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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0

     왕궁 광장의 가운데.

     황금의 기사들이 솟아나고 있다.

     하나, 둘, 아니 그 이상.

     실시간으로 계속 늘어나는 수는 어느덧 열에 가까워졌고, 그 하나하나의 면면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다.

     특히 그 중 누군가는 다른 황금의 기사들과 달리, 흡사수백년 전 역병이 돌았을 때 의사들이 쓰고 다녔다고 하는 뾰족부리 가면과도 같은 투구를 쓰고 있었다.

     “저건….”

     “…역병심왕 칼락스 지오 노스트럼?”

     합스베르크 황제가 믿기지 않는다는듯 중얼거렸다.

     

     “역병심왕이라고 함은….”

     “노스트럼의 대역병을 제압한 국왕이지. 지금으로부터 300년도 전의 군왕. 그리고 다른 황금의 노예들 또한…다를 바가 없어보이는군.”

     “이런 미친.”

     하나둘, 황금의 노예들이 몸을 일으킨다.

     그들은 저마다 황금으로 된 검을 들고 있었고, 머리에는 태양의 홀에 있는 상징과도 같은 황금의 왕관을 쓰고 있었다.

     “저거 설마, 노스트럼의…?”

     “으하하하!!”

     너무나도 익숙한,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미친 것 같은 웃음소리가 귀를 때린다.

     “노스트럼의 영령들이, 조상님들이 나를 보호하고 있노라! 이 놈, 크림슨 지브롤터! 감히 나를 죽이려고 들어!!”

     광소를 터뜨리는 이는 다름아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그는 황금으로 된 지팡이를 든 채, 황금의 노예들을 자신의 앞에 세우며 악을 쓰듯 소리쳤다.

     “어림도 없다!! 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앞에 선 기사가 어딘가 익숙하다.

     몸 곳곳에 기워진 흔적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궤적-나의 검에 의해 베인 흔적이었다.

     “세인트 지오 왕의 앞에 있는 건…제로스 바르셀?”

     “이게 도대체 무슨…? 지금, 도대체 무슨 상황이…?”

     나리아도, 카르멘도 모두 혼란에 빠졌다.

     태양의 홀에 있는 모두가 지금의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레이.”

     황제가 나지막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지금, 무슨 상황일 것 같나?”

     “…노스트럼 왕가에는 국왕만 쓸 수 있는 대마법이 있나봅니다. 그것이 아무래도, 흑마법에 가까운 것 같지만.”

     “네크로맨서. 시체와 영혼을 조종하는 자. 위대한 시간의 지배자, 크로노스트럼께서는 후손들을 위해 죽음이라는 시간마저 거스르는 특별한 힘을 남겨둔 모양이군.”

     황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영웅은 쌓이게 되고, 당대의 왕은 그 영웅을 황금을 매개로 하여 조종할 수 있다는 건가. 하! 그야말로, 마법과 황금의 왕국 다운 안배야.”

     황제의 빈정거림에는 명백한 짜증과 경멸이 담겨있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군.”

     마법 자체에 대한 분노와 혐오라기보다는, 고대의 황금룡이 남겨둔 유산의 불가해한 기적 때문이라기보다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저걸 지금 쓰는 건가?”

     그 기적과도 같은 사자소생의 마법을, 고작 크림슨 지브롤터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 황제가 가장 크게 분노하게 만든 원인인 것 같다.

     “그레이. 자네는 저걸 본 적이 있나?”

     “아니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들고 있는 지팡이도, 그의 앞에 있는 황금의 노예도, 그리고…역대 노스트럼 영웅들의 영혼이 노예와 인형처럼 움직이는 모습도 처음 봅니다.”

     처음 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자네가 더 분노하고 있는 모양이군.”

     “뭐, 예.”

     처음봤기에, 나는 황제보다도 더 화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에는 왜 안 쓴 건데?’

     

     상급기사 이상의 영웅들을 무한히 계속 소환해낼 수 있는 사령술?

     그게 연금술이든 사령술이든 아니면 노스트럼 왕실에 흐르는 기적이든, 이런 힘이 있으면서 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왕성에서 도주하였는가?

     회귀 전에는 사용하지 않은 기술이 아닌가.

     망국의 공주가 나라를 잃기 전에 저 권능을 넘겨줬거나 가르쳐줬다면, 망국의 공주는 무조건 저 힘을 사용하여 제국과 역적 지브롤터를 상대했을 것이다.

     ‘미치겠네.’

     회귀 전의 정보와 회귀 후의 정보가 너무 꼬이고 꼬인다.

     황제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이제는 무능왕까지 내 머리를 폭발시키려고 한다.

     “그레이.”

     “…아스타시아.”

     분노가 사그라든다.

     어지러워지기 시작한 머리가 맑아지며, 나는 아스타시아의 손을 가볍게 붙잡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미안합니다. 저도 모르게 세게 잡았던 것 같군요.”

     “평소답게, 침착해지죠. 우리.”

     “…예. 평소처럼.”

     

     당황한 건 아스타시아 또한 마찬가지.

     합스베르크 황제도 그렇고, 다들 혼란에 빠졌거나 최소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침착하도록 하죠. 저기 있는 분처럼.”

     이 자리는 아니지만, 가장 당황해야 할 자리에 있는 이가 제일 평온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다.

     “아버지처럼.”

     크림슨 지브롤터.

     오직 그만이, 황금의 노예들이 솟아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그레이 경. 당장 도우러 가야하네.”

     

     윈체스터 대공이 태양의 홀 벽에 걸린 깃창을 하나 뽑아들며 창밖을 가리켰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과거의 영웅’들 중 마스터만 무려….” 

     “열둘.”

     합스베르크 황제가 답했다.

     

     “노스트럼 왕국에 매 번 발생했던 9번의 재앙말고도,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저주와 문제를 해결해낸 이들 중 마스터급 실력을 가진 자가 무려 열둘이오. 나머지는 전부 최소한 상급 기사 수준.”

     마스터 열둘. 

     그리고 나머지 수십이 전부 상급기사 이상.

     “지금 이 결계 밖에서 솟아나고 있는 황금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지만, 기사들 대부분은….”

     “나를 죽이려드는 자를 죽여라ㅡㅡㅡ!!”

     “…저런 의도를 가지고, 검을 휘두르려고 하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명령 하에, 황금의 영웅들이 일제히 아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레이! 네가 나서지 않겠다면, 내가…!”

     “진정하세요, 윈체스터 대공.”

     나는 창을 꼬나쥐고 창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윈체스터 대공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이곳을 나가면 합스베르크 황제께서 펼쳐둔 오러의 결계가 바로 망가질 겁니다. 외부에서는 견고하지만, 내부에서 마스터급이 빠져나가는 건 상정하지 않았을 테니.”

     대공의 마력과 합스베르크 황제의 마력이 충돌하면 결계는 즉시 깨질 것이다.

     애초에 이 결계는 다급하게 펼쳐둔 것이고, 윈체스터 대공의 마력이라면 이런 결계는 충분히 깨뜨릴 수 있다.

     “대공께서는 왕가를 지켜주시옵소서. 흑장미기사단과 함께.”

     “큭…!”

     문제는 이게 나리아나 카르멘, 그리고 흑장미 기사단을 지키는 결계라는 것.

     아버지를 도우러 가려고 결계를 깨뜨렸다가는 오히려 태양의 홀에 있는 이들이 위험해진다.

     “폐하. 결계, 조정 가능합니까?”

     “조정할 수 있다네. 조정하려면…최소한 1분은 걸리겠지.”

     황제가 유리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레이, 그대는 그게 불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장 뛰쳐나가지 않을 걸 보면. 혹시 지켜볼 생각인가?”

     “그런 게 아닙니다.”

     나는 아스타시아를 짧게 토닥이며, 지팡이를 잡고 앞으로 나섰다.

     “아버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등 뒤를 지키는 사람 한 명 정도는 필요한 법이죠. 제가 가겠습니다.”

     “흐음…?”

     황제가 눈썹을 들며 히죽 웃는다.

     아무래도 내가 아스타시아의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네…!”

     “윈체스터 대공은 이곳을 지켜주십시오. 제가 빠져나가는 즉시, 결계가 내부에서 흔들린만큼 황금의 기사들이 안으로 스며들 겁니다.”

     “…….”

     윈체스터 대공이 황제와 아스타시아를 슬쩍 번갈아봤다.

     내가 사라지면 아스타시아는 누가 지켜줄 거냐는 듯한 시선.

     “폐하.”

     “음.”

     “아스타시아는, 제 아이의 어머니가 될 여자입니다.”

     “그, 그레이!”

     “알겠네. 흐흐.”

     

     황제가 유리창을 향해 뻗은 손에서 마력을 방출했다.

     “다녀오게. 안심하고, 이왕이면ㅡ”

     와장창ㅡ!

     앞으로 달려 유리를 깬다.

     깨진 유리 파편은 몸을 보호하는 마나로 튕겨내며, 광장을 향해 뛰어내린다.

     높이는 거의 50m.

     하지만 마스터에게는 그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정도일 뿐이다.

     그마저도 평소에 단련을 한 사람이라면, ‘마나’의 힘이 있다면 문제없다.

     서걱.

     착지하자마자 들린 검 소리.

     나는 바닥을 한 번 구르며 앞으로 칼을 휘두른 다음,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도우러 왔더니.”

     “네가 나를 돕기에는 아직 2년은 이르다.”

     아버지가 붉은 오러를 일으킨 검을 수평으로 든 채 가볍게 웃었다.

     푸화ㅡㅡㅡ악!

     동시에 아버지의 앞에 있던 황금의 영웅들이 순식간에 갈라지며 황금의 피분수를 터뜨리고, 아버지의 뒤에서 다가오던 영웅 하나 또한 사선으로 갈라졌다.

     “아버지. 이들 말입니다, 역대 국왕들의 영혼이라고 하던데요.”

     “알고 있다. 역사서에서 본 적이 있으니.”

     “…베어도 되는 겁니까?”

     “죽은 사람이다. 세인트 지오에게 조종당하는 망령이다. 적이다.”

     “베어 죽일 이유로는 충분한 것 같군요.”

     때때로 아버지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지만, 검을 들 때의 아버지는 그 칼날처럼 시원시원하고 명료한 사람이다.

     “뭘 하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모른다. 세인트 지오가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이러더군.”

     “…죽이는 줄 알고 오해한 겁니까?”

     “도둑에 제 발 저린 바람에 아주 난리를 치는 거지. 그게 이런 식일 줄은 몰랐지만. 그보다, 아들아.”

     아버지는 단칼에 베인 영웅들을 가리켰다.

     “영혼이지만, 이들은 분명 영웅이다. 생전의 실력이 그대로니, 괜히 방심하다가 어디 다치지 말도록. 이들은 위험하다.”

     “…영웅들 넷을 동시에 썰어버린 분이.”

     “몸에 피가 튀는 건 괜찮지만, 황금이 튀면 또 모르잖느냐.”

     “…….”

     황금이 튄다.

     의아하기는 하지만,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아버지. 저 황금, 드래곤의 유산이겠죠?”

     “그렇겠지.”

     마법과 기적, 황금룡의 안배.

     “마석인데, 황금인.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죠? 골드드래곤에 의해 황금이 된 마석.”

     “바르셀로나 지하에도 그렇게 넘쳐나더니, 이제 금이 철광이나 구리보다 더 많이 나오게 생겼군.”

     “계속 나온다면ㅡ”

     푸화ㅡ악.

     황금의 노예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힘을 유지하지 못한 채 물주머니가 터지는 것처럼, 황금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모든 백성들은 들으라ㅡㅡㅡ!!”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황금으로 빛나는 부정형의 비룡을 탄 채, 하늘로 날아오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크림슨 지브롤터가 본 왕을 암살하려고 했다ㅡㅡㅡ!!”

     “……미친 놈인가?”

     아버지의 혼잣말은 하늘에 닿지 않았다.

     “지브롤터가 아들을 이용해 황제를 왕도에 끌어들이더니, 기어이 노스트럼의 왕을 죽이려고 하는구나!!”

     “아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이름으로, 모든 노스트럼에 명한다! 역적 지브롤터를, 죽여라ㅡㅡㅡㅡ!!”

     “하.”

     파ㅡ앗.

     그 말을 끝으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왕도에서 사라졌다.

     “텔레포트 스크롤? 아니, 스크롤을 찢는 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아버지.”

     나는 속에서 끓는 짜증과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본인이 죽여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진짜로 해버릴까요?”

     “…이런 식으로 매국노가 될 줄은 몰랐는데.”

     “예. 저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그 자가 이렇게 ‘뒤가 있다’라는 것처럼 행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치.

     “자기 혼자 시간이라도 감아서, 이 세상을 떠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듯 행동할 줄은.”

     이번 생은 망했으니, 모든 걸 망가뜨리겠다는 비상식적인 움직임을 보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버지. 우리는…아무래도 지브롤터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음.”

     터졌던 황금이 아닌, 새로운 황금의 기사들이 스멀스멀 땅에서 나타났다.

     “왕의 명령은….”

     “살아있는 이를 향한 명령이 아닙니다. 죽은 자들에게 내린, 노스트럼의 ‘전통과 역사’에 내리는 명령이죠.”

     태양의 홀에 펼쳐진 결계를 휘감고 있던 황금의 노예들도 우리 쪽으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동생들은…?”

     “캐롤라인 성에 있다.”

     모든 황금이 지브롤터를 노리고 있다.

     지브롤터의 피를 가진 존재를.

     “나는 바로 캐롤라인 성으로 가겠다. 너는….”

     “누아르를 챙겨가겠습니다. 챙겨가기는 할 건데….”

     아버지와 나도, 현장을 떠나기 전 주변을 훑었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안전이 확보된 다음에 생각을 해도 늦지는 않지만, 자꾸만 눈에 밟히니.”

     피처럼 흩뿌려진 황금빛 액체.

     시간이 지나 고체로 굳히면, 아마도 황금이 될 터.

     “…죽은 자가 황금이 되어 돌아온다면, 이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려고 할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명령에 따라, 시체가 황금이 되어 일어난다.

     오직, 지브롤터를 죽이기 위해.

     * * *

     제국력 99년 7월 8일.

     노스트럼 왕국의 왕도 톨레도에서 약혼식이 공식화되었다.

     그레이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총독과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 황녀의 약혼.

     그 장소는 노스트럼 왕국의 오로솔 아카데미.

     

     그러나.

     그 소식이 전해지기 이전, 제국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내용은 전혀 다른 주제였다.

     [지브롤터 후작, 왕을 죽이려 하다.]

     가 아닌.

     [무한한 황금. 재앙인가, 기적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9권 끄으으으으으으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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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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