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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0

    루크는 그 뒤로도 매 쉬는 시간마다 옥상을 찾았다.

    일단 외부의 마력이 담긴 바람을 쐴 수 있으면서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리브와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한 곳이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아카데미 내부에선 옥상 말고는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헬레나는 더 이상 옥상에 모습을 비추지 않아서, 또 만나 이야기를 할 기회는 없었다.

    만약 나온다면 몸 상태는 어떤가 한번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이다.

     

    역시나 추위 때문에 그런 것일까?

     

    옥상이 아무리 조용하고 공부가 잘 된다고 한들, 감기에라도 걸리게 되면 자신만 손해를 보는 것이니.

     

    ———–

     

    그렇게 시험은 순조롭게 끝났다.

    딱히 어려운 문제도 보이지 않았고, 루크의 예상대로라면 이번엔 확실히 만점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헬레나 역시 자신과 비슷했을 것 같다.

    자신이 공부하라고 일러준 부분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출제되었으니까.

    그 아이는 평소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복습도 철저히 하는 우등생이니, 아마도 시험 역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내뱉었다.

     

    “와! 드디어 끝이다!”

    “이제 해방이다!”

     

    시험이 끝나 시험기간의 마수로부터 벗어난 덕분에, 교실은 거의 축제분위기였다.

     

    엠마가 이 말을 꺼내기 전 까지는.

     

    “다들 조용! 아직 기말고사 남아있으니까, 너무 좋아하기엔 일러요.”

     

    “에에…….”

    “우우…….”

     

    그러자 금세 환호성이 멎고 한숨과 야유가 쏟아진다.

    뭐, 남에게 자신이 평가당하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이해는 가지만.

    타인이 정해주는 점수에 대한 스트레스는 사실, 루크도 은연중에 받던 것이었으니까.

     

    ‘이번엔 반드시 만점을 받을 수 있겠지.’

     

    루크는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크가 안내받았던 ‘조기졸업 시험 응시조건’은 두가지.

    교내시험 우수성적을 받을 것, 그리고 외부 수상경력이 있을 것.

     

    외부 수상 경력은 현재 아카데미 마법 경시대회에서 받은 상 하나, 그리고 수상시기 때문에 입상이 미뤄진 라스상과, 증거자료가 없어서 아직 입증할 수 없는 드랙상, 곧 나갈 토스크콩쿠르가 있다.

    이 정도면 수상경력은 충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지만, 문제는 교내 시험.

     

    그동안 루크는 시험을 볼 때마다 몇몇 실수 때문에 아쉽게 만점을 놓치곤 했었다.

     

    상식의 차이, 지식을 받아들인 방식의 차이, 그리고 문제의 이해도 차이로 인해 한 두번씩 답에서 엇나갔고, 때문에 주요과목 만점을 받더라도 기타 모든 과목에서 100점을 맞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확실히 모든 교과서의 분석 및 암기, 현대 사회의 상식과 문화학습에 더해, 각 교사의 성향별 출제 선호도 분석까지 곁들였으니 감점이 들어갈 만한 부분은 전무하다.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전 과목 100점을 노려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루크에게 그 점수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 시대에 완벽히 녹아들었다는 증거와도 같다.

     

     

    신화시대의 인간이 비로소 완벽한 현대인으로 탈바꿈했다는 증거.

     

     

    그러니, 처음으로 받게 될 전과목 100점은 루크에게도 감회가 남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시험이 끝났다고 밖에서 너무 늦게까지 놀기만 하지 말고 일찍 들어가세요. 그리고, 고학년 언니오빠들은 아직도 시험이니까, 아카데미 복도에서 너무 뛰어다니거나 시끄럽게 하지 말고요. 알겠죠?”

     

    “네에-!”

     

    그렇게 엠마는 아이들에게 당부를 전하며 종례를 마쳤다.

     

    하지만 엠마의 당부가 무색하게도, 담당교사가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아이들은 금세 또 왁자하게 떠들기 시작한다.

    교실은 곧 귀가 준비를 하는 아이들과 서로 시험의 답을 맞추며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그냥 잡담을 떠는 아이들로 시끄러워졌다.

     

     

    그 때였다.

     

     

    “야, 그럼 루크한테도 한번 물어보자!”

    “아, 그러네! 걔도 그거 하잖아.”

     

    문득 저 쪽에 있던 아이들이 루크를 발견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틈에 끼어있던 시루드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루크를 왜 불러?”

    “왜? 루크도 부르면 더 좋지.”

    “맞아, 걔가 우리들 중에선 제일 잘 하기도 하고. 시루드, 네가 가서 한번 말해봐.”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시루드가 계속해서 거부의 의사를 밝히고 있자, 오히려 신경이 쓰인 루크가 먼저 다가갔다.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느냐?”

    “으앗! 뭐, 뭐야!”

     

    바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마치 놀란 개구리마냥 펄쩍 뛰어오르는 시루드는 곧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를 루크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침에도 그렇고, 또 갑자기 뒤에서!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솔직히, 이런 반응이 재밌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럴 생각은……. 아주 없다곤 하지 못하겠구나.”

    “너 진짜!”

     

    루크의 대답에 시루드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머리 위에 주전자를 올려 두면 끓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사실은, 지금 시루드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아서 루크가 일부러 더 장난치듯 다가가는 면도 있었다.

    원래 친한 아이들끼리는 으레 장난도 치면서 더욱 친해지는 법이니까.

     

    아무리 연심을 받아줄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절교를 한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어느정도의 장난은 자연스러운 관계 구축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 있었다.

     

    이런 어린아이다운 시루드의 행동이 나름대로 귀엽기도 하고 말이다.

    이제 3서클이니만큼, 마법사라고 항상 감정을 감출 필요는 없으니까.

     

    그 모습을 잠깐 구경하고 있으니, 한 아이가 반갑게 맞이하며 손을 흔들었다.

     

    “어! 마침 잘 왔어, 루크야! 안 그래도,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어. 너도 하러 갈래?”

    “그러니까, 무엇을 말이냐?”

     

    루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아이는 활기찬 목소리로 답했다.

     

    “슈퍼 매직 리그!”

     

    —-

     

     

    과거, 루크는 슈퍼 매직 리그라는 환상기반 게임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혀 하질 않았다.

     

    일단 계정이 없다거나, 가지고 있는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건 ‘지나치게’ 재미있었다.

     

     

    그 ‘게임’이라는 것은 너무나 재미있어서, 그것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다른 해야 할 일을 전부 제쳐두고 즐기게 되는 것이다.

     

    자신은 연금술도, 마법 연구도, 마력을 쌓기 위한 산책도, 새로운 지식의 탐구도 해야 하는데, 단순한 재미로 인해서 우선순위가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야, 그런 형태의 놀이는 완전히 처음이니까.’

     

    마법사는 새로운 것에 금방 빠져든다.

    그건 뇌에 새겨진 본능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루크에게 새로운 재미라는 것은 그만큼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실시간으로 변환, 조작되는 환상에 기반한 놀이라니!

     

     

    그것은 과거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재미였다.

     

     

     

    “…….”

     

     

    그게 지금 루크가 PC방에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보라.

     

    신화시대의 마법사들이 감히 그것을 떠올릴 수나 있었겠는가?

    마법사들은 대체로 재미없는 족속들이다.

     

    만약 그들에게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해도, 그들은 모두 마법연구나 자신이 아직 모르는 지식의 추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만을 쫓고 살아가기에, 게임과 같은 거대한 상호작용이 필요한 산업을 절대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타인에게 재미를 판다, 그것은 광대가 할 일이지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따라서 게임이라는 것은 단언컨대, 100% 현대의 클래스마법이 전제되어 낳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바알이 자신과 같은 아이를 현혹시키기 위해 만든 악마적인 놀잇감이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클래스마법을 창시한 바알 니에르라는 인물이 레니에 아린세이아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녀가 클래스마법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마법 연구 덕분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이 ‘게임’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루크와 레니에가 낳은 자식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이라는 것은 결국, 아빠에게는 경이로운 마법능력을 물려받고, 어머니에겐 놀기 좋아하는 성격을 물려받은 셈이다.

     

     

     

    ‘나는 또 무슨 생각을.’

     

    루크는 자신이 떠올리던 실없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시험이 끝나고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그런가, 별 쓸데없는 생각을 다 떠올리고 있다.

     

    ‘그래도, 뭐. 하루 정도는…….’

     

    루크는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전과목 만점도 순조로울 것 같기도 하고, 그동안 많이 참기도 했으니 하루쯤은 마음대로 노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오늘이 지나면 이젠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을 텐데.

     

    “그럼, 일단 계정부터 만들고 있어! 우리는 잠깐 연습모드 돌리고 있을 테니까!”

    “알겠다.”

     

    루크는 옆에서 굉장히 신나서 떠드는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에, 화면에 띄워진 슈퍼 매직 리그의 계정 생성절차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10세 이상 이용가로 만들어진 게임이기에 루크는 그동안 계정도 만들 수 없었지만, 최근 생일이 지났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의 계정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이제서야 정식으로 10살인건가.’

     

    오늘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운 것 같다.

     

    루크는 한번 크게 숨을 쉬고 난 후, 천천히 꼼꼼하게 약관을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건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두어야 나중에 손해를 보지 않는 법이니까.

     

    그렇게 루크가 약관을 절반정도 읽었을 때, 더 이상 루크를 기다리기 어려웠던 아이들이 시루드에게 ‘쟤 좀 도와줘봐.’라고 떠밀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왜? 네가 가서 말하면 되잖아. 지금 PC방도 네가 데려온 거고.”

    “그치만, 나는 루크랑 별로 안 친하단 말야.”

    “…….”

     

    시루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나도 이젠 엄청 어색한데.’

     

    딱히 싸우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을 걸기는 꺼려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계속 자신의 흑역사가 떠오르니까.

    루크가 어디 가서 자신에 대해 허튼 말을 떠들고 다닐 성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 좀 그렇다.

     

    하지만, 다들 집에 가기 전이나 학원에 가기 전에 들러서 하는 게임인데, 너무 오래 걸리니 답답한 모양이다.

    결국 시루드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하아……. 알겠어.”

     

    시루드는 곧장 루크에게 다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체 뭐 하느라 이렇게 늦어?”

    “아, 약관을 읽어보고 있었다. 원래 이런 건 꼼꼼히 읽어 두어야만 하니까.”

     

    루크는 빼곡히 적힌 이용약관을 한줄한줄 모니터에 손을 짚어가며 읽고 있었다.

    저번에 네트워크메일 가입할 때도 그러더니, 또 이런다.

     

    “그런 건 대충 대충 넘겨도 괜찮아! 어차피 게임 하려면 동의해야 되니까, 얼른  이름이나 써. 다들 기다리고 있다고.”

    “으음,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루크는 하는 수 없이 약관에 전부 동의를 체크한 뒤에, 이름칸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름 : 루크 리스핀드 게네퍼 이루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렇습니다!

    행정상 루크의 이름은 결국 저렇게 지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전히 루크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루크 이루시라고 부를 테지만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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