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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0

        

         “여기가 아마 극미세 촬영 및 전자 데이터화 분야에서는 네오 헤이븐 최고의 스튜디오 중 하나일 겁니다? 따로 메카닉을 고용해서 저 엑사테크 첨단 촬영 기기와 바이오-테크노피아 사의 광학 분석기를 호환시키기까지 했으니 말이죠.”

         

         “오… 그래요?”

         

         생각할 거리가 많은지 그냥 점잖게 분위기나 잡고 있는 국장과는 달리, MD인 더기는 실무자답게 과장되고 자랑스러운 태도로 일순간이나마 드러난 내 흥미와 텐션이 유지되도록 과장되게 떠들었다.

         

         아, 물론 저라고 영혼 없이 그냥 맞장구를 친 건 아닙니다? 부디 오해는 말아주시길.

         

         편의성 기능을 사이버웨어에 연결하기 위한 각종 전산화는 기본.

         실현 가능한 능력이 있다면 지가 처마셔야 할 물 한 잔을 입가로 가져오는 것도 자동화하는 편이 더 ‘멋지다’ 여겨지는 동네에, 알만큼 알고 어지간히 적응한 내가 더 놀랄 게 남았나 싶었지만….

         

         과연 이런 특수한 분야가 기발할 정도로 발전한 모습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람의 고양감을 끌어올린다 하는 게 정확하려나.

         

         우우웅….

         

         뻑뻑한 기계 소음이라기 보단 공기의 진동음.

         단일 스튜디오치고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을 차지한 이 장소는 얼핏 보면 방 전체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착각할만한 크기의 돔 모양 구조물로 들어차 있었다.

         

         중앙에는 구성품 한 개 한 개가 스티로폼 알갱이 보다도 작아, 자칫 그냥 요철이 심한 바닥처럼 보일 정도로 층층이 쌓인 금속 구슬로 이루어진 그물망이.

         

         주변에는 거울보다도 매끈한 유리가 끼워진 전도성 기둥, 다양한 사이즈의 렌즈 카메라들, 천장 부근에 다각도로 설치된 무수한 조명까지.

         

         기계 공학 분야에 연성진이나 악마 소환 같은 고등 마법 개념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생겨 먹지 않았을까 싶은 모양새.

         

         이런 요소들을 종합해 연상되는 걸 떠올리자면… 뜬금없지만 천체 관측소?

         

         왜 대형 박물관이나 공원 같은 곳에는 간혹 일부러 어둡게 반구 형태로 인공 그늘을 만들고, 광원을 잘 조절해 밤하늘처럼 보이게끔 해 놓은 공간이 있지 않나? 별자리 스티커나 여러 행성 모형 등으로 입체감 좀 더해준 사진 찍기 좋은 곳.

         

         단지 차이점이라면, 여기 하나 짓는데 소모됐을 크레딧을 그런 공원 짓는데 썼더라면 모르긴 해도 백 단위로 늘어났을 거라는 것과 일용직 안내원과는 달리 훨씬 전문적인 담당 기술자까지 배정되어 있다는 것이리라.

         

         “아, 더글라스 디렉터님! 거기에 모델 분도 바로 같이 오셨나 보네요? 마침 딱 기기 예열도 끝났습니다. 헌데 보도국장님은 왜 여기…?”

         

         “크흠! 예능국이나 편성국에는 급이 맞는 책임자가 없어서 따라온 거니, 난 크게 개의치 말고 촬영하면 되네. 필요한 경우에만 나설 테니.”

         

         “……음, 제가 다른 제반 사정까지 다 아는 건 아니니 그렇다고 하시네요! 그럼 저희는 후딱 일정에 맞춰서 작업하도록 하겠습니다?”

         

         관계자들끼리의 대화치고는 굉장히 싱겁고 간결했지만 어쨌거나 구경과 감상은 뒤로 한 채로.

         

         따로 서로를 소개해주는 차례조차 없이 자연스럽게 납득하고 넘어갔기에, 난 여기저기서 기기를 조작하며 일하고 계시던 스튜디오 소속 스탭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는 걸로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대신했다.

         

         연예인 흉내를 생업으로 삼을 거라면 여기선 신입답게 활기찬 태도로 자기 소개라도 박는 게 맞겠지만… 나야 본업이 따로 있기도 하고 일회성 일탈이니까!

         

         이래서 사람이 지갑과 통장에 0이 잔뜩 찍혀 있어야 한다고들 말하는 건가? 마음의 여유가 철철 넘쳐흐르네 아주. 흐흠.

         

         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것처럼 점잔 빼며 감탄하고 있던 게 나빴던 건지, 혹은 세상 당연한 이치를 까먹고 있던 죄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는 건 즉 지금부터 주역인 모델을 세워놓고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한다는 뜻과 동일, 그리고 오늘의 촬영 피사체는 나.

         

         …전어어언혀 느긋하게 있을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네.

         

         “자아~ 어디… 미스 아나스타샤?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후딱 조율 작업부터 하시죠.”

         

         “어, 안이요…?”

         

         “전신 데이터화나 바디 프로필 촬영 경험이 적어서 어색하셔도 괜찮습니다! 나머진 저희 우수한 스탭들이 눈치껏 알아서 도와드릴 테니까요!” 

         

         톡톡. 어깨 근처를 가볍게 밀치듯이 건드리는 걸로 이쪽의 액션을 독려하는 더기 씨를 바라봤다.

         사고 정지가 온 채로 그를 마주보는 내 표정은 필시 우스꽝스러웠겠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손짓으로 움직여달라 재촉해왔다.

         

         뭐, 뭐요. 제가요? 왜요…까지는 아니지. 아무튼 이 뻥 뚫린 방에 정확히 ‘안’이라 부를 분리된 공간이 대체 어디 있는데.

         

         이 옆은 당연히 설비 관련 컨트롤 룸으로 통하는 길이고, 그럼 저기 끝자락에 있는 문? 아, 저기는 이따가 갈아입을 의상이 준비되어 있는 탈의실이라굽쇼.

         

         그러면 다짜고짜 이 기둥들 가운데로 들어가라고? 카메라니 조명이니 전부 무대에 올라온 대상을 분해할 것 마냥 일점 집중되어 있고, 이 많은 사람들이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와중에? 정말로??

         

         대체 그게 무슨 개 쪽팔리는 수치 플레이야…! 날 정신적으로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야 지금??

         

         – 불필요한 고가의 설비들이 많긴 해도. 이 정도는 연구소에서 사용하던 피사체 촬영에도 충분히 동원되는 수준이라 보여집니다만…. –

         

         ‘나도 억지 불평이라는 것쯤은 아는데! 근데 그런다고 없던 용기가 솟는 건 아니니까… 잠깐만 가만 있어 봐!’

         

         어디까지나 냉정하게 보충해준 거라 생각하지만… 왠지 ‘아나스타샤 어린이~ 부끄러워하지 말고 얼른 가보세요~’처럼 들리는 제로의 조언을 애써 무시했다.

         

         그래, 다 피해 망상이지. 이런 자리가 어색한 내 뇌가 그냥 부끄럽다고 현실 도피를 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까짓 거 그냥 당당하게 요청받는 대로 행동하면 그만인 셈이다.

         

         더군다나 아까 이런저런 화장품도 잔뜩 치덕치덕 바른 상태가 아닌가? 그러니 엄밀히 따지자면 난 지금 얼굴을 드러낸 것조차 아니다! 가면을 쓴 상태에 더 가깝지. 암 그렇고 말고…!

         

         ……돈 받고 하는 일이다. 나는 프로다. 시키는 대로 하는 거니까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말이다.

         

         숫제 심판대에 올라가는 범죄자 수준으로 혹독한 마인드 컨트롤을 마친 후에… 그대로 출격.

         

         “으흠… 흠! 그냥 여기 위로 가서 올라서면 되는 건가요? 가만히?”

         

         “아티피셜 마그넷 필드(Artificial Magnet Field)가 먼저 평소 다리를 움직이시는 동작부터 각도, 무게를 실으시는 버릇까지 다 입체적으로 기록할 테니 일단은 자유롭게 움직이셔도 무방합니다!”

         

         입체적으로 기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막 돌아다녀도 좋다 했으니 지금부터 차차 알게 되겠지.

         

         우웅….

         

         “오? 우와…?”

         

         자칫 이상하게 보일라, 흘러나오려는 탄성을 급하게 입술을 다물어 끊었지만 솔직한 첫마디까지 막지는 못했다.

         

         한 발자국. 발을 성큼 내딛자 무슨 늪에 빠지는 것처럼 구슬망이 출렁인다.

         헌데 의심하면서도 체중을 실어서 올라서자 또 제대로 신체를 지지해주었으니, 오싹하면서도 신기한 만족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왜냐고? 그야 반발력이 느껴지는 바닥을 디딘다는 기분은 절대로 흔히 느껴볼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걸 비교할만한 엇비슷한 대상이 뭐가 있을까, 작은 공이 가득한 볼 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흔들다리? 팽팽하게 설치된 트램펄린? 이것들을 전부 뒤섞으면 유사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네.

         

         위잉—…. 웅… 우우웅—….

         

         힘을 주면 그만큼 이쪽을 밀어낸다. 접촉하면 수면이 물결치듯 흔들리며 파장이 일어난다.

         

         시각적인 자극과 촉감이 주는 만족도만 따로 떼어놓고 평가한다면, 의식 세계에서나 가능할 법한 초현실적 조형미에 어느새 나도 모르게 주위의 시선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팔다리를 파닥파닥 흔들어보고 있었으나.

         

         놀이공원 같은 곳에나 있을 법한 어트랙션에 올라탔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새삼스러운 사실을 눈치챘다.

         

         그러니까… 분명 마그넷 필드랬지? 이게 기계를 통해 만들어낸 인공 전자기장의 힘이란 말이렸다?

         

         광고로 돈이 무진장 벌리는 만큼 든든히 재투자를 했을 게 뻔하겠지만, 솔직히 이런 일상 분야에 쓰이는 기술이 이런 수준이라면 내가 개인적으로 구비할만한 장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획기적인 생각.

         

         물론 사용법도 따로 배우고 유지 보수하는 방법도 찾아서 제로한테 다운로드 시켜야겠지만!

         

         아니지?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이 녀석이 역장 비스무리한 걸 유지하는 흐름만 얼추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도, 구슬 치기도 깔끔하게 못하는 내 전자기력 응용에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흡! 흐흡!!”

         

         다리 쪽에 전기를 미약하게 대전 시켜 조금이라도 더 자기장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 다음 발을 굴렀다.

         

         흡사 무중력 체험실에 온 것처럼 제자리에서 반탄력으로 통통 몸이 튕겨 올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온정신을 그러모아 흔들리는 마그넷 필드를 관찰하고 흔들리는 힘의 방향성을 느끼는데 집중했다.

         

         촘촘한 격자 구조의 그물이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교보재가 있으니까, 확실히 집에서 혼자 박치기해가며 배우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쉬운 느낌이다.

         

         조금만, 어떻게 아주 조금만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파악하면 감을 잡을 것도 같고….

         정답을 알 것 같은 시험 문제인데 딱 필요한 공식은 안 떠오르는 그런 답답한 기분이랄까.

         

         그렇게 혼자 고뇌하는 학자 마냥 끙끙 앓으면서도 끊임없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그물망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가 미끄러지기도 하며 다각도로 연구를 거듭하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아까보다 주변이 더럽게 조용해졌다.

         

         마음대로 하고 있다 보면 추가적인 가이드라인을 잡아준다고 했던 안내는커녕, 드문드문 들리던 스탭들끼리의 잡담마저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내 발소리와 이 촬영 장치 돌아가는 소리만 남아있었다는 말이다.

         

         혹시… 이것도 촬영에 포함이라 찍고 있었나? 에이, 설마 아니겠지?

         

         선행 조율 작업이라 했으니까 틀림없이 다들 전문가답게, 진지한 태도로 준비하는 나를 배려해서 조용히 하고 있던 것이리라.

         

         내심 그런 것이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건만. 바로 어딘가 굉장히 흐뭇하고 머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관객들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 아. 씹.

         

         ““…….””

         “…저기, 지금 큰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잠깐 제가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여러분??”

         

         아니, 순진하게 놀고 있던 게 아니라고. 처음엔 잠깐 재미를 느꼈어도 후반엔 어디까지나 학술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왜 내 말을 끝까지 다 듣지도 않고 시선을 피하는데.

         

         차라리 웃을 테면 웃던가! 무작정 괜찮다고 하지 말고.

         그런데 진짜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즐겼다든가 그런 게 절대 아니라니까요!?

         

         …야, 야 이 나쁜 놈들아—! 왜 아무도 똑바로 대답을 안 해주는데!

         

         제로 너는 진짜 오늘자 녹화 영상 싹 다 지워라! 안 그러면 집에 가자마자 네 클라우드 데이터 다 뜯어볼 거야!! 시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뭐요. 스킬 숙련도 올리는 사람 처음 봐요?

    두 시간 지각! 죄송합니다….
    하루 아프고… 또 하루 괜찮다가 또 앓아눕고, 정말 난리도 아니네요. 내일은 정시 연재 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민트찹쌀이 님의 크리스마스 기념 100 +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100코인은 아나스타샤 회장님의 비상금 계좌에! 그리고 다른 100코인은 제 약 봉투에 넣어두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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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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