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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71

       [팔정도(八正道) 제7식(式) ─ 피션(Nuclear Fission)]

       

       미리 놓아두었던 우라늄 구가 폭발했다.

       

       그에 따라 막대한 열과 감마선이 바닷물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폭발은 점점 더 크기를 불려나갔다. 붉은빛이 조금씩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하얀 버섯구름이 피어났다.

       

       얼마간 지나고 폭발이 멎자, 그라운드 제로를 중심으로 수백 미터 지름의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마왕군이 수백 년에 걸쳐서 쌓아 올린 전초기지가, 허무하게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

       “…….”

       

       공중 부양 마법으로 하늘에 떠 있던 세실과 버멜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원자폭탄이 무엇인지 몰랐던 세실은 틀림없이 놀란 눈치였고, 이는 버멜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세, 상에.”

       

       세실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코멘트를 남기고 싶은데, 남기지 못하는 얼굴.

       

       “저게 대체 무슨 마법이죠?”

       “화계에 전계를 섞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계…?”

       

       세실이 홱 고개를 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금안족이란 게….”

       “맞습니다.”

       

       위장을 푼 내 눈동자는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도 아카데미 총장직에 오른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눈치껏 알겠지.

       

       한참 신음을 흘리던 세실은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자세한 건 돌아가서 얘기를 나눠봅시다.”

       

       당장 세실이 궁금해하는 게 한둘이 아닐 것이다.

       

       마수로 위장한 내가 왜 자기들 편에 섰는지. 버멜 호르데와는 어떤 관계인지. 어째서 머리 위에 정령이 둥둥 떠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려면 여섯 시간 연강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기운이 쫙 빠진다.

       

       “해룡은 죽었을까요?”

       

       세실이 물었다.

       

       “죽었네요.”

       

       앨리스가 단언했다.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악의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어요. 아마 열로 인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거예요.”

       

       앨리스는 그러면서 방사선 회피 마법의 세기를 조금 낮추었다. 

       

       아무래도 언니가 지친 모양이다.

       

       “후우.”

       

       나는 손에 묻은 우라늄 가루를 탁탁 털어내며 입을 뗐다.

       

       “돌아갑시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돌아가는 동안 어색한 침묵만이 이어졌다.

       

       “…….”

       “…….”

       

       버멜은 마왕을 걱정하느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일 테고, 세실은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동생, 제가 알려드릴까요?]

       

       세실의 표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나 추론하던 도중, 앨리스가 불쑥 염화를 걸어왔다.

       

       뭔데.

       

       [총장의 정령들과 잠깐 얘기를 나누었어요. 동생이 만든 무기가 앞으로 세상에 어떤 파란을 몰고 올지를 고민하는 모양이에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라니.

       

       혹시 마왕을 쓰러뜨린 다음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지구에서 원자폭탄이 발명된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앨리스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마왕군이 2차대전의 추축국이라면, 카우렐리아와 필리우트 제국은 연합국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내가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원자폭탄의 존재는 이 세상에 그대로 남아 있겠지.

       

       마왕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진 상황에서, 제국과 엘프국은 과연 어떻게 서로를 대할 것인가.

       

       “귀찮아.”

       

       생각하기 귀찮다.

       

       애초에 나는 학문을 하는 사람… 아니, 마수다. 정치나 외교적인 일에 머리를 굴리고 싶진 않았다.

       

       왜냐. 그것이 에테르라는 소녀이기 때문에….

       

       그런 상념에 빠져있던 사이에, 우리는 ‘1차 도련선’이라고 불리는 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덜덜덜덜.]

       

       웬 여자아이가 섬의 백사장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떨고 있었다.

       

       눈동자는 녹차 아이스크림에 민트맛을 섞은 색이었고, 대가리에는 먹음직스러운 풀떼기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라푼젤처럼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길었는데, 이 때문에 뒷모습만 보아선 어떤 의복을 입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어.”

       

       소녀의 얼굴을 확인하고자 가까이 다가간 나는 당황하며 눈을 끔뻑거렸다.

       

       이 애,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시스루를 두른 것 같기는 한데, 기본적으로 전라나 다름없었다.

       

       뭐지.

       

       “치녀인가?”

       

       무심코 그리 내뱉자, 세실 총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강제로 허리를 숙이게 했다.

       

       “왜요?”

       “이분이 어떤 분이신데요…! 감히 그런 망언을…!”

       

       아니, 그러니까 대체 누군데.

       

       최상급 정령과 계약한 세실 총장이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정령왕이나 뭐 그런 급이라도 되는 것 같은데.

       

       정령왕이라면 이미 세 명이나 만나서 얼굴을 안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땅의 정령왕 노움, 물의 정령왕 시큐엘….

       

       그리고.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

       

       아.

       

       [휘익.]

       

       떨림을 멈춘 소녀가 흘끗 뒤를 돌아보며 날 선 표정을 지었다.

       

       앞머리도 시스루 뱅이네.

       

       “에어리얼 님, 왜 이런 곳에 계세요?”

       

       내 실언을 덮어주고자 세실이 먼저 말을 걸었다. 바람의 정령왕은 후우, 하고 김빠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투항한 마수 상대로 화를 내봤자 어쩌겠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이후로 세실과 정령왕의 짤막한 대화가 이어졌다.

       

       [절레절레.]

       “아….”

       

       대화라고는 해도 저런 식이었다.

       

       바람의 정령왕이 온갖 몸짓을 구사하면, 세실이 그것을 알아듣고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마치 기계어를 배운 프로그래머가 컴퓨터가 하는 말을 통역해주는 느낌이다.

       

       “정리하자면 당신 때문이네요.”

       “저요?”

       “네, 아스테야…. 아니, 상천의 에테르. 당신이요.”

       

       세실이 말을 이었다.

       

       “당신이 터뜨린 폭탄에 놀라셨어요. 아무래도 저건 진짜 위험하다, 싶어서 일단 이쪽으로 몸을 피하신 뒤 경과를 지켜보고 계셨다고 해요.”

       “겨우 10kT짜리 폭탄 하나 가지고요?”

       “……?”

       

       나와 세실의 표정이 동시에 멍청해졌다.

       

       아니, 생각해 보라.

       

       정령왕씩이나 되는 존재가 원자폭탄 하나 가지고 쩔쩔매는 거면, 정령을 증오했던 예전의 나는 왜 흑주를 만들려고 한 건데?

       

       “마왕군은 대체 뭘 만든 거죠?”

       “폭탄이요.”

       “그러니까 저게 대체 무슨 폭탄이냐고, 에어리얼 님이 묻고 계세요.”

       “그냥 마법으로 만든 폭탄이라니까요.”

       “…?”

       “…?”

       

       아까 화계랑 전계 섞은 폭렬 마법이라고 얘기를 해줬는데 왜 이래.

       

       보다 못한 버멜이 이마를 탁, 짚으며 입을 달싹였다. 그래, 차라리 네가 얘기해라.

       

       “필리우트 제국 서부, 피치블렌드 바위산에서 나오는 하급 마석을 농축 가공하여 만들어지는 폭탄입니다. 화계나 전계마법에서 배우는 이론이 골고루 쓰이나, 마법보다는 여신께서 내려주신 자연현상에 가깝기 때문에 정령 없이도 전개할 수 있어요.”

       “……그렇군요.”

       

       설명 잘하네.

       

       뭔가 버멜을 TA로 들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참았다.

       

       [끄덕끄덕.]

       

       바람의 정령왕도 이해했는지 평정을 되찾았다.

       

       [휙휙.]

       

       그녀는 버멜에게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공중을 슬슬 돌았다. 모래알을 밟는 소리가 사락사락, 하고 들려왔다.

       

       “에어리얼 님께선 입담이 좋은 사람을 선호하시거든요. 버멜 호르데 학생에게 관심이 있으신가 봐요.”

       

       세실이 흐뭇하게 웃으며 그리 말했다. 정작 버멜은 당황하며 눈을 돌렸지만.

       

       아무튼. 

       

       해룡 퇴치 후 작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별다른 탈 없이 브륄리움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섬으로 돌아가자마자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떠올렸다.

       

       그렇지.

       

       이제 로테를 살려낼 차례였다.

       

       

       **

       

       

       마왕성.

       

       파스모와 한탕 싸움을 벌인 요르문간드는 성내 가구란 가구는 죄다 부수며 쌍욕을 퍼부어대는 중이었다.

       

       “이 미친 새끼가!”

       

       요르문간드가 화를 내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왜 여나 다른 이에겐 비밀로 하였느냐!”

       

       그중 첫째는 창천이 홀로 작전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족으로서 마왕군에 나름 소속감을 지니던 요르문간드였다. 마뜩잖아도 파스모나 길라흐는 다 같은 동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스모 혼자서 멋대로 일을 벌여놓았으니.

       

       “거사(巨事)는 항상 같이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야만 참된 동지이거늘! 여가 그리도 미덥지 않던가?”

       “…….”

       “무어라 말 좀 해 보거라.”

       

       요르문간드는 벌써 몇 시간째 엄포를 늘어놓고 있었다.

       

       이에 대해 파스모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만일 여의 친척이 죽기라도 해 보거라. 그때가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요르문간드가 화내는 두 번째 이유가 나온다.

       

       같은 용족인 리바이어던과의 대화가 어느 순간 두절되었다. 기계장치를 더듬으며 송수신을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잡히는 신호가 더는 없었다.

       

       “여의 앞처럼 캄캄하구나.”

       

       요르문간드는 빛을 잃은 금빛 눈동자를 어루만지며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민천.”

       

       생각을 마친 파스모가 입을 열었다.

       

       “……무어냐.”

       “할 얘기가 두 가지 있다.”

       “윤허하겠노라.”

       

       어미 잃은 새끼 늑대처럼 온종일 울부짖느라 기운이 쫙 빠져있던 요르문간드는 힘없이 의자에 앉은 채로 손을 설렁거렸다.

       

       사실 파스모가 여태까지 입을 닫고 있었던 이유는 민천의 진을 빼놓기 위함이었다. 즉, 지금이 말하는 데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마지막 무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는지 기억하는가?”

       

       고개를 얕게 끄덕거리는 요르문간드.

       

       그 소리는 분명, 폭음이었다.

       

       “작전 지역에서 상천이 배신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아마 그년의 마법이겠지.”

       “…지금, 중상모략을 하려는 것이렷다.”

       

       에테르는 배신을 당했으면 당했지, 할 만한 존재는 아니다. 적어도 민천에게는 그런 인식이었다.

       

       파스모가 모함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요르문간드가 이를 까득, 하고 갈며 인상을 찌푸렸다.

       

       “네놈 같은 녀석들이 마왕군에 많아지면 안 된다. 이젠 하다 하다 동료를 팔려고 하다니.”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증거 있느냐?”

       

       쏘아붙이는 요르문간드에게, 파스모는 누런 이를 씩 드러내며 웃었다.

       

       “암. 있고말고.”

       

       리바이어던이 죽었다는 건 100%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2차 저지선 근처로 들어가는 순간을 포착한 영상은 남아있다.

       

       꾹.

       

       파스모는 캐슬 브라보가 보내온 영상을 틀어주었다.

       

       그곳에는 도크를 향해 미꾸라지처럼 헤엄치던 해룡이 있었다.

       

       “여봐라.”

       

       요르문간드가 앞이 안 보이는 저주를 달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파스모는 금안족 몇 명을 불러와 영상을 같이 보여주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민천에게 설명해 주거라.”

       “알겠습니다.”

       

       일시정지했던 영상을 이어서 틀어주는 파스모.

       

       곧이어 쾅! 하는 폭음과 함께 기지가 박살 났다.

       

       “…….”

       “어떻게 됐느냐?”

       

       마왕군 참모들은 입을 다물질 못했다.

       

       “8석께서….”

       “버섯구름에 휘말려서.”

       “저, 전사하신 듯합니다.”

       “창천이시여!”

       

       불러온 금안족들은 말을 덜덜 떨었다.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요르문간드의 귀는 매우 밝아서 이들의 말소리에 거짓이 담겨있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다.

       

       “…저, 정녕 참말이란 말인가?”

       

       급기야 안색이 새파래지는 요르문간드.

       

       참모들은 마왕군 최고참 앞에서 감히 거짓을 고할 수 없었다.

       

       “저, 정말입니다.”

       “해룡 리바이어던 님께서, 흑주에 당해 돌아가신 듯합니다….”

       

       요르문간드가 몸을 덜덜 떨었다.

       

       “그,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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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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