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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0

       

       

       

       

       

       270화. 심연을 부숴라 ( 3 )

       

       

       

       

       

       내 마음속의 ‘심연 부수기’가 꿈틀거리면서 당장이라도 심연을 부수자고 말하지만.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색안경을 끼고 이베르를 보았을 때를 떠올려 본다.

       

       ‘심연, 심연…’

       

       이르기를, 가장 부정적이고 질척한 감정들이 흐리고 모여 만들어진 가장 아래의 차원.

       

       부정의 총체, 악마의 둥지, 끝없는 나락.

       그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을 곳.

       

       내가 이해한 심연은 일종의 쓰레기 하수 처리장 비슷한 곳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또 가질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주 낮게 흐르고 고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심연이다.

       

       그 말인즉.

       인간이 존재한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곳이고, 모든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쌓인 만큼 거대하다는 뜻.

       

       ‘모든 인간이 사용하는 거대한 감정 쓰레기장이나 다름없는 곳인데. 여기를 나 혼자서 부순다…?’

       

       쓰읍.

       조금 애매하다.

       

       ‘작정하고 명치 안에서 찰랑거리는 것들을 총동원하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도 같기는 한데…’

       

       말 그대로 아슬아슬한 선에서 가능할 것 같다는 소리다. 아마 확률로 따져보면 대충 반반 정도 되지 않을까?

       

       불확실한 요소에 도박을 걸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했다.

       

       도박과 불확정 요소를 참지 못하는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질러! 질러보자!’하고 외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단호하게 참을 수 있었다.

       

       “이건 너무 도박이네.”

       

       막말로 내가 명치에 찰랑거리는 거 전부 끌어다 써서 심연을 찢으려고 했는데 실패하면?

       저번처럼 그대로 쓰러지면? 

       

       케니스, 프리가, 이스칼, 한스, 에스텔… 그리고 그 외 7만 명이 전부 나가리 되는 거다.

       

       심연이라는 차원을 찢을 수 있는 틈이나, 날 도와줄 에너지원 같은 게 있으면 모를까.

       그전에는 원정대가 전부 몰살당하기 직전에나 쓸 법한 최후의 수단이다.

       

       – “어? 어, 어…? 어어어ㅡ?”

       

       “오. 도착했나 보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궁리하는 사이에 원정대는 어느새 목표로 삼았던 커다란 산에 도착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커다란 크기의 산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붉은 광야뿐이던 심야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게 이질감이 들 정도.

       

       – 쿠그그그그ㅡ

       

       가만히 있던 산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산이라는 자연의 일부가 스스로 움직이는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는데, 화면 너머로도 전해지는 크기의 압박감은 보통이 아니었다.

       

       “어…?”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재빨리 화면을 가장 작게 축소한다. 7만 명의 사람이 한낱 군집으로 보일 정도로 아주 작게. 카메라가 하늘 높이 올라가며 지상의 모습을 비췄다.

       

       그제야 꿈틀거리는 산이 한 화면에 들어왔다.

       하늘에서 바라본 산의 형태는 마치, 가만히 웅크린 용의 모습이었는데.

       

       “미친…”

       

       – 《오랜만이구나. 애송이》

       

       …용처럼 생긴 산이 아니라.

       용이 산처럼 가만히 누워있던 것이었다.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제껏 내가 봤던 그 모든 생명체 중에서 지금 보고 있는 용왕이 제일 크다.

       그야말로 거대하고 또 거대한 존재.

       

       용왕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거 엿 됐네.’

       

       진짜 엿 됐다. 

       이렇게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뭐 발리스타 같은 공성 기구를 가져왔어야 됐을 것 같은데.

       

       이렇게나 거대하면 슬프거나 좌절을 느낄 틈도 없다. 그냥 막막했다.

       도대체 이 덩치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

       

       ‘이거 벼락으로 데미지가 들어가기는 하나?’

       

       – 꽈릉!

       

       시험 삼아 한 방 떨궈 봤다.

       

       – 《…음?》

       

       용왕의 덩치에 비하면 이쑤시개처럼 보일 지경인 벼락이 용왕의 등을 두들겼다.

       느닷없이 벼락을 맞은 용왕이 가볍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진짜 이게 전부야?”

       

       지금까지 벼락이 안 통한 애들은 진짜 드물었는데. 

       

       “이건 진짜 어떻게 해야 하냐…?”

       

       막막한 심정이다.

       

       일단 녀석을 자세히 관찰했다. 어떤 녀석을 상대하더라도 공략의 제 1원칙은 관찰이니까.

       

       – 절그럭ㅡ 차르르르륵…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슬.

       커다란 사슬이 용왕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용왕이 아주 조금씩 꿈틀거릴 때마다 사슬이 차르륵-하고 흘러내리는 소리가 굉장히 크게 울려 퍼졌다.

       

       이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 요소다. 저 정도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자세히 보니까 몸 상태도 이상하네.”

       

       군데군데 썩은 모습이 아주 일품이다. 그 위를 기어다니는 애벌레 같은 녀석들이 득실거린다.

       썩은 시체에 꼬인 구더기 같은 풍경이다.

       

       – 키에에에에엑-!! 끼기기긱-!

       

       확대해서 살펴보니 구더기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구더기였다. 용왕의 몸이 너무 커서 구더기가 작아 보였다.

       시험 삼아 떨군 벼락에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사정없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아주 혐오 그 자체다.

       

       삐익ㅡ! 삐익ㅡ! 삐익ㅡ!

       

       《Warning! Warning! Warning! Warning!》

       

       -《끄, 끄으으으ㅡ! 아그아아아ㅡ!!》

       

       갑작스레 화면이 붉게 번쩍이면서 사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뿜어냈다.

       동시에 가만히 누워서 이베르와 무언가 대화하던 용왕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거칠게 몸을 들썩였다.

       

       그 여파만으로 땅이 살짝 흔들리고 바람이 거칠게 일어난다. 원정대는 재빨리 거리를 벌렸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 《아아아악ㅡ! 끄흐윽ㅡ!》

       

       용왕을 묶은 거대한 사슬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거체를 속박하고 있는 쇠사슬은 굉장히 거대한 종류의 것이었지만, 용왕이 날뛰는 모습을 보면 태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 이거 내가 또 뭔가 저지른 건가?”

       

       설마 벼락 한 방 떨군 게 트리거? 용왕은 먼저 공격받기 전에는 조용한 타입의 보스였나?

       

       식은땀이 축축하게 솟아나 등을 적신다. 엿 됐다는 감각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무언가 큰 사건을 저질렀다는 걸 직감했을 때 특유의 아찔함이 나를 덮쳤다.

       

       “이, 일단 집중해. 나 때문이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래. 그냥 타이밍 좋게 용왕이 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저 덩치에 벼락 하나 꽂혔다고 저렇게 발작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건 코끼리가 샤프심 밟았다고 날뛰는 꼴이라니까?

       

       – 《영감! 영감! 갑자기 왜 그러는 거냐!》

       

       – 《끄흐으으으ㅡ… 내, 내 몸을 파먹는 벌레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아. 진짜.”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어.

       

       

       

       

       

       *****

       

       

       

       

       

       《끄아아아아아아!!》

       

       용왕의 비명은 그 자체로 거대한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고막이 터져서 피가 흐르는 이도 있었고, 기가 허약한 이는 진작에 기절했다.

       

       고통에 찬 용왕의 고함. 그 근원은 그의 몸을 갉아먹는 구더기들의 발작에 있었다.

       죽은 부위의 살을 파먹던 구더기들이 신성력 가득 담긴 벼락에 자극받아 멀쩡한 살을 파먹고 들어가기 시작한 것.

       

       용왕은 그로 인해 끔찍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진정해라, 영감! 영감!! 젠장. 하나도 안 들리는 모양이군.》

       

       이베르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용왕은 계속해서 몸을 들썩이며 비명을 토했다.

       팽팽하게 늘어진 사슬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했고, 유일하게 묶이지 않은 머리로 계속해서 땅을 내리찍었다.

       

       쾅! 콰쾅! 쿠우웅!

       

       용왕이 머리로 땅을 내려찍을 때마다 땅이 갈라지고 흔들린다. 이게 사슬에 묶여서 억제된 수준이라니.

       저 사슬이 끊어진다면… 도대체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윽! 으아악! 야, 야! 도마뱀!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벌레라니!”

       

       《영감의 썩은 살을 파먹던 벌레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거다!》

       

       “갑자기?! 도대체 왜!”

       

       《위대하신 분의 벼락에 담긴 신성한 기운에 놀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살아있는 인간의 냄새를 맡았을 수도 있다! 저 벌레들도 본질적으로는 악마니까!》

       

       “벼락 때문이라는 소리잖아! 이 빌어먹을 신ㅡ!”

       

       프리가는 하늘을 향해 원망 어린 고함을 토했다.

       주변이 온통 광신도라고 불러도 좋을 성직자들뿐인데, 그 사이에서 신을 욕하는 그 대범함은 인정해 줄 만한 것이었다.

       

       “공녀님! 불경ㅡ 으아앗!”

       

       뭐라고 한마디 하려던 케니스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용왕을 노려봤다.

       설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신께서 벌레들을 자극하셨을까.

       

       신께서는 삼라만상을 꿰뚫고 아득한 진리를 품으신 분. 분명 무언가 뜻하시는 바가 있기에 행하실 것 일터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신도이자 인간인 그들의 본분.

       

       “벌레, 벌레… 벌레 종류의 악마라…”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데모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용왕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케니스를 향해 물었다.

       

       “케니스. 벌레의 형태를 하고 썩은 시체를 파먹는 악마의 종류가 몇 개인지 알고 있니?”

       

       “네? 어, 종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천천히 손가락을 헤아리던 케니스가 답했다.

       

       “어어… 코르프리온, 데드라스크, 리퍼크라울 그리고… 스컬이터. 총 네 종류가 있어요.”

       

       “맞다. 정확하구나. 그중에서 유일하게 성충으로 탈피하지 않고 계속 애벌레의 형태로 머무는 악마는 코르프리온이다.”

       

       데모닉이 신성력이 번뜩이는 눈으로 용왕의 몸을 훑었다. 압도적인 용왕의 몸에서도 제법 존재감을 자랑하는 구더기들이 꾸물거린다.

       거리를 감안한다면 구더기 하나하나가 2층 저택의 크기나 다름없는 것.

       

       애벌레의 형태로 저 정도 크기까지 자라는 것은 코르프리온이 유일했다.

       

       “코르프리온의 특징은 충분한 먹이가 있다면 계속 유충의 형태로 있다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하나는…”

       

       데모닉이 검을 꺼내 들어 스스로의 손바닥을 그었다.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 검붉은 광야에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고인 피가 짙은 신성력을 한껏 머금어 밝은 빛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키에에에에엑ㅡ!! 끼이이이이이ㅡ!!

       

       소름 끼치는 굉음이 용왕의 방향에서 들려왔다. 무수한 들소 떼가 달려오는 마냥, 대지가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신성력을 먹을 수 있다는 거지. 녀석들은 신성력을 피해서 숨은 게 아니다. 용왕의 몸에 남은 신성력을 찾아서 생살을 헤집은 거지.”

       

       “아! 그래서 신께서 벼락으로…!”

       

       그들에게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 벼락을 치셨음인가!

       하나의 깨달음이 케니스와 주변 성직자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역시 신께서는 끝없는 지혜로 그들을 보살피고 계셨음이다.

       

       이를 알아차린 데모닉에게 존경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데모닉은 의연한 태도로 손을 저으며 겸손을 표했다.

       

       “야! 야! 지금 폼 잡을 때냐고! 저 미친 구더기들이 몰려오잖아! 저건 어쩔 건데!”

       

       프리가의 외침대로, 데모닉의 진한 신성력에 이끌린 거대한 구더기들이 미친 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꽈릉! 콰르르릉ㅡ! 콰광!!

       

       중간중간 하늘에서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벼락이 쏟아지며 구더기들을 자극했고.

       그에 힘입어 용왕의 몸에서는 신성력에 홀린 구더기가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명칭, 코르프리온.

       다르게 부르기를, 신성력 포식자.

       

       저 구더기들은 본래 매우 작은 크기였기에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만신전에서도 보이는 족족 눈에 불을 켜고 잡아 죽이기도 했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고.

       

       신성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협이다. 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사라지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이렇게 커다란 크기로 자라난 녀석을 상대할 일은 없었건만ㅡ

       

       “…산개한다! 산개! 절대 녀석들을 신성력으로 타격하지 마라! 철퇴와 워해머로 찍어라!”

       

       데모닉은 일단 빠르게 산개하며 일반 성기사와 사제들을 뒤로 물렸다.

       

       그의 머리가 바삐 돌아가며 수를 떠올리기에 열중했다.

       

       ‘도대체, 도대체 저 커다란 신성력 포식자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신께서는 이 역경까지도 내다보셨을까?

       분명 그러리라. 신께서는 견딜 수 있는 시련을 내리기 마련이니.

       

       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데모닉이 크게 소리쳤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저 역겨운 구더기들을 곤죽으로 만들 시간이다!”

       

       신념과 믿음이 그들의 칼과 방패가 될 것이니.

       신앙과 용기는 가장 어두운 심연에서 반짝이기 마련이었다.

       

       

       

       

       

       *****

       

       

       

       

       

       – 꽈광! 콰르르릉! 꽈앙!

       

       “아니 진짜! 이 미친 구더기들은 뭔데 자꾸 나와!!”

       

       보통 하늘에서 벼락이 치면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벼락이 떨어지는데 왜 자꾸 기어 나와!!

       

       나는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구더기들을 향해 열심히 벼락을 떨궜다. 벼락에 타 죽는 구더기보다 용왕의 몸에서 기어 나오는 구더기가 훨씬 많다.

       

       마치 바다처럼 몰려오는 구더기의 해일.

       크기도 커다란 벌레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는 모습은 괴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했고ㅡ

       

       “…와 진짜 이거 어떡하지?”

       

       나는 진짜 엿 됐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삼가 반가움의 인사 올립니다… 히, 히히ㅡ! 시험을 조지고 오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작가였지만… 조져지는건 나의 멘탈이었군요!! 히히! 지옥불닭볶음면의 매콤한 난이도에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앗읍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용왕이 정말로 엄청나게 스고이…!! 알려주신 꿀정보는 잘 메모해두고 꼭 사서 먹어보도록 하겟읍니다…!! 치킨은 항상 옳기에…!! 정말 감사합니닷…!! 히에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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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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