숨이 들려왔다. 그가 포기한 것이다.

       

       – 너 알아서 해라.

       

       무전을 바꾼 요르문간드가 반색하는 어조로 하나둘씩 묻기 시작했다.

       

       그쪽에서 생활하는 건 괜찮냐, 물고기는 잘 챙겨 먹고 있느냐, 오랜만에 목소리라도 들으니 반갑다 등등.

       

       민천으로서 지녀야 할 위엄은 생각지도 않는 듯했다. 요르문간드는 동족과 대화를 한다는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당연히 쫓기고 있던 리바이어던에게는 죽을 맛이었다.

       

       – 왜 그러느냐. 목소리에 왜 힘이 없어?

       

       요르문간드도 이를 알아차리고는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누님, 저 사실은….]

       

       리바이어던은 끝내 자신의 현 상황을 짧게 압축하여 전달했다.

       

       창천의 밀명에 따라 작전을 수행했다. 바람의 로드스톤을 빼앗는 덴 성공하였으나, 자신은 바람의 정령왕에게 쫓겨 죽게 생겼다.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 통화가 될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들은 요르문간드는 무전기 너머로 길길이 날뛰었다.

       

       – 이 정신 나간 놈이!

       

       절대 가볍지 않은 쇳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온다. 아무래도 맨손 박투를 벌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젠장, 괜히 말했나.’

       

       이대로라면 만약 지금 살아남더라도 나중이 문제였다.

       

       혹시 창천에게 암살이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거의 다 왔다.’

       

       정신없이 헤엄치다 보니 2차 도련선으로 도착했다.

       

       2차는 1차 도련선보다 훨씬 강력한 포대와 시설들이 존재한다. 더불어 세계수와는 거리가 멀어 정령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기도 힘들어진다. 제아무리 에어리얼이라도 단신으로 이곳에 덤벼들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뚫기야 뚫겠지. 아무리 그래도 정령왕이니까. 다만, 이 군사시설을 돌파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리라.

       

       그리 자신한 리바이어던은 요새화된 기지 밑으로 도망쳤다.

       

       살았다, 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

       

       도크가 그대로 터져버리더니, 장엄한 화염에 휩싸였다.

       

       단순한 폭발 사고인지, 아니면 매복해 있던 화계정령이 벌인 짓인지는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사 폭발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순식간에 거대한 화마(火魔)에 둘러싸인 리바이어던은 몸이 노릇하게 구워지는 감각을 느끼며 기침을 토해냈다.

       

       [뭐, 뭐냐! 이건!]

       

       자신의 몸은 1천 도 이상의 열에도 견딜 수 있는 철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길에 닿자마자 비늘이 몽땅 타 버리고 있다.

       

       뜨겁다. 아프다. 죽을 것 같다.

       

       – 무어냐! 무슨 일이냐!

       

       요르문간드가 언성을 크게 높이며 물어보았지만, 회답은 없었다. 불길이 산소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소리와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쇠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신호에 잡히는 전부일 것이다.

       

       [……!]

       

       때마침 리바이어던을 거의 다 쫓아온 에어리얼은 공중에서 다시 멈추고는 상황을 직관했다.

       

       마수들이 구축해 놓은 기지 위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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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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