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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0

       전함이 떨어진 것은 생각보다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전함의 함포사격 지원을 받으며 전진하던 제국군은 가장 큰 화력지원이 사라진 덕에 진격 속도가 늦춰졌다. 당연히 루테티아에 직접 입성한 것은 스스로 나선 황제와 그 아이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황실 기사단 정도.

        

       덕분에 대부분의 벨부르 군대는 시가전이 아니라 루테티아 방어전으로 나간 참이었다. 시내에 폭탄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게임에서처럼 완전히 쑥대밭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황제를 중심으로 한 소수정예 병력이 바로 법국 쪽으로 빠지기 쉬웠다는 것이다.

        

       법국에선 지보를 루테티아 아래 숨겨두고 대부분의 군사력을 거기 둔 참이었으니, 대놓고 괴물 모임인 황제와 그 아이들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대로, 황제는 비교적 쉽게 법국으로 들어갔다.

        

       뭐, 그 과정에서 기차를 탈취하고, 자동차를 탈취하고…… 여러 사람이 죽어 나가긴 했지만.

        

       “나를 인질로 쓰기라도 할 생각인가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당신을 죽이거나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솔직히, 결국 나를 찌르지 못하고 그냥 보내준 샤를로트가 할 말인가 싶다.

        

       아니, 그보다, 우리를 따라온 것은 샤를로트 쪽이다.

        

       여기 모인 ‘일행’은 많지 않았다. 레나는 결국 자기 나라에서 제국으로 나오지 않았고, 제이크와 로티는 나와 친분을 쌓긴 했지만 자기네 영지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미아는 크로우필드 영지를 지키고 있었고.

        

       소피아는 애초에 만나지도 못했다. 캐롤린은 군인은 아니었으니 아카데미에 남아 있었고, 제니퍼는 전장으로 향했다는 것 같지만 정확하게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불안했다. 그중 하나가 죽는다고 해도 나는 그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테니까.

        

       지금까지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확신하며 나아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는 와중에도, 그 작은 확률 하나 때문에 내가 ‘해피엔딩’에 도달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이 세상이 환상이 아니고, 여신의 농간에 이중으로 속고 있는 것이었다면—

        

       —아니, 괜찮아.

        

       만약 그렇다면, 나는 다시 몇 번이고 시간을 돌릴 거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여신은 날 치워버리고 싶어 하니까. 지금까지는 나보다 강한 존재와 꼭 붙어 다니는 것으로 그 위협을 미리 방지했지만, 여긴 전장이 아닌가.

        

       전함 폭발로 인해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올 일은 없어졌다. 동시에 전투기도 우수수 떨어진 덕분에 위협도 많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긴 했다.

        

       “…….”

        

       결국 여기 있는, 우리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레오 정도가 아카데미에서부터 여기까지 따라온 일행의 전부였다.

        

       나, 레오, 앨리스, 클레어, 샤를로트.

        

       모여있는 것은 이렇게 다섯이었다.

        

       “차라리 루테티아 왕궁으로 돌아가시는 편이 훨씬 안전할 텐데요. 굳이 붙잡지 않겠습니다.”

        

       “…….”

        

       내가 차분하게 말하자, 샤를로트는 나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샤를로트에게도, 의식 저 아래에 감정이 남아 있는 거겠지.

        

       결국 뭐라고 변명하려던 샤를로트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우리를 따라오는 것을 택했다.

        

       우리가 탄 마차가 달리는 길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국가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하긴, 여기까지 포탄을 쏠만한 수단이 이미 떨어져 버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모니터함은 다른 국가로 향했으니까. 전함 한 척이 낼 수 있는 화력은 모니터함의 여덟 배 정도 된다. 애초에 전함이 루테티아로 향한 시점에서 다른 포격 지원은 거의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까지 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다그닥, 다그닥, 한동안 달리던 마차가 멈추어 섰다.

        

       루테티아에서 법국까지의 거리는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차보다 마차가 빠르다는 소리는 아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한참을 달렸다.

        

       기차가 탈취되었다는 것 때문에 기찻길 주변에는 검문소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더 빙 돌아간 것이 결정적이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이틀이나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중간에 피난으로 떠난 집이 있어서 멋대로 묵었다. 식량은 가지고 온 맛대가리 없는 전투식량이었고. 평소에 맛없는 음식에 기겁하던 샤를로트도 우리가 건넨 음식은 말없이 입 안에 욱여넣었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있겠죠?”

        

       마차에서 내리는 샤를로트가 그렇게 말했다.

        

       국경 앞마을은 보통 그 규모가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런 마을이 없는 곳이었다. 그저 좁은 오솔길로 이어진 곳.

        

       그래도 좁은 땅에서 집약적으로 발전한 법국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습니다.”

        

       아직 ‘기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 아직 ‘부품’이 없으니까.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성당의 뾰족한 지붕을 한동안 올려다보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가죠.”

        

       그리고 한 번에 내뱉으며 말했다.

        

       *

        

       돌고 돌아서, 결국 여기.

        

       “하아, 하아…….”

        

       아직 쓰러지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황제가 지보를 완성한 뒤에도 그걸 사용할 방법이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이번의 황제는 생각을 조금 달리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여기 오기 전 루테티아 지하를 쳤기에 조금은 힘을 아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긴, 거기는 그리폰도 있었으니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는 존재는 아니었고, 내가 그 그리폰을 조종할 존재에 대해 미리 경고했기에 큰 피해는 없었던 모양이지만.

        

       쓰러지지 않은 기사들 사이에는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소피아.”

        

       뒤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샤를로트의 시선이 놀란 듯 돌아갔다.

        

       그럴 만 하다. 소피아의 실력 자체는 흠잡을 곳이 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소피아가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기사는 아니었으니까.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국의 기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릴 일은 없다고 봐야겠지. 애초에 얼굴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은 채 움직이는 이들이니까.

        

       클레어가 한 말에 소피아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이내 다시 자세를 잡았다.

        

       소피아뿐만이 아니라 베라티도 이곳에 있었다. 두 사람 다 여기저기 상처 입은 채였지만 아직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런 기사가 몇 명 더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버티지는 못 하리라.

        

       “조금 늦었구나. 친구를 만나고 왔느냐?”

        

       마치 집에서 딸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처럼 인자한 목소리로, 황제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말없이 황제 쪽으로 걸어갔다.

        

       내 뒤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와 앨리스는 나를 믿어주겠지. 샤를로트는 어떨까?

        

       안타깝지만, 이제 더 이상 샤를로트를 더 설득할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

        

       나는 천천히, 황제를 향해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그래, 내 딸이여.”

        

       “…….”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던 나는—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렸다.

        

       탕!

        

       이전에는 강화복도 만들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조금 넓은 소매 아래에 총을 숨기는 것 정도는 얼마든 할 수 있었다.

        

       서걱!

        

       팔이 썰려 나갔다. 그냥 검에 베인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잘려서 아래로 떨어졌다.

        

       먼저 움직인 쪽은 루카스.

        

       좋아.

        

       *

        

       다만, 내가 다시 시간을 돌리기 전에 나는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클레어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시간을 돌린 사람은 클레어였던 모양이다.

        

       뭐, 어느 정도는 예상하였다. 내가 원작의 주인공과 히로인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듯, 클레어도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덕분에, 한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설령 단숨에 목이 잘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클레어가 있다면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클레어에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

        

       “크, 흐흐흐…….”

        

       황제가 이런 웃음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 보는데.

        

       얼마나 허탈했을까.

        

       평생을 준비한 계획이 사실은 이미 실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루카스 쪽을 보았다. 피를 흘리며 바닥에 앉아있는 그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떤 재능도 보이지 않는 이가 자기를 쏘아 맞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겠지.

        

       하지만 아무리 범인이라도, 수도 없이 반복하면 한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법이다.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흠, 상황은 이미 끝나버린 것인가.”

        

       “너무 상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원하는 광경을 보실 수 있으실 테니.”

        

       조금 뒤늦게 성당에 들어온 검성의 말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레오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뜨고 나를 보고 있었고, 클레어와 앨리스는 샤를로트와 함께 검을 뽑아 들고 있었지만 역시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클레어의 숨이 거칠었다. ……미안한 짓을 해버렸네.

        

       벨라가 검을 휘둘러도, 검성까지 와버린 이상 이 상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각자 생각에 잠겨있는 와중에, 황제가 입을 열었다.

        

       “너는, 무엇이냐? 대체 무엇이기에.”

        

       “…….”

        

       나는 잠깐 황제를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여신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생각은 없고.”

        

       “그렇군.”

        

       내 말에, 황제는 그저 어깨를 늘어뜨리며 다시 웃음소리를 냈을 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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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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