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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0

       -부웅

        

       자동차 안. 조수석에 앉은 예나는 제법 피곤한지 눈을 연신 깜빡이면서도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자도 돼. 도착하면 깨워줄게.”

        

       “괜찮아요. 시차 적응도 해야 하고.”

        

       마력이라도 깃든 듯이 사람을 잡아 끄는, 나긋한 목소리. 진희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차라리 편하게 볼 수 있게 택시를 탈 걸 그랬나, 싶을 지경이었지만- 아니다. 택시로 마중 오겠다고 얘기했다면 더 단호하게 거절했을 테니. 진희는, 예나가 자신에 대하여 가지는 미묘한 거리감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좁히는 방법도, 조금은.

        

       그러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조금씩이어도 좋으니, 마음의 거리를 좁혀나가면 된다. 조금씩. 아주, 아주 조금씩이라도.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괜찮았다. 진희의 마음이 변할 일은 없었으니.

        

       “아.”

        

       그리 다시 다짐하는 그녀의 귀에, 새삼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거의 다 왔는데……아, 혹시 뭐 두고 왔어?”

        

       “음……아니, 아니에요.”

        

       “얘기해줘! 차 돌릴까?”

        

       “아니에요. 음……그냥, 혹시나 해서.”

        

       때마침 들어온 빨간불. 진희는 막간을 이용해 조수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늦은 저녁.

       

       어둑한 밤거리에 늘어선 가로등의 노란 불빛이 차 안을 미세하게 밝히고 있었다. 덕분에 연출되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살짝 음영진 예나의 얼굴이 진희를 마주보았다.

       

       부드러운 눈빛.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이 움찔거리는 입술. 그리고, 거기서 이어지는-

       

       외모에 반한 건 아니다. 정말로, 진실로 아니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황금 같은 저녁시간을 모조리 운전에 바칠 가치가 있었다고, 진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할 수 있었다.

          

       “저녁, 먹었나요.”

        

       먹었다고 해야 할까.

        

       혹시라도 퇴근 시간 교통 체증에 걸려 늦을까 하는 걱정에, 저녁도 생략한 채 공항으로 향했더랬다. 그러나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면, 다시는 마중 따위 나오지 못하게 할 터였다. 매사에 부채감을 유독 심하게 느끼는 그녀였으니.

        

       하지만 당장 지금만 보면……안 먹었다고 하면, 식사에 초대라도 해주지 않을까.

        

       “아- 음. 그게…….”

        

       쓸데없이 복잡하지만, 동시에 무의미한 고민이 진희의 머릿속에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 선 이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다행히, 고뇌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안 드셨으면, 밥 먹고 가요. 오늘 휴방 공지도 올리셨던데.”

        

       작은 미소와 함께 건네진 권유에, 복잡한 생각들이 모조리 깨끗이 씻겨 내려가버리고-

        

       “어……그럴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음……원래는, 라면 드시고 갈지 물어보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어지는 말에, 엄한 상상들이 머리를 가득 메워버린 고로.

        

       “아?”

        

       ‘라면, 라면? 아니, 조금, 낡은 표현이니까. 그럴 리가 없지만- 아니, 예나는 가끔 이상할 정도로 옛날 말 쓰기도 하고-’

        

       -빠앙!

        

       신호가 바뀌었음을 알려오는 재촉을 듣고 나서야, 진희는 가까스로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밖에서 먹기 좀 그러니까. 치킨, 어떤가요. 미국 치킨은 기름기가 너무 심해서, 양념치킨 그리웠어요.”

        

       “응, 좋아. 좋아해.”

        

       “……네.”

        

       이미 떠올려버린 상상을 미처 지우지 못한 채.

        

       * * * *

        

       “……집으로 초대하려 했는데.”

        

       “비행기 타서 피곤할 텐데, 집 어질러지면 힘들잖아. 편하게 쉬고 내일 가. 내일 태워다줄게.”

        

       “괜찮아요. 먹고 가면-”

        

       “쉬고 내일 가주면, 공항까지 예나 데리러 간 보람이 있을 것 같아.”

        

       “……네.”

        

       진희의 집. 때맞춰 도착한 치킨이 식탁 가운데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과분했던 공항 픽업 서비스에 비하면 너무나 조촐한 보답이다. 진희의 고집 탓에 정작 집으로 초대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더 폐를 끼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거절하려 할 때마다 흔들리는 목소리와 내리깔리는 시선을,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서.

       

       뭔가, 알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예나는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생각은 없어?”

        

       “음……나름 정이 들어서요. 혼자 사는데, 너무 큰 집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건, 이해되네. 나도 이 집 홀린 듯이 계약하긴 했는데, 혼자 살긴 좀 과했나? 싶을 때 있거든. 가끔 뭔가, 좀……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고. 룸메이트를 구할까 생각한 적도 있어! 사실상 창고처럼 쓰는 방, 아깝기도 하니까…….”

        

       -와삭.

        

       조금은 어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던 진희가 치킨을 크게 베어 물고는, 맥주를 들이켰다.

        

       룸메……룸메라. 서양에서는 남녀가 서로 터치 없이 룸메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한국에서는 절대 안 될 말이겠지.

        

       ……그리고 나는, 음. 어떻게 보아야 하려나.

        

       이제 마음은 정했다지만, 진희를 앞에 두고 새삼 떠올리기엔 조금 버거운 주제다.

       

       그리고, 응. 아주 조금은, 갚아줘야 하니까.

        

       “아, 맞다. 방송 잘 봤어요.”

        

       “어? 어떤 거?”

        

       “여기, 이거요.”

        

       말을 돌리며,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지튜브에 접속했다.

        

       《흐엉……흐윽. 잘했어 예나야……진짜, 진짜 잘했어…….》

        

       “야아아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드는 속도가 제법 매서웠지만, 어림도 없지. 이미 예측해둔 다이아의 손놀림에 당할 반사신경이 아니다.

        

       《으허엉……큽. 아니이, 여러분, 그게 아니고오……너무, 너무 기특하잖아……저 예나가, 미국까지 가서, 크흡, 응? 안 그래요?》

        

       “와……콧물. 편집자 님이 조금 너무하네요. 이건 편집하시지.”

        

       “너 거기 안 서?!”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 진희는, 소파 쪽으로 도주한 내게 과감한 태클을 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멈춰섰다. VR 훈련의 한계일까. 현실에서 사람에게 몸을 던지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했어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애초에 혹시 진희가 다칠까봐 소파쪽으로 온 거였고.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진희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김에, 손가락을 움직여 볼륨을 키웠다.

       

       《방장님 파워T라 신파 봐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온다 하지 않았나요?》

       《흡, 끄흡, 아니, 잠깐, 무슨 T가 소시오패스인줄 알아? 억지 신파랑, 내가 진짜, 진짜 좋아하는, 킁! 친구의 감동적인 순간이 같아? 어?》

       

       “진짜 좋아하는 친구……와. 고마워요.” 

       

       “제바알! 나, 나 진짜 혀 깨문다?! 나, 수치사- 아.”

        

       새빨개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 자세를 취하던 진희가, 급작스럽게 말을 멈추며 얼어붙었다. 시선이- 아.

        

       손목.

        

       《현직 소시오패스입니다. 아크님 발언이 마음에 상처가 되네요. 사과해주세요.》

       《나 진짜 미치겠네.》

       《자, 자! 여러분, 저 말고! 우리 예나한테 집중해주세요. 아니, 우승이잖아! 이게 말이 돼? 한국 아마가 세계를 밟았다니까? 저게 내 친구야. 봤지? 예전엔 내 팬이라고도 했다?》

       《물음표 물음표 물음표. 아따먹 주소나 전번 구해온 사람 선착순으로 백만원 준다. 아니, 내가 진짜 얼굴은 한번 보고 싶어서 그래. 뭐? 팬? 이게 팬이면-》

       《응, 그래, 우리, 과거의 일은 과거에 두자, 알겠지? 좋은 말로 할 때. 자! 우리 예나 왕좌에 앉은 자태 좀 봐요. 와-》

        

       적막이 내려앉은 거실에, 도네이션 소리와 함께 방송톤을 되찾은 아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음.

       

       이거……는, 내 탓이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예시로 위키에 올려도 되겠어. 의도,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억울하다는 말도 안 나올 지경이다.

        

       조심스럽게 지튜브 영상을 종료하고, 떠나온 식탁을 향해 손을 가리켰다.

        

       “……술, 마실까요.”

        

       “응. 그러자. 그, 예나야.”

        

       “네.”

        

       “……미안해. 진짜, 정말-”

        

       “아니에요. 제가……사과받을 일 아니에요. 미안해요.”

        

       정말로 아니었다.

        

       진희에게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 * * *

        

       ‘미쳤어. 정신이 나갔지, 김진희. 진짜, 어떻게, 예나한테 그런 말을-’

        

       술자리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치킨이 떨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고, 냉장고에 준비해뒀던 과일을 꺼내어 다시금 술병을 몇 개나 비울 때까지.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진희는 자책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예나가 그녀의 실수를 언급하기는커녕, 울적해진 티조차 내지 않았음에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로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진희는 이미 저 팔토시 아래 숨겨진 흉터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서 경계심이 다소 흐려진듯한 예나가, 언제부턴가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선 크게 괘념치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곤 했으니.

        

       그녀의 앞에서 편한 모습을 보이는 건 분명 더없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조금 전의 실수를 스스로 용서하기 어려울 수밖에.

        

       ‘제발, 잊었으면. 상처라도 잊었으면.’

       

       그런 간절한 소망과 함께 이어진 술자리였으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억을 소실시키는 특효약을 아무리 들이붓는다고 해도, 조금 전의 기억을 지워주는 것은 아니니.

       

       물론, 끝까지 들이부으면 조금 더 넓은 범위의 기억이 날아갈 수도 있을 터였다. 최소한, 흐릿하게 만들거나.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희로서는 알 수 없었겠으나-

       

       예나는, 어째서인지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고 있었으니.

       

       .

       .

       .

        

       그리하여- 피곤해하는 예나에게 잠옷과 이불을 빌려주고 방에 들어온 시점으로부터, 어언 1시간.

        

       챙겨온 와인병을 홀로 반쯤 비웠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예나를 침대에 재웠으면 조금은 나았을 텐데. 시차 적응을 이미 마쳤다는 듯이 피곤해하면서도 한사코 침대는 거절하며 거실 소파에 드러눕는 탓에, 결국 손님을 거실에 재운 마당이었다.

        

       ‘……잘 자고 있으려나.’

        

       확인 정도는 해도 되겠지.

        

       혹시 불편해하고 있으면, 이번에야말로 침대로 보낼 생각이었다. 소파에서 몸싸움을 해서라도.

        

       그리 다짐하며 잠시 거실로 나온 진희는,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소파에 반쯤 쓰러지듯 기대어 앉은 예나를 발견했다.

        

       평소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조금 전에 비해서도 흐트러진 모습과- 반개한 눈.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예나의 시선이 진희를 향했다.

       

        “못 자겠어? 시차, 힘들지.”

        

       염치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부드럽게 질문하는 와중에도, 진희의 동공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체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이불 밖으로 다소곳이 튀어나온 두 다리에는, 얼핏 무엇도 걸쳐져 있지 않은 듯이 보여서.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자면서 옷 벗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상식적으로……농담이었겠지. 굳이 알몸으로 이불만 두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편한 옷을 빌려주기까지 했는데.

       

       다리는, 빌려준 옷이 반바지인 탓에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상의도, 이불을 조금 높게 두르고 있어서 안 보이는 걸 테고.

       

       그럼에도-

        

       “네. 술이 부족해요.”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생각들을 애써 꾹꾹 눌러 담던 사이.

        

       “……아까 엄청 마신 것 같던- 꺅!”

        

       무언가 결심했다는 듯이 이불을 열어젖히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예나의 모습에, 진희는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흘렸다.

        

       “……지니님?”

        

       당연하게도, 옷은 입은 채였다.

        

       “아니, 응, 그, 미안. 벌레, 벌레 있는 줄 알았어.”

        

       “……그런가요. 아무튼……잠 안 오면, 얘기나 할까요. 저, 마침 술도 깨서.”

        

       “어, 어? 그럴까?”

        

       하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더욱 묘한 분위기를 풍겨서.

        

       “네. 술, 깨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요.”

        

       

       진희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nola 님, 2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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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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