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70

    <270 – 친구비를 주는 조직>

     

    재단장학생들은 에이프릴의 부름에 몹시 당황했다.

    그녀가 지령을 전해주는 일은 있어도 단체소집을 행한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재단장학생은 기본적으로 정체를 숨기고 있다.

    아카데미에 숨어든 일종의 스파이.

    점조직마냥 자신들끼리도 서로 누가 장학생인지를 모르고 있다.

     

    ‘저것들은 다 뭐야?’

    ‘뭘 시키려는 거지?’

    ‘재단의 일에 외부인은 왜 같이 부르는데.’

     

    찝찝함을 감추지 못하는 평범한 장학생들과 달리, 재단장학생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자쿠>는 이들 모두가 장학생임을 깨달았다.

     

    “자쿠. 너도 있는 건가.”

    “프라이머. 귀찮으니까 달라붙지 마라.”

    “넌 무섭지도 않은 거냐? 장학생인 우리가 같이 불렸다면 아마도 여기 있는 녀석들은…”

    “네 생각이 맞을 거다.”

    “역시! 장학생이 한 자리에 모였다고. 분명 엄청난 지령이 내려올 것이 틀림없다고!”

     

    설마 981기 학생들의 재능을 두려워한 나머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동급생을 죽이고 자살하라는 지령이 내려오지는 않겠지?

    강제로 폭탄을 채워서 자폭테러에 내보내면 어쩌지?

    도망치면 붙잡히지 않을 수는 있을까?

    아카데미에 보호를 요청할까?

    재단이 그런다고 보복하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

    겁에 질려 아는 사람의 곁을 맴도는 프라이머와 달리, 자쿠는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는 알고 있다.

    에이프릴이 오크노디와 함께 다니고 있음을.

    그렇다면 오늘 일은 재단의 호출이 아니라 오크노디의 호출이라고 봐야 한다.

     

    “안녕, 여러분!”

     

    약속시간.

    인적 드문 숲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오크노디의 등장에 어리둥절하던 장학생들은 그녀의 뒤로 기립하는 에이프릴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오늘은 재단의 수석장학생인 오크노디 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릴 특별지령이 있습니다. 부디 두 번 설명하는 일이 없도록 오크노디 님의 지령을 새겨들으시길 바랍니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어렴풋한 예감으로, 혹은 분명한 관찰력으로 짐작했던 바가 이루어졌다.

    재단의 지령.

    그것도 수석장학생이 직접 나타나 건네는 대규모 단체지령이다.

    대체 얼마나 위험한 지령이 내려올까.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잔뜩 긴장한 채 올려다보는 장학생들.

    그들에게 오크노디가 말했다.

     

    “최근 1학년 사이에 이런저런 소그룹이 활동을 개시하고 있어요. <용사 친위대>, <암흑상회>, <지고쿠 해적단>, <카멜라 사단>, <서부귀족연합> 같은 쟁쟁한 그룹들이 나서는데 저라고 혼자 다닐 이유가 없어졌거든요.”

     

    드디어 재단의 수석장학생 오크노디가 행동을 개시하는 건가…!

    장학생들의 눈에 긴장감이 올라갔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오크노디까지 함께 활동하는 조직이다.

    그녀를 조직의 대장으로 삼아 벌이는 활동.

    그 목표는 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여러분은 저와 같은 그룹을 결성하고 제 지시를 따라줘야겠어요! 안 그러면 재단의 활동에 커다란 불상사가 생길 거예요!”

    “…저희가 무얼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제가 시키는 이런저런 심부름들을 들어주는 간단한 일이니까!”

     

    지령을 주는 주체가 재단의 스파이 <에이프릴>에서 <오크노디>로 바뀌었을 뿐인가.

    영민한 프라이머는 우려했던 자폭테러까지는 일어나지 않겠다고 안심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서서 눈도장을 찍더라도 가장 먼저 폭탄조끼를 차고 선두에서 돌진하는 일은 없다.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재단장학생이 한 자리에 모이면 아카데미 측에서 장학생을 특정 지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후 공개적인 모임은 없이 음지에서 조력하는 겁니까?”

    “장학생의 신분을 드러낼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여러분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잔뜩 조직에 들여올 거거든요.”

    “이쪽이 향후 오크노디 님의 조직에 영입될 인원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에이프릴이 명부를 꺼내 나누어주는 명부를 받아든 프라이머.

    그의 입가에 감탄의 미소가 어렸다.

     

    흑기사 모브.

    대지술사 샌드쿠커.

    화염술사 로지니.

    하급반에서는 최근 엄청나게 주가를 올린 이들이다.

    실력자의 영입은 조직의 이름값을 높이기 좋다.

    그런데 비키니전사 뾰이는 누구지?

     

    아카디아 공녀와 의리 있는 추종자 3인방 티토소가, 프릴, 카닐리언 트러플.

    여성으로 이루어진 4인조지만 한 때 하급반 여학생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던 1학년 내 최대파벌의 소유자였던 아카디아가 함께 한다.

    장학생이 아니라 아카디아를 추종하는 추종자들로 위장하기에 딱 좋다.

     

    헤스티아.

    페이퍼던전이라는 정체불명의 동아리에 드나드는 자.

    상급반 학생이기에 잘은 모르지만 오크노디도 같은 동아리에 들락거리고 있다.

    분명 오크노디가 집중해서 관리하고 있는 인맥이라는 뜻이겠지.

    조직을 운영하는 김에 인맥관리도 병행하는 영리한 선택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심지어 그 이상으로 두려운 이름들도 있다.

    싱. 그리고 즈앙.

    손속이 나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두 상급반 학생.

    성별은 다르지만 그들의 위험성은 동등하다.

    이쯤 되면 장학생이 주체가 아니라 오크노디의 인맥이 주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의 무게추가 단단히 기울어지는 인선이다.

     

    대운동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었던 2학년 사천왕과도 대결을 겨룬 강자, 아이린까지.

    북부대공녀마저 가세한다면 든든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전투력으로는 최강으로 손꼽히는 <용사친위대>에 못지않은 대조직의 결성이다.

    그런데 롯토는 누구지?

     

    그래, 롯토.

    누군지는 몰라도 상급반의 일원이라면 수수께끼의 강자임은 틀림없을 터.

    주목받지 않은 강자를 영입했다는 점에서 더욱 예의주시할만한 인물이다.

     

    ‘이건 우리들에게 수석장학생으로서의 인맥과 정치력을 과시하는 건가…!’

     

    프라이머는 실감했다.

    장학생들이 서로 정체를 알았다.

    힘을 합쳐서 하극상을 꾀할 수도 있다.

    그런 시도를 원천부터 박살냈다.

    저 쟁쟁한 이름들 앞에서 장학생들이 모인들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오크노디 한 명을 어떻게 집단으로 다구리를 치더라도 헤스티아나 싱, 즈앙, 아이린 같은 강자들이 나서면 하루아침에 모조리 쓸려나간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오크노디는 성적만 뛰어나거나 힘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걸맞은 강자들을 동료로 두었음을.

    감히 수석장학생의 지위를 빼앗으려 들거나 반란을 모의할 의지조차 들지 않도록.

     

    “그래서 조직이름은 뭐지? 이 다채로운 멤버들이 하나로 엮이는 모습이 그려지질 않는데.”

     

    조직의 이름은 중요하다.

    용사친위대는 용사를 주축으로 하는 조직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지고쿠 해적단이나 카멜라 사단, 서부귀족연합도 정체성이 뚜렷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 오크노디는 장학생과 자신의 동료들, 그리고 하급반의 강자가 어우러진 이 기묘한 조합을 어떻게 하나로 엮을까?

    결합에 실패하면 이탈자가 속출한다.

    야심차게 준비한 조직이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

    과연 오크노디는 어떤 정체성을 준비했을까.

    자쿠의 물음에 오크노디가 해맑게 외쳤다.

     

    “저희 조직은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이에요!”

    “…”

     

    그거 참 정체성 한 번 뚜렷하네.

    위장이 목적이라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말로 괜찮은가?

    조직 이름이 그런 것이어도 되는 건가?

    장학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떨떠름했다.

     

    “우리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학생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겠나?”

    “분명 괜찮을 거야!”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알려줄 수 있겠나?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직을 시작부터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을 조직명이 우려되어서 하는 말이다.”

     

    자쿠의 물음에 오크노디는 안될 거 뭐있냐며 흔쾌히 대답했다.

     

    “조직원한테는 친구비를 줄 거야!”

    “…친구비?”

    “포인트로!”

    “…!”

     

    자쿠를 포함한 모든 장학생이 확신했다.

    이건 된다.

    아카데미 학생 중에 포인트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런 바보가 있다면 진즉 퇴학당하고도 남았다.

    동아리 회비로 포인트를 역으로 내놓으라고 협박하거나 노동력을 갈취하는 선배들의 동아리에 비하면 오크노디의 조직은 정반대!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이라는 유감스러운 조직명을 제외하면 이상적인 조직 그 자체다.

    정당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친구비(포인트)를 받는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조직인가!

     

    “그래도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은 좀 그런데.”

     

    하지만 세상 어느 조직에든 눈치 없는 녀석이 꼭 한 명씩은 존재한다.

    프라이머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소리를 하는 겁 없는 장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볼멘소리를 내었다.

     

    “우리는 장학생이잖아. 조직 내의 비밀조직. 재단의 정체성을 살리는 비밀조직명은 따로 없어?”

     

    다행히도 관대한 오크노디는 장학생의 뺨따구를 때리며 어디서 말대꾸를 하냐고 혼쭐을 내거나 내 조직명이 싫어…? 라며 울먹거리지 않았다.

     

    “물론 재단장학생들만으로 이루어진 조직 내의 비밀조직을 위한 이름도 따로 준비해두었지!”

    “오오! 그 이름은 뭐지?”

    “<오크노디의 심부름을 들어주는 조직>!”

     

    질문에 나섰던 장학생은 혼란에 빠졌다.

     

    “뭐가 다른 거지?”

    “심부름셔틀은 친구가 아니니까 친구비를 받지 않아!”

    “…!”

     

    차이가 있었다.

    아주 중대한 차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친구가 아니면 심부름꾼으로 이루어진 조직

    란스님이 산뜻한 티토소가 팬아트를 그려주셨습니다.
    해당 팬아트는 팬아트 공지 및 표지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